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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삼봉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에 작은 골짜기가 많아 가느실이라 불린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금목면(金目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증삼리, 정단리, 봉계리, 한삼리 일부와 맹동면 개현리 일부를 병합하여 한삼리의 ‘삼’자와 봉계리의 ‘봉’자를 따서 삼봉리라 명명하고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금왕면이 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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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불상을 모셔 놓고 공적으로 불교 신행을 행하는 장소. 음성 지역에서 확인되는 사찰로 그 연원이 가장 오랜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의 지리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보면 음성읍에는 서가섭사(西迦葉寺)와 용산리의 상봉악사(上鳳岳寺), 감우리의 성주사(聖住寺) 등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가섭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 자취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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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삼호3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 앞의 큰 샘에 가래 풀이 많아 가래몽지라 불린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사다산면(沙多山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오산리, 연호리, 소죽리, 우두리 일부를 병합하여 오삼리의 ‘삼’자와 연호리의 ‘호’자를 따서 삼호리라 명명하고 대소면에 편입되었다. 삼호리에는 자연 마을로 쇠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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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토기나 도자기를 굽던 가마가 있던 터. 가마는 크게 한데가마[露天窯]와 굴가마[登窯]로 나눈다. 한데가마에서는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가 구워졌을 것으로 보이나 아직 발굴된 예가 없고, 확인되는 가마는 모두 굴가마이다. 전통시대의 가마는 대부분 파손되어 터만 남은 상태에서 확인되므로 가마 터 유적이라고 부른다. 가마는 연료를 연소시키는 방인 연소실(燃燒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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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구안리와 소이면 충도리의 경계에 있는 산. 수정산성(할미성)과 관련된 축성의 설화로 인하여 오성산(烏城山)은 할아비산 또는 할애비산이라고도 하며, 일명 가막산 또는 오두산이라고도 한다. 서남부의 사면에 있는 원남면 구안리의 구안저수지에서 북류하는 구안천에 수원을 제공하며, 동북부의 사면은 소이면 충도리의 충도저수지와 음성천에 수원을 각각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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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축 산성. 기존에는 남쪽 국도 37호선을 사이에 두고 가막산과 서로 대치하고 있는 오대산성이 가막산성 또는 할애비성이라 불려왔다. 그런데 2002년 지표 조사에 의해 오대산성과 가막산성은 별개의 산성으로서 오대산성은 할미성으로, 가막산성은 할애비성으로 불려졌음이 확인되었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의 가막산성은 음성-괴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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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 있는 산. 견두산은 산의 형태가 개머리와 같다고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가미산 또는 개미산이라고 부르고 있고 또한 가산(佳山)으로 부르기도 한다. 1870년대의 『호서읍지(湖西邑誌)』에서는 견두산은 음성현 남쪽 20리 떨어진 지점의 보천리에 있고, 견두산 아래에는 방죽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견두산에 대한 반시동(潘始洞)의 시에는 “견두산은 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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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에 있는 골짜기. 감곡면은 음성군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면이며, 가미실은 감곡면 남쪽의 원당리·주천리·영산리·상평리·월정리 등에 걸쳐 있는 골짜기이다. 가미실의 이름을 따서 감미곡면(甘味谷面)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시대 충주군의 감미곡면은 원당, 선곡, 외주, 내주, 거동, 영촌, 공산, 덕동, 성평, 상촌, 독정, 무수, 하티, 월동 등의 11개 동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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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에서 음력 8월 15일을 기리는 명절. 추석은 우리 고유어로 한가위·가위·가배라고 하며, 중국식 명칭으로 추석 또는 중추절이라고도 한다. 한가위는 정월대보름과 함께 양대 대보름 명절로, 정월대보름이 농사력이 시작되는 한 해의 첫 보름이라면 한가위는 농사력이 마무리되는 보름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이때는 봄부터 여름 동안 가꾼 곡식과 과일의 수확의 계절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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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 있는 산. 견두산은 산의 형태가 개머리와 같다고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가미산 또는 개미산이라고 부르고 있고 또한 가산(佳山)으로 부르기도 한다. 1870년대의 『호서읍지(湖西邑誌)』에서는 견두산은 음성현 남쪽 20리 떨어진 지점의 보천리에 있고, 견두산 아래에는 방죽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견두산에 대한 반시동(潘始洞)의 시에는 “견두산은 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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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3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의 산세가 아름다워 가산(嘉山)이라 불린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지내면(枝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성산리, 원하리, 원동, 가산동, 사천리, 용산동 일부를 병합하여 용산동의 ‘용’자와 성산리의 ‘성’자를 따서 용성리라 명명하고 삼성면에 편입되었다. 용성리에는 자연 마을로 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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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읍성읍 용산리 가섭산에 있는 고려 후기의 사찰. 가섭사는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 하나인 가섭존자(迦葉尊者)의 이름을 딴 사찰이다. 가섭존자는 두타행(頭陀行)을 가장 충실히 실천하였고, 영취산에서 석가모니 부처가 연꽃을 들어 그 의미를 물었을 때 유일하게 미소로 답하여 염화미소(拈花微笑)의 가르침을 전한 인물이다. 가섭사는 창건 사실을 기록한 문헌 기록과 관련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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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 가섭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불상. 가섭사 석가여래좌상은 전체적인 조각 기법이 정제되었으며, 얼굴 모습은 원만하고 인자하다. 이마에는 백호(白毫)가 있고, 귀는 길며,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어깨에 들어 외장을 하였고, 왼손은 무릎 위에 들어 상장한 설법인(說法印)을 취하고 있다. 목불로서 금박을 입혔는데 높이가 90㎝이며 유리함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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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있는 산. 고문헌에는 음성의 진산으로 음성현 북쪽 8리에 있는 속리산[1,057m] 줄기로서 옛날 봉화대가 설치되어 있다고 하였다. 산 남쪽으로는 음성읍이 펼쳐있고, 북쪽은 충주시 신니면 선당리 등과 인접하고 있다. 음성팔경의 하나로서“가섭산의 저녁 종소리(가섭모종, 迦葉暮鐘)”를 들고 있다. 고려 초기 가섭산 중턱에 암자가 하나 있었고 그 암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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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있는 국궁 전수 시설. 음성궁도장은 음성군 궁도협회 산하의 사정(射亭)인 가섭정(迦葉亭)을 의미한다. 사정이란 활을 쏘려고 세운 정자를 의미하며, 사정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궁도 단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음성궁도장은 1993년부터 음성군 궁도협회에서 위탁·운영·관리하고 있으며, 1995년 제34회 충청북도 도민체육대회 궁도 경기를 개최하고자 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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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부녀자들이 집 안에서 가족의 안위와 건강 등을 기원하며 올리는 정기적, 비정기적인 의례 행위의 총칭. 가신(家神)은 집을 단위로 하는 가족의 번창을 돕고 액운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신들로서, 집 안 곳곳에 상주하여 외부에서 들어오는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고 행운을 준다고 믿는다. 이러한 가신에게 의례를 행하는 가신신앙은, 주로 집안에서 신앙 행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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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의 묘지석. 권근은 1409년(태종 9) 2월에 서거했으며, 같은 해 4월에 경기도 양주군 오포면(현재의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으로 예장(禮葬)하였는데 이때 묘지석이 만들어졌다. 이후 1444년(세종 26) 3월 충주로 이장을 하였는데 이 묘지석은 가져가지 못하고 광 속에 보관하다가 1965년에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권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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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의 묘비. 권근(權近)은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1398년(태조 7) 1차 왕자의 난 이후 사병(私兵) 폐지를 주장하여 왕권 확립에 큰 공을 세웠다.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으로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지고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에 올랐다. 사후 좌의정에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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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안동. 초명은 권진(權晉),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 증조부는 권부(權溥)이다. 1368년(공민왕 17) 성균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급제하여 춘추관검열·성균관직강·예문관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공민왕이 죽자 정몽주(鄭夢周)·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배원친명(排元親明)을 주장하였다. 1390년(공양왕 2) 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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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에서 음력 8월 15일을 기리는 명절. 추석은 우리 고유어로 한가위·가위·가배라고 하며, 중국식 명칭으로 추석 또는 중추절이라고도 한다. 한가위는 정월대보름과 함께 양대 대보름 명절로, 정월대보름이 농사력이 시작되는 한 해의 첫 보름이라면 한가위는 농사력이 마무리되는 보름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이때는 봄부터 여름 동안 가꾼 곡식과 과일의 수확의 계절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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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음력 1월과 10월에 집안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가정의례. 안택고사는 안택(安宅)과 고사(告祀)가 합쳐진 말로 ‘안택’ 또는 ‘고사’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정월 안택’, ‘가을 고사’라 하여 정월에 지내는 의례를 안택, 가을에 지내는 의례를 고사라 일컫는다. 또는 전문적인 무당이나 앉은굿을 하는 법사 또는 복술자(卜術者)를 불러다 치성을 드리는 것을 안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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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수태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 입구의 지형이 가재의 이빨과 같다고 하여 가재미로 부르다가 가잠이로 변하였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소탄면(所呑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태리, 하태리, 수인리와 진천군 소답면 신통리 일부를 병합하여 수인리의 ‘수’자와 상태리의 ‘태’자를 따서 수태리라 명명하고 대소면에 편입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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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사곡2리에서 정월 대보름날 서낭제 뒤에 아이들이 행하던 민속놀이. 가재줄다리기는 감곡면 사곡2리의 토광곡(土廣谷), 곧 톡실과 너른골에서 정월 대보름날 지내던 서낭제 뒤에 아이들이 행하던 민속놀이이다. 충청북도 지역에서는 음성군 감곡면 사곡2리에서만 행해지던 독특한 놀이인데, 가재줄다리기란 명칭은 줄다리기를 하는 모양이 마치 가재들이 서로 당기는 모습과 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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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도신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에 아름다운 정자가 있어 가정개라 불린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촌, 도관리와 곤지리, 생탕리 각 일부와 충청북도 충주군 금목면의 각회리 일부를 병합하여 도관리의 ‘도’자와 신촌의 ‘신’자를 따서 도신리라 명명하고 생극면에 편입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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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1937년 1월 23일에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도 그 집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상당히 깊은 역사를 담고 있는 집이었다. 아버지는 다섯 형제의 둘째였는데, 큰아버지의 아들이 해방되고 이북으로 올라가서 김장일 할아버지가 큰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갔다. 그래서 김장일 할아버지는 큰집의 제사를 맡고 있고, 동생이 친부모의 제사를 맡고 있다. 친아버지는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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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오동석(五東碩), 김해김씨’로, 워낙 손이 귀한 집안이라 독자였던 아버지께서 13세의 나이로 일찍 혼인을 하셨다. 당시 음성군 삼성면 선정리에 살고 계셨던 어머니 역시 13세였다. 오덕욱 할아버지는 1935년 10월 18일생으로 5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고, ‘보성오씨’로 원래 고향은 현도지만, 9대조 할아버지가 음성에 터를 잡으셨다. 오덕욱 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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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도신리 가정개에서 음력 정월 초 산신에게 올리는 제의. 가정개는 생극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2㎞ 지점에 위치하며 도관리 남쪽에 있다. 마을 뒤에 정자가 있어 가정(佳亭)이라고 하였는데 가정이 변해서 가정개가 된 것이다. 매년 정월 초를 기준으로 날을 잡아 도신리 가징개 산신제를 올리는데 부정한 일이 있으면 3일 정도 연기한다. 제관은 40세 이상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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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도신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에 아름다운 정자가 있어 가정개라 불린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촌, 도관리와 곤지리, 생탕리 각 일부와 충청북도 충주군 금목면의 각회리 일부를 병합하여 도관리의 ‘도’자와 신촌의 ‘신’자를 따서 도신리라 명명하고 생극면에 편입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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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3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의 지형이 용의 뿔과 같다고 하여 각동(角洞)이라 하였는데, 그 후 변하여 각골[覺谷]이 되었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 소탄면(所呑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본리, 성산리와 대조면의 각 동을 병합하여 성산리의 ‘성’자와 본리의 ‘본’자를 따서 성본리라 명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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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 일대에 조성된 농업 용수 공급 저수지. 농업 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1945년에 준공된 저수지이다. 일명 각골1저수지라고도 한다. 소탄저수지 시설은 한국농어촌공사 충북지역본부 음성지사가 관리하며, 총 저수량 50만 톤 이하의 2종이다. 제체 형식은 휠 댐이고, 제당 구조는 토언제 균일형이다. 제체 길이는 95m, 제체 높이는 4m이다. 총 저수량은 1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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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각회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에서 뜻을 이루었다 하여 각구실(覺區室)이라 불린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금목면(金目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촌, 덕동을 병합하여 각회리라 명명하고 금왕면에 편입되었으며, 1973년 금왕읍의 한 리가 되었다. 각회리에는 자연 마을로 각구실, 동양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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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자 할머니(36년생, 72세)께 예전에 마을 분들이 하던 계모임에 대해 여쭤 보았다. 할머니는 별별 계를 다 했었다며 밥통계, 쌀계, 국수계 등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밥통계는 할머니가 3, 40대일 당시 전기로 나온 신제품인 전기밥통을 사기 위해 했던 계모임이다. 계원이 돌아가며 한 명씩 밥통을 탔는데, 김숙자 할머니는 자신이 탄 밥통이 고장이 난 거였는데, 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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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이 곶을 이루었으므로 갈구실 또는 각회곡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촌(東村)과 덕동(德洞)을 병합하여 각회리가 되고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금왕읍으로 승격되었다. 북부에는 우등산[262m]과 227m의 산이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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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공범(公範), 호는 각회옹(覺悔翁). 고조부는 김자수(金自粹), 아버지는 참봉 김평(金萍)인데 중부(仲父) 경상우수사 김훤(金萱)에게 입계하다. 부인은 풍양조씨로 조승종(趙承宗)의 딸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기발한 재질과 영매한 기상이 있었으며 학문에 뜻을 두어 세상 사람들이 경모하였다. 스무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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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1리 강당말과 용대동은 부용산 자락에 마을을 이룬지 400여 년이 지났다. 그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마을 사람은 산자락의 척박한 땅을 일구어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으며,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유형의 문화유산을 풍성하게 남겨놓았다. 특히 음성군의 향토문화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간와당은 물론 마을 사람들이 보존하고 있는 교지, 계문서 등 각종 오래된 고문서,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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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중동4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소이면 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6㎞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불정면 앵천리, 서쪽으로 봉전리, 남쪽으로 용고개, 북쪽으로 문등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갈마절이라고도 부르는데, 옛날에 갈마사라는 절이 있어 마을 이름을 갈마절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충주군 소파면 지역이었는데 소파면의 중심지로 면사무소가 있었으므로, 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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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봉현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봉암 서쪽에 새로 생긴 마을로 봉암새터라고도 한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맹동면(孟洞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계리와 개현리, 봉암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봉암리의 ‘봉’자와 개현리의 ‘현’자를 따서 봉현리라 명명하고 맹동면에 편입되었다. 봉현리에는 자연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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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원당리에서 월정리까지 연결되는 지방도. 지방도 520번은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원당리에서 충주시 노은면 문성리까지 14.3㎞의 2차선 지방도이며, 노견 포장은 좌·우 모두 3.5㎞이다. 감곡~충주길이라고도 한다. 지방도 520번의 음성군 구간은 감곡면 원당리에서 상평리를 거쳐, 감곡면 월정리 간의 7.25㎞의 2차선 지방도이다. 음성군 감곡면 원당리에서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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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향1리에 있는 우시장.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의 주민들은 청미천을 경계로 충청북도 음성군 쪽을 음성 장호원, 경기도 이천시 쪽을 이천 장호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음성 장호원은 조선시대 영남 지방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고자 문경새재를 넘어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 지역을 거쳐 충주, 주덕, 감곡 지역을 통하여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또한 조선 후기에 소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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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에 있는 도정공장. 감곡농업협동조합은 1969년 9월 10일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관내 리·동 조합이 합병되어 설립되었다. 1978년 3월 31일에는 자립 조합, 1986년 1월 1일에는 봉사 조합, 1993년 1월 1일에는 복지 조합 등으로 조합이 승격되었다. 감곡농업협동조합은 1995년 4월 25일에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에 간이집하장 495㎡을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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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속하는 행정면. 감미면의 ‘감’ 자와 거곡면의 ‘곡’ 자 각 한 글자씩을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지역으로서 가미실의 이름을 따서 감미곡면(甘味谷面)이라 하여 원당(元堂)·선곡(仙谷)·외주(外舟)·내주(內舟)·거동(巨洞)·영촌(嶺村)·공산(公山)·덕동(德洞)·성평(城坪)·상촌(桑村)·독정(篤亭)·무수(無愁)·하티[荷峙]·월동(月洞) 등 14개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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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향리에 있는 체육 단체. 지역 체육회의 발족으로 지역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면민 화합을 도모함과 더불어 우수 선수 발굴 및 지도·육성을 통해 감곡면의 체육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창립되었다. 1987년 감곡면 체육회가 발족되면서 회장에는 초대 이종승(1987~1990), 제2대 김종웅(1989~1990), 제3대 송기태(1991~1992), 제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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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향리에 있는 음성군의 하부 행정 기관. 2020년 7월 31일 현재 감곡면의 관할 면적은 69.4㎢이고, 관할 인구는 5,228세대 10,612명(남자 5,448, 여자 5,124)이다. 관할 행정 구역은 법정리 12개(오향리, 주천리, 원당리, 상평리, 월정리, 영산리, 사곡리, 문촌리, 오궁리, 상우리, 왕장리, 단평리)와 행정리 39개 그리고 14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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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 일원에서 매년 8월 감곡복숭아의 홍보와 판매를 위하여 개최하는 지역 축제. 햇사레감곡복숭아축제는 음성의 특산물인 감곡복숭아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재배 농민의 소득 증대를 꾀하기 위하여 복숭아 수확기인 매년 8월 주생산지인 감곡면 일원에서 개최되는 축제이다. 감곡복숭아의 품종은 백도·황도·엘바도가 주종이며, 감곡면의 지형이 동북향은 막히고 남서향이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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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향리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 음성군 감곡면 지역 주민의 대중교통 수단의 편리성을 위하여 6·25전쟁 이후 공동 정류소이던 것이 2002년 3월 21일부터 시외버스터미널로 면허를 받아 영업을 시작하였다. 감곡시외버스터미널의 대지 면적은 약 2,700㎡이고, 건축 면적은 207㎡이다. 2011년 7월 현재 5일 시외버스 운행 대수는 165대이며, 목적지별 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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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향리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 음성군 감곡면 지역 주민의 대중교통 수단의 편리성을 위하여 6·25전쟁 이후 공동 정류소이던 것이 2002년 3월 21일부터 시외버스터미널로 면허를 받아 영업을 시작하였다. 감곡시외버스터미널의 대지 면적은 약 2,700㎡이고, 건축 면적은 207㎡이다. 2011년 7월 현재 5일 시외버스 운행 대수는 165대이며, 목적지별 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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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향1리에 있는 우시장.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의 주민들은 청미천을 경계로 충청북도 음성군 쪽을 음성 장호원, 경기도 이천시 쪽을 이천 장호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음성 장호원은 조선시대 영남 지방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고자 문경새재를 넘어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 지역을 거쳐 충주, 주덕, 감곡 지역을 통하여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또한 조선 후기에 소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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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에 있는 재래 시장. 조선시대 충주목 거곡면 지역의 왕장리는 오늘날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가 된다. 청미천을 경계로 충청북도 음성군 쪽을 음성 장호원, 경기도 이천시 쪽을 이천 장호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과거에는 장이 열리는 지역 명칭의 특성상 감곡장을 왕장장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는 조선시대 영남 지방의 선비들이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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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향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인정과 질서를 중시하고 공동체의 발전에 헌신할 수 있는 사람, 자아 정체감을 확립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 스스로 탐구하는 자세와 능력으로 새로움을 열어가는 사람, 진취적인 기상으로 미래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사람, 청소년 문화를 창달하여 신체를 단련하고 순화하는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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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우리와 왕장리 일대에 조성하고 있는 지방 산업 단지. 지방산업단지법에 의하여 산업 단지 내 사업장에게는 지방세 감면 혜택 또는 일정 기간의 법인세 유예 등의 기업 지원 서비스가 제공될 예정이다. 충청북도 음성군이 계획하고 있는 산업 단지는 산업의 생산성 제고 및 국토 환경 보호와 수도권 공장의 지방 이전, 지방 중소기업의 저렴한 공장용지 확보, 국가 정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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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향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소질과 개성을 키우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어린이, 질서를 존중하고 자율적이며 서로 돕는 어린이, 스스로 학습하며 사고하는 창조적인 어린이,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꾸고 환경을 깨끗이 하는 어린이, 지식 정보화 사회를 주도할 능력 있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23년 6월 12일 감곡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여 19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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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에 있는 음성경찰서 산하 치안 행정 기관. 형사 수사·방범·순찰·교통 질서 확보 등을 통하여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지역의 치안 유지 및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1945년 10월 21일 감곡주재소로 출범하였다. 1946년 4월 6일 감곡지서로 이름이 바뀌었다. 1953년 5월 15일 감곡면 왕장리 438번지에 청사를 신축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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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두성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에 감나무가 많아서 감나무골이라 불린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맹동면(孟洞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성리, 두중리, 두동리, 두서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두서리의 ‘두’자와 부성리의 ‘성’자를 따서 두성리라 명명하고 맹동면에 편입되었다. 두성리에는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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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에 있는 골짜기. 감곡면은 음성군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면이며, 가미실은 감곡면 남쪽의 원당리·주천리·영산리·상평리·월정리 등에 걸쳐 있는 골짜기이다. 가미실의 이름을 따서 감미곡면(甘味谷面)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시대 충주군의 감미곡면은 원당, 선곡, 외주, 내주, 거동, 영촌, 공산, 덕동, 성평, 상촌, 독정, 무수, 하티, 월동 등의 11개 동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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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예로부터 마을에 단비만 내렸고, 또한 감우재 밑이 되므로 감우재가 되었다고 한다. 본래 음성군 근서면(近西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성주동을 병합하여 감우리가 되었고, 1956년 7월 8일 음성면이 읍성읍으로 승격되었다. 남쪽에 보현산[482m]이 있는 등 사면이 300~500m의 산으로 형성되어 있어 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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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감우리에 있는 수령 약 350년과 150년의 보호수. 잎은 어긋나고 긴 타원 모양 또는 달걀 모양이며, 길이는 2~12㎝, 폭은 1~5㎝이며 표면은 매우 거칠거칠하다. 끝이 점차 뾰족해진다.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는 두 그루인데, 수령은 각각 약 350년과 약 150년이다. 높이는 각각 17m, 둘레는 각각 3.9m, 2.4m이고 수관 폭은 각각 20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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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4일부터 7월 10일까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적으로 전쟁을 도발하여 파죽지세로 남하하였다. 