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음성문화대전 > 음성의 마을 이야기 > 사정리 > 옛날에 한양 가려면 이 고개를 넘어야 해요(자연과 문화) > 사람의 숨결이 배어 있는 땅 이야기(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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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누구나 이름이 있듯이 사람들이 살아왔고 살아가는 마을에는 곳곳마다 땅이름이 있다. 사정1리 강당말과 용대동에도 가는 곳마다 독특한 땅이름을 지니고 있다. 땅이름에는 마을의 자연,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마을 사람들의 생활과 삶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강당말과 용대동 마을 사람들이 전해 준 마을 곳곳의 땅이름에는 두 마을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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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말마을 윗부분에 강당이 위치해 있으며 강당을 지나 마을이 끝나면 산자락 밑으로 밭들이 시작되는데 그 곳에 서서 동쪽으로 산비탈이 보이는데 이곳이 사장태이다. 사장태 지명에 대하여 마을 사람들은 조금씩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다. 강당말 김장일 할아버지(37년생, 71세)는 “사장태라고 하는 것은 옛날 산사태가 많이 나서 그렇게 불렀다고 해”라고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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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는 보이지 않고 마을을 지나 부용산 쪽으로 오르면 밭들이 나오는데 여기서 조금 올라오면 옛날 집터들이 나타난다. 이곳에 서서 부용산을 바라보면 부용산 봉우리 9부 능선 좌측으로 바위가 보이고 그 바위에 굴이 있는데 이 굴을 범의 굴이라 한다. 예전에 땔나무가 귀할 때에는 마을 사람들은 범의 굴까지 나무를 하러 갔다고 한다.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는 범의 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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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말마을 지나 북쪽 부용산 쪽으로 오르다 보면 밭들이 나오고 여기서 조금 오르면 집터들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보면 부용산 봉우리가 마을 쪽으로 흐르는 산줄기가 있고 7부 능선 부분에 바위가 보이는데 이 바위가 북바위이다.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는 북바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북바위는 왜 북바위라고 불렀을까요?” “거기가면 둥둥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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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말마을 뒤편으로 마을을 지나 오르면 밭들이 나오고 옛집터들이 골짜기가 있는데 옛날에 마을터였다고 하여 텃골이라 부른다, 이곳에서 부용산 쪽으로 텃골 골짜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조금 오른 지점에 샘 하나가 있는데 이 샘을 샘둥치라 한다.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는 샘둥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예전에 마을 뒤 부용산에서 나무를 하고 한 짐 잔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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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말마을 앞산 서남쪽으로 보면 앞산에 쑥 들어가 말 안장 같이 생긴 안부가 보이는데 그곳이 안감우재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인 문재이다. 문재 옆 서쪽으로 있는 골짜기를 용수박골이라 한다. 문재와 용수박골에 대해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문재는 강당말에서 안감우재로 통하는 문 구실을 해서 문재라 하였다고 하는데, 예전에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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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말에서 용대동 쪽으로 5분쯤 오르다 보면 고목과 비슷한 큰 아카시아나무 3그루가 서 있고 이곳에서 길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데 이곳이 서낭댕이다. 그리고 서낭당이 있는 이곳의 들판 이름도 서낭댕이뜰이라 한다. 이 서낭댕이에 대해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전에는 서낭당에 흙벽돌 집으로 당집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 그리고 어릴 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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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동 마을 북동쪽으로 700m 지점에 용대동 산신제를 올리는 산제당이 있는 복지골에 폭포가 있는데 이 폭포를 복기암 폭포라 한다. 이 폭포 이름에 대하여 이 마을 이상혁 반장(56년생, 52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폭포는 물이 흘러 떨어지는 바위가 그 모양이 바둑판 같이 넓어. 그러고 보면 알겠지만 그 바위 위에 울퉁불퉁한 돌들이 붙어 있어. 그 모양새가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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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동에서 북동쪽으로 부용산의 얕은 산줄기가 있는데, 이곳을 넘으면 음성읍 용산리 숯고개가 나온다. 산의 형상이 배를 닮았다 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물이 흐르는 듯한 소리가 땅속에서 크게 들리는 듯하여 배너미라 불렀다 한다. 배너미에 대한 전해 오는 이야기를 용대동 이방우 할아버지(27년생, 81세)는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옛날 천지가 개벽을 할 때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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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들 은 피난골이라고 하는데, 복기암 폭포 밑에 큰 바위가 있고 바위 밑에 굴처럼 파여 있는 곳이다. “피난골은 용대동 폭포수 밑에 가 보면 산신제 지내는데 밑에 가보면 향토지 책에도 나와 있어. 이렇게 우묵하게 자연적으로 파여 있어. 조그마하게 요만큼. 그래서 피난 골이라고 그러더라고. 6·25 때 글로 피난 갔다고 그래서” 김두일 새마을 지도자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