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음성문화대전 > 음성의 마을 이야기 > 병암리 > 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마을을 지켜왔어요(마을생활) > 암줄 수줄 끼워 줄다리며 풍년을 빌었지(풍속)
-
이진말(병암1리)은 예전 방식 그대로 산신제를 지내는 마을로, 예전부터 전해오는 민속과 믿음을 거의 그대로 지켜오고 있다. 음력 정월 초이튿날에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빌며 산신제를 지내고, 정월 대보름에는 이진봉에 올라가 달집을 태우고 망월을 하며 소원을 빈 뒤 마을로 내려와 마을 사람 전체가 줄다리기를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산신제만 지켜지고 있고, 정월 대보름의 달...
-
이진말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밤에 마을 사람 전체가 두 패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였다. 이진봉에 올라 망월을 하며 달집태우기가 끝난 뒤 내려와서 농악을 치면서 줄을 다렸다. 매년 하지는 않고 3년에 한 번 정도 하였으며, 6·25 이후까지도 했다고 한다. 암줄과 수줄로 나누어 줄을 엮었으며, 암줄과 수줄을 끼운 뒤 비녀목을 채워 고정시켰다. 줄을 다리는 패는 골목을 기준으...
-
이진말 사람들은 정월 초순경 그해 처음으로 맞는 쥐날에 쥐불놀이를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다른 동네 사람들하고 쥐불놀이를 했는데, 아주 크게 싸움을 벌였다. 이진말은 주로 곤재 사람들하고 싸웠다. 마을 앞 개울에 가서 뚝방에다 불을 놓고 양쪽에서 마주보면서 ‘니가 잘했네 내가 더 잘하네’ 하면서 싸웠다. 그러다가 개울 건너까지 서로 돌을 던지면서 싸우는 ‘석전’까지 하기...
-
이진말에는 풍물패가 없었는지 여쭈니 오덕욱 할아버지는 예전에는 농악놀이를 많이 했다고 했다. 달집 태우러 올라갈 때도 치고, 내려와 집집마다 지신밟기를 하러 다니면서 치기도 했다. 들에 일을 하러 나갈 때도 농악을 치면서 나가고, 농요를 신명나게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농악을 잘 치던 분들이나, 농요를 잘 부르던 이들도 다 돌아가셔서 예전처럼 놀 수가 없다고 하였...
-
예전에는 안택이라고 해서, 집안 편하라고 고사를 많이 지냈다고 한다. 또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이유 없이 든 병을 잡기 위해 굿을 하기도 했다. 무당은 동네 무당도 있고 타동네 무당도 데려다 하기도 했다. 오덕욱 할아버지 댁에서는 굿은 하지 않고 안택만 했다고 한다. 안택은 3년에 한 번 정도씩 시월상달에 생기복덕 가려서 날을 잡고 한다. 무당을 부르지는 않고 계속 기도를 한다고...
-
요즘은 아프면 즉시 병원에 데려가지만 예전에는 그저 신에게 빌고 하면서 기도를 했다고 한다. 예전에 오덕욱 할아버지가 초상집에 갔다 와서 몸이 많이 아픈 적이 있었다. 감기 걸린 것 마냥 으실으실 거렸다. 이웃의 나이 든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상문살이 껴서 그런 거니까 풀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 이웃집 할머니는 팥죽을 써서 바가지에다 넣고 칼로 방문을 박박 긁고, 콩하고 팥하고 문에...
-
오덕욱 할아버지에 이어 이번에는 다섯째 딸이 또 상문살이 들었었다고 한다. 다섯째 딸이 태어나고 얼마 안 되서 당숙모가 돌아가셔서 장례 지낸 건하고 행장하고 뜯어서 보자기로 쓰려고 집에다 뒀는데 그때부터 애기가 젖을 먹지 않았다. 젖을 자꾸 외면하고 병원에 가보니 애기가 똥을 못 눠서 그런 거라고 했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똥을 눴는데도 애기가 계속 젖을 안 먹어서 시...
-
또 한 번은 오덕욱 어른의 아버님이 친척 아주머니 돌아가셨을 때 만장기를 가지고 왔는데, 하우스에 쓴다고 화장실에 갔다 놨는데 그때부터 아버님 손이 가시에 찔린 것처럼 부었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에 가보자 하니깐 찢을까봐 겁나서 싫고 약만 사다 드셨다고 한다. 약을 먹으면 잠시 가라앉고 또 며칠 뒤에 다시 부어오르곤 했다. 그래서 무당한테 물어보니 상문살 때문이라고 해서 팥죽을 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