국군 제6사단 제7연대는 장호원에서 충청북도 음성군 방향으로 남하하는 북한군 제15사단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7월 4일, 음성군 방면으로 이동하여 방어망을 구축하고 북한군에 대비하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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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소여리 무극전적국민관광지 안에 조성된 전승기념관. 감우재전승기념관은 6·25전쟁 때 한국이 최초로 승전하여 국군의 사기를 드높였던 곳인 무극전적국민관광지 내에 설립되었다. 당시에 분투한 장병들의 공훈을 기리고, 후세들에게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적극 활용하고자 설립하였다. 감우재전승기념관은 모두 2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은 208m², 2층은 138㎡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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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4일부터 7월 10일까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적으로 전쟁을 도발하여 파죽지세로 남하하였다. 국군 제6사단 제7연대는 장호원에서 충청북도 음성군 방향으로 남하하는 북한군 제15사단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7월 4일, 음성군 방면으로 이동하여 방어망을 구축하고 북한군에 대비하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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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남천동에 있는 조선시대 연원역 소속의 감원역(坎原驛)이 있었던 자리. 조선시대에는 주요 도로에 대개 12㎞ 떨어진 거리마다 역을 두었는데, 역에는 마필(馬匹)과 역정(役丁)을 갖추어 공문을 전달하였으며, 공무 여행자에게 마필을 제공하거나 관물(官物)의 수송까지 담당하였다. 음성 지역에는 충주 연원찰방도에 속한 14개 역 중 용안역(用安驛)과 감원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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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 위치가 갑산 밑이 되므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소파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갑산1리, 갑산2리, 갑산3리 등을 병합하여 갑산리라 하고 음성군 소이면에 편입되었다. 정자안 남쪽에는 금봉산[481m]이 있고 중탑골 북쪽에는 깍은댕이산이 있으며, 깍은댕이산 북쪽에는 두리봉이 있다. 갑산리 금봉산에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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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고인돌은 거석(巨石) 문화의 산물로 청동기시대에 주로 만들어진 무덤 유적으로 무덤방의 위치에 따라 탁자식·바둑판식·구덩식 고인돌로 구분된다. 음성 지역에서는 고인돌의 발견 예가 많지 않으나 바둑판식 고인돌이 주를 이루고 탁자식이나 개석식 고인돌도 확인된다. 유적은 음성군 소이면 소재지에서 국사봉 방향으로 가다 이르는 갑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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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 동녘 사람들이 음력 정월 대보름날 공동으로 올리는 제의. 동녘은 정자안 동쪽에 위치하며 약 3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예전에는 동제를 지내지 않았으나 약 15년 전부터 마을의 안녕과 결속,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동제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동제당이자 신체는 마을 입구에 있는 신목인 세 그루의 수무나무(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이다. 갑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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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있었던 산제당. 임진왜란 때 금봉산에 있었던 금봉사가 없어진 자리에 갑산리 산제당이 지어졌다. 그러다 1972년 공비 토벌로 불타 없어졌다. 갑산리 산제당은 정자촌 마을회관에서 도보로 40분 정도 소요되는 금봉산 9부 능선에 있었다. 1972년 훼철되기 전 산제당에는 사당 형태의 제각이 있었고 그 안에는 산신도와 석고상으로 된 산신상이 있었다. 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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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 갑산리의 옛 절터에 있는 석탑으로, 원래는 7층 석탑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4층만 남아 있다. 갑산리 절터는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 정산 앞의 속칭 탑골이라고 불리는 골짜기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현재 절터 주변지역은 모두 밭으로 변하여 정확한 절터 위치는 확인할 수 없다. 갑산리 석탑은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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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있는 수령 약 150~500년과 120년의 보호수. 각각 은행나무 한 그루와 느티나무 5그루이다. 소이면 갑산리 보호수 중 갑산1리에 있는 은행나무가 약 500년으로 가장 오래되었으며, 나무의 높이와 둘레도 가장 크다. 갑산1리 383번지 좌안 은행나무는 수령이 약 500년으로 높이는 24m이고, 둘레는 8m이며, 수관 폭은 15m이다. 갑산리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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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1리 정자안에서 매년 음력 1월 7일에 지내는 산신제. 갑산리 정자안 산신제는 현지에서는 산제라고 한다. 정자안은 음성읍에서 동남쪽으로 10㎞ 지점, 소이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5㎞ 지점에 위치하며 금봉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갑산내가 흐르고 있다. 산신제를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꽤 오래 전부터 지내오다 1972년 산제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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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고인돌은 거석(巨石) 문화의 산물로 청동기시대에 주로 만들어진 무덤 유적으로 무덤방의 위치에 따라 탁자식·바둑판식·구덩식 고인돌로 구분된다. 음성 지역에서는 고인돌의 발견 예가 많지 않으나 바둑판식 고인돌이 주를 이루고 탁자식이나 개석식 고인돌도 확인된다. 유적은 음성군 소이면 소재지에서 국사봉 방향으로 가다 이르는 갑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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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아직도 옷깃을 다시 만지게 하는 날씨이지만, 온돌방이라 그런지 추위는 별로 느끼지 못했다.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느낄 틈이 없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갑산리의 근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권오성 할아버지의 시조인 안동권씨 문중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큰 관심거리였다. 동역 에서 만난 권오성 할아버지(77세)는 권씨 문중의 자손으로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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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산리를 방문하여 마을에 분포되어 있는 여러 가지 조직에 대해 조사를 해보니, 그 수가 다른 마을에 비해 상당히 많았다. 특히 지금은 보편적으로 하지 않는 계모임이 있어서 더욱 흥미로웠다. 갑산리에서 현재 행해지고 있는 계모임은 마을 단위의 계로 산림계, 대동계, 연방계, 호포계가 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 개개인이 만든 동갑계와 친목계가 있다. 또 안동권씨 집성촌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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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 금봉산에서 발원하여 음성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소이면 갑산리 금봉산에서 발원·북류하여 중동리에 이르고 음성천에 합류하는 소하천이다. 폭은 15m이고 길이는 3.9㎞이며 유역 면적은 3.10㎢이다. 갑산천은 소이면 갑산리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하천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쪽 괴산군 소수면 수리와의 경계에 금봉산[481m]이 있고 갑산천은 금봉산 북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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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1리에는 주로 강당말 중심으로 마을 모임이 조직돼 있었다. 2월 6일, 마을회관에서 마을 조직에 대해 이야기 듣던 중, 오래된 계 장부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김장일 할아버지(37년생, 71세) 댁으로 찾아가 마을의 계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강당말에는 마을 전체로 강당계, 송계, 안동김씨 강당말파 파종계 등이 있었고, 여자들끼리는 크고 작은 각종 계모임을 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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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마을은 한강의 상원지류를 앞으로 하고 차령과 노령의 정기서린 부용산 기슭에 자리잡은 安東金氏 세거지이다. 아무리 가물어도 모래톱에서 일정량의 물이 솟는 모래 우물이 있어 모래샘 또는 沙井이라 하였다. 금소목이는 음성현의 金村部曲으로 쇠를 다루던 곳이며 신라 때부터 퉁쇠로 농기구를 만들던 퉁뱅이들이 모여 살아 부곡이 형성되었고 음성 지역에서는 씨족이 마을을 이룬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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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1리 강당말과 용대동 마을은 깊은 산골이긴 하지만 예전엔 서울로 통하는 사정고갯길이 통과하는 길목이어서 나그네들이 쉬어가는 쉼터인 주막이 있었던 곳이다. 또한 6·25 때에는 높은 산과 고개를 사이로 두고 접전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산촌이어서 먹고살아나가는 일이 여의치 않아 솔방울도 따다 팔고 나무도 해다 팔기도 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에는 마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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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1리는 강당말과 용대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강당말은 안동김씨(신안동김씨) 집성촌이고, 용대동은 경주이씨 집성촌이다. 4월 12일 강당말의 김두일 새마을 지도자(52년생, 56세)를 만나 안동김씨에서 신안동김씨로 나온 이유에 대해 여쭤보았다. 김두일 어른은 신안동김씨가 김선평(金宣平) 할아버지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설명을 시작했다. “선평 할아버지인가? 선평이면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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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말은 음성읍 사정1리에 속한 마을로 서쪽은 사정2리인 본말, 동쪽은 용대동과 접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부용산이 마을의 진산으로 자리하고 있다. 강당말은 옛 사정고갯길을 따라 사정고개 방향으로 올라오다 보면 마을 입구에 큰 느티나무들이 어우러져 있으며, 느티나무 아래로 팔각정자 쉼터를 만들어 놓았으며, 바로 옆 터에 있는 마을회관이 눈에 들어오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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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강지(綱之), 호는 유서(柳墅). 박경세(朴慶世)의 아들로 박응한(朴應漢)에게 입양되었다. 박래복은 양부모를 극진히 섬겨 충주 유림에 의해 효자로 추천되었다. 그는 효가문에 이름이 올라 아버지 박응한, 조부 박준흠, 증조부 박정규, 고조부 박진구, 현조부 박호원, 아들 박지혁까지 음성 인물에 등재되었다. 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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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수절한 열녀. 박호식(朴鎬植)의 딸이며 본관은 밀양이고 죽산에서 태어났다. 18세에 출가하여 시부모를 극진하게 봉양하여 집안을 화목하게 만들었다. 남편 강진영(姜鎭榮)이 일찍 병을 얻으니 약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먹여 1년을 연명하게 했으나 끝내 죽었다. 이때 나이 스무 살인 박씨는 남편을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어린 아들이 있어 죽지 못하고 대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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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지역에 자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용담목 물푸레나뭇과의 낙엽 활엽 관목. 개나리는 산기슭 양지에서 많이 자란다. 충청북도 음성군을 상징하는 꽃이다. 강인한 번식력은 군민의 불굴의 투지와 단결·번영을 의미한다. 노란색의 꽃은 온화하고 따뜻한 감을 주며, 봄의 첨단을 걷는 개척 정신과 희망찬 미래를 상징한다. 개나리의 길이는 약 3m이고 가지 끝이 밑으로 처지며, 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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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 있는 산. 견두산은 산의 형태가 개머리와 같다고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가미산 또는 개미산이라고 부르고 있고 또한 가산(佳山)으로 부르기도 한다. 1870년대의 『호서읍지(湖西邑誌)』에서는 견두산은 음성현 남쪽 20리 떨어진 지점의 보천리에 있고, 견두산 아래에는 방죽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견두산에 대한 반시동(潘始洞)의 시에는 “견두산은 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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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3리 개미산에 있는 광주반씨(光州潘氏)가 모여 사는 동족 마을. 광주백파(光州伯派) 반충(潘忠)의 현손인 이조판서 반석평(潘碩坪)이 청주 율봉찰방으로 있을 때, 충주 연원도(連原道)를 왕래하면서 도선국사의 『도선비결』에 나오는 ‘봄이 깊은 마피곡 꽃이 만발한 견두산(春深馬皮谷 花發犬頭山)’이라는 구절을 유의하고 살피다가, 현재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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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음력 정월 14일이나 15일날 개에게 밥을 주지 않는 풍속. “개 보름 쇠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잘 먹어야 할 명절에 오히려 굶주린 사람을 뜻하는 말로서, 정월 대보름날 개에게 밥을 주지 않는 풍속에서 유래된 말이다. 개보름쇠기는 전국적으로 행해지는 대보름 풍속인데, 음성군의 경우 지역에 따라 정월 14일에 나타나기도 하고 정월 대보름날에 나타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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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분파. 개신교는 종교개혁의 결과로 가톨릭교회에 반발하여 성립된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성공회 등의 여러 기독교 종파를 총칭하는 말이다. 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신교의 주요 분파로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순복음교, 안식교, 성공회, 구세군 등이 있다. 충청북도 음성 지역의 개신교는 구한말 경기도 음죽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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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4년 9월 9일에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에서 조태영(趙泰永)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서울시 종로에서 살았다. 1950년 7월 15일 6·25전쟁 시에 폭탄에 맞아 57세로 전사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에 있다. 조윤식은 서울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독학하면서 주권 회복의 뜻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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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 개최하는 행사. 건국이념인 홍익인간과 이화세계의 정신을 함양하여 민족적 얼과 뿌리 의식을 찾기 위하여 개최되는 행사이다. 2000년에 행해진 개천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치단체장을 비롯한 기관단체장들이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을 맡아 제례에 참여하고, 천지인의 상징적 의미가 부여된 제기도 삼각형, 원형, 네모형의 신상 배치도로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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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조선 세종 때 양촌 권근(權近)[1352~1409]의 묘소를 수호하던 개가 죽어서 이곳에 묻혔다고 하여 개터라 불린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감미곡면(甘味谷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덕동, 성평리, 상촌, 공산리, 외주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상촌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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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있는 산. 조선 후기의 문헌에서는 금봉산은 음성군 동남쪽 20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봉산은 산 모양이 봉황이 날개를 드리운 것과 같다고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길이 험해서 말의 통행이 불편하였는 데 자선가 정운상이 거액을 내어 길을 닦아 평탄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일명 죽실령(竹實嶺)이라고도 한다. 갬봉산은 금봉산이 변하여 만들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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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미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이 아름답다 하여 가곡(佳谷)이라 부르던 이름이 갯골로 변하였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대조곡면(大鳥谷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정곡리 일부와 사다산면의 우두리 일부를 병합하여 미곡리라 명명하고 대소면에 편입되었다. 미곡리에는 자연 마을로 갯골과 텃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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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지천서원에 배향된 고려 후기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순중(純仲), 호는 상촌(桑村). 검교태자태사 김인관(金仁琯)의 8세손이다. 조부는 삼사부사 김영백(金英伯), 아버지는 통례문부사 김오(金珸)이다. 부인은 안동권씨로 낭장 권수(權隨)의 딸이다. 아들은 평양소윤 김근(金根)이고, 사위는 중랑장 권후(權厚)이다. 김영유(金永濡)가 손자이며 십청헌 김세필(金世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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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36번 국도를 타면 음성, 충주로 이어진다. 약 40㎞쯤 가면 음성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음성역을 오른쪽에 두고 괴산 방향으로 가면 갑산리로 들어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비교적 찾기 쉽게 높게 달아 놓은 갑산리 방향을 표지판은 왠지 갑산리와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우회전 방향으로 약 2㎞ 되는 거리를 가면 봉전리를 지나 갑산2리가 먼저 나오고 갑산1리를 발견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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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행해지는 서낭신에 대한 제사. 우리나라의 마을은 배산임수를 중심으로 하며, 산을 등지고 남쪽으로 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서낭신을 모시는 서낭당이 있으며 그 옆에 장승이나 솟대가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서낭신은 토지 수호신이며, 마을의 경계 또는 입구를 지켜 주는 신이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마을의 방액(防厄),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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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전승되고 있는 추석 민속놀이. 거북놀이는 한 해 동안 거둔 수확에 감사하여 추석에 마을 사람이 모두 참여하여 수수 잎, 옥수수 잎, 왕골, 볏짚 등의 재료로 거북을 만들고 거북과 같이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노는 집단 놀이로서 민속신앙(民俗信仰)의 기능을 함께 하고 있다. 거북놀이의 연원에 관해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때 15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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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에 있는 바위. 원남면 조촌리 흐리실에 있는 거북 모양의 바위이다. 흐리실은 덕고개 서쪽의 마을로서 일명 기리, 문촌 등으로도 불리고 있는데 문촌은 옛날에 선비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870년대에 발간된『호서읍지』에서 귀암은 음성현의 북쪽 30리 지점의 조촌내 윗부분에 있는데 부근에 9그루의 소나무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고 기록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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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놀이는 갑산리마을 사람들이 가장 자랑거리로 생각하고 있는 놀이로 현재는 그 맥이 끊어진 상태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그들이 직접 거북놀이에 참여하여 농악놀이를 하고 춤을 추었던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애착이 강하다. 정자안 마을회관 에는 여러 가지 트로피와 상장들이 가득했다. 어르신들께 상장과 트로피에 대해서 여쭤보니, 모두 거북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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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지란 편안히 쉬면서 몸과 마음을 보양하기에 알맞은 곳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수려한 산세의 봉학산과 봉학골 골짜기의 봉학골천에 입지하고 있는 봉학골 산림공원은 휴양지로서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1996년 6월에 개장한 봉학골 산림욕장은 음성읍과 가까워 교통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근처에 용산저수지와 가섭산이 있는 천혜의 쉼 터이기도 하다. 음성군에서는 매년 봉학골 산림욕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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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용성리에서 으뜸가는 성미 앞 내의 건너편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건너말이라 불린다. 본래 충주군 지내면(枝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성산리, 원하리, 원동, 가산동, 사천리, 용산동 일부를 병합하여 용산동의 ‘용’자와 성산리의 ‘성’자를 따서 용성리라 명명하고 삼성면에 편입되었다. 용성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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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토목·건축과 관련된 공사를 맡아 사업을 영위하는 업종. 건설업은 토목과 건축 그리고 이에 따르는 공사를 시행하는 산업으로 크게 일반 건설업, 특수 건설업, 전문 건설업으로 구분된다. 일반 건설업과 특수 건설업은 건설교통부장관의 면허를, 전문 건설업은 서울특별시장, 각 광역시장 및 도지사의 면허를 받아야 한다. 건설업 면허는 5년마다 갱신해야 하며 갱신하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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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있는 산. 음성읍 용산3리는 건지봉인데 마을의 서쪽에 건지봉이 있다. 건지봉은 건조한 땅에 초지가 있는 산봉우리라는 의미에서 붙어진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용산리 북서쪽의 생극면 오생리와의 경계에는 부용산[644m]이 있고 남서쪽의 감우리에는 보현산[477m, 일명 성주산]이 있으며 동부의 충주시 신니면 화안리와의 경계에는 가섭산[710m] 등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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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 있는 산. 견두산은 산의 형태가 개머리와 같다고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가미산 또는 개미산이라고 부르고 있고 또한 가산(佳山)으로 부르기도 한다. 1870년대의 『호서읍지(湖西邑誌)』에서는 견두산은 음성현 남쪽 20리 떨어진 지점의 보천리에 있고, 견두산 아래에는 방죽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견두산에 대한 반시동(潘始洞)의 시에는 “견두산은 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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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조선 세종 때 양촌 권근(權近)[1352~1409]의 묘소를 수호하던 개가 죽어서 이곳에 묻혔다고 하여 개터라 불린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감미곡면(甘味谷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덕동, 성평리, 상촌, 공산리, 외주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상촌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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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욱 할아버지 댁은 1·4후퇴 때 집이 다 타버렸기 때문에 광 한 칸에 가족이 모두 살고 있어서 혼인을 치르고도 신부를 데리고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분들은 그날 다 내려왔지만 오덕욱 할아버지만 신부집에 5일 정도 더 묵다가 병암1리로 내려오고, 그 뒤로 8개월을 떨어져 지냈다. 오덕욱 할아버지는 8개월 동안 김금자 할머니를 보러 추석 때 한 번 가고 서울 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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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음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 자는 겸지(謙之). 박순(朴淳)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박윤진이고, 부인은 문화유씨 사정 유세장(柳世長)의 딸이다. 박유겸은 생원으로서 선공감역(繕工監役)을 역임하였다. 묘소가 경기도 광주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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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선비. 본관은 밀양. 자는 경견(敬絹), 호는 입재(立齋). 정조 대의 명신 매곡 박한규의 6세손이다. 아들로 박석원과 박두원이 있다.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하였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로 이주하였다. 15~16세 때 회당 윤응선에게 수학하여 학문에 탁월하였다. 일제의 학정에 세상의 뜻을 버리고 은거하여 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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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양. 자는 경관(景觀), 호는 설죽(雪竹). 아버지는 참봉 조유백(趙惟白)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금석리 바디실에서 출생하고 그곳에서 살았다. 1606년(선조 39) 진사시에 합격하고 바로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608년(선조 41) 승정원가주서로 선조의 임종을 지켰으며, 광해군이 즉위하자 예문관검열에 임용되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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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경국(景國), 호는 유당(留堂). 정희조(鄭喜朝)의 아들이다. 정인학은 1870년(고종 7) 31세로 생원시에 합격하고 1880년 알성문과(謁聖文科) 병과에 급제하였다. 처음에 주서(注書)로 기용되어 다음해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와 응교(應敎)를 거쳐 병조정랑(兵曹正郞)이 되었다. 1884년에는 이조참판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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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에 있는 조선 태종의 제1서자 경녕군의 부인 청풍김씨의 묘. 경녕군(敬寧君)은 조선 태종과 효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태종의 장남이다. 경녕군 부인 청풍김씨는 1416년(태종 16)에 경녕군과 성혼하였으며, 1417년(태종 17)에 경신택주 안산군부인(敬愼宅主 安山君夫人)에 봉해졌다. 1450년(세종 32) 4월에 서거하여 현 위치에 안장되었다. 경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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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경렬(景烈), 호는 소성(小醒). 아버지는 효자 최재기(崔在沂)이다. 1852년(철종 3) 10월 16일에 창경궁 춘당대에서 열린 생원시에서 장원을 하여 철종의 찬사를 받았다. 입격한 시부(試賦)가 남아 있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매봉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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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사창1리에 있는 여흥민씨(驪興閔氏)의 재실(齋室). 경모재는 담장을 콘크리트로 둘렀고, 솟을대문 좌우에는 2칸씩 행랑을 달았다. 입구에는 1979년 민영규(閔泳奎)가 쓴 ‘황려문(黃驪門)’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 양식의 재실이 있다. 앞의 1칸은 툇간으로 ‘경모재’란 편액을 달았다. 재실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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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전주. 자는 계통(季通), 호는 경묵당(景黙堂). 이시성은 귀천군 이수(李晬)의 고손이고, 아버지는 직재 이기홍(李箕洪)이다. 이시성은 유학자로 1723년(경종 3)에 변선정(卞先正)의 무간(誣奸)함을 항소하였고, 전관(銓官) 천거를 거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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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성기환(成耆煥)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비. 성기환의 자는 경문, 호는 경은. 본관은 창녕이다. 성기환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가난하게 자랐으나 근검절약하여 살림이 넉넉해지자 흉년에 가난한 사람을 구휼하였다. 충주시에서 청주시로 가는 국도 36호선 변인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2리에서 500m 못 미친 도로변 오른쪽에 위치한다. 성기환 구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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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자선사업가. 창령성씨 시조 성인보(成仁輔)의 23세손이고, 할아버지는 성덕후(成德厚)이며, 아버지는 성예하(成禮夏)이다. 부인으로는 밀양박씨인 박철진(朴喆鎭)의 딸과 곡산연씨[1907~1948]이다. 성균관박사를 역임하였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의 손에 자랐다. 근검 절약 정신이 뛰어났는데, 밀양박씨 부인도 베를 짜며 내조하였다. 내외가 쌀 한 톨과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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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인.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경빈(敬賓), 호는 정와(定窩). 득우재(得寓齋) 송상철(宋相哲)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송헌삼(宋憲三)이다. 인효(仁孝)에 밝고 예법에 어긋남이 없었다. 송달용이 임종 때 “인간 일생이 오랜 것이 아닌데 어찌 영화만을 바라겠느냐”라고 탄식했다는 말을 전해 들은 마을 사람들이 감동하여 “현인(賢人)이 이제는 가고 말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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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경삼(慶三). 오은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고종 때에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낸 김환유(金煥維)이다. 타고난 품성이 효성스럽고 우애 있으며 가훈을 준수하였다. 아우 김기화(金基華)가 수십 리 거리를 다니며 공부하는데, 비를 막아주고 눈을 쓸어주고 따라다니며 보살필 만큼 우애가 깊었다. 1908년(순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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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고갯길은 옛날에 사정현대로라고 기록하였듯이 근대 이전에는 큰길이었는데 조선 후기들어 소여리와 감우리를 통과하는 길을 많이 이용하고, 일제시대에 신작로가 나면서 길이 쇠퇴하여갔다. 사정고갯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용대동의 이방우 할아버지(27년생, 81세)는 “일정 때 일본사람이 구 길(신작로)을 만들었고, 현재 4차선도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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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민치상(閔致庠)[1825~1888]의 치적을 기리는 비(碑). 민치상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자는 경양(景養), 호는 하당(荷堂), 본관은 여흥이다.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의 5대손이며, 민용현(閔龍顯)의 아들이다. 1845년(헌종 11) 생원이 되었고, 이듬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49년(철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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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경여(敬汝), 호는 유헌(柳軒). 문정공(文貞公) 조무(趙廡)의 후손이며, 효자 조용하(趙用夏)의 아들이다. 아들은 조헌용(趙憲瑢), 조헌영(趙憲瑛), 조헌옥(趙憲玉) 3명을 두었다. 