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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1467
한자 無極場
영어의미역 Mugeuk Markets
이칭/별칭 금왕장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지명/시설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예경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재래시장
면적 2,893㎡
주소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지도보기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 있는 재래 시장.

[건립경위]

무극장은 옛 충주목 금목면 소재지인 무극 지역에서 열렸던 장시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는 동쪽으로 충주 지역, 서쪽으로 음성군 맹동면, 남쪽으로 음성군 음성읍, 북쪽으로 음성군 생극면과 장호원 지역 등 서울로 통하는 도로 교통의 주요 지점에 있어 무극장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였다.

[변천]

무극장은 1770년(영조 46)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기록되어 있고, 1872년(고종 9)에 제작된 「충주목지도(忠州牧地圖)」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770년대 이후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1870년대 무극장은 현재의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1리 장터거리에서 열렸으나, 1930년대부터 무극장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무극교 부근으로 이전되었다.

1909년에 발간된 『한국충청북도일반』에 의하면 무극장은 주막 10개 소, 노점상과 보부상이 16명, 장날 모이는 인구가 800명 정도이고 장날 거래액은 500원 정도로서 주요 매매 물은 쌀, 보리, 콩, 소 등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무극시장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했던 무극광산은 1891년 중국인이 발견하였고, 1913년 일본인이 광권을 인수하여 금광을 시작하였다. 1936년 조선제련주식회사가 무극광산을 본격적으로 개발하여 엄청난 금을 생산함으로써 무극광산 주변 마을이 발전하게 되었으며 인근의 무극장도 크게 발전하였다.

1926년의 무극장의 개시일은 1일과 6일이었으나, 1938년부터 개시일이 5일과 10일로 바뀐 이래 현재까지 장이 열리고 있다. 1937년에 발간된 『음성읍지』에 의하면 무극장의 장날 거래액은 3,825원 정도에 연중 거래액은 275,451원 정도였으며, 주요 매매 물은 쌀, 콩, 어물, 소 등이었다고 한다. 당시 무극장의 장시권은 음성장, 용안역장, 감곡장, 덕정장, 맹동장, 진천장 등이다.

1976년에 무극장을 이용한 일반 이용자는 750명, 고정 상인은 70명, 이동 상인은 140명 등이었고, 소의 출장 두수는 60두이며, 1일 거래 금액은 510만 원 정도였다. 1980년대 말 무극장의 시장권이 크게 확대되어 면적 292.30㎢에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54,902명이었고 시장권의 인구 밀도는 ㎢당 188명이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장터거리의 이동 상인들이 의류, 채소류, 생선, 기물, 잡화, 과일 반찬류, 음식 등을 판매하였으며, 무극장의 이용자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주민들로서 주로 40대였고 농·축산업, 서비스업, 회사원, 주부 등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부 주민들은 음성장이나 장호원장도 이용하였다.

[구성]

1980년 당시 시장 면적은 1,799㎡로서 164개의 점포가 있었으며, 1996년에는 시장 면적이 2,893㎡였다. 2008년 3월 현재 142개의 점포가 입점해 있어 과거보다는 장의 규모가 줄었지만, 주변의 다른 장에 비해서는 규모가 큰 편이다.

[현황]

무극장 주변의 맹동장, 생극장 등이 폐시되어 현재 무극장은 상업 활동이 비교적 활발한 편이다. 그러나 음성군 금왕읍에는 많은 상설 상점이 개설되어 있고 주변의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맹동면, 삼성면과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등과도 교통이 편리하여 과거보다 정기시장이 차츰 쇠퇴하고 있다.

중부고속국도 음성IC를 나와 음성군 대소면 오산리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국가지원 지방도 82번을 타고 직진한다. 음성군 금왕읍 오선리 오선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지방도 583번을 타고 약 3㎞를 직진하면 무극교에 도착하고 우측에 무극장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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