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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순 할머니의 출생과 성장: 3개월 수업료가 쌀 서 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E020407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영숙, 조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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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수업료가 쌀 서말

박재순 할머니는 1940년생으로 용띠이다. 경기도 이천 율면 출신으로, 율면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3개월 수업료가 쌀 서 말이었는데 너무 비싸서 부모님이 1년만 가르치고 오라버니만 학교에 보내서 졸업을 하지 못했다.

3남매 중 막내로, 오빠하고 7살, 언니하고 11살 차이가 난다. 원래 오빠가 한 명 더 있었는데 홍역 때문에 어릴 때 죽었다.

“그 아래 아들이 있었는데, 홍역에 덜컥 죽고 나서 내가 생겼어. 그래서 낳고 보니깐 딸이어서, 당시만 해도 아들이 귀했기 때문에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중에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자식이라는 것도 키우고 싶다고 키워지는 게 아니다. 명이 길어야 사는 거지 암만 키워 볼래도 안 된다’ 했어. ‘엄마, 내가 아들이었어야 좋을 건데 딸이어서 나쁘지?’ 하니 ‘그런 소리 하지 말아라. 니가 아들이었으면 죽었을 것이다.’ 했어.”

아버지는 시집 오고 3년 만에 중풍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15년 전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편찮으신 아버지가 딸을 늘 그리워하며 딸네 집에 오고 싶어 하셨는데, 한 번도 모시지 못한 것이 지금도 한스럽다.

“저 산 너머 가면 딸네 집을 가볼 텐데, 딸네 집 간장 맛이나 보고 죽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애원을 하셨댜. 하지만 그때는 몸도 불편하고 차도 없고 해서 못 오시고. 그해 여름인데 친정어머니가 그렇게 가고 싶어 애를 쓰신다고, 그래서 사돈 집 보기도 부끄럽고 잘 걷지도 못하고 남부끄러워 못 가는데 니네 집에 가고 싶어서 애를 쓰셨다고, 그런 얘기를 하셨어. 사실 세상이 병이 나는 게 마음대로 나는 것도 아니고 남부끄러운 게 아닌데 지금 같았으면 마음대로 올 텐데. 그 집 어떻게 사는 집 구경이나, 어떻게 사는 장맛을 보겠다는 데도 그것도 못하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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