부친 조용하가 병에 걸리어 위중하게 되자 조기순이 밤중에 맑은 물을 길어다가 백일 동안 탕약 물로 사용하였더니 병에 효험이 있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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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경영호는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에서 태어났다. 1956년 지방자치단체 읍·면장 선거에서 제5대 감곡면장으로 당선되어 향토 발전과 주민 복리에 기여한 뒤 1961년 퇴임하였다. 1962년부터 천주교 신자로서 충청북도 충주시 야현동 성당에서 전교로 5년간 활동하였다. 1966년부터 18년간 천주교 청주교구유지재단의 재산 관리를 담당하였다.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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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에 있는 경원엔터프라이즈(주)의 부설 연구소. 경원생명과학연구소는 환경과 인간친화적인 기술, 제품,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90년 경원엔터프라이즈(주)를 설립하였고, 1994년 경원생명과학연구소를 설립하여 1995년 과학기술처에 등록하였다. 1996년에 Bio Green 기술을 이용한 신선도 장기 유지 필름 생산 공장을 건설하였고,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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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성기환(成耆煥)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비. 성기환의 자는 경문, 호는 경은. 본관은 창녕이다. 성기환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가난하게 자랐으나 근검절약하여 살림이 넉넉해지자 흉년에 가난한 사람을 구휼하였다. 충주시에서 청주시로 가는 국도 36호선 변인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2리에서 500m 못 미친 도로변 오른쪽에 위치한다. 성기환 구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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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자선사업가. 창령성씨 시조 성인보(成仁輔)의 23세손이고, 할아버지는 성덕후(成德厚)이며, 아버지는 성예하(成禮夏)이다. 부인으로는 밀양박씨인 박철진(朴喆鎭)의 딸과 곡산연씨[1907~1948]이다. 성균관박사를 역임하였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의 손에 자랐다. 근검 절약 정신이 뛰어났는데, 밀양박씨 부인도 베를 짜며 내조하였다. 내외가 쌀 한 톨과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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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상·공업자 등이 동종 업계나 조직의 경제적인 이익을 대변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 경제 단체가 설립되는 가장 큰 이유는 동일 업계나 동일 조직 공동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때로는 정부가 일정한 업종을 영위하는 기업들이나 노동자들이 단체를 구성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이는 경제 단체가 구성될 경우 업계나 조직의 목소리가 통일되어 정부가 산업 정책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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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되는 활동 전반과 영역. 경제산업은 경제와 산업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경제는 인간이 공동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활동 전반을 의미한다. 산업은 이러한 활동 중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전반이나 활동 영역으로서 대체로 농업, 공업, 수산업, 임업, 광업 등 유형물의 생산과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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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원익·김진중·김세필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김해김씨 계와 더불어 김씨의 2대 주류를 이루는 대보공(大甫公) 알지계(閼智系) 가운데서도 그 대종을 이루는 경주김씨(慶州金氏)는 파계(派系)가 복잡하지만, 대략 4~5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파로는 은열공파(殷說公派)·태사공파(太師公派)·판도판서공파(判圖判書公派)·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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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 속하는 경주김씨의 동족마을. 조선 중기 십청헌 김세필이 팔성리 말마리에 입향하면서 경주김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팔성리는 마을 뒤에 있는 팔성산의 이름을 따서 팔성리라 하였으며, 입향 초기에는 말마리에 세거하였다. 마을 유래는 팔성리(말마리)에 입향한 김세필이 말년에 말마리에 은거하면서 강학을 할 때 친구인 충주목사 박상이 자주 찾아와 교분을 나누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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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 사정1리 이상옥 이장을 만나 경주이씨 시제에 대해 여쭤보았다. “우리 그 할머니가 충주에서. 충주에서 왔지. 그때서부터 그 위 선조들은 홍천, 파주라던가, 경주에 그 위 선조들을 모시고, 그 할머니를 이어가지고 200년 가까지 여기서 하고 있어요. 옛날에는 시제를 산소에서 꼭 지내고 그랬다고. 삼일을 지내고 나흘을 지냈다고. 노인 분들이 그 지물을 지고 산에를, 산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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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에 만난 이방우 할아버지(27년생, 81세)께 경주이씨가 용대동에 들어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 여쭤보았다. “임진왜란 때, 내가 ‘우’자거든요? ‘우’자의 8대 되는 분이 현재 여기, 이전에 납골당을 모셨거든. 그런데 그 밀양박씨 할머니가 임진왜란 때 살다보니깐,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데. 역적으로 몰렸단 말이야. 임진왜란 때. 역적으로 몰렸는데, 아들 딸 가족이 다 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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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문암리에 있는 조선시대 경주정씨(慶州鄭氏)의 유지(遺地)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비(碑). 비(碑)의 총 높이는 223㎝이며, 3단으로 구성된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162㎝, 앞면 59㎝, 측면 30㎝이다. 또한 가첨석의 높이는 58㎝, 앞면 106㎝, 측면 70㎝이다. 방부(方趺)의 높이는 3㎝, 앞면 118㎝, 측면 75㎝이다. 비석 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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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을 시조로 하고 최명철과 최상우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경주최씨(慶州崔氏)는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하며 26개 파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그 중에 관가정공파(觀稼亭公派)와 사성공예파(司成公汭派) 후손이 가장 많다. 중시조 최제안의 17세손 최명철이 경기도 양평에 살다가 남인(南人)으로 지목받자 음성군 대소면 삼정리에 옮겨왔다가 세거하였다. 16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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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음성. 자는 경지(敬之). 고조부는 충민공 박순(朴淳), 아버지는 박윤진(朴胤陳)이다. 부인은 해평윤씨로 사과 윤렬(尹洌)의 딸, 그리고 전주이씨로 군수 이회(李檜)의 딸이다. 박유경은 부친에게 공부하여 문장을 잘 짓고 학우가 많았으며, 효행이 지극하여 명정(命旌)되었다. 장사랑(將仕郞)으로 있던 1519년(중종 14)에 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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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이자 자선사업가. 피학용은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살았으며, 천석(千石)의 부자였다. 1805년(순조 5) 38세 때 충주 지방에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돈 백 냥과 수십 석의 쌀로 구휼하였다. 충주목사가 이 사실을 당시 충청도관찰사였던 박윤수(朴崙壽)에게 알렸으며, 이 사실로 표창을 받았다. 1819년(순조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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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행하는 국가의 특수 행정 작용. 1906년 10월 1일 충청북도 경무서 음성분파소가 설치되었다가 1907년 12월 27일 충주경찰서 음성순사주재소로 바뀌었다. 1910년에는 합방 준비의 일환으로 헌병분대와 헌병분견대가 배치되었으며 1910년 12월 10일 경기도 헌병대와 진천헌병분대 관할이 되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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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의병.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경춘(慶春), 호는 추암(棷庵). 충효공 윤환(尹桓) 후손이다. 윤병의는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에서 출생하였으며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다. 노역(勞役)으로 20세에 이르러 이항로(李恒老)와 유중교(柳重敎) 두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1894년 갑오개혁에 통분하다가 외세를 물리칠 것을 다짐했으며, 1895년 유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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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공무원. 경태현은 본관이 청주(淸州)이며,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에서 출생하여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매괴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제대학(國際大學) 법학과 1년을 수료하였다. 경태현은 1957년 육군중위로 예편한 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근무를 시작으로 총무·재무계장을 역임하고, 1967년 음성군 개발계장을 거처 양정(糧政)·세정(稅政)·경리(經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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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설성공원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누정. 경호정은 1934년 당시의 군수 권종원이 창건하여 연풍정이라 하였으나 이후 군수 민찬식이 경호정으로 이름을 바꾸고 제액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호정 건물은 정방형 팔작지붕 목조기와집 양식으로, 정면 2칸, 측면 2칸을 모두 개방시켜 시야를 트이게 함으로써 정자로서의 기능을 살렸다. 정자 내부는 통칸의 대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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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조선 후기 관찰사 김응근(金應根)[1793~1863]의 선정비. 김응근은 조선시대 철종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字)는 계경(溪卿), 호(號)는 의석(宜石)이다. 참판(參判) 김명순(金明淳)의 아들이며 좌의정 김홍근(金弘根)의 동생, 영의정 김흥근(金興根)의 형이다. 1816년(순조 16)에 사마시 생원 3등 6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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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순(季純), 호는 은암(隱巖). 조부는 진사 이자침(李自琛)이고, 아버지는 이란(李鸞)이다. 이자침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음성에 은둔하여 있을 때 아버지 이란을 낳았는데, 이란은 일찍 별세하였다. 부인은 장원감 이귀년(李貴年)의 딸이다. 아들 셋을 낳았는데, 이정(李淀), 이용(李溶), 이완(李浣)이다. 이수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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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자 할머니께 계모임에 대해 여쭤보니 여러 가지 계를 알려 주었다. 김금자 할머니가 시집을 왔을 때 시어머니가 쌀계를 하고 있었다. 당시 젊었던 김금자 할머니가 모임에 많이 따라가서 계산도 해주었다고 한다. 많아야 두 말, 서 말씩 모아서 큰일 있을 때마다 두 가마씩 타게 했었다. 마을 부녀자들이 다 한건 아니었고 마을에서 친한 열 명 정도가 모여서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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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계수(季守), 호는 희암(希菴)·송국주인(松菊主人). 아버지는 현령 윤해(尹海)이다. 한성에서 출생하여 4세에 책을 읽고 글씨를 써서 세상 사람들이 신동이라 칭하였다. 1554년(명종 9) 정산(鼎山) 박형(朴泂)의 문인이 되어 장차 대유(大儒)가 될 인물이라 하였다. 1580년 이조판서 윤국형(尹國馨)의 천거로 희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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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순(季純), 호는 은암(隱巖). 조부는 진사 이자침(李自琛)이고, 아버지는 이란(李鸞)이다. 이자침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음성에 은둔하여 있을 때 아버지 이란을 낳았는데, 이란은 일찍 별세하였다. 부인은 장원감 이귀년(李貴年)의 딸이다. 아들 셋을 낳았는데, 이정(李淀), 이용(李溶), 이완(李浣)이다. 이수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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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광주. 자는 계실(季實). 아버지는 현감 반윤기(潘潤沂)이다. 1690년(숙종 16) 반최영은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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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으로 유배된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차야(次野), 호는 음애(陰崖)·몽옹(夢翁)·계옹(溪翁)·풍림거사(楓林居士). 이색(李穡)의 후손이며, 참판 이형증(李亨增)의 손자로, 대사간 이예견(李禮堅)의 아들이다. 부인은 인천채씨로 채수(蔡壽)의 딸이다. 1504년(연산군 10) 식년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이후 사헌부감찰에 제수되어, 천추사(千秋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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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음성. 자는 계칠(季七). 박서(朴犀) 장군의 20세손이다. 아버지는 박기혁(朴基赫)이고, 형은 박시중(朴時中)이다. 박시재는 향리에서 인과 효, 의로 추앙을 받았으며, 1882년(고종 19) 성균관시에 51세로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 청룡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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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전주. 자는 계통(季通), 호는 경묵당(景黙堂). 이시성은 귀천군 이수(李晬)의 고손이고, 아버지는 직재 이기홍(李箕洪)이다. 이시성은 유학자로 1723년(경종 3)에 변선정(卞先正)의 무간(誣奸)함을 항소하였고, 전관(銓官) 천거를 거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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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와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경기도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차령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음성군은 차령산맥 쪽에 치우쳐 있고, 음성군의 중앙부에도 산들이 있어 많은 고개들이 형성되어 있다. 고개는 옛날에 도보로 걸어 다닐 때에는 교통로로 많이 이용되었으나 도로 교통이 발달한 지금에는 도로가 개설되지 못한 많은 고개들의 이용은 저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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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기에도 평평한 마을의 지형을 가지고 있는 평짓말은 현재 가구 수가 5~6채 밖에 되지 않아 거의 정자안마을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 정자안으로 들어가서 마을회관을 찾아가니 중심에 있는 마을답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 어르신들께 평짓말이라는 지명이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인지데 대해 여쭤 보았다. 평짓말에는 고기를 파는 피전이 있어서 피전거리로 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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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이루어진 선사시대부터 고려왕조의 통일 이전까지의 역사. 역사상의 고대라는 개념은 서양의 역사시대 구분을 원용한 것으로, 고대 노예제사회 혹은 엄격한 신분제사회의 성립과 해체를 기준으로 설정되었다. 여기에서 문자기록 이전의 시기는 선사시대로, 문자기록 이후는 역사시대로 구분하는데, 고대라는 개념 속에는 선사시대를 포함하여 신분계층사회의 성립 과정과 고대적 사회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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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청주고씨 입향조. 본관은 청주. 자는 군명(君明), 호는 퇴암(退庵). 할아버지는 중랑장 고천련(高天連), 아버지는 고유렴(高有廉)이다. 부인은 순천박씨로 박장생의 손녀이다. 동생으로 고덕칭(高德稱), 고덕부(高德符)가 있다. 1419년(세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32년(세종 14)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439년(세종 21) 강음현감(江陰縣監)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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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고덕수의 묘비. 고덕수는 자는 군명(軍明), 호는 퇴암(退庵),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중랑장 고천연(高天連)의 손자이다. 1432년(세종 14)에 식년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과 연풍현감을 지냈다. 1456년(세조 2)에 취금헌(翠琴軒) 박팽년과 재종매부(再從妹夫)라는 이유로 화를 입어 관(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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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관내에 있는 중등 교육 기관. 1949년 공포된 교육법은 중등 교육 기관으로 수업 연한 각 3년의 중학교 과정과 고등학교 과정을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음성군에서는 2개의 공립 고등학교와 1개의 사립 고등학교에서 학생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교육기본법 제8조에 있는 "의무 교육은 6년의 초등 교육 및 3년의 중등 교육으로 한다"는 규정에 맞게 현재 음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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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은 마을 입구나 동제구역(洞祭區域)에 세운 마을 장승과 사찰 입구에 세운 사찰 장승, 그리고 지역 간의 경계로 삼거나 성문이나 병영(兵營)·해창(海倉)·관로(官路) 등에 세운 공공 장승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경계표나 이정표로 삼기 위해 세우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역질을 막고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 수호의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마을의 흉액을 밖으로 몰아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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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역사. 고대 말기 지방 호족의 성장으로 통일신라가 분열되면서 시작된 후삼국시대에서 음성 지역은 서기 900년경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에 예속되었다. 그후 폭정을 일삼던 궁예가 쫓겨나고, 서기 918년 왕건이 여러 지역 호족들을 규합하고 인심을 수렴하는 데 성공하여 새 왕조를 개창하면서 음성군이 속한 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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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황을 시조로 하고 박경진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고령박씨(高靈朴氏)에는 어사공(御使公) 박섬(朴暹), 부창공(副倉公) 박환(朴還), 주부공(主簿公) 박연(朴連)을 중시조로 하는 3파가 있다. 박섬을 중시조로 하는 사인공파(舍人公派)의 대표적 인물로는 박은(朴誾)·박장원(朴長遠)·박문수(朴文秀) 등이 있고, 박환을 중시조로 하는 부창정공파의 대표적 인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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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청주. 자는 필경(弼卿). 선무공신 고응연(高應淵)의 증손이고, 아버지는 호조참의 고경후(高景厚)이다. 형제는 고상설(高相說)이 있다. 고몽설(高夢說)은 나면서부터 도(道)를 알았고, 지략이 있었으며, 배우지 않고도 능히 천문에 통하고 팔진도(八陣圖)까지 통하였다. 1671년(현종 12)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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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말에는 현재 경로회장을 맡고 있는 김장일 할아버지(37년생, 71세)가 고문서로 「강당말 송계문서」와 「흥학계(강계) 문서」, 「강당파 종계문서」를 소장하고 있으며, 이희성 할머니(40년생, 68세)가 교지, 진사 답안지 등을 소장하고 있다. ○ 「강당말 송계문서」 「강당말 송계문서」는 김장일 할아버지가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로 1책 63장 가로 29㎝,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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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에 있는 산. 산의 형태가 고물개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감곡면 상평리 벌말 뒷산으로 동부에는 충주시 노은면과의 경계에 행덕산[448m]이 있고, 동남쪽에는 생극면과의 경계에 수리산[605m]이 있다. 그 중간의 숯고개(일명 숫고개 또는 탄현)에서 발원하는 성뜰천이 서류하여 월정리를 거쳐 상평리를 지나서 1954년에 축조된 감곡저수지(일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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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 자는 효백(孝伯), 호는 삼소헌(三笑軒). 선무공신 고응연(高應淵)의 9세손이고, 아버지는 고우한(高羽漢)이며, 어머니는 순천박씨이다. 고봉래(高鳳來)는 품성이 온화하였으며, 12세에 학문에 몰두하여 몇 년 만에 문리(文理)에 통달하였다. 17세가 되면서는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글을 읽었다. 후학을 가르치니 문하에서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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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내곡리에 있는 산. 높은봉[高峰] 서쪽에 있는 산으로 높은봉보다 조금 낮은 잔등이라고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금왕읍 내곡리 높은봉[高峰里]의 서쪽에 있는 산으로 고봉잔등은 산은 높지 않고 길게 구릉지를 형성하여 능선처럼 보인다. 북쪽에는 명거바위산과 마날봉[227m]이 있고 동쪽에는 우등산[262m]이 있으며 북쪽의 계곡에는 1961년에 축조된 구계저수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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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선사시대와 고대에 만들어진 무덤. 우리나라에서 확인되는 장례법은 매장·골장·화장·초장 등 다양한 방법이 있으나 물질적 증거로 남은 고분의 기본 장례법은 매장법이다. 초기의 매장법은 땅에 구덩이를 파고 주검을 안치한 후 흙으로 덮어버리는 간단한 움무덤이며,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도 계속 전시대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 선사시대의 분묘군은 주로 평야 지대나 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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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음력 1월과 10월에 집안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가정의례. 안택고사는 안택(安宅)과 고사(告祀)가 합쳐진 말로 ‘안택’ 또는 ‘고사’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정월 안택’, ‘가을 고사’라 하여 정월에 지내는 의례를 안택, 가을에 지내는 의례를 고사라 일컫는다. 또는 전문적인 무당이나 앉은굿을 하는 법사 또는 복술자(卜術者)를 불러다 치성을 드리는 것을 안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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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성지(聖之), 호는 고산(孤山). 아버지는 반정익(潘廷翼)이다. 1626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다. 송시열의 문인이다. 아버지가 아프자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세 번이나 손가락을 끊어 피를 내어 먹였다. 재주와 인품이 훌륭하고 문장이 뛰어나 향리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았다. 과거를 보지 않고 학문에 몰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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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일원에 있는 고대 국방 시설. 수정산성의 축조 시기와 연혁을 알려주는 고문헌 기록은 없으나 조선시대 문헌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여지도서(輿地圖書)』·『호서읍지(湖西邑誌)』·『대동지지(大東地志)』·『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등에 의하면 수정산이 ‘음성 읍내의 동쪽 3리 또는 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들을 살펴보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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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청주. 자는 태경(台卿), 호는 퇴암(退庵). 선무공신 고응연(高應淵)의 증손이고, 호조참의 고경후(高景厚)의 둘째 아들이다. 형제는 고몽설(高夢說)이 있다. 고상설(高相說)은 1680년(숙종 6)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첨정(僉正)을 거쳐 첨절제사(僉節制使)에 이르렀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 법도에 맞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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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을 시조로 하고 이만진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고성이씨(固城李氏) 시조 이황(李璜)은 고려 덕종(德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냈고 1033년(덕종 2) 거란의 침입 때에 공을 세워 호부상서(戶部尙書)에 올랐으며 철령군(鐵嶺君)[지금의 고성]에 봉해졌다. 고성이씨의 인물로는 7세손으로 고려 충렬왕 때 밀직사사(密直司使)를 지낸 이존비(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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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 고심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석불 입상. 고심사 미륵불은 화강암으로 조성된 불상으로 머리는 결실되었으나 광배(光背)를 갖추고 있는 석불입상이다. 좌대는 후대에 변형된 것으로 보이나, 법의는 통견(通絹)이며 옷 무늬는 U자형으로 앞가슴을 표현하였다. 수인(手印)은 미타정인의 형식을 취하고, 광배는 주형광배로 일부가 파손되어 있다. 고심사 미륵불은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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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주천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 지형이 반달형으로 되어 있고, 달[月]이 잘린 것 같다 하여 괘월(卦月)이라고도 불린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 감미곡면(甘味谷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청미천 냇가에 있었으므로 주내·주천이라 하였다.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주리, 외주리 일부를 병합하여 주천리라 명명하고 감곡면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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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있는 효자 고용진의 정려문.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으로 전후좌우의 네 개 면은 홍살로 막고 지붕 양면은 풍벽을 달았다. 초석은 팔각고주형(八角高柱形)으로 그 위에 둥근 나무 기둥을 세웠다. 효자문 안에는 ‘설성거사하산고용진효자려포정효자문병오삼월일보건사회부장관오원선서(雪城居士霞山高庸鎭孝子閭褒旌孝子門丙午三月日保健社會部長官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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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청주. 자는 응수(應壽), 호는 취병(翠屛) 또는 왕곡(枉谷). 고조부는 현감 고덕수(高德秀), 아버지는 고준(高遵)이다. 형으로 의병장 고응연(高應淵)이 있다. 1561년(명종 16) 식년시 무과에 급제하였다. 힘이 세고 기골이 장대하여 수문장(守門將)으로 있었다. 선조 초 용호영장(龍虎營將)에 이어 내금위장으로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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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청주. 자는 원약(元躍). 고조부는 현감 고덕수(高德秀), 아버지는 판결사 고준(高遵)이다. 동생으로 고응섭(高應涉)이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내금위장으로 있던 아우 고응섭과 함께 의병 수백 명을 모집하여 조령 전투에서 전공을 세워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에 녹훈되고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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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 아버지는 사과(司果) 고준(高遵)이다. 고응잠(高應潛)은 임진왜란 때 선조의 피난길을 호종하였다. 인제현감(麟蹄縣監)으로 있다가 1604년(선조 37) 나이가 들어 백성을 다스리기 어렵다고 하여 체차(遞差)되었다. 학행(學行)이 있었으며,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으로 『음성읍지(陰城邑誌)』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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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청주. 연풍현감 고덕수(高德秀)의 7세손이다. 조부는 주부 고응연(高應淵)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고영(高暎)이다. 처부는 무인 조영렬(趙英烈)과 방어사 이직(李溭)이다. 1630년(인조 8)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에 추천되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글을 잘하고 인품이 고결하여 선비들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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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고인돌은 거대한 돌을 이용해 만든 선사시대 거석 건조물의 일종으로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이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이 약 30,000여 기로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전라남도 지방에 집중적으로 20,000여 기가 밀집 분포되어 있다. 한국의 고인돌은 외형적 형태에서 크게 탁자식·기반식·개석식 등 3종류로 구분된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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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고재봉은 1908년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청주이다. 음성공립보통학교, 서울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원남면장을 역임하였다. 1947년 원남면장으로 부임하면서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하였다. 6·25전쟁 이전에 사회적 혼란기를 맞아 보도연맹에 가입하려는 주민들을 적극 계도하였으며 농촌 경제 활성화를 위한 담배 경작 기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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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청주. 자는 순칠(舜七), 호는 설남(雪南). 선무공신 고응연(高應淵)의 11세손이고, 아버지는 충훈부도사 고익현(高益顯)이다. 고재선(高在璿)은 문학으로 이름이 났으며, 효도와 우애가 독실하여 일대의 추앙을 받았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비바람을 피하지 않고 3년간 시묘하였다. 한시 「가섭사(迦葉寺)」와 1890년(고종 27)에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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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생극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2㎞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은 오생리, 서쪽은 관성리, 남쪽은 도신리, 북쪽은 신양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곤재 동쪽 이진봉 밑에 있는 마을로 임진왜란 때 이곳에 진을 쳤다고 하여 이진말 또는 고진대라고 한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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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산리는 주로 고추농사와 벼농사를 하고 있다. 워낙에 밭농사와 논농사가 많이 지어지던 곳이라는 것은 지형을 보면 알 수가 있다. 평짓말에서 탑골로 이어지는 마을 전체가 논과 함께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금봉산과 깎은등이가 마주보고 있는 바로 아래쪽에는 밭이 있는데, 예전에는 가물어도 잘 되는 스슥(조), 수수 등을 재배했었다. 