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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0762
한자 金容穆-金溶穆
영어음역 Gim Yongmok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종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장
출신지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성별
몰년 1907년연표보기

[정의]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의병장.

[활동사항]

1905년 을사륵약이 체결되자 가산을 팔고 의병을 모집하여 1906년 3월경에 이교율(李敎律) 등 2인과 같이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귀흥리에 이르렀다. 이미 해가 졌는데 마침 일본 수비대 10여 명이 귀흥리 어느 집에 투숙한 것을 탐지하였다.

동행한 사람들과 밀의하고 심야에 적 보초병을 돌로 타살하고 무기를 탈취한 후 일본 병사 숙소에 잠입하여 일행 세 사람을 타살한 다음 무기를 거두었다. 그 무기를 가지고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으로 들어가 백여 명을 모아 기의(起義)하고 화맹통으로 무장하였다. 그러나 양평군에 주둔한 일본 수비대에 밀고되어 일본군 대부대가 용문산을 포위하고 습격하였다. 전군을 지휘하여 한쪽으로는 항전하고 한쪽으로는 후퇴하여 한강 상류를 건너 여주로 집결하였다.

퇴각해 온 일본 병사를 만나 교전하다가 용인군 근사면 백암장으로 후퇴하였으나 또 다시 일본 병사의 추격을 받아 결전한 결과 무기와 훈련 부족으로 의병은 전멸 상태였으나 일본 병사의 사상도 많았다. 이에 남아 있는 의병을 거두어 죽령을 넘어 멀리 경상도 풍기군 무갑산에 들어가 밀림을 근거삼아 다시 의병을 모으니 화맹통의 포군(砲軍) 2백여 명이 집결되었다.

이때 또 적 대부대의 포위를 당하여 이틀 밤 격전 끝에 모두 체포되었다. 악랄한 고문을 당하게 되자 혀를 깨물어 벙어리가 되고 혈맥을 끊어 전신불수가 되었다. 1907년 대구형무소에서 순절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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