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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고 탈출한 포로들: 6·25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B020103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경수, 고유리

문촌3리새목이마을의 마을회관에 찾아가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화투놀이도 하고 여담도 나누고 있었다. 특히 할아버지들 중 금 뱃지를 하고 앉아 있는 분이 있어서 “할아버지 그 뱃지는 무슨 뱃지인가요?” 여쭤보니, “아, 이거 6·25때 나가서 싸웠다고 주는 거지 뭐.” 하였다. 그래서 할아버지께 6·25를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니 주위 어르신들의 호응에 힘입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이야기? 그거그거 이 할아버지가 6·25참전용사이니까 이 할아버지한테 들어.”

“이거 그만하고 학생들한테 이야기 좀 들려줘.” 하며 주위 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었다.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 주는 할아버지는 목영학 할아버지(80세)로 태어나던 해에 이 마을로 왔으며 새목이 마을에서 계속 살고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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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영학할아버지 참전유공자증

“그럼 그 때 전쟁에만 참여하셨다가 오신 거예요?”

“아니, 내가 사람들을 데리고 도망을 나왔어.”

“네? 할아버지께서 사람들이랑 도망을 나오신 거예요?”

“그렇지. 내가 전쟁 때 인민군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있었는데 제천을 지날 때 쯤인가. 인민군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하는 거야. 그래서 ‘이건 뭔가 이상하다. 지들끼리 수군거리는 게 이상하다’ 싶었어.”

“할아버지께서 전쟁에 참가하셨다가 인민군 포로가 되신 거예요?”

“응, 그렇게 된 거지. 그런데 자세히 이놈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까 ‘인민군이 전쟁에서 후퇴를 하고 있다’이거야. 그래서 우리를 끌고 가는 인민군들을 속여서 탈출하기를 작정했지. 그래서 한 명 한 명 이야기를 했어, 근데 사람들도 다 내가 하자는 대로 하겠다는 거잖아. 그때 9명이 잡혀 있었는데 모두들 동의를 했어. 그래서 내가 인민군들한테 ‘우리가 가서 먹을 것을 구해놓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들 오는 것이 어떻겠느냐’라고 말을 했어.”

“그랬더니 인민군들이 모여 자기들끼리 쑥떡쑥떡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려서 나한테 얘기를 해주더라고. 그래서 이 때다 싶어서 사람들하고 인민군들의 눈치를 보다가 마을로 도망을 친 거야.”

“안 잡히고 마을까지 무사히 왔어요?”

“응, 안 잽혔어. 다행이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그 놈들이 자기들이 후퇴하고 있으니까 ‘풀어주자’해서 모른 척 해준 거 같기도 하고 그래.”

할아버지는 포로로 있던 사람들과 함께 탈출을 하여 마을에 무사히 도착한 후에 각자의 집을 찾아 갔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가 종종 있었는데 다들 나이가 들어 몇 명 남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 때 나랑 나온 사람은 6명 정도야. 그러고 전쟁 후에도 동기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지금은 세월이 흘러 죽은 사람들이 많아서 이제 2명밖에 남지 않았어.”

그리고는 왼쪽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엇을 꺼내더니 보여 준 것은 바로 ‘참전 유공자증’이었다.

“나는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어. 동기가 말해주더라고. 그래서 작년에 만들었는데 이거이거 진작에 만들었어야지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더구만.”

할아버지는 지난달에 만든 ‘참전 유공자증’을 보여 주며, 자신이 겪었던 6·25시절을 회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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