또, 담배농사도 했었으나, 수지가 맞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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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場市)는 조선 사회의 봉건 경제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던 자급자족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자급할 수 없었던 물품이나 지역적 특산물을 교역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또한 장시는 지방의 농민이나 수공업자 등 생산자층에 의한 상품 생산과 상인들에 의한 유통 등 교역 장소로서의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조달할 수 없었던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장소이자, 교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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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문암3리에 있는 곡산연문의 열녀 순흥안씨의 정려각. 순흥안씨는 연진행(延震行)의 부인으로 1636년 병자호란 때 정절을 지켜 1796년(정조 20) 정려가 내려졌다. 1796년(정조 20) 정려가 내려졌을 때는 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 화성리 명암동에 열녀각이 세워졌으나, 1984년 현재의 장소로 이전되었다. 열녀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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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계령을 시조로 하고 연우근과 연석우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 세거 성씨. 관향시조는 7세손 연수창(延壽菖)이며 본은 곡산(谷山) 하나뿐이다. 시조의 8세손 연경은 고려 충숙왕 때 삼중대광(三重大匡) 문하시중(門下侍中)과 태사(太師)를 역임하였다. 연최적은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고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였으나 당쟁으로 벼슬에서 물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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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주천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 서쪽의 냇물 지형이 행주형(行舟形)으로 되어 있는데 이곳은 배가 머무는 항구로 배의 안쪽이라 하여 배내라 하고, 안쪽 골짜기라는 뜻으로 골배내라 하였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감미곡면(甘味谷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청미천 냇가에 있었으므로 주내·주천이라 하였다.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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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 자는 공간(公幹). 정창(鄭昌)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호조참판 정윤공(鄭輪公)이다. 그의 막내아들로, 형으로는 정국주(鄭國柱), 정국추(鄭國樞), 정국량(鄭國樑), 정국노(鄭國櫓)가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천성이 효성스럽고 인품이 맑고 높았다. 활쏘기와 말타기 등 무예가 출중하여 무과에 합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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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공거(公擧). 정창(鄭昌)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호조참판 정윤공(鄭輪公)이다. 그의 셋째 아들로, 형으로는 정국주(鄭國柱)와 정국추(鄭國樞)가 있으며, 동생으로는 정국노(鄭國櫓)와 정국빈(鄭國彬)이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시묘하던 중, 임진왜란을 당하여 마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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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국가의 감독 아래 법령에 정해진 업무를 처리하는 기관. 공공기관은 그 존립의 목적이 법률에 의하여 정해져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한도내에서 공권력 행사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이라 하더라도 공권력을 부여하는 정도나 국가 감독에 복종하는 정도는 당해 단체의 목적이나 사명에 따라 다르다. 즉 공공기관마다 목적·조직·권능 등을 정하는 법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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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수정산에 있는 바위. 음성읍 읍내리의 수정산[393m] 산마루에 있는 직경 3m 가량의 둥근 모양의 바위를 말한다. 음성읍에서 동쪽으로 약 700m 지점에 있는 수정산에서 직선거리로 약 12㎞ 떨어진 지점에 증산(400m, 일명 시루산)이 있는데 수정산과 증산의 경우 서로 상통하는 뿌리를 지녔다고 한다. 오랜 옛날 수정산에서 장수가 사방을 바라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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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공두(公斗). 정창(鄭昌)의 5대손이며, 아버지는 호조참판 정윤공(鄭輪公)이다. 5형제 중 둘째로 형이 정국주(鄭國柱)이며, 동생으로는 정국량(鄭國樑), 정국노(鄭國櫓), 정국빈(鄭國彬)이 있다. 정국추는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고 형과 아우들에게 우애와 정이 두터워 화목하였고, 충성과 의리 또한 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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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공문(公文)이며, 호는 송애(松崖). 아버지는 반서린(潘瑞麟)이다. 원래 재상가의 종이었으나 재상이 반석평의 재주와 성품을 사랑하여 글을 가르치고 아들 없는 부잣집으로 보내 공부에 힘쓰게 하였다.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김식(金湜) 등과 교유하였다. 1507년(중종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어 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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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공범(公範), 호는 각회옹(覺悔翁). 고조부는 김자수(金自粹), 아버지는 참봉 김평(金萍)인데 중부(仲父) 경상우수사 김훤(金萱)에게 입계하다. 부인은 풍양조씨로 조승종(趙承宗)의 딸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기발한 재질과 영매한 기상이 있었으며 학문에 뜻을 두어 세상 사람들이 경모하였다. 스무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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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세거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공석(公碩), 호는 십청헌(十淸軒)·지비옹(知非翁). 두문동충신 김자수(金自粹)의 고손이다. 할아버지는 원종공신 김영유(金永濡)이고 아버지는 충주목사 김훈(金薰)이다. 어머니는 진천송씨로 군수 송학(宋翯)의 딸이고, 부인은 고성이씨로 부사 이탁(李鐸)의 딸이다. 아들은 김숙(金䃤), 김구(金瞿), 김저(金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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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지역에 자생하고 있는 겉씨식물 은행나무목 은행나뭇과의 낙엽 교목. 은행나무는 충청북도 음성군을 상징하는 나무이며, 전통적인 성목수로 수세가 곱고 수명이 길다. 순결하면서도 노력하고 바르게 사는 군민 상과 무궁한 발전과 군민의 화합·단결을 상징하는 나무이다. 열매껍질이 희다 하여 은빛의 ‘은(銀)’ 자와 열매가 살구 비슷하게 생겼다 하여 살구 ‘행(杏)’ 자를 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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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 자는 공제(公濟). 아버지는 호조참판 정윤공(鄭輪公)이다. 정국노의 5형제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마을을 5효촌이라 하였다. 정국노는 원래 집안이 가난하여 스스로 산에서 나물을 캐고 식량을 구하여 백여 리 길을 다니기를 거듭하였다. 새벽마다 아버지께 문안을 올렸는데 혹시 조금이라도 마음이 유쾌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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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공하(公夏), 호는 삼평와(三平窩). 현감 박경진(朴敬鎭)의 아들이다. 박재순은 1774년(영조 50) 37세에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1783년(정조 7) 46세에 식년 병과 문과로 급제하여 수찬(修撰)·응교(應敎)·좌승지(左承旨)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그 후 1790년(정조 14)에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박재순이 쓴 책으로 『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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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촌리는 칠원윤씨 세거지로 문촌4리를 찾아가 칠원윤씨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을회관을 찾아갔다. 할아버지들은 ‘마당 넓은 집’을 찾아가면 윤희 할아버지(81세)가 살고 있는데, 그 집에 가서 물어보면 잘 알거라고 하며 집을 가르쳐 주었다. 할아버지들께서 알려주신 길을 찾아 가 보니, 복숭아밭들을 배경으로 마당이 넓은 집을 만날 수 있었다. 윤희 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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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란 일반적으로 고고학적 자료나 미술품, 역사적 유물, 그밖의 학술적 자료를 모아서 보관하고 진열하여 일반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시설이다. 국제박물관회의(ICOM) 헌장에서는 박물관을 “예술·역사·미술·과학·기술에 관한 수집품 및 식물원·동물원·수족관 등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자료·표본 등을 각종의 방법으로 보존하고 연구하여, 일반 대중의 교육과 오락을 위하여 공개 전시함을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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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과실의 수확을 목적으로 과실나무를 재배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일. 충청북도 음성군은 사과, 복숭아, 배, 포도, 수박 등 각종 과수의 재배 요건이 우수한 지역이다. 그 중 사과의 재배 요건이 가장 좋아 1970년대 이후로 재배 면적이 크게 확대되었다. 그러나 재배법의 미숙과 소극적인 관리·운영, 무분별한 품종 선택에서 오는 각종 문제점이 야기되자 많은 재배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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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원당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뒷벌은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8㎞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상평리, 서쪽으로 경기도 이천시 율면과 총곡리, 남쪽으로 생극면 방축리, 북쪽으로 주천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뒷벌은 용머리 뒤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과수원이 많아 과수원촌이라고도 하는 데 특히 복숭아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본래 충청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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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풍광(風光)·풍속(風俗)·사적(史蹟) 등을 유람하는 일. 음성군은 충청북도의 북서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충청북도 충주시, 서쪽으로는 경기도 안성시와 충청북도 진천군, 남쪽으로는 충청북도 괴산군, 북쪽으로는 경기도 이천시와 각각 접하여 경기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룬다. 충청북도 음성군의 관광 요소는 크게 주요 관광지, 문화유적, 음성의 축제 등으로 나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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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관성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 동남쪽에 있는 팔성리에서 관말로 넘어오는 아홉사리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를 넘다 죽는 사람이 많아서 이 마을에서 관을 짜게 되어 관말이라 하였다고 하며, 조선시대 무극역의 역관(驛館)이 있어서 관말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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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충주군 무극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진동·무수동·관촌·병산리 일부를 병합하고 관성리라 해서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마날미는 1975년 7월 1일 관성3리로 분구되었다. 관말의 뒷쪽에는 우등산[227m]이 있고 마날미 북쪽에는 마날봉(227m, 일명 마루봉)이 있다. 고개는 아홉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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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득여(得輿), 호는 관송(觀松)·쌍리(雙里). 좌찬성 이극돈(李克墩)의 후손이며, 이우선(李友善)의 아들이다. 이이첨은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에서 출생하였다. 천성이 효우하고 제행(制行)이 고결하여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김이 지극하였다. 1593년(선조 26) 광릉참봉에 제수되고 159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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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에 있는 법화종(法華宗) 사찰. 1996년에 충주산업대학교 박물관이 간행한 『음성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실려 있는 ‘음성군 사찰 현황표’에 따르면, 관음사는 당시 음성군에 소재한 52개 사찰 가운데 법화종에 속하는 8개 사찰 중 하나였다. 또한 당시의 주지는 정연택이었으며,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음성문화원이 1998년에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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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관성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 동남쪽에 있는 팔성리에서 관말로 넘어오는 아홉사리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를 넘다 죽는 사람이 많아서 이 마을에서 관을 짜게 되어 관말이라 하였다고 하며, 조선시대 무극역의 역관(驛館)이 있어서 관말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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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산업 중 광업과 공업을 포함하는 업종. 광공업은 광물을 탐사, 채굴, 선광하여 제련하는 광업과 1차 산업에서 얻어진 수확물을 원료로 하여 가공하는 제조업을 함께 지칭하는 말이다. 한국산업분류표의 중분류에 의하면 모두 21개 업종을 광공업에 포함시키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석탄·원유 및 우라늄 광업, 비금속 광물 광업, 음·식료품 제조업, 섬유 제품 제조업, 봉제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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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부친상을 당하여 미처 탈상하지 않았는데 이어서 모친상을 당하여 6년간 시묘살이를 하는데 범이 와서 보호해 주었다고 전해진다.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이 되자 집에다 ‘이왕가지민하석환(李王家之民河碩煥)’이라고 문패를 달고는 세금도 내지 않고, 호적도 등재하지 않았다. 이에 음성경찰서에 구금되어 고문을 당하였으나 끝내 불응하고 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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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5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부용산(芙蓉山)[644m] 북쪽 자락 밑 넓은 들에 자리하고 있다 하여 광벌이라 불린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신니면(申尼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73년 7월 1일에 음성군으로 편입되었으며 용산리에 속한 마을이 되었다. 마을 서쪽으로 부용산이 있으며, 부용산에는 마을 쪽으로 고랑골, 북박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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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덕항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광산김씨(光山金氏)는 김흥광(金興光)을 시조로 한다. 고려조에서 여러 명의 평장사(平章事)를 배출하였고, 조선조에서 왕비 1명, 재상 5명, 대제학(大提學) 7명, 청백리 4명, 공신 7명, 문과 급제자 265명을 배출했다. 김덕항(金德恒)은 임진왜란 때에 처가인 음성읍 초천리 의령남씨 집에 피난왔었는데 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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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선비.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광여(光汝). 문공 주희(朱憙)의 26대손이다. 주응동은 청빈하게 살았으나 서원을 건립할 자격이 없었다. 이에 사림회의(士林會議)를 통하여 서류를 관아에 제출하여, 순영(巡營)으로부터 당우를 건축하라는 단자(單子)를 받았다. 1856년(철종 7)에 주응동은 안성에 사는 김문웅으로부터 문공 주희(朱憙)의 영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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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충을 시조로 하고 반석권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반씨(潘氏)는 기성(岐城)·광주(光州)·남평(南平)의 3본이 있지만 모두 같은 분파이다. 기성은 거제도(巨濟島)의 옛 지명으로 기성반씨를 거제반씨라고도 한다. 광주반씨의 시조는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광주백(光州伯)에 봉해진 반충(潘忠)이다. 그의 현손인 이조판서 반석평(潘碩枰)은 청렴한 문신으로 이름났으며,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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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3리 개미산에 있는 광주반씨(光州潘氏)가 모여 사는 동족 마을. 광주백파(光州伯派) 반충(潘忠)의 현손인 이조판서 반석평(潘碩坪)이 청주 율봉찰방으로 있을 때, 충주 연원도(連原道)를 왕래하면서 도선국사의 『도선비결』에 나오는 ‘봄이 깊은 마피곡 꽃이 만발한 견두산(春深馬皮谷 花發犬頭山)’이라는 구절을 유의하고 살피다가, 현재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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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성을 시조로 하고 이철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광주이씨(廣州李氏) 시조는 신라 내물왕 때 내사령(內史令)을 지낸 이자성(李自成)이다. 광주이씨 중흥조로 고려 말의 학자인 이집(李集)을 들 수 있다. 그는 문과에 급제하고 정몽주(鄭夢周)·이색(李穡) 등과 교류하였다. 손자 이인손은 조선 세조 때 우의정을 역임하였고 이예손은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를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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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득여(得輿), 호는 관송(觀松)·쌍리(雙里). 좌찬성 이극돈(李克墩)의 후손이며, 이우선(李友善)의 아들이다. 이이첨은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에서 출생하였다. 천성이 효우하고 제행(制行)이 고결하여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김이 지극하였다. 1593년(선조 26) 광릉참봉에 제수되고 159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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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주천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 지형이 반달형으로 되어 있고, 달[月]이 잘린 것 같다 하여 괘월(卦月)이라고도 불린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 감미곡면(甘味谷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청미천 냇가에 있었으므로 주내·주천이라 하였다.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주리, 외주리 일부를 병합하여 주천리라 명명하고 감곡면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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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선정4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 부근에 괴혈(怪穴)의 명당이 있어서 괴대(怪垈)라 불린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천기면(川岐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선리, 신대리, 금정리, 율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송선리의 ‘선’자와 금정리의 ‘정’자를 따서 선정리라 명명하고 삼성면에 편입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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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1. 전통시대 역사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음성의 최초 교육 기관은 고려시대 향교로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관학과 사학으로 분리하여 교육을 운영하였는데, 관학은 개성의 국자감·동서학당·오부학당과 지방의 향교 등이 있었고, 사학은 12공도와 서당 및 서사 등이 있었다. 고려시대 음성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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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사람·화물의 운반과 관련된 행위. 교통은 교통 기관에 의해 이동이 이루어지는데, 교통 기관은 교통로와 교통 수단으로 구성되며, 또 육상 교통으로 자동차·철도 교통이 있고, 수상 교통으로는 내륙 수운·해상 교통이 있으며, 공중에는 항공 교통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체계적인 도로망을 갖춘 것은 조선시대의 역원제로 30리마다 역과 원을 두었다. 충청북도 지역에는 중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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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 교회라는 말은 본래 넓은 의미로 같은 종교를 믿는 신자의 집단 또는 집회소를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교회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개신교인들의 가시적인 단체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다. 현재 전 세계에는 수백 개의 개신교 교파가 존재하고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에서는 감리교회, 장로교회, 성결교회, 침례교회,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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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음성 지역에서 활동했다고 전하는 서예가. 자는 지단(知端), 별명은 구(玖). 『삼국사기』권 48 열전 김생조에 부모가 두드러지지 않아 가계를 알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원통산 아래에서 오로지 글씨에만 정진하였다는 전설과 함께 “낙엽에 먹물로 글씨를 썼는데 그 낙엽이 계곡으로 모여 계곡물이 검어졌다”는 얘기가 전한다.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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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행정리. 구룡리와 사계리에서 ‘구’ 자와 ‘계’ 자 각 한 글자씩을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법왕면(法旺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궁제(宮堤)·구룡(九龍)·사계(泗溪)·보습(保習)·죽엽(竹葉) 등이 통합되어 구계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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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구계리 일대에 조성된 농업 용수 공급 저수지. 농업 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1941년에 공사에 착공하여 1945년 1월 1일에 준공하였다. 금성저수지 시설은 한국농어촌공사 충북지역본부 음성지사가 관리하며, 총 저수량 50만 톤 이상의 1종으로 수원공은 주수원이다. 제체 형식은 휠 댐이고, 제당 구조는 토언제 균일형이다. 제체 길이는 276m, 제체 높이는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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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초천리에 있는 고개. 구능고개에 예전에 부잣집이 있었는데 집에 손님이 너무 많이 와서 걱정하였다. 스님에게 물어보니 산을 자르면 된다고 하여 산을 자르니 손님이 오지 않게 되었으나 집안이 망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고개이다. 밤나무재의 동북쪽에는 돌고개(일명 석현)이 있고 동쪽에는 선덕산[351m]이 있으며 남쪽에는 수근봉이 있다. 동쪽의 선덕산 동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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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에 살았던 효부. 구덕자의 처 조씨는 출가한 지 2년 만에 남편이 죽었다. 남편이 죽은 후에도 시어머니를 평생 봉양하니 음성향교(陰城鄕校)에서 표창하였다. 사림에서 효열비(孝烈碑)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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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초천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안동김씨 세거지로 예(禮)를 구하는 마을이라고 하여 구례골이라 불린다. 본래 충청북도 음성군 근서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덕전리를 병합하여 초천리라고 명명하고 음성면에 편입되었다. 음성면이 음성읍으로 승격되어 음성읍의 한 리가 되었다. 마을 서북쪽으로 보현산(普賢山)[482m]이 있으며, 동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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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구만재는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문인으로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이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일월리, 지금의 쌍봉리에 은거하였다. 구만재가 살던 곳을 명촌(明村)이라 하였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구계리에 있다. 부제학 이단상(李端相)이 행장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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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유림지도자. 위은(渭隱) 정인상(鄭寅尙)의 맏아들로 자는 성윤(聖倫), 호는 구봉(九奉)이다. 정조헌은 재주가 뛰어나고 영특하여 3세 때 천자문(千字文)을 통달하고 20세까지 도장제(道莊齊)에서 한학(漢學)을 깊이 연구하였다. 그 후 가사에 종사하면서 마을 이장직을 23년간 맡아 주민복지에 헌신하였으며 한약방을 경영하면서 30여 년 동안 연말마다 전국 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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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말과 기억에 의존하여 민간에 전승되는 지식의 총칭. 옛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어 구전되는 일체의 문화 유산이라고도 볼 수 있는 구비전승은 크게 전설·신화·민담 등 문학적 요소를 담고 있는 구비문학과 노동요·만가·타령 등 노래의 형식을 빌린 민요, 그밖에 수수께끼·속담 등의 기타 구비전승으로 나눌 수 있다. 1. 전설 현재까지 조사되어 각종 문헌에 수록되어 있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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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음력 12월 31일에 집안 어른들에게 절하는 풍속. 음력 섣달 그믐날에 한 해를 무사히 보냈다는 의미로 집안 어른들에게 절을 올리는데 이를 묵은세배 또는 구세배(舊歲拜)라 한다. 섣달 그믐날에는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 성묘도 하고 집 안팎으로 대청소를 하여 지난해의 잡귀와 액을 물리치고 새롭게 새해를 맞이하는 준비를 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섣달 그믐날을 ‘작은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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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에 속하는 행정리. 1236년(고종 23)에 거란병이 침입하여 이곳에 주둔하였음으로 글안이라 하였다고 하고 또한 긴 골짜기 안쪽이 되어 굴안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마을에서 궂은 일, 안 좋은 일이 자주 일어나기에 동네에서 열 번 중 나쁜 일은 한 번만 일어나고 아홉 번은 편안하라고 구안리로 하였다고 한다. 본래 음성군 남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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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구안리 일대에 조성된 농업 용수 공급 저수지. 일명 오성(五星)저수지라고도 하며, 좁고 긴 계곡 형태의 저수지로 수심은 1~5m로 깊은 편이다. 무료 낚시터로 많이 알려져 있다. 농업 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1964년 1월에 공사에 착공하여 1966년 1월에 준공하였다. 구안저수지 시설은 한국농어촌공사 충북지역본부 음성지사가 관리하며, 총 저수량 50만 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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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구안리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음성읍 평곡리에서 음성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원남면 구안리 오대산에서 발원하여 하노리를 지나 북동류하여 음성천으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한강 수계에 속한다. 길이는 5.44㎞이고 유역 면적은 18.75㎢이며 준용하천의 구간은 4.0㎞이다. 하폭의 경우 구안리에서는 8m이고, 음성천과의 합류지점에서는 45m이다. 음성군 원남면 구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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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수태3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옛날에 이 마을에 부자가 살았는데 추수를 하면 억 말을 거두었다고 하여 구억말이라 불린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소탄면(所呑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태리, 하태리, 수인리와 진천군 소답면 신통리 일부를 병합하여 수인리의 ‘수’자와 상태리의 ‘태’자를 따서 수태리라 명명하고 대소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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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행해지던 중양절에 제사를 지내는 세시풍속 및 제사. 구일차례는 추석에 햇곡식이 나지 않으면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고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에 5대조 이상의 산소에 시제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이날 이웃끼리 또는 처녀는 처녀끼리 쌀을 모아 송편을 만들어 나누어 먹고 노는 풍습이 있었다. 음력 9월은 추수가 한창인 농번기로서 현재 충청북도 음성군에서는 구일차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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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0년 9월 27일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에서 출생하였으며, 1971년 11월 28일에 향년 82세로 별세하였다. 1910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활동하였으며, 1912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에서 신규식(申圭植)이 조직한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하였다. 1918년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할 사절단의 자금을 간도 노령에서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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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막거리 는 이진말마을 앞에 있는데 4차선으로 확포장된 37번국도와 생극면 관성리 방향의 일죽 방향의 지방도가 만나는 지점의 다리가 있는 지역이다. 현재 이진말의 오덕욱 할아버지의 논이 있는 자리이다. 바로 그 옆은 응천이라는 하천의 제방이 있다. 이진말의 김지만 할아버지와 오덕욱 할아버지는 구주막길에 대해서 “그전엔 하천에 다리를 놓고서 이게 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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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구안리에서 소이면 비산리까지 연결되는 국가지원 지방도. 국가지원 지방도란 지방도 중에서 중요 도시·공항·항만·산업단지·주요 도서·관광지 등 교통 유발 시설 지역을 연결하고, 고속국도와 일반국도로 이루어진 국가 기간 도로망을 보조하는 도로로 대통령령으로 노선이 지정된 도로를 말한다. 교통 연결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특별시도(特別市道)·광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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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서 생극면 오생리까지 연결되는 국가지원 지방도. 국가지원 지방도란 지방도 중에서 중요 도시·공항·항만·산업단지·주요 도서·관광지 등 교통 유발 시설 지역을 연결하고, 고속국도와 일반국도로 이루어진 국가 기간 도로망을 보조하는 도로로 대통령령으로 그 노선이 지정된 도로를 말한다. 교통 연결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특별시도(特別市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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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신돈리에서 생극면 신양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 21호선은 전라남도 남원시에서 경기도 이천시까지 총 연장 360㎞의 국도이다. 충청북도에서는 총 연장 43.861㎞의 포장도로로서 2차선이 33.561㎞, 4차선이 10.3㎞ 등이고, 노견 포장은 좌우 42.999㎞이다. 1981년 3월 14일 대통령령 제10247호에 따라 일반 국도로 승격되었다. 