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C010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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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경수, 윤정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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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바위
비산리는 높은 산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비석거리에 서서 마을을 한 바퀴 돌며 바라보면 낮은 고개와 봉우리들이 마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이명희 할아버지(83세)는 마을 중간에서 바로 앞쪽에 가장 높게 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산과 바위의 지명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 산의 이름은 ‘괸돌산’이라고 하며 그 산 위에 공기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다고 한다. “여기선 산 이름을 괸돌산이라고 하는데, 근데 그게 내력은 몰라도 장등 그 아래 바우가 공같이 동그란 바우가 어마어마하게 큰 게 돌 우에 날름 올라앉아 있다고. 그래서 내 추측인데 그래서 고인돌이라고 해서 괸돌산이라고 하지 않았나 한다고. 그래서 그 바위는 공기바우라고 한다고. 공 같이 동그랗게 생겨서.”
할아버지가 어릴 때는 공기바위 있는 데를 올라가보기도 했지만 현재는 산에 수풀이 많이 우거져서 가서 볼 수는 없다고 하였다.
공기바위 외에도 비산리는 여러 가지 독특한 이름을 지닌 바위들이 있었다. 과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진 마당바위, 절하는 모양의 절바위, 아들을 낳게 소원을 빌던 집바위, 어릴 적 놀던 생바위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마당바위는 시방 지장보살 세우고 납골당 있잖아. 거기에 있었어. 글쎄. 그거 시설하느라고 전부 깨 치웠다고. 납골당 만드느라고. 그거 없어진 지가 한 19여 년 됐을 거야. 바위가 편편했었어. 높이도 높지 않은데 동네 사람들이 꽃 따러 가면 거기서 놀고 그랬다고. 평평해서 놀기 좋았지.”
지금은 미타사가 생겨나고 납골당이 세워지는 바람에 바위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지만 옛날에 놀이터로 이용됐었던 바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연이어서 이명희 할아버지는 절바위, 집바위 등 또 다른 바위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절바우는 비산3구에 절바우라고 있다고. 그러니까 이제 바위가 산꼭대기에 바위가 있는데 절하는 것 같이 형상이 생겼다고 그래서 절바위라고 이름을 붙였지. 그리고 집바위는 요 뒤에 골짜기에 있다고. 집 모양처럼 생겨서 예전엔 우리 어려서 보면 여자들이 가서 떡도 갖다 해 놓고 기도도 드리고 거기 그래가지고 기도 드려서 아들을 낳았다 그런 전설도 들렸어. 요 위에 올라가면 산 밑에 있지.”
또 미타사에서 산등성이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있다는 바위인 생바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생바위는 수십 길이나 되는 높은 바위인데 뒤쪽에서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위쪽은 편편해서 어렸을 때 많이 올라가 놀았다고 한다.
“미타사 그 쪽에 그쪽에 큰 바위 있지. 그 쪽 옆으로. 생바우라고 한다고. 뒤에서 올라갈 수 있는데 밑에는 수십 길이야. 엄청 높지. 그러니까 네모져서 길게 되어 있는데 뒤에는 산하고 닿아서 사람이 올라갈 수 있어. 그런데 앞에는 수십 길 높지.”
예전에 올라가 본 적이 있는지 여쭈자 예전에는 많이 다녔으며 바위 위는 평평하여서 위에 올라가 놀기도 하였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전에는 길이 있어 바위에 올라갈 수 있었지만 현재는 길이 험해 갈 수 없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