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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이씨가 용대동에 들어오게 된 내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E020302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영숙, 조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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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이씨 문중이야기2

4월 9일에 만난 이방우 할아버지(27년생, 81세)께 경주이씨용대동에 들어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 여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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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우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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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우 할아버지 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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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우 할아버지 댁 평면도

“임진왜란 때, 내가 ‘우’자거든요? ‘우’자의 8대 되는 분이 현재 여기, 이전에 납골당을 모셨거든. 그런데 그 밀양박씨 할머니가 임진왜란 때 살다보니깐,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데. 역적으로 몰렸단 말이야. 임진왜란 때. 역적으로 몰렸는데, 아들 딸 가족이 다 멸하게 생겼으니깐, 모시는 할머니가, 나한테 8대조 할머니가, 자기 영감도, 뭐 물어볼 시간도 없이 아들 둘만 데리고 정처없이 여기 와보니깐 최씨들이 살더랴. 최씨들이. 그래서 여기 살게 된 거지. 그래서 인제 임진왜란이 온화가 되고 이렇게 되니깐, 그러니깐 그때 몇십 년 뒤에. 세월이 안정이 되니깐 다시 가서 영감님 찾아오고, 며느리들도 내비리고 왔으니깐, 급하니깐 자기 아들 둘만 데리고. 우리가 큰집 작은집 이렇게 부르는데, 작은집은 한 집 사는데 다 고향 등지로 나가 살아. 족보에 다 나와. 임진왜란이 일어나니깐, 시방 우리 자손들은 영웅이라 그러는 거지. 거기 있으면 역적으로 몰리니깐 영감한테도 말할 경황이 없고 며느리한테도 말할 경황이 없지.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들을 위하니깐. 충주 건국대 있는데 알아요? 유즈막. 유즈막에 있다가.”

경주이씨가 충주에 살게 된 이유에 대해서 여쭤보았다.

“우리 할아버지가 거기 선립을 한거지. 경주이가가 안동, 문경새재 가면 다 경주이가들이여. 상주 그런데 시방도. 그때 박씨 할머니가 그냥 거기도 집안이니깐 거기서 살았던 거지. 이서방네가 모여 사는 집이 없어요. 다 한 집 두 집 살지. 근데 다 얘기 들어보면 고향이 상주나 구미, 안동, 의성. 우리가 시방에나 옛날에나, 동에가 살고 서에가 살고. 멀리 퍼져 살았던 거지. 우리 조상님들은 벼슬한 분들은 없어요. 그 할머니한테 8대손이고, 지금 내 밑으로도 항렬이, 손자 있지, 내가 이 동네서 증손이 된단 말이야. 내 밑이 상자, 희자, 재자 이렇게 셋이여.”

4월 21일 찾아뵌 사정1리 이상옥 이장(39년생, 69세)께도 경주이씨용대동에 들어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 여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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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 이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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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 이장님 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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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 이장님 댁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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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이씨 문중이야기3

“그 할머니가 저 홍천에 계시다가 어떻게 돼가지고 충주에 오셔가지고. 또 그래가지고 여기로 피난을 왔지. 나한테 11대 할머니니깐, 사실 뭐 한 300년? 그 할머니가. 그 할머니서부터는 내가 11대지. 내가 족보가 있으면서도, 가계 계보라고 그래서 할머니의 직계만이야. 알평은 제일 큰 시조고, 그 양반 위고. 우리는 29대 운용으로부터. 그 양반이 아들을 둘을 낳았다고. 큰 파가 있고 작은 파가 있는데, 이 양반의 11대 직계 후세야. 이 위로는 다 강원도 홍천에 계시고 경주에서 모시고.”

사정리 향토지인 『부용』에는 사미정의 5세손 형(珩)이 생원으로 성주이씨를 부인으로 맞이하면서 충주, 음성에 터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또 28세손 이형(李珩)의 둘째 아들 이운용(李雲龍)이 순흥안씨 부인을 맞아 부용산 아래 사정리경주이씨 터를 잡아서 선조·광해군 때부터 살기 시작하여 증가선대부 오위총관 이운용의 세장지(世葬地)가 되므로 경주이씨 후손이 사정리에 살게 되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이방우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30세손 이인명(李寅明)의 부인인 밀양박씨 할머니가 이황곤(李黃坤)과 이후곤(李厚坤) 두 아들을 데리고 임진왜란 때 용대동으로 들어왔다고 하고 이상혁 이장의 말에 따르면, 28세손 이형(李珩)의 부인인 성주이씨용대동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므로 용대동 주민들이 28세손 이형, 29세손 이운용, 30세손 이인명, 31세손 이황곤의 직계 자손인 것과 28세에서 30세 사이에 충주에서 이곳으로 온 것은 확실하나, 용대동에 처음 경주이씨를 이끌고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는 마을 사람들마다 각기 다르게 전하고 있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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