국도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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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문암리에서 소이면 비산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 36호선은 충청남도 보령에서 경상북도 울진 간의 291㎞ 도로이다. 국도 36호선의 충청북도 구간별 연장은 청주시 구간 20.161㎞, 충주시 구간 5.3㎞, 제천시 구간 14.584㎞, 증평군 구간 5.784㎞, 음성군 구간 21.8㎞, 단양군 구간 18.037㎞ 등으로서 총 연장은 114.959㎞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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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구안리에서 감곡면 왕장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 37호선은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경기도 파주시 간의 412㎞ 도로이다. 국도 37호선의 충청북도 총 연장은 150.15㎞이고 2차선이 115.903㎞, 4차선이 34.247㎞이다. 노견 포장은 좌 131.294㎞, 우 149.25㎞이다. 1981년 3월 14일 대통령령 제10247호에 의하여 일반 국도로 승격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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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향리에서 문촌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 38호선은 충청남도 서산시에서 강원도 동해시 간의 322㎞ 도로이다. 국도 38호선의 충청북도 4차선 구간은 73.533㎞의 포장 도로이다. 국도 38호선은 음성군 감곡면 오향리에서 감곡면 문촌리 간의 7.32㎞의 도로이다. 음성군 감곡면 오향리에서 국도 37호선과 분기되며, 감곡면 상우리에서는 중부내륙고속국도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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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주천리에서 생극면 오생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 3호선은 경상남도 남해에서 북한의 초산이라는 곳까지 이르는 길이 541㎞ 도로이다. 일반 국도는 주요 도시, 항만, 비행장, 관광지 등을 연결하며 국가 기간 도로망을 이루는 것으로 대통령이 노선을 지정하고 건설교통부 산하 각 지방 국토관리청이 일반 국도를 관리하고 있다. 국도 3호선의 충청북도 총 연장은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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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신천리에 있는 의료보험을 관리·운영하는 공공기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산하에 6개 지역본부와 227개 지사를 두고 전국을 단일체제로 관리하고 있어 지역에 관계없이 전국 어디서나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1998년 10월 1일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 의료보험관리공단과 227개 지역조합을 통합한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이 출범되고 나서, 2003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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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부윤리에 있는 제품 포장지 및 종합 인쇄 업체. 포장 인쇄를 핵심 주력 사업으로 하면서, 판지류 인쇄 등의 기반 사업을 통해 기업의 이윤 창출과 지역 경제 발전에 보탬이 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89년 1월 15일 자본금 5,000만 원으로 국민문화사가 설립되었고, 1992년 12월 28일 (주)국민문화로 법인 이전 등기를 하였다. 1996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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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유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노(聖魯), 호는 국사(菊史).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김문수(金文秀)이다. 김사구(金思逑)은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에게서 사사(師事)하였으며, 나이 70세에 노모가 살아 계셔 그 곁을 떠나지 않고 봉양하였다. 상을 당하여서는 산이 높고 험준한데도 팔순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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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충도리와 갑산리에 걸쳐 있는 산. 조선 후기의 고문헌에서는 음성군 동쪽 10리 떨어진 곳에 있고 청룡의 머리가 암각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 말에 배극렴이 어래산[383m]과 국사산에서 은거하였는 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세 번이나 찾아와서 정사를 논의하였다고 한데서 연유된 산의 이름이다. 일명 월고산 또는 국사봉이라고도 한다. 소이면 충도리와 갑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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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금고리와 충도리 사이 국사봉에 있는 삼국시대 토축 산성. 고문헌 기록에는 국사봉 산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다가 일제시대에 간행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성은 금고리의 서남 약 600간 거리의 국사봉 위에 있다. 성벽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암석 사이를 토루로 이어쌓았다. 둘레는 170간이고 높이는 4척이며 거의 무너졌다.”고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음성과 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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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충도리와 갑산리에 걸쳐 있는 산. 조선 후기의 고문헌에서는 음성군 동쪽 10리 떨어진 곳에 있고 청룡의 머리가 암각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 말에 배극렴이 어래산[383m]과 국사산에서 은거하였는 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세 번이나 찾아와서 정사를 논의하였다고 한데서 연유된 산의 이름이다. 일명 월고산 또는 국사봉이라고도 한다. 소이면 충도리와 갑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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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금고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비. 재질은 광배형 화강암 자연석으로, 앞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글자를 모각하였다. 비신의 양 측면에 약간 땜질을 하였으며, 삼각형의 머리 부분은 뾰족한 모습이라 남성 선돌을 연상시킨다. 비신(碑身)의 전체 높이는 81㎝이며, 앞면의 폭은 43㎝, 측면의 폭은 22㎝이다. 비석 앞면에는 ‘국사산하황룡산황룡두하룡전평(國師山下黃龍山黃龍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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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응선(應先), 호는 국오(菊塢). 할아버지는 반석권(潘碩權)이며,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반사렴(潘士濂)이다. 1555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다. 1591년(선조 24)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명경과(明經科)의 『대학(大學)』에서 떨어진 뒤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글에만 전념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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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백도(伯道), 호는 국우재(鞠又齋). 할아버지는 권징(權徵), 아버지는 현령 권경(權憬)이다. 1616년(광해군 8)에 출생하였다. 수직(壽職)으로 수의좌위부사위(修義佐衛副司尉)를 받았다. 우암 송시열의 문하에서 김운곡(金雲谷)·정포옹(鄭抱翁)과 교유가 두터웠다. 1655년 향년 40세로 별세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본대리 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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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용계리에 있는 변압기 전문 제조업체. 국제전기(주)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전기 제품을 연구, 개발, 생산하기 위하여 설립되였다. 1946년 5월에 국제변압기제작사를 설립하였고, 1957년 2월 26일에 국제전기(주)로 법인을 전환하였다. 국제전기(주)에서는 전동차용 주변압기, 전기 집진 기용 전원 공급 장치, 주상용 자동 전압 조정기, 무정전 전원 장치의 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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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김기화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기화는 자가 국현(國賢)이고, 호는 춘파(春波)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김환유(金煥維)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어느 날 김기화가 글방에서 잠을 자는데 갑자기 마음이 이상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이상한 물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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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군계(君啓). 판도판서(判圖判書) 조돈(趙暾)의 아들이다. 조인옥은 1373년(공민왕 22)에 음보(蔭補)로 생원이 되고 1387년(우왕 13)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를 거쳐 이듬해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 이성계의 휘하에 종군하여 최영(崔塋) 등 구세력 숙청에 가담하였다. 위화도에서 회군할 때 남은(南誾) 등과 더불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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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생활을 서울에서 해서 훈련소 때 외에는 늘 김금자 할머니와 함께 있었다. 오덕욱 할아버지 동생 분들이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김금자 할머니가 밥을 해주기 위해 서울에 올라와 있었다. 훈련소 때는 어쩔 수 없이 군사우편으로 소식을 주고받았지만, 자대배치를 받고 나서는 주말이면 항상 함께 있었다. “군대 생활은 잘했지, 좋은 데 가서 편안하게. 서울 위로는 올라가보질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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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21살에 입대해서 1961년, 24살에 제대했다. 딱히 이유 없이 그냥 해군으로 가고 싶어서 지원 시험을 봤다. 사정고개를 걸어서 넘고 첫 기차를 타고 청주로 가서, 청주공고에서 신체검사하고 시험을 보고 한 번에 붙었다. “시험을 다 보고 나왔는데 다 보고 나왔는데 일곱 번을 봤네, 몇 번을 봤네 그러면서 내가 쓴 거는 죄 틀리고 즈들이 죄 맞다고 떠들어. 아 나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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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청주고씨 입향조. 본관은 청주. 자는 군명(君明), 호는 퇴암(退庵). 할아버지는 중랑장 고천련(高天連), 아버지는 고유렴(高有廉)이다. 부인은 순천박씨로 박장생의 손녀이다. 동생으로 고덕칭(高德稱), 고덕부(高德符)가 있다. 1419년(세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32년(세종 14)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439년(세종 21) 강음현감(江陰縣監)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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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고덕수의 묘비. 고덕수는 자는 군명(軍明), 호는 퇴암(退庵),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중랑장 고천연(高天連)의 손자이다. 1432년(세종 14)에 식년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과 연풍현감을 지냈다. 1456년(세조 2)에 취금헌(翠琴軒) 박팽년과 재종매부(再從妹夫)라는 이유로 화를 입어 관(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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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종친이자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군미(君美), 호는 애일당(愛日堂). 효령대군의 현손이며, 강성도정 이견손(李堅孫)의 넷째아들이다. 부인은 청주한씨로 대간 한승정(韓承貞)의 딸이다. 1510년(중종 5) 춘추관기사관, 1511년 예문관검열을 거쳐 홍문관수찬, 검토관, 직산현감이 되었다. 1512년 이조좌랑으로 소릉에 관한 상소를 하였다. 1518년 이조좌랑, 봉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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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여흥(驪興). 자(字)는 군삼(君三), 호(號)는 송암(松巖). 첨정 민휘정(閔鰴鄭)의 아들이다. 민동량은 5세 때 글을 깨우쳐 주위에서 신동이라고 소문이 났으며 5~6세 때 부모가 병이 났을 때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 곁을 떠나지 않고 병을 간호하였다. 10세에 어머니 병환이 위중하자 하늘에 기도하였고, 15세 때인 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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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민동량의 묘. 민동량의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자는 군삼(君三), 호는 송암(松巖)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증병조판서(贈兵曹判書) 민심언(閔審言)의 후손으로, 첨정(僉正) 민휘정(閔徽鄭)의 아들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누가 아버지를 부르면 문득 눈물을 흘렸다. 10살에 어머니가 아프자 향을 피워 하늘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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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 자는 군서(君瑞), 호는 회당(晦堂). 좌의정 윤사흔(尹士昕)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윤교명(尹敎明)이다. 지금의 경기도 양근군 남시면 지탄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머니는 고령신씨로 신각모(申慤模)의 딸이다. 부인은 영월신씨로 신석하(辛錫河)의 딸이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아버지가 가족을 데리고 청풍의 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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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의병. 시조 정배걸의 31세손이고, 내급사공파의 증좌승지 정인호(鄭仁鎬)의 현손이며, 정인성(鄭寅晟)의 아들로 음성군 금왕읍 내송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자는 군소(君素)이며 본관은 초계이다. 정이헌은 1896년에 운강(雲崗) 이강년(李康秊) 의병진에 가담하여 충주 금목(金目)[금왕읍 쌍봉리] 일대에서 의병의 모집 및 전투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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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무신.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군익(君翼), 호는 능호(凌湖). 아버지는 윤택진(尹宅鎭)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에서 출생하였는데, 날 때부터 기골이 장대하였다. 1861년(철종 12) 무과에 급제하여 선공감역이 되었다가, 1870년(고종 7) 승지 민병승(閔丙承)의 천거로 훈련원첨정이 되어 훈련원도정에 올랐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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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군자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조선 선조 때 군자감주부 김종립이 이곳에 터를 잡은 데서 군자터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 맹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군자동이라 하여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통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군자리라 명명하고 맹동면에 편입되었다. 군자리는 군자터 한 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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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은 조선 선조 때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 김종립(金宗立)이 터를 잡아 살았으므로 군자감터라 하였고 그 뒤 변하여 군자동이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맹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통동 일부로 병합되었고 이후 군자리라 하여 맹동면에 편입되었다. 서쪽에는 함박산[339m], 서남쪽에는 알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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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군자리에서 발원하여 맹동면 통동리를 거쳐 초평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맹동면 군자리 북쪽에서 발원·남류하여 통동리 저수지로 유입되고 진천군 초평면 신통리에서 초평천으로 유입된다. 초평천은 미호천으로 유입되는 금강 수계이다. 군자천은 길이가 10.0㎞이고 유역 면적은 17.0㎢이며 준용하천의 구간은 10.0㎞이다. 음성군 관내의 군자천 길이는 5.0㎞이다. 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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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군자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조선 선조 때 군자감주부 김종립이 이곳에 터를 잡은 데서 군자터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 맹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군자동이라 하여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통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군자리라 명명하고 맹동면에 편입되었다. 군자리는 군자터 한 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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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창녕(昌寧). 창녕성씨 시조 성인보(成仁輔)의 13세손이고, 성담명(成聃命)의 5세손이며, 성축(成軸)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진천송씨(鎭川宋氏) 송근(宋瑾)의 딸이며, 부인은 순천박씨(順天朴氏) 박민(朴敏)의 딸이다. 성담(成紞), 성유(成維), 성적(成績), 성표(成縹) 네 아들을 두었다. 1572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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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군헌(君獻), 호는 취병(翠屛). 승지(承旨) 조희보(趙希輔)의 아들이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지낸 조상우(趙相愚)는 그의 아들이다. 조형은 어려서 장난이 심하였으나 일찍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9세에 경서(經書)를 해득하여 세상 사람들이 경탄하였다. 1630년(인조 8)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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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걸의 묘비. 권걸(權傑)의 본관은 안동으로, 양촌 권근(權近)의 증손,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권제(權踶)의 손자이며, 길창부원군 권람(權擥)의 아들이다. 1472년(성종 3)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화강암 대석 위에 백대리석으로 비신과 상부를 조각하였다. 전체 높이는 126㎝로 비신은 높이 81㎝, 너비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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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안동. 할아버지는 권돈(權墩), 아버지는 함흥도호부사 권급(權伋)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서 출생하였다.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후배 양성에 힘썼다. 27세로 일찍 죽었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 묘소가 있다. 좌승지겸경연참찬관(左承旨兼經筵參贊官)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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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에 살았던 효자. 권국화는 부모에게 효성이 극진하였는데,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내려온다. 한 번은 아버지의 병에 백약이 무효하여 탄식하다가 뒷산에 올라가니 뜻밖에 말 한 필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말이 꼬리를 치면서 어서 타라는 것 같아서 성큼 올라탔더니, 단숨에 장호원(長湖阮)의 약방 앞에 멈추었다. 말에서 내려 약방에 들어가 병 증세를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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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권국화의 정려문. 권국화에 대한 기록으로는 『순조실록(純祖實錄)』에 1831년(순조 31) “유생이 임금에게 글을 올려 증직되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는 “무신년(1728) 당시 집에 역도가 난입하자 가로막으며 ‘차라리 내가 죽을지언정 어머니에게는 해를 끼치게 할 수 없다’라고 소리치니 물러났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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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안동. 초명은 권진(權晉),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 증조부는 권부(權溥)이다. 1368년(공민왕 17) 성균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급제하여 춘추관검열·성균관직강·예문관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공민왕이 죽자 정몽주(鄭夢周)·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배원친명(排元親明)을 주장하였다. 1390년(공양왕 2) 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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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의 묘비. 권근(權近)은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1398년(태조 7) 1차 왕자의 난 이후 사병(私兵) 폐지를 주장하여 왕권 확립에 큰 공을 세웠다.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으로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지고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에 올랐다. 사후 좌의정에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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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의 묘지석. 권근은 1409년(태종 9) 2월에 서거했으며, 같은 해 4월에 경기도 양주군 오포면(현재의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으로 예장(禮葬)하였는데 이때 묘지석이 만들어졌다. 이후 1444년(세종 26) 3월 충주로 이장을 하였는데 이 묘지석은 가져가지 못하고 광 속에 보관하다가 1965년에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권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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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권근의 부인 경주이씨의 묘비. 권근(權近)의 부인 경주이씨(慶州李氏)는 증판삼사사(贈判三司事) 이존오의 딸이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의정부우찬성 권제(權踶), 차남은 길창군 권규(權跬), 삼남은 한성부소윤 권준(權蹲)이다. 딸은 판종부시사 최주(崔宙)와 결혼을 하였다. 묘비는 1444년(세종 26)에 건립되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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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사중(思中). 아버지는 권돈(權墩)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서 출생하였다. 1735년(영조 11) 무과에 급제하여 비변사랑(備邊司郞)이 되고, 선전관·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을 지냈다. 1743년(영조 19)에 가산군수를 하였고 이어 삼척군수·영광군수를 역임하고 경흥도호부사(慶興都護府使)를 지냈다. 묘소는 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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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응선(應善). 문충공(文忠公) 권근(權近)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사직 권익(權翊)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살았다. 음보로 기용되어 1590년(선조 23) 금산제원찰방, 군위현감(軍威縣監)을 역임하였으며 치적으로 비단을 하사받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상주판관(尙州判官)으로 동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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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충신 권길의 정려문. 권길(權吉)[1550~1592]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응선(應善)이다. 음보(蔭補)로 등용되어 1590년(선조 23) 경상도 군위현감, 1592년 상주판관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변사 이일(李鎰)과 함께 상주성에서 왜적을 상대하여 싸웠다. 왜적과 전투를 벌일 때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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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인 권념의 묘비. 권념(權念)의 본관은 안동으로, 자는 중경(仲經), 초휘(初諱)는 권응(權應)이다.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손자이며, 정난공신 안천군 권준의 차남이다. 모친은 영춘현부인 해주정씨(永春縣夫人 海州鄭氏)로, 정도공(貞度公) 정역(鄭易)의 딸이다. 음보로 군기시판관(軍器寺判官)을 거쳐 옥천(沃川), 마전(麻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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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권념 부인 강화최씨의 묘비. 강화최씨(江華崔氏)는 마전군수 권념(權念)의 부인으로, 사재감정(司宰監正) 최저(崔渚)의 딸이다. 어머니는 강씨(姜氏)이다.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1495년에 별세하였으며, 묘비는 1497년에 세워졌다. 대석을 제외한 비신과 상부는 화강암 1석으로 만들었다. 전체 높이는 167㎝로, 비신 높이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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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정경(正卿), 호는 소한당(所閑堂). 할아버지는 문충공(文忠公) 권근(權近)이며, 아버지는 우찬성 권제(權踶)이다. 권람(權擥)[1416~1465]은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학문이 넓었으며, 뜻이 크고 기이한 계책이 많았다. 불교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활을 잘 쏘고 문장에 뛰어났다. 35세까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있다가, 1450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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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권람의 묘비. 권람의 본관은 안동, 자는 정경(正卿)이다. 양촌 권근의 손자이며 문경공(文景公) 권제(權踶)의 아들이다. 수양대군(首陽大君)의 참모로서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1등 공신이 된 후 좌의정에 올랐고 이듬해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이 되었다. 화강암 1매로 만들어졌다. 전체 높이는 194㎝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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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람(權擥)의 신도비. 권람의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정경(正卿), 호는 소한당(所閑堂)이다. 양촌 권근(權近)의 손자이며 문경공(文景公) 권제(權踶)의 아들이다. 1450년(세종 32)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고, 감찰(監察)을 거쳐 교리(校理)를 지냈다. 계유정란(癸酉靖難)에 앞장서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으로 책록되었고,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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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람의 부인 고성이씨의 묘비. 고성이씨는 문정공(文貞公) 이암(李嵓)의 손녀이며,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 이원(李原)의 딸이다. 1495년 81세로 졸하였으며, 영원군부인(寧原郡夫人)으로 봉해졌고, 2남 8녀를 두었다. 남편 권람(權擥)의 묘비와 동일하다. 묘소 앞쪽, 오른쪽에 위치한다. 화강암 1석을 이용하여 비면과 상단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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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권료(權憭)의 묘비. 권료의 본관은 안동으로 자는 언명(彦明)이다. 양촌(陽村) 권근의 증손, 안천군(安川君) 권준(權蹲)의 손자이며 마전군수(麻田郡守) 권념(權念)의 장남이다. 모친은 강화최씨(江華崔氏)로 사재감정(司宰監正) 최저(崔渚)의 딸이다. 음보로 결성현감을 역임하였다. 묘비는 대석을 포함하여 화강암 1석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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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권료(權憭)의 묘비. 권료의 본관은 안동으로 자는 언명(彦明)이다. 양촌(陽村) 권근의 증손, 안천군(安川君) 권준(權蹲)의 손자이며 마전군수(麻田郡守) 권념(權念)의 장남이다. 모친은 강화최씨(江華崔氏)로 사재감정(司宰監正) 최저(崔渚)의 딸이다. 음보로 결성현감을 역임하였다. 묘비는 대석을 포함하여 화강암 1석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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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서 태어나 자랐다. 1771년(영조 47)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776년(정조 즉위년) 5월에 제주에 선전관으로 갔다 온 후 그 공으로 6품으로 승진되었다. 명천현감·위원군수를 거쳐 여산부사를 지냈다. 여산부사 재임시 선정을 베풀었다 하여 그 곳 사람들이 거사비(去思碑)를 세웠다. 충청북도 음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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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자룡(子龍), 시호는 안양(安襄). 할아버지는 양촌 권근(權近)이고 아버지는 지재(止齋) 권제(權踶)이다. 형으로 권람(權擥)이 있다. 여러 번 과거를 보았으나 급제하지 못하다가 음보(蔭補)로 현릉(顯陵)의 능지기가 되었고 후에 상서원승(尙瑞院丞)에 이르렀다. 형 권람과 함께 계유정난에 가담하여 1455년(세조 원년) 수충경절좌익공신(輸忠勁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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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권부의 묘비. 총 높이는 127㎝이며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비석의 규모는, 비신(碑身) 높이 112㎝, 앞면 52㎝, 측면 20㎝이고, 방부(方趺)는 높이 15㎝, 앞면 74㎝, 측면 43㎝이다. 비석 앞면에는 ‘조산대부행사헌부감찰권공지묘 영인양천허씨부우(朝散大夫行司憲府監察權公之墓 令人陽川許氏祔右)’라 쓰여 있다. 비석 뒷면에는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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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3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성미는 삼성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4㎞ 정도 떨어진 용성리의 중앙부에 위치한 자연 마을이다. 동쪽으로는 연미실과 건너말, 북쪽으로는 마재, 남쪽으로는 조룡미와 각각 접하고 있다. 성미는 마을 뒤쪽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산이 성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동권씨가 많아 권성촌(權姓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래 충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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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창보(昌甫). 권연의 아버지는 권점(權點)이다. 권연은 1764년에 출생하였다. 성리학(性理學)을 전공하면서 향약의 범례(範例)와 장정(章程)을 모아 엮은 『향약장정(鄕約章程)』을 충실히 실천하였고 향토 문화의 발전과 후학을 양성에 평생을 보냈다. 이러한 치적을 인정받아 사후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증직되었다.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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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명여(命汝). 아버지는 만오(晩悟) 권종석(權鍾奭)이다. 1868년(고종 5)에 출생하였다. 1885년(고종 22) 무과에 급제하여, 1890년 선전관, 1891년 훈련원주부, 1892년 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하였다. 1899년 31세로 별세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사창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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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字)는 성시(性施), 호(號)는 농은(農隱), 증조부는 권종석(權鍾奭), 아버지는 권영목(權寧穆)이며, 어머니는 수원백씨(水原白氏)이다. 13세에 정덕영(鄭德永)의 딸과 결혼하여 3남 1녀를 두었다. 증조부 권종석의 유훈을 받아 남다르게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뜻을 한 번도 거역한 일이 없었다. 모친 수원백씨의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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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백도(伯道), 호는 국우재(鞠又齋). 할아버지는 권징(權徵), 아버지는 현령 권경(權憬)이다. 1616년(광해군 8)에 출생하였다. 수직(壽職)으로 수의좌위부사위(修義佐衛副司尉)를 받았다. 우암 송시열의 문하에서 김운곡(金雲谷)·정포옹(鄭抱翁)과 교유가 두터웠다. 1655년 향년 40세로 별세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본대리 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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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인 권념의 묘비. 권념(權念)의 본관은 안동으로, 자는 중경(仲經), 초휘(初諱)는 권응(權應)이다.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손자이며, 정난공신 안천군 권준의 차남이다. 모친은 영춘현부인 해주정씨(永春縣夫人 海州鄭氏)로, 정도공(貞度公) 정역(鄭易)의 딸이다. 음보로 군기시판관(軍器寺判官)을 거쳐 옥천(沃川), 마전(麻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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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인지(仁之). 아버지는 대사헌 권휴(權休)이다. 권인은 1650년에 출생하였으며, 용양위어모장군(龍驤衛禦侮將軍)을 역임하고 호조참의에 증직되었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능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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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 고조부는 경흥도호부사 권급(權伋)이다. 1824년(순조 24)에 출생하였다. 1850년(철종 1) 무과에 급제하여, 1853년 선전관, 1861년(철종 12) 호조좌랑, 1879년(고종 16) 언양현감, 1883년 응천(凝川)[경상남도 밀양(密陽)의 옛 이름] 군수를 역임하였다. 1885년(고종 22) 통정대부가 되었고, 1889년(고종 26)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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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 권자선의 묘비. 총 높이 160㎝로, 3단으로 되어 있는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높이 100㎝, 앞면 49㎝, 측면 15㎝이고, 하엽(荷葉)은 높이 45㎝, 앞면 56㎝, 측면 15㎝이며, 방부(方趺)는 높이 15㎝, 앞면 78㎝, 측면 53㎝이다. 비석 앞면에는 ‘통훈대부행개천군수권자선지묘숙부인선산김씨지묘(通訓大夫行价川郡守權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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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재학은 1919년 4월 1일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한내장터에서 김을경, 이중곤, 추성렬, 이교필, 이용호 등과 함께 시위를 주동하였다. 권재학은 수백 명의 시위 군중을 이끌고 소이면사무소로 달려가 만세 삼창을 하였다. 이때 왜경이 김을경, 이중곤을 연행하자 주재소에 가서 석방할 것을 요구하였다. 당시 음성에 거주하던 일본인 후루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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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안동. 자는 성흥(聖興). 권휴(權休)의 아들이다. 권점은 선조의 유훈에 따라 도학(道學)에만 전념하였다. 향년 93세로 죽자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오위도총부부총관(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五衛都摠府副摠管)에 증직되었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능산리 산직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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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중안(仲安), 호는 지재(止齋). 아버지는 권근(權近)이다. 부인은 판사 이휴(李携)의 딸이다. 음보로 경승부주부(敬承府主簿)에 기용되었고 후에 감찰이 되었다. 1414년(태종 14) 문과에 급제하고, 병조정랑·예문관응교를 역임하고, 1416년(태종 16) 성균관사예, 1418년 의정부사인·전사소윤·세자시강원문학을 지냈다. 1419년(세종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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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권제의 묘비. 권제는 세종 때 집현전부제학, 사헌부대사헌, 한성부윤, 경기도관찰사, 이조판서, 우찬성을 지냈다. 정인지(鄭麟趾) 등과 함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편찬에 참여하였다. 전체 높이 170㎝, 비신 너비 59.5㎝의 크기이다. 대석을 제외한 비신과 상단 장식을 한 돌로 만들었다. 묘비 상단에는 7엽의 연화문과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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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있는 조선 초기 문신 권제를 봉안한 사묘. 권제 부조묘는 권제(權踶)[1387~1445]를 봉안한 사당이다. 문경(文景)은 권제의 시호이다. 권제의 자는 중의(仲義), 호는 지재(止齋), 본관은 안동이며 권근(權近)의 아들이다. 1445년(세종 27) 정인지, 안지 등과 『용비어천가』 편찬에 참여하였다. 훗날 영의정에 증직되고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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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제(權踶)의 신도비. 권제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중의(仲義), 중안(仲安), 호는 지재(止齋)이다. 음보로 관직에 나아갔다. 1440년(세종 22)에 『고려사』 편찬에 참여하였고, 정인지 등과 『용비어천가』를 지어 바쳤다. 영의정에 추존되었고,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이런 업적을 기리고자 18대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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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주백(周伯), 호는 만오(晩悟). 아버지는 권교삼(權敎三)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서 1848년(헌종 14)에 출생하였으며 여덟 살 때 부모를 잃었다. 1863년(철종 14)에 무과에 급제하여 비변랑이 되었고, 1881년(고종 18) 의정부공사관이 되었으며 1883년 훈련원첨정에 이르렀다. 1884년 선전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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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에 살았던 열녀. 본관은 진주(晋州). 권종원(權鐘源)의 처이다. 권종원의 처 진주정씨는 시부모님을 봉양함에 효성을 다하였고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남편의 뒤를 따라 자결하였다. 조선 후기 고종 때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열녀 정문(旌門)을 세웠다. 현판에는 ‘열녀학생권종원처유인진주정씨지문(烈女學生權鐘源妻孺人晋州鄭氏之門)’이라고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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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순좌(舜佐). 아버지는 권일규(權一圭)이다. 1879년(고종 16) 무과에 급제하였다. 1892년(고종 29) 의정부종사관(議政府從事官)을 역임하고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로서 녹도(鹿島)의 난에 종군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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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오미(五美). 아버지는 권근(權近)이다. 부인은 해주정씨로 찬성 정이(鄭易)의 딸이다. 1422년(세종 4) 문음(門蔭)으로 종묘부정에 제수되고 1430년(세종 12) 호조좌랑이 되었다. 1434년(세종 16) 종부시판관(宗簿寺判官)으로 강원도와 함길도에 가서 기민 구제 상황을 시찰하였다. 사헌부지평, 1438년(세종 20) 경기경력,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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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권준의 묘비. 권준의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오미(五美)로 양촌 권근의 4남이다. 1422년(세종 4)에 음보로 종묘서부승(宗廟署副丞)에 오른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에는 가선대부(嘉善大夫) 대사헌(大司憲)이 되었고, 수충협찬정난공신에 오르고 안천군에 봉해졌다. 1457년(세조 3) 정헌대부(正憲大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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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준(權蹲)의 신도비. 권준의 본관은 안동이며, 권근의 아들이자 권제(權踶)의 동생이다. 시호는 안숙(安肅)이다. 1427년(세종 9) 감찰에 기용되었고, 1430년에는 호조좌랑이 되었다. 권준은 호조좌랑 당시 공법(貢法)이 제정되었을 때, 척박한 산과 밭은 매년 경작할 수 없는데도 평야 지대의 전답과 같이 취급할 경우 폐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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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안동. 초명은 권진(權晉),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 증조부는 권부(權溥)이다. 1368년(공민왕 17) 성균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급제하여 춘추관검열·성균관직강·예문관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공민왕이 죽자 정몽주(鄭夢周)·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배원친명(排元親明)을 주장하였다. 1390년(공양왕 2) 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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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권철인(權徹仁)의 선정비. 권철인은 1844년(헌종 10) 예빈시(禮賓寺) 참봉(參奉)을 거쳐 음성현감에 부임했다가 1851년(철종 2) 7월 신병을 이유로 사직하였다. 권철인 혜휼군민선정비는 재직시인 1850년(철종 1)에 세운 것이다. 원래의 위치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음성향교 앞쪽에 다른 선정비들과 함께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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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권헌의 묘비. 권헌(權憲)의 본관은 안동이다. 양촌 권근(權近)의 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문경공(文景公) 권제(勸踶), 할아버지는 익평공(翼平公) 권람(權擥)이며, 아버지는 길창군(吉昌君) 권걸(勸傑)이다. 1467년(세조 13)에 태어나 음보로 전생서봉사(典牲署奉事)에 올랐고, 이를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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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권혁용은 1944년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1968년 지방공무원에 임명되어 29년간 근속한 행정가이다. 음성중학교, 청주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68년 음성교육청 근무를 시작으로 1969년 음성읍 근무, 1972년 맹동면 재무계장, 음성군청 내무과·새마을과 근무, 음성읍 사회·총무·호병계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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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 호는 수졸재(守拙齋). 조부는 송암(松菴) 권징(權徵)이며, 아버지는 권경(權憬)이다. 용양위부사직(龍驤衛副司直)을 역임한 후 과거를 포기하고 우암 송시열·동춘 송준길·이유태과 더불어 학문하면서 영호계(永好契)를 맺어 교유하다가 회덕(懷德) 와촌(瓦村)으로 옮겨 은거하였다. 1680년(숙종 6)에 향년 68세로 졸하였다.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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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성 할머니는 1940년생, 용띠로 친정은 음성군 삼성면 선정리이다. 말투가 애교가 있고 부드러웠으며 외모도 동글동글 하고 잘 웃었다. 2월 6일 조사자들이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풍감묻기 놀이」, 「다리세기 놀이」 등을 적극 나서서 보여주었다. 이야기가 잘 나오지 않아 다음번에 이야기를 생각해서 들려달라고 했더니 2차 방문 시에 「호랑이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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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에 있는 바위. 원남면 조촌리 흐리실에 있는 거북 모양의 바위이다. 흐리실은 덕고개 서쪽의 마을로서 일명 기리, 문촌 등으로도 불리고 있는데 문촌은 옛날에 선비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870년대에 발간된『호서읍지』에서 귀암은 음성현의 북쪽 30리 지점의 조촌내 윗부분에 있는데 부근에 9그루의 소나무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고 기록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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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으로 은거한 문신. 본관은 평산. 자는 덕부(德夫), 호는 규정(葵亭)·서암(恕庵). 아버지는 현감 신항구(申恒耈)이다. 신후재는 1660년(현종 1) 사마시를 거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다가 지평·부교리 등을 역임했다. 1679년(숙종 5) 강원도관찰사가 되었고 이듬해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남인(南人)이 제거될 때 삭직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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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신후재의 영정을 봉안한 사우. 신후재는 조선 숙종 때의 사람으로, 동부승지, 강원도관찰사, 좌부승지, 안변부사, 우승지, 좌승지, 진하겸사은부사, 승정원도승지, 공조참판, 동지의금부사, 한성판윤 등을 지냈다. 1694년(숙종 20) 3월 갑술옥사 때 여주에 유배되었다가 1697년(숙종 23) 4월에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 오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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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홍익인간의 이념을 바탕으로 미래 사회를 개척해 나갈 전문 지식과 인성을 갖추고 있으며,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고 성실·창조·협동 정신을 실현하여 국가와 인류에 기여하는 인재양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91년 9월 11일에 학교법인 극동학원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1996년 12월 6일 극동대학교 설립 계획을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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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단평리에 있는 사립 전문대학. 홍익인간의 교육 이념을 구현하고자 성실·창조·협동의 실천을 통한 인간성 회복을 바탕으로 교육의 전문화와 세계화를 지향하여 국가와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인 양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91년 6월 11일 학교법인 극동학원 설립 인가를 받았고, 1993년 11월 8일 9개 학과 680명의 입학정원으로 충북전문대학 설립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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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연극·영화·무용 등을 감상할 수 있도록 무대와 관람석 등의 시설을 갖춘 장소. 음성 최초의 극장은 1959년경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551번지에 개관한 음성극장과 금왕읍 무극리에 개관한 금왕영화관이었다. 당시 음성극장의 운영은 이기준과 박용한이 맡고 있었고, 금왕영화관의 운영은 이재건이 맡고 있었다. 극장의 객석은 각각 150여 석 정도였다.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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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효령대군의 현손 이효언(李孝彦)의 아들이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본대리에 있다. 이곳 묘소 근처를 전능(前陵)이라 하는데, 영의정에 증직된 까닭에 ‘능(陵)’ 자를 붙였다 한다. 영의정에 증직되고 극풍부원군(克豊府院君)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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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에 속하는 행정리. 금정의 금(金)과 삼고리의 고(古)를 조합하여 금고리라고 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본래 충주군 사이포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금정리·충원리·삼고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음성군 소이면에 편입되었다. 김장골의 국사봉[410m]에는 마당바위가 있고 김장골에서 삼고심이로 넘어가는 곳에는 독바우고개가 있다. 금장천·삼고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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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금고리 삼고심이에서 음력 정월 초 산신에게 올리는 제의. ‘삼고심이’란 이름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로 배극렴(裵克廉)[1325~1392]을 찾아갔을 때, 이곳을 지나다가 세 번 돌아봤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소이면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2㎞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독바우, 서쪽으로는 우목과 접하고 있다. 제당은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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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금고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비. 재질은 광배형 화강암 자연석으로, 앞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글자를 모각하였다. 비신의 양 측면에 약간 땜질을 하였으며, 삼각형의 머리 부분은 뾰족한 모습이라 남성 선돌을 연상시킨다. 비신(碑身)의 전체 높이는 81㎝이며, 앞면의 폭은 43㎝, 측면의 폭은 22㎝이다. 비석 앞면에는 ‘국사산하황룡산황룡두하룡전평(國師山下黃龍山黃龍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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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단양. 자는 자류(子類), 호는 금리(琴里). 충신 장충범(張忠範)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장택한(張宅漢)이고, 어머니는 장수황씨(長水黃氏)이다. 글을 잘 지어 문행(文行)으로도 알려져 있다. 어머니의 병환에 손가락을 끊어서 피를 들게 하여 소생시켰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시묘를 하는데 커다란 범 한 마리가 매일같이 찾아와 같이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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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이자 자선사업가.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성언(聖言), 호는 금범(錦帆). 선무공신(宣武功臣) 장충범(張忠範)의 후손이고, 동몽교관(童蒙敎官) 장석영(張錫永)의 아들이다. 장용묵은 어릴 때부터 성품이 효성스럽고 어버이를 섬김에 혼정신성(昏定晨省)을 다하였다. 어머니 최씨가 천어(川漁)를 좋아하여 춥거나 덥거나 날씨에 상관없이 매일 고기를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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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금고리에 있는 법화종(法華宗) 사찰. 1996년에 충주산업대학교 박물관이 간행한 『음성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있는 ‘음성군 사찰 현황표’에 따르면, 금봉사는 당시 음성군에 소재한 52개 사찰 가운데 법화종에 속하는 8개 사찰 중 하나였다. 이에 따르면 설립자는 조교선으로, 창건 연대는 미상이라고 하였다. 한편 음성문화원이 1998년에 간행한 『음성지명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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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있는 산. 조선 후기의 문헌에서는 금봉산은 음성군 동남쪽 20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봉산은 산 모양이 봉황이 날개를 드리운 것과 같다고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길이 험해서 말의 통행이 불편하였는 데 자선가 정운상이 거액을 내어 길을 닦아 평탄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일명 죽실령(竹實嶺)이라고도 한다. 갬봉산은 금봉산이 변하여 만들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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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옥님 할머니는 19세에 갑산리로 시집온 후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 할머니는 많은 연세에도 비교적 기억력이 좋고, 이야기를 아주 많이 알고 있었다. 특히, 오랜 세월을 갑산리에서 살았기 때문에 갑산리의 수호산인 금봉산에 관한 믿음이 굉장히 컸다. 주변의 할머니들이 다 인정할 정도로 재담꾼이다. 할머니는 연륜 탓인지 아기를 낳을 때와 아들, 딸의 구별 등을 맞출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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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1리 정자안에서 매년 음력 1월 7일에 지내는 산신제. 갑산리 정자안 산신제는 현지에서는 산제라고 한다. 정자안은 음성읍에서 동남쪽으로 10㎞ 지점, 소이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5㎞ 지점에 위치하며 금봉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갑산내가 흐르고 있다. 산신제를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꽤 오래 전부터 지내오다 1972년 산제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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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는 우리나라의 정중앙에 위치한다.충청북도 전체적으로는 북서쪽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충주, 남쪽으로는 괴산 사이에 있다. 서울에서 오려면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음성 나들목을 나오면 금왕에 이르게 된다. 금왕에서 37번 국도를 타고 음성군 음성읍 방향으로 약 20분 간 달리면 36번 국도와 만나게 되는데, 이 36번 국도를 타고 충주 방향으로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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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일: 2007년 2월 9일 ※ 조사지: 음성군 소이면 갑산1리 정산말 마을회관 ※ 조사자: 황경수, 박종호, 고유리, 윤정아 민병두 할아버지는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 태생으로 젊은 시절을 군인으로 지냈다. 하사관으로 전역을 하였고, 지금도 재향군인회 일을 맡아하고 있다. 젊었을 때 마을을 떠나 군인으로 지내다가 고향인 탑골말로 왔다. 탑골말과 정산말을 합쳐 형성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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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육영사업가. 순천박씨 중시조 대제학 박숙정(朴淑貞)의 20세손이고, 부사과 박종현(朴宗鉉)의 아들이다. 이조판서를 지낸 박장생(朴長生)이 사육신 사건 때 화를 입어 설성(雪城)에 유배된 뒤 은둔하면서 후손들이 대대로 살게 되었다. 1940년에 육영사업을 위하여 쌀 500석을 내놓았고, 음성보통학교(현 수봉초등학교) 강당을 새로 지었다. 음성고등실습학교(현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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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 금곡리와 석우리에서 ‘금’ 자와 ‘석’ 자 각 한 글자씩을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석우리(石隅里)·반의리(班衣里)·금곡리(金谷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금석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금왕읍으로 승격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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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금석리 일대에 조성된 농업 용수 공급 저수지. 금왕읍 육령리 금석저수지, 음성읍 사정리 무극저수지, 금왕읍 백야리 용계저수지는 서로가 도수 터널로 연결되어 있어 수면의 높이가 서로 같으며, 일명 음성군의 삼형제저수지라고도 불린다. 농업 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1977년 2월 28일에 착공하여 1981년 12월 30일에 준공되었다. 금석저수지 시설은 한국농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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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구계리 일대에 조성된 농업 용수 공급 저수지. 농업 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1941년에 공사에 착공하여 1945년 1월 1일에 준공하였다. 금성저수지 시설은 한국농어촌공사 충북지역본부 음성지사가 관리하며, 총 저수량 50만 톤 이상의 1종으로 수원공은 주수원이다. 제체 형식은 휠 댐이고, 제당 구조는 토언제 균일형이다. 제체 길이는 276m, 제체 높이는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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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누구나 이름이 있듯이 사람들이 살아왔고 살아가는 마을에는 곳곳마다 땅이름이 있다. 사정1리 강당말과 용대동에도 가는 곳마다 독특한 땅이름을 지니고 있다. 땅이름에는 마을의 자연,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마을 사람들의 생활과 삶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강당말과 용대동 마을 사람들이 전해 준 마을 곳곳의 땅이름에는 두 마을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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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내송리에 있는 농공 단지. 금왕농공단지에는 환경 파괴 위험이 있는 공해 배출 산업의 경우 환경부의 승인 없이는 입주할 수 없으며 그밖의 화학, 제약 등 모든 업종이 입주 대상이 된다. 금왕농공단지에 입주한 업체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금융과 기술 지원을 해 주고 세금을 감면해 주는 등 다른 공단보다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1983년 말에 제정되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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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4리에 있는 군립 도서관. 금왕도서관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지역의 문화 발전 및 지역민의 평생교육을 위한 정보문화센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93년 10월 4일에 착공을 하였으며, 1994년 6월 12일 금왕도서관을 준공하였다. 1994년 8월 22일 금왕도서관 설치 승인을 받고, 1994년 9월 9일 금왕도서관으로 개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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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보현암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조 불상. 보현암 석조약사여래좌상은 한 덩어리의 화강암을 다듬어 주형거신광(周形去身光) 형태로 만들어졌고, 좌불상과 광배를 정교하게 부조하였으며, 뒷면은 둥글게 처리하였으나 정교하지는 않다. 불상의 현존 상태는 오른쪽 하단의 광배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머리에는 낮은 육계가 남아 있고 두건을 쓴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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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의 성당. 1957년 9월 6일 청주교구 감곡성당에서 독립하여 금왕성당의 문을 열었으며, 1958년에 본당 대지를 매입하여 구성당과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1960년 11월 15일에 수녀원을 신축하였으며, 예수 성심 시녀회 분원을 설치하였다. 1980년 5월 5일 성당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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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 있는 우편, 전신, 금융 등의 업무를 맡아 보는 공공기관. 우체국은 국장의 지위에 따라서 4급(서기관국), 5급(사무관국), 6급(주사국), 7급(주사보국)으로 분류되거나 기능에 따라서 체신청, 우편집중국, 집배국, 무집배국으로도 분류된다. 또한 설립 주체에 따라 일반우체국, 별정우체국, 우편취급소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4급과 5급우체국은 총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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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속하는 행정구역. 금목면과 법왕면에서 ‘금’ 자와 ‘왕’ 자 각 한 글자씩을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과 법왕면(法旺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충주군 맹동면의 개현리(介峴里) 일부와 소탄면(所呑面) 한삼리(汗三里), 천기면(川岐面) 금정리(金井里), 두의면(豆衣面)의 각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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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정생리에 있는 체육 단체. 지역 체육회의 발족으로 지역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면민 화합을 도모함과 더불어 우수 선수 발굴 및 지도·육성을 통해 금왕읍의 체육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창립되었다. 1985년 5월 1일 초대 이인종 회장을 중심으로 금왕읍 체육회가 발족되었다. 그후 회장에는 제2대 신동해, 제3대 조성민, 제4대 이강원, 제5대 박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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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 있는 음성군의 하부 행정 기관. 금왕읍의 관할 면적은 71.4㎢이고 2020년 8월 31일 현재 총 인구는 9,977세대 22,390명, 남자는 10,820명, 여자는 9,460명, 외국인은 2,110명이다. 동년 10월 현재 관할 행정 구역은 법정리 22개와 행정리 55개, 136개의 자연 마을, 264개 반으로 되어 있다. 충주군 금목동면과 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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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 있는 재래 시장. 무극장은 옛 충주목 금목면 소재지인 무극 지역에서 열렸던 장시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는 동쪽으로 충주 지역, 서쪽으로 음성군 맹동면, 남쪽으로 음성군 음성읍, 북쪽으로 음성군 생극면과 장호원 지역 등 서울로 통하는 도로 교통의 주요 지점에 있어 무극장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였다. 무극장은 1770년(영조 46)에 편찬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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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용계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1955년 6월 14일에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용계1리 임남순 집사 집에서 첫 예배를 통해 금왕장로교회가 시작되었으며, 1955년 8월 24일에 충북노회에서 교회 설립을 허락하였다. 1956년 1월에 전도사가 부임하였고, 1960년에는 금왕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61년 1월 5일에 김의화 목사가 부임하였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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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와 내송리에 있는 지방 산업 단지. 금왕지방산업단지 개발 방식은 공영 개발 방식으로 분양되고 있다. 입주 신청 자격은 산업집적활성화및공장설립에관한법률 제2조 제11호 및 동법 시행령 제6조의 규정에 의한 입주 자격을 구비한 자이거나 기업체가 우대되고 있다. 입주 업체 유치 제한 업종으로는 특정 유해 물질 배출 업종 및 공해 물질 과다 배출 업종으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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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승려. 아버지는 선전관을 역임한 윤홍식(尹洪植)이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워 1914년 18세에 상경하여 승지 민병승(閔丙承) 사택에서 운수업에 종사하였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상선에 선원으로 종사하며 전전하다가 뜻한 바 있어 1932년 36세에 경상북도 동래에 와서 금정사(金井寺)를 창건하고 주지가 되었다. 이때에 당대의 선지식이었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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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화폐의 수요와 공급 관계. 금융은 경제상 자금의 수요·공급 관계, 즉 가치 이전의 수단으로서 통화(通貨)의 순환에서 발생되는 자금의 유통을 말한다. 즉 가계, 기업, 정부 등의 경제 주체가 자금 모집을 통하여 자금을 배합하고 사용하여 생산하는 자금 유통 모두를 일컬어 금융이라고 한다. 그리고 경제 주체 사이에 금융이 이루어지는 채권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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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금융 거래의 중개를 주요 업무로 하는 기관. 예금 등에 의해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기업 또는 개인에게 대부하거나 증권 투자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을 총칭해서 금융 기관이라 한다. 한국의 금융 기관은 취급하는 금융 서비스의 성격에 따라 은행, 비은행 예금 취급 기관, 증권회사, 보험회사 및 기타 금융 기관으로 대별된다. 여기서 은행은 다시 일반은행(시중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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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금고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예전에 마을 앞 논에서 금이 발견된 이후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금을 찾으려고 우물을 파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금정, 즉 금우물이라 하였다. 그 후 금정이 변해서 금정골, 김장골이라 불리게 되었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 사이포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정리, 충원리, 삼고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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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거리마을 에서 음력 정월 2일에 지내는 바위배기 동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러 찾아간 마을회관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던 할머니들을 만났다. 동제가 시작되기 전까지 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할머니들께서 살아오신 삶의 지혜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 여쭈어 보았다. 특히, 아기를 낳아서 키운 우리네 어머니들이기 때문에 예전의 산속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먼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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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쌍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이지걸의 묘비. 이지걸의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수천(秀天), 호는 금호(琴湖)이다. 부친은 선교랑(宣敎郞) 이연(李堜)이다. 1654년(효종 5) 식년시에 생원 3등 49위로 입격하였다. 1684년(숙종 10)에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되고 그 후 경상도 영덕현감(盈德縣監)으로 부임했다가 남형(濫刑)의 죄로 곤양(昆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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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수부(秀夫), 호는 금호(琴湖)·만은당(晩隱堂). 병조참의 이상급(李尙伋)의 손자이고, 증좌승지 이련(李堜)의 아들이다. 부인은 안동권씨로 진사 권순열(權順悅)의 딸이다. 아들은 이세근(李世瑾), 이세진(李世璡)이다. 이지걸은 3세에 고아가 되어 작은아버지 이인(李寅)에 의탁하여 자랐다. 1654년(효종 5) 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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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미곡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텃골(미곡리)은 미곡2리의 남부 지역에 위치한 자연 마을이다. 마을의 동북쪽으로는 갯골이 자리잡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진천군 이월면 미잠리가 있다. 기곡(基谷)이라고도 불린다. 본래 충주군 대조곡면 미곡리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정곡리 일부와 사다산면의 우두리 일부와 함께 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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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육령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기령리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육령리 중앙 지역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새터와 예순터, 서쪽으로 말부리고개, 남쪽으로 금석저수지, 북쪽으로 생극면과 각각 접하고 있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 금목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으로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능동, 육십리, 기령리, 묵방리를 병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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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육령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기령리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육령리 중앙 지역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새터와 예순터, 서쪽으로 말부리고개, 남쪽으로 금석저수지, 북쪽으로 생극면과 각각 접하고 있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 금목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으로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능동, 육십리, 기령리, 묵방리를 병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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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육령리에 있는 고개. 기령이고개는 기령이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 말을 몰고 가다가 기령이고개에서 굴러 떨어진 사람이 있기 때문에 말구리고개라고 불렸다. 일명 말부리고개라고도 한다. 금왕읍 육령리의 기령이에서 무극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고개의 서쪽에는 먹방이골이라는 골짜기가 있고 골짜기 아래에는 금석저수지(일명 육령저수지)를 비롯하여 인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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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통동리에 있는 산. 통동리 저수지(일명 맹동저수지)의 댐 남쪽에 있는 창리는 옛날에 군량창고가 있던 큰 마을이었다. 창말 동남쪽에는 도척골이라는 골짜기가 있고 서쪽의 제피골 골짜기 옆에는 도둑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도척골 위에 있는 기름찬날산은 도적들이 숨어 있을만한 골짜기에 있는 험한 산이라는 의미에서 붙어진 이름으로 볼 수 있다. 통동리 창말에 있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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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음성. 자는 기옥(其玉), 호는 인암(仁庵). 음성박씨 시조 박서의 22세손이고, 충민공(忠愍公) 박순(朴淳)의 18세손이다. 할아버지는 박시중(朴時中), 아버지는 장릉참봉 박대현(朴大鉉)이다. 부인은 전주이씨로 이인창(李寅昶)의 딸이다. 아들로 박충근(朴忠根)과 박형근(朴瀅根)이 있다. 1887년(고종 24) 출생하였다. 효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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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사정리 강당말 마을회관에 들러 마을 어르신들께 예전 마을에서 지내던 풍속에 대해 여쭤 보았다. 할머니들 사이에서 「춘향아씨 놀이」 이야기를 하던 도중 김영수 할머니(35년생, 73세)가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옛날 강당말에 비가 안 오고 가뭄이 들었을 때 부녀자들이 기우제 지내던 이야기였다. 당시에는 비가 오고 안 오고에 따라 농사짓는 게 달라졌기 때문에 기우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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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 이진말과 감곡면 왕장3리에서 음력 7월에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행사. 여름에 비가 오지 않아 농작물에 피해가 우려되면 마을의 큰 보에서 기우 풍속을 행한다. 마을의 성인남녀가 모두 참석하는데 여자들이 솥뚜껑(소두방)을 쓰고 기우(祈雨)를 한다. 머리에 솥뚜껑을 쓰는 이유는 비가 내리고 있다고 가정하여 비를 맞지 않으려고 머리에 쓰는 것으로 비가 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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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덕휘(德輝), 호는 기원(綺園). 산청현감 유언수(兪彦繡)의 아들이다. 사마시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아가 감역, 영춘현감을 역임하고,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에 이르렀다. 아버지의 필법을 이어받아 필재(筆才)로 명성을 얻어 “동방 전예(篆隸)의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해동호보(海東號譜)』에 “유기원은 전예를 잘해서 그 명성이 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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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 초명은 기주(箕疇). 자는 여구(汝九), 호는 직재(直齋). 귀천군(龜川君) 이수(李晬)의 증손이고, 부사과 이숙(李塾)의 아들이다. 이기홍은 어려서부터 지혜가 뛰어나 수년 만에 사서삼경을 모두 읽었고, 약관의 나이에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뜻을 두어 이지렴(李之濂)에게 수학했다. 1665년 송준길(宋浚吉)에게 학문의 요결을 배우고, 송시열(宋時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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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기지(耆之), 호는 나재(懶齋) 또는 청허자(淸虛子). 아버지는 부사를 지냈던 채신보(蔡申葆)이며 할아버지는 사예(司藝) 채윤(蔡倫)이다. 채수는 1468년(세조 14)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1469년에 추장문과(秋場文科)에 장원하여 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에 제수되었고,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어 『세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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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8일 조사팀이 마을 이야기를 조사하기 위하여 사정1리 강당말을 찾았다. 사정1리에는 마을회관이 하나 있는데, 주로 강당말 어르신들이 이용한다. 마을회관에 들어서면 왼쪽은 할아버지 방, 오른쪽은 할머니 방으로 나누어져 있다. 할아버지 방에는 할아버지들이 몇 분 나와 있지 않고 할머니 방에는 몇몇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사이에 앉아 “할머니 옛날 얘기 좀 해 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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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지역에서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대기 현상의 종합적 평균 상태. 음성군의 연평균 기온은 11.9℃로써 우리나라 중부 지방의 연평균 기온인 10℃ 내외와 비슷한 기온 분포를 나타내고 있으며, 기온 교차는 50.9℃이다. 최한월인 1월의 평균 기온은 -4.2℃로, 이때는 시베리아의 건조하고 냉량한 대륙성 고기압의 세력권 안에 있기 때문에 연중 추위가 가장 심하다. 2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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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촌리의 가장 중심이면서 커다란 규모를 자랑하는 늘거리에서는 매년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바위배기 동제’를 지낸다. 보통 오전 10시쯤 금줄을 친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회관을 찾아가니 마을 어르신들이 아침부터 동제 지내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금줄을 만드는 일이었다. 금줄은 새끼를 꼬아 만드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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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에 음성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고령. 자는 길보(吉甫), 호는 설초(雪樵). 아버지는 승지(承旨)를 지냈던 박준우(朴浚遇)이다. 35세인 1864년(고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교하현감과 횡성군수를 지냈다. 이때 여러 치적이 있어서 군민들에게 만인산(萬人傘)을 받았다. 79세 되던 해인 1908년(순종 2) 3월 12일 음성군수로 부임하였다가 8월 29일 그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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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의 묘지석. 권근은 1409년(태종 9) 2월에 서거했으며, 같은 해 4월에 경기도 양주군 오포면(현재의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으로 예장(禮葬)하였는데 이때 묘지석이 만들어졌다. 이후 1444년(세종 26) 3월 충주로 이장을 하였는데 이 묘지석은 가져가지 못하고 광 속에 보관하다가 1965년에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권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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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의 묘비. 권근(權近)은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1398년(태조 7) 1차 왕자의 난 이후 사병(私兵) 폐지를 주장하여 왕권 확립에 큰 공을 세웠다.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으로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지고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에 올랐다. 사후 좌의정에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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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광산. 자는 중옥(仲玉). 증조부는 군자감주부 김덕항(金德恒), 아버지는 선교랑 김기제(金起悌)이다. 부인은 천안전씨로 전이종(全爾宗)의 딸과 전주이씨로 별검 이성장(李星長)의 딸이다. 김각은 1672년(현종 13)에 무과에 급제하여 삼화도호부사(三和都護府使)를 지내고, 1695년(숙종 21)에 정평도호부사(定平都護府使)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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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김경호는 1910년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생극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4년 생극수리조합 근무를 시작으로 1946년 생극면에서 근무하였다. 1960년 지방자치단체 읍·면장 선거에서 생극면장으로 당선되어 1961년까지 재직하였다. 1966년 생극면장으로 재임명되어 행정업무를 추진하다가 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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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광산. 호는 희근(希芹). 증조부는 주부 김덕항(金德恒), 아버지는 통덕랑 김기효(金起孝)이다. 어머니는 초계정씨로 음성현감 정경례(鄭景禮)의 증손녀이며, 부인은 전의이씨로 진사 이수전(李壽全)의 딸이다. 12세에 사서에 통달하여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통덕랑에 제수되었으나 평생 독서만 하였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묘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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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경삼(慶三). 오은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고종 때에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낸 김환유(金煥維)이다. 타고난 품성이 효성스럽고 우애 있으며 가훈을 준수하였다. 아우 김기화(金基華)가 수십 리 거리를 다니며 공부하는데, 비를 막아주고 눈을 쓸어주고 따라다니며 보살필 만큼 우애가 깊었다. 1908년(순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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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덕경(德卿), 호는 우춘(又春)이다. 참판 김낙회(金樂會)의 손자이며, 참판 김태희(金泰熙)의 아들이다. 사천현감을 역임하던 중 1910년에 한일합방이 되었다. 김기명은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흘간 통곡하였고 열흘이 지나도록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깊은 골짜기에서 태어나 충(忠)을 본받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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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정치가이자 행정 관료. 1936년 동흥중학교(東興中學校)와 1938년 만주 길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직에 몸담아 1939년 신선국민우급학교(神仙國民優級學校) 교장을 역임한 후 194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상국민회의 대의원을 역임하였다. 1948년에는 대동청년단 소속으로 충주에서 제헌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54년 제3대 총선에서 자유당으로 국회의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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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돈영부도정(敦寧府都正) 김환유(金煥維)의 아들이다. 김기화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느 날 글방에서 잠을 자는데 갑자기 놀랍고 마음이 이상하여 집으로 돌아오던 중 호랑이가 나타나 이상한 물건을 놓고 사라졌다. 호랑이가 놓고 간 물건을 가지고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위독하여 가지고 온 물건을 달여 입에 흘려 넣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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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김기화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기화는 자가 국현(國賢)이고, 호는 춘파(春波)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김환유(金煥維)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어느 날 김기화가 글방에서 잠을 자는데 갑자기 마음이 이상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이상한 물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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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유삼(有三). 김동철(金東徹)의 아들이다. 1891년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각회리에서 출생하였으며 후손이 각회리에 거주하고 있다. 금왕면장 재임 시 선정(善政)을 베푼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퇴임 후 지역 주민이 김낙성의 공적(功績)을 기리기 위하여 지금의 금왕읍사무소 서편에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 건립 취지서의 서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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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에 살았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김상열의 차남으로 백부(伯父)인 김상우(金商禹)에게 입양되었다. 김달제는 백부인 양부모와 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는 동시에, 형이 일찍 죽고 고독하게 사는 형수 또한 어머니같이 극진히 대하였다. 그러던 중 형수가 우연히 병이나자 천지신명께 기도하니 형이 꿈속에 나타나 고생함을 위로하고 약을 알려주었다. 알려준 약제로 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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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김덕제는 1940년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27년간 지방 행정에 몸담으며 지역 발전에 헌신한 행정가이다. 음성중학교·음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6년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근무를 시작으로 1967년 소이면 근무, 1969년 음성군청 문화공보실 근무, 내무과 통계계장에 이어 교육훈련·개발·위생·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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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광산김씨 입향조.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구(士久). 아버지는 군수(郡守) 김봉서(金鳳瑞)이다. 음보(蔭補)로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를 지냈다. 한성에 살다가 1593년(선조 26)에 임진왜란을 피하여 처가가 있는 지금의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초천리에 와서 머물렀다. 1599년(선조 32)에 한성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전쟁으로 집이 불타 없어졌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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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중기 광산김씨 음성 입향조 김덕항(金德恒)의 묘비. 김덕항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군수(郡守) 김봉서(金鳳瑞)의 아들이다. 자는 사구(士久)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음보(蔭補)로 군자감(軍資監) 주부(主簿)를 지냈다.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성에서 음성읍 초평리 처가인 남씨(南氏) 집으로 와서 우거(寓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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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에 살았던 효부(孝婦). 본관은 평강(平康). 전규면(全奎冕)의 딸이며, 김동인(金東仁)의 처이다. 김동인의 처 평강전씨는 어려서부터 몸가짐이 정숙하고 심성이 인자하여 부모님 섬기는 도리를 다하였다. 또 언행이 바르고, 비록 부잣집에서 성장하였으나 사치함을 모르고 검소하였다. 17세에 김동인에게 출가(出嫁)하였는데, 늘 살림이 가난하여 양식 걱정을 면치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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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김동철은 1930년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경주이다. 생극초등학교와 서울농업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59년 생극면 근무를 시작으로 1960년 생극수리조합, 풍원농지조합 사업계장을 역임하였다. 1970년 생극면장으로 임명되었고 1974년 금왕읍장, 감곡면장을 역임하였다. 1976년 생극면장으로 재임명되어 소도읍가꾸기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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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동환은 황해도 봉산에서 출생하여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당시 20세였던 김동환은 3월 20일에 맹동면 주민 수백 명이 만세 삼창을 하며 시위를 하자, 천도교의 독립선언서를 배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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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김동희는 1933년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959년 지방공무원에 임용되어 36년간 지역 발전에 헌신한 행정가이다. 1953년 청주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59년 음성군청 내무과 근무를 시작으로 재무과, 감사실, 건설과를 거쳐 1973년 건설과 관리계장에 이어 개발계장, 기획예산계장, 새마을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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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호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김두하의 선정비(善政碑). 김두하 선정비(金斗河 善政碑)는 무진 사월(戊辰 四月)에 제작되었다. 김두하의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으나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음성현감(陰城縣監)을 역임한 것으로 보이며,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의 존경을 받은 듯하다. 총 높이는 145㎝이며 2단으로 이루어진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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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삼생리에 있는 김명제(金明濟)의 효행비. 김명제 효행비(金明濟 孝行碑)는 1963년에 세워졌으나 김명제에 대한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총 높이 165㎝이고, 3단으로 이루어진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112㎝, 앞면 40㎝, 측면 16㎝이고, 가첨석(加檐石)은 높이 38㎝, 앞면 70㎝, 측면 46㎝이며, 방부(方趺)는 높이 15㎝, 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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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사업가. 김명환(金明煥)[1918~2002]은 김동식(金東植)의 3남으로 출생하여 삼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서 두 형이 경영하는 정미업에 7년간 종사하다가 음성군 삼성면에서 양조업을 하였다. 초지일관으로 성실·근면하면 성공한다는 철학을 갖고 생활을 하면서 지역 개발에 앞장섰다. 1958년 경기도 용인군 외사면 백암리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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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김봉환은 1912년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대풍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진천이월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45년 대소면 근무를 시작으로 공직 활동을 시작하였고, 1966년 대소면장으로 임명되었다. 1968년 생극면장을 역임하였으며, 1973년 대소면장에 재임명되었다. 김봉환은 재직 시 공무 수행에 귀감을 보여 음성군에서 발행한 『우리고장의 인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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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유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노(聖魯), 호는 국사(菊史).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김문수(金文秀)이다. 김사구(金思逑)은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에게서 사사(師事)하였으며, 나이 70세에 노모가 살아 계셔 그 곁을 떠나지 않고 봉양하였다. 상을 당하여서는 산이 높고 험준한데도 팔순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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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음성 지역에서 활동했다고 전하는 서예가. 자는 지단(知端), 별명은 구(玖). 『삼국사기』권 48 열전 김생조에 부모가 두드러지지 않아 가계를 알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원통산 아래에서 오로지 글씨에만 정진하였다는 전설과 함께 “낙엽에 먹물로 글씨를 썼는데 그 낙엽이 계곡으로 모여 계곡물이 검어졌다”는 얘기가 전한다.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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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사곡리에 있는 통일신라 때 김생이 글씨 연습을 했다고 전해지는 불교 암자의 터. 김생암지는 원통산 서쪽 기슭에 있는 폐사지로, 김생암이 있었던 터이다. 김생은 예서(隸書), 행서(行書), 초서(草書)에 능하였으며, 해동(海東)의 서성(書聖)이라 불렸다. 송나라에서도 왕희지(王羲之)를 능가하는 명필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김생암은 일제강점기 때까지 있었던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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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김석룡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과 생극면 일부가 음죽현(陰竹縣)에 속하였을 때 상율면 본율동에 살던 양인(良人)이다. 김석룡은 아버지가 병환에 들자, 아버지의 병에 사람 고기가 효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 허벅지 살을 도려내 삶아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였다. 김석룡의 부인 장씨 또한 시아버지의 병을 13년간이나 지극하게 간호하였다. 음죽현의 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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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부. 김석룡 처 장씨는 충청북도 음성군에 살던 양인(良人) 김석룡의 처로, 젖을 짜서 병든 시아버지를 시중하는 등 13년간이나 효행을 행하였다. 김석룡 또한 아버지 병에 허벅지 살을 도려내 삶아드리는 등 효성이 지극하였다. 유림(儒林)들이 장씨의 효행을 진정하여 장계(狀啓)를 올리니 1720년(숙종 46) 5월에 복호(復戶)를 명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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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김원조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인 경기도 이천에서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왜경의 감시를 피해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 후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군정부 광복군에서 활약하였으며,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서울에 연락 기관을 설치하고 동지들과 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1920년에 경기도 이천에 돌아와 활약하다가 12월 28일 왜경에 체포되어 예심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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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열녀. 본관은 우봉(牛峯). 이호건(李鎬建)의 딸이고, 김석제(金錫濟)의 처이다. 16세에 김석제에게 시집가서 부모와 남편을 극진히 봉양하였는데, 결혼한 지 8개월 만인 17세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마친 후에 부모님들이 청춘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재혼하기를 권유하였으나, 거절하고 남편을 따라 자결하고자 하였다. 시부모님의 만류에 뜻을 이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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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김선은 평소 부모에게 효성이 극진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당시 음성현(陰城縣)의 유림들이 그의 효행을 진정하여 관아에서 이 일을 기록하고 왕에게 보고하였다. 통덕랑(通德郞)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증직(贈職)되었고,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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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열녀. 본관은 성주(星州).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이휘(李揮)의 딸이고, 김선경(金善慶)의 처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으로 있던 남편 김선경은 싸움터로 나가고 자녀들만 데리고 집에 있었다. 충주 전투에서 이긴 왜적이 음성 지방까지 들어오자, 부인은 생극면 차곡리에 있는 수리산(愁離山)으로 피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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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세거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공석(公碩), 호는 십청헌(十淸軒)·지비옹(知非翁). 두문동충신 김자수(金自粹)의 고손이다. 할아버지는 원종공신 김영유(金永濡)이고 아버지는 충주목사 김훈(金薰)이다. 어머니는 진천송씨로 군수 송학(宋翯)의 딸이고, 부인은 고성이씨로 부사 이탁(李鐸)의 딸이다. 아들은 김숙(金䃤), 김구(金瞿), 김저(金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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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청일(淸一), 호는 성와(惺窩). 아버지는 의관(議官)을 지낸 김정훈(金正勳)이다. 김수홍(金壽洪)은 최익현(崔益鉉)에게서 학문을 익혀 문장이 탁월하고 의리가 뚜렷하여 춘추회(春秋會)에서 유생들에게 예(禮)를 강술하였다. 문묘와 태교사(泰喬祠)에 봉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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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여균(汝均), 호(號)는 정암(精菴). 평소 효심이 지극했던 김순은 아버지 상을 당하자 마을 뒷산에 모시고 추운 겨울에도 매일 시묘를 하여 손가락이 얼어서 일곱 개가 떨어져나갔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그를 칠지효(七指孝)라 불렀다. 그가 아버지 묘에서 시묘하는데 밤에는 큰 범이 와서 같이 지냈으며, 낮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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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통동리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김순의 정려문. 김순(金石+舜)은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통동리에서 태어났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고, 아버지가 사망하자 마을 뒷산에 모시고 추운 겨울에도 시묘를 하였다. 시묘를 하는 중에 손가락에 동상을 입어 7개가 떨어져 나가 마을 사람들이 ‘칠지효(七指孝)’라 불렀다. 밤에는 호랑이가 와서 같이 지냈고, 낮에는 산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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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백오(伯五). 정숙공(貞肅公) 김인경(金仁慶)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사예(司藝) 김예원(金禮源)이다. 김숭종은 일찍이 초시에 급제하여 생원으로 학문에 전념하면서 조광조·김정과 함께 경학을 토론하였다. 1519년(중종 14) 4월에 별시문과에 합격하였고 조광조가 신진사류를 기용할 때 기용되었다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쫓기다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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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구안동(舊安東). 자는 선여(善餘), 호는 만은(晩隱). 아버지는 김두서(金斗瑞)이다. 김시경(金始慶)[1659~?]은 1682년(숙종 8) 진사가 되고, 이듬해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08년(숙종 34) 세자시강원필선(世子侍講院弼善), 1709년(숙종 35) 사헌장령겸지제교(司憲掌令兼知製敎), 1716년(숙종 42) 승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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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서 태어나 음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41년 윤규섭, 유근배, 남상엽, 최규동 등과 흑민단(黑民團)이라는 비밀 결사대를 조직하였다. 흑민단의 주요 활동은 배일사상 고취와 선전, 독립자금 모금, 중국의 독립운동 단체와 연락 등이었다. 그러던 중 1942년 만주에서 유근배가 윤규섭에게 보낸 비밀 편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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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아들은 학문에 힘써 인종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른 김약온(金若溫)이다. 1070년(문종 24) 상서우승(尙書右丞)·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에 이어 서북로병마부사(西北路兵馬副使)가 되었다. 1074년에 태복시경(太僕寺卿)으로 사은사가 되어 송나라에 가서 고려 사신들이 이용하는 등주(登州)를 요(遼)의 이목을 피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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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음성현감을 지낸 문신.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명보(明甫), 호는 오소재(吾巢齋). 아버지는 좌찬성에 증직된 김로(金簵)이며, 어머니는 배천조씨로 조헌(趙憲)의 딸이다. 김여량(金汝亮)[1603~1683]은 1633년(인조 1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으로 사환을 시작하여 봉상시주부겸승문원박사(奉常寺主簿兼承文院博士)·성균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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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열지(烈之), 호는 맹암(孟巖). 아버지는 상서(尙書) 김굉(金紘)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음성의 인물로 등재되어 있다. 김영렬(金英烈)[?~1404]은 1394년(태조 3)에 전서(典書)로 있던 중 그해 경기우도수군첨절제사가 되었다. 그 때 연해를 노략질하는 왜구를 물리치는 계책을 올려, 13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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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초천리 148번지에서 김수홍(金壽洪)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월 27일 충청북도 음성읍 초천리에 있는 백양서당(栢陽書堂)에 다니던 정문영, 정대영, 최만득 등과 음성 장날에 맞춰 시위를 벌였고, 3월 28일에도 음성시장에서 시위를 하였다. 4월 6일 밤 산 위에서 약 5백여 명의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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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시은(市隱). 조부는 김태희(金泰熙), 아버지는 김기명(金基明)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음성의 인물로 등재되어 있다. 기개와 절의가 있었으며 사람을 사귀고 담론을 좋아하니 선비들이 다투어 서로 따랐으므로 큰 뜻을 세워 난정수계(蘭亭修稧)을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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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의성(義城). 호는 설암(雪巖). 김득수(金得洙)의 아들이다. 김예숙은 어느 날 김승선(金承宣)의 집에서 공부를 하던 중 갑자기 마음이 놀랍고 온몸에 땀이 나서 주위 사람들의 만류함을 무릅쓰고 급히 집에 돌아와보니, 어머니의 병환이 위독하여 온 집안이 겁에 질려 있었다. 그가 곧 손가락을 잘라 주혈(柱血)하자, 어머니는 회생하여 2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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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입지(立之). 할아버지는 소윤 김백은(金伯隱)이고, 아버지는 사직 김우전(金雨田)이다. 부인은 윤씨이며, 아들은 김숭종(金崇宗)이다. 1466년(세조 12) 급제하였고, 승문원주서(承文院注書)가 되어 『세조실록(世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469년(예종 1) 예문관검열, 1471년(성종 2) 승정원주서·춘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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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정치가. 1931년 김종혁(金鍾赫)의 아들로 태어났다. 1956년 서울대학교 약학과를 졸업하고, 충북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후, 1958년 향토 문화 창달에 뜻을 두고 음성문화원을 설립하여, 초대문화원장을 지냈고, 1967년 후세 교육을 위하여 한일중학교를 설립하여 1972~1980년까지 교장을 역임하였다. 충북약사회장을 역임하며 1967년 대한약사회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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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열녀. 김용대(金容大)의 처 의성김씨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동음리에서 김상빈(金相彬)의 딸로 태어나 19세에 결혼하여 음성군 생극면에서 살았다. 홀로된 시어머니를 효성으로 모시고 남편을 공경하였다. 23세 때 남편이 병환으로 사망한 뒤에도 늙은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며 5대 독자인 당시 두 살의 아들을 키워냈다. 노환의 시어머니에게 도리를 다하여 간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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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의병장. 1905년 을사륵약이 체결되자 가산을 팔고 의병을 모집하여 1906년 3월경에 이교율(李敎律) 등 2인과 같이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귀흥리에 이르렀다. 이미 해가 졌는데 마침 일본 수비대 10여 명이 귀흥리 어느 집에 투숙한 것을 탐지하였다. 동행한 사람들과 밀의하고 심야에 적 보초병을 돌로 타살하고 무기를 탈취한 후 일본 병사 숙소에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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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김원조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인 경기도 이천에서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왜경의 감시를 피해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 후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군정부 광복군에서 활약하였으며,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서울에 연락 기관을 설치하고 동지들과 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1920년에 경기도 이천에 돌아와 활약하다가 12월 28일 왜경에 체포되어 예심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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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송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김원조(金遠祚)의 묘. 김원조는 경기도 이천 사람으로 1919년 3·1운동 때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이후 임시정부의 연락 기관을 서울에 설치하기 위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1919년 12월 28일 체포되었다. 10년형을 언도받아 복역 중이던 1922년 4월 15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1963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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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 아버지는 김흥우(金興宇)이다. 김육(金堉)은 9세 때 아버지 김흥우의 임지인 강동(江東)으로 따라가서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의 문하에서 배웠다. 그러나 잇달아 상(喪)을 당하여 상제로 7~8년간을 지내며 곤궁하게 떠돌아다니다가 25세 때 장가들고, 1605년(선조 38)에 진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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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을경은 1919년 당시 21세였다. 4월 1일 이중곤 등과 함께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한내 장터에서 만세를 삼창하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또한 군중을 선도하여 소이면사무소로 몰려가서 면장인 민동식도 시위에 가담하게 하였다. 5월 22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아 옥살이를 하였다. 김을경은 67세에 사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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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조선 후기 관찰사 김응근(金應根)[1793~1863]의 선정비. 김응근은 조선시대 철종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字)는 계경(溪卿), 호(號)는 의석(宜石)이다. 참판(參判) 김명순(金明淳)의 아들이며 좌의정 김홍근(金弘根)의 동생, 영의정 김흥근(金興根)의 형이다. 1816년(순조 16)에 사마시 생원 3등 6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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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열녀. 본관은 나주(羅州). 아버지는 정약임(丁若臨)이다. 정씨의 정확한 거주지나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남편에 대한 정절과 시부모에 대한 효행으로 잘 알려져 있다. 16세 때 남편이 병이 들자 손가락을 잘라 지혈(指血)하여 3일을 연명케 하였으나 끝내 죽었다. 이에 남편을 따라 같이 죽으려 하였으나 늙은 시부모 때문에 그리하지 못하고, 정성을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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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여망(汝望), 호는 남곡(南谷). 상촌 김자수(金自粹)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 아버지는 별제 김중경(金重慶)이다.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보성군 이만년(李萬年)의 딸이다. 부인은 창녕성씨로 부제학 성진선(成晋善)의 딸이다. 아들로 김진곤(金振坤)·김약곤(金躍坤)·김우곤(金遇坤)이 있다. 김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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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음성현감 김의의 선정비. 김의(金嶷)는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직후 직언을 하였거나 학행(學行)이 뛰어난 유생을 뽑아 6품직을 제수할 때 뽑힌 인물이다. 이때 음성현감에 부임한 것으로 보인다. 대좌를 갖춘 묘갈형이다. 윗부분은 이수형으로 조각하였는데, 턱을 이루며 비신으로 이어진다. 전체 높이는 155㎝이다. 선정비 앞면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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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행정가. 김인선은 1942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상주(尙州)이다. 1965년 음성군에서 근무를 시작하여 충청북도 청주시, 대전광역시 등에서 활동한 검찰공무원이다. 음성중학교·음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1년 성균관대학교를 수료했다. 1965년 음성군청 근무를 시작으로 1967년 검찰청으로 전직하여 1984년 수사사무관으로 승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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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덕삼(德三), 호는 난계(蘭溪), 자호는 난곡(蘭谷). 음성의 시거조(始居祖) 김덕항(金德恒)의 증손이고, 김기제(金起悌)의 손자이며, 삼화부사 김각(金珏)의 둘째아들이다. 부인은 함양박씨로 조부는 현감 박내창(朴乃昌)이며, 아버지는 박상채(朴尙采)이다. 아들은 김중화(金重華)이다. 김일관(金一觀)[1684~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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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지천서원에 배향된 고려 후기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순중(純仲), 호는 상촌(桑村). 검교태자태사 김인관(金仁琯)의 8세손이다. 조부는 삼사부사 김영백(金英伯), 아버지는 통례문부사 김오(金珸)이다. 부인은 안동권씨로 낭장 권수(權隨)의 딸이다. 아들은 평양소윤 김근(金根)이고, 사위는 중랑장 권후(權厚)이다. 김영유(金永濡)가 손자이며 십청헌 김세필(金世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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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김인관(金仁琯)의 9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삼사부사 김영백(金英伯), 아버지는 김영백의 둘째아들인 양주목사 김대(金玳)이다. 어머니는 하음최씨(河陰崔氏)로 부제학 최급(崔岌)의 딸이다. 상촌 김자수(金自粹)와는 사촌간이다. 1401년(태종 1) 문과 증광시에 급제하였다. 1410년(태종 10)에 사노비를 부당하게 획득하여 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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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금고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예전에 마을 앞 논에서 금이 발견된 이후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금을 찾으려고 우물을 파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금정, 즉 금우물이라 하였다. 그 후 금정이 변해서 금정골, 김장골이라 불리게 되었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 사이포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정리, 충원리, 삼고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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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의 15세손이다. 1920년 32세 때 맹동면장이 되어 주민들의 복리 증진에 힘썼다. 퇴임한 뒤 1940년부터 맹동초등학교 설립추진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임야와 전답을 학교 부지로 기증하였다. 또한 면소재지에 시장을 개설하였다. 가난한 학생을 위하여 해마다 2명씩 장학금을 지급하였으며, 육영 사업에도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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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김재소는 1930년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동음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1946년 충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55년 음성군 산업과 근무를 시작으로 1967년 경리계장, 1969년 관리계장, 1970년 개발계장과 상공계장, 1972년 보건행정계장을 역임하였다. 1975년에는 원남면 부면장으로 활동하다가 11월에 음성군 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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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조선 말기 문신 김재은(金在殷)의 선정비. 김재은은 고종 때의 관리이다. 1904년(광무 8)에 중추원의관(정3품)을 거쳐 1905년 정2품 가선대부(正二品嘉善大夫)로 충주군수 서주임관1등(敍奏任官一等)에 임명되었다. 내부대신육군부장훈1등(內部大臣陸軍副將勳一等) 이지용(李祉鎔)이 발급한 충주군수로 임명받았을 때의 교지(敎旨)가 국립중앙도서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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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학광(學光). 아버지는 이조참판 김세필(金世弼)이다. 김저(金儲)[1512~1547]는 1539년(중종 34)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을 거쳐 지평(持平)에 이르렀다. 1545년(인종 1) 을사사화로 심한 고문을 받고 삼수(三水)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사사(賜死)되었다. 선조 초에 관작(官爵)이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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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이며 지천서원 배향 인물.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길(重吉), 호는 추곡(秋谷), 자호는 송림(松林).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의 고손이다. 할아버지는 원종공신 김선경(金善慶)이며 아버지는 생원 김순(金峋)이다. 어머니는 청주한씨로 한광윤(韓匡胤)의 딸이며, 부인은 나주정씨로 정언규(丁彦珪)의 딸이다. 아들은 김방(金滂), 김만(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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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字)는 성진(聲振), 호(號)는 우헌(愚軒). 김낙영(金樂英)의 아들이다. 김정훈의 어머니인 계모 박씨(朴氏)는 성격이 엄하였으며 힘을 기울여 그를 공직(供職)하게 하였다. 그 결과 김정훈은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을 지냈다. 추운 겨울 어머니가 병이 나자 그는 눈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얻기 어려운 약초를 구하여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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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의성(義城). 손자는 김문상(金文商)이다. 김종립(金宗立)[?~1636]은 16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하여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에서 주부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진천현 초관(哨官)으로서 충청감사 정세규를 따라 광주(廣州) 험천(險川)에서 적과 싸우다가 대패하였다.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정세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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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군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김종립의 정려각. 김종립(金宗立)은 진천 사람으로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충청감사 정세규(鄭世䂓)가 군사를 일으키자 진천현의 초관으로 적과 싸우다 험천에서 전사하였다. 그때 진천현감 이충운(李翀雲)은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처음 뜻은 그대와 내가 같았으나, 손에 붓대를 잡고 허리에 활을 차는 데서는 재주가 달랐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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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1923년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내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김녕(金寧)이다. 1955년 지방공무원에 임용되어 1979년 6월 대소면장으로 퇴임하기까지 모든 일에 솔선수범했던 행정가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55년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에서 행정 근무를 시작하였다. 1965년 대소면 재무계장, 총무계장을 역임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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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김지순의 선정비. 김지순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수(士秀), 호는 삼수당이며, 서울 태생이다. 1824년 충원현감(忠原縣監)으로 부임했다가 1826년 공청도(公淸道)가 충청도로 되고, 충주목이 복구되면서 충주목사가 되었다. 비(碑)의 총 높이는 124㎝이며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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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열녀. 본관은 전의(全義). 이군순(李郡淳)의 딸이다. 남편이 일찍 죽자 70세가 넘은 시어머니와 8개월 된 어린 자녀를 정성으로 보살폈다. 낮에는 김을 매고 밤에는 길쌈을 하면서 일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자식을 길러서 가문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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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 김진강(金震綱)[1523~1581]은 초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고, 1563년(명종 18)에 음성현감을 지내고, 사헌부감찰을 역임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에 세거(世居)하여 안동김씨가 음성군에 옮겨 와서 살게 된 중시조(中始祖)가 되었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 상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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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육영 사업가. 본관은 의성(義城). 훈신 김영렬(金英烈)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중삼(金重三)이다. 김창도(金昌道)는 성품이 인후하고 가족 간의 화목이 돈독하였다. 전답을 마련하여 학당(學堂)을 세워 육영 사업에 힘썼으며, 문사가 여기에서 많이 배출되어 사우 간에 추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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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주봉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김창식의 효자문. 김창식은 어린 나이에 모친이 병이 나자 명약을 구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였으며, 5년 후 모친의 병세가 악화되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먹여 소생시켰다. 10살 때 모친이 죽자 매일 닭이 우는 시간에 5리나 떨어져 있는 묘소로 가 참배하였다. 무릎과 손으로 짚었던 자리는 떼가 죽었을 정도라고 한다. 성묘길 옆의 벗나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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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주봉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김창식의 효자문. 김창식은 어린 나이에 모친이 병이 나자 명약을 구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였으며, 5년 후 모친의 병세가 악화되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먹여 소생시켰다. 10살 때 모친이 죽자 매일 닭이 우는 시간에 5리나 떨어져 있는 묘소로 가 참배하였다. 무릎과 손으로 짚었던 자리는 떼가 죽었을 정도라고 한다. 성묘길 옆의 벗나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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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의성(義城). 참봉(參奉) 김예숙(金禮淑)의 차남이다. 김태섭은 평소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아버지가 병환이 나서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주혈(注血)하여 3일간을 더 살게 하였다. 돌아가신 후에 장례를 극진히 모시고 시묘(侍墓)를 할 때 밤마다 범이 와서 호위하고 다른 짐승이 오면 소리내어 꾸짖어, 비록 어두운 밤중이라도 범의 안광(眼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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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출신의 조선 말기 문신. 김태희의 본관은 경주로, 김재(金在)의 5세손이고, 김성우(金聖雨) 아들이다. 김태희의 초명은 수인(秀仁)이고, 자는 성칠(性七)로, 법부주사(法部主事)를 지냈다. 『음성읍지』에 이름이 올라 있다. 음성군 생극면 도신리 신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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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성우(聖友), 호는 야춘(惹春). 참판 김낙회(金樂會)의 아들이다. 김태희가 완도군수로 있을 때 문덕(文德)으로 백성을 이끌어서 군민들이 강무정(降務亭)을 세워 자취를 기록하였다. 벼슬은 참판에 이르렀으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1894년 갑오변란 이후 임천(林泉)에 은거하며 지내다가, 1908년(순종 2)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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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 자는 성원(聖遠). 십청헌 김세필(金世弼)의 13세손이다. 1882년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서 김석용(金奭容)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김필제는 한일합병이 되자 서울로 상경하여 의거 활동을 하다가 왜경에게 쫓기게 되었다. 이때 왜경이 난사한 총탄에 오른팔을 맞았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서재필 박사의 도움으로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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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경성부 수하정보통학교의 소사로 있던 당시 26세 서대순(徐大順)의 협조를 얻어 배운성과 함께 1919년 4월부터 10월까지 은밀히 독립운동 목적을 기재한 문서를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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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충청북도 음성군 지천서원에 배향된 인물.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숙(文叔), 호는 학주(鶴洲). 김자수(金自粹)의 8세손이고, 아버지는 김적(金積)이다. 김홍욱(金弘郁)[1602~1654]은 1635년(인조 13)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를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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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공범(公範), 호는 각회옹(覺悔翁). 고조부는 김자수(金自粹), 아버지는 참봉 김평(金萍)인데 중부(仲父) 경상우수사 김훤(金萱)에게 입계하다. 부인은 풍양조씨로 조승종(趙承宗)의 딸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기발한 재질과 영매한 기상이 있었으며 학문에 뜻을 두어 세상 사람들이 경모하였다. 스무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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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출신의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구안동(舊安東). 자는 용여(用汝). 오은(梧隱)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으로, 김사렴은 정몽주, 이색과 더불어 직간(直諫)으로 이름이 있어 당대의 세력가 신돈을 위험인물이라 하였다고 한다. 고려가 망하자 청주 도산(陶山)에 은거·두문불출하였다. 아버지는 김의택(金義宅)이다. 김환유(金煥維)는 고종 때 수직으로 돈령도정(敦寧都正)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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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말마을의 지명에는 깃대배기, 서낭댕이, 구주막거리, 도둑골, 이진봉 등이 있다. 이러한 지명에는 이진말 사람들의 생활과 삶의 모습, 자연과 지리,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명은 시대가 흐르고 마을 환경과 삶의 방식이 변화함에 따라 오래도록 불리던 지명이 잊혀지기도 하고, 다른 이름으로 바뀌기도 하는데 이진말의 지명은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고 마을 사람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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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지역에 서식하는 까마귀과의 새. 소규모 무리생활을 하며 몸 길이는 45㎝, 날개 길이는 19~22㎝로 까마귀보다 조금 작은데, 꽁지는 까마귀보다 더 길어 대략 26㎝에 이른다. 머리·가슴·윗면은 금속성 광택이 나는 검정색이고 어깨와 배·허리는 흰색으로 암·수가 같은 빛깔이다. 음성군을 상징하는 새로 반가운 소식을 전하여 주는 아름다운 길조이며,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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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와 신천리 사이에 있는 구릉지. 음성읍 평곡리와 신천리가 접하는 곳에 있는 구릉지로 음성천을 따라 남쪽으로 약 1㎞ 지점의 평야에 있는 둥그런 구릉지이다. 음성팔경 중 하나로 “까치섬 들판에 농부의 노래소리[鵲島農謳]”가 있으며, 이 외에 음성천 유역의 평곡리의 “용바위 냇가에 빨래하는 아낙네 모습(龍岩漂母)”과 음성읍 평곡리의 “토계울 냇가의 고기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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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안 을 빠져나와 5m쯤 가면 바로 정산말로 들어가는 푯말이 보인다. 정산말 마을회관을 찾아가 “정산말에는 들이나, 골이 어떤 것이 있나요?”하고 여쭤보니, 안옥님 할머니(84세)가 가장 먼저 ‘작배기들’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작배기들에 옛날에 군(郡)이 있었데. 그래서 작배기들을 파면 기왓장이 많이 나온데.” “작배기들에서 나오는 기왓장이 만들어진 년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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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행해지던 여자아이들이 벌이는 일종의 무당 놀이. 춘향각시놀이는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등지에 널리 전해지고 있으며, 충청북도 음성군 지역에서는 금왕읍에서 보고된 자료가 있다. 놀이방법은 지역마다 거의 비슷한데 노래의 사설이나 주문 내용은 지역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다. 춘향각시놀이는 춘향이 놀이, 꼬대각시(꼭두각시) 놀이, 당골 놀이 등으로도 불린다. 당골 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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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행해지던 여자아이들이 벌이는 일종의 무당 놀이. 춘향각시놀이는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등지에 널리 전해지고 있으며, 충청북도 음성군 지역에서는 금왕읍에서 보고된 자료가 있다. 놀이방법은 지역마다 거의 비슷한데 노래의 사설이나 주문 내용은 지역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다. 춘향각시놀이는 춘향이 놀이, 꼬대각시(꼭두각시) 놀이, 당골 놀이 등으로도 불린다. 당골 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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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오갑마을 은 마을회관 왼편으로 작은 개울이 흐르며 개울 양 옆으로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왼쪽 마을을 살펴보면 작은 복숭아밭 뒤편으로 옥산사가 닿을 듯이 보인다. 하지만 옥산사는 복숭아밭을 옆에 끼고 골목길을 따라 5분 정도 들어가야 있다. 옥산사는 입구에 홍살문이 있고 문을 지나면 작은 연못이 있다. 연못 왼쪽에는 문화재 알림판이 있고 왼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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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인곡리에 있는 우편·체신·금융을 담당하는 기관.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인곡리에 있는 요양 시설인 꽃동네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우편 및 금융 업무를 제공하여 생활 편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일반국(7급국) 우체국으로 세워졌다. 우편 업무로는 일반 및 등기 우편, 경조 카드, 전자우편, 국제우편물 접수와 배달, 우체국 쇼핑과 우체국 택배, 요금 별납과 후납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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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통동리에 있는 사립 특수학교. 믿음과 고마움의 실천을 통하여 바른 심성을 지닌 학생, 더불어 함께 하는 생활을 통하여 협동 정신을 지닌 학생, 소질 계발을 위한 노력을 통하여 탐구 정신을 지닌 학생, 현실 극복 의지 강화를 통하여 개척 정신을 지닌 학생을 길러 자신을 사랑하고 슬기롭게 자라는 인간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여 섬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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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덕정리에 있는 전통 사찰. 화암사는 1938년에 김승원(金承元)이 옛 절터에 절을 세우고 청진암(淸眞庵)이라 부른 데서 연유하고 있다. 조선총독부에서 1942년에 간행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덕정리 북방 이백문의 계곡에 있다. 초석과 와편이 존재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996년에 충주산업대학교 박물관이 조사하여 간행한 『음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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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원 스님은 백일기도를 닷새째 하고 있었는데 몸이 너무 아파 옆방에 누워 울다 지쳐 깜빡 잠이 들었다고 한다. 깜빡 잠든 사이에 어떤 스님이 책을 건네주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어떤 허름한 누더기를 입은 남자 스님이 요만한 공중에서 책을 한 권 주는 거야. 책을 한 권 주는데, 내가 이렇게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받는 거야. 금방 비몽사몽 간이더라고, 내가 울다가 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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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1리 용대동은 13가구 중 11가구가 경주이씨로, 경주이씨 집성촌이다. 경주이씨의 내력을 알아보기 위해 4월 2일 이상혁 반장(56년생, 52세)을 찾아뵈었다. 이상혁 반장은 우선 경주이씨의 계보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경주 익재공 할아버지, 제현공. 제현 할아버지가 아들을 낳고 손자를 낳다 보니깐, 우리가 사미정공 할아버지의 후손인데 사미정공 할아버지가 8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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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수태3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옛날에 이 마을에 부자가 살았는데 추수를 하면 억 말을 거두었다고 하여 구억말이라 불린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소탄면(所呑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태리, 하태리, 수인리와 진천군 소답면 신통리 일부를 병합하여 수인리의 ‘수’자와 상태리의 ‘태’자를 따서 수태리라 명명하고 대소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