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A020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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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경수, 박종호 |
갑산리를 방문하여 마을에 분포되어 있는 여러 가지 조직에 대해 조사를 해보니, 그 수가 다른 마을에 비해 상당히 많았다. 특히 지금은 보편적으로 하지 않는 계모임이 있어서 더욱 흥미로웠다. 갑산리에서 현재 행해지고 있는 계모임은 마을 단위의 계로 산림계, 대동계, 연방계, 호포계가 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 개개인이 만든 동갑계와 친목계가 있다. 또 안동권씨 집성촌답게 안동권씨들이 만든 협진회와 동역마을에서 예전에 있었던 애림계가 대표적이다.
[나무를 가꾸는 마음으로 뭉친 산림계]
산림계는 1950년대 이전 갑산리에 생겨나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고 있다고 한다. 마을의 산림을 관리하는 것이 주요한 일이며 현재는 연령층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기도 하며 마을 이모저모의 주축이 되는 모임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산림계장을 10년 이상 맡아 보셨다는 남기수 할아버지(75)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산림계는 나라에서 산을 잘 관리하라고 해서 시작된 거야. 일제시대 사람들이 놓고 간 산 있지? 그거 88정보를 줄 테니 10년간 관리를 잘 보라고 해서 생겼지. 그래서 내가 산림계장을 맡아서 관리를 했는데, 내 일은 하나도 못하고. 내 일은 제쳐두고서라도 제초작업을 하러 가고 해서, 그렇게 열심히 해서 정부에서 합격을 받았어.”
갑산리 산림계장은 1959년도까지 남기수 할아버지가 했었다. 일본 사람의 산인데 일제시대 이후 놔두고 간 산을 국가에서 소유해서 국유림으로 되었었다. 그래서 이것을 갑산리 주민들에게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했는데, 그 때 나무들이 굉장히 많았다. 일본 사람들이 많았을 때는 건드리지 못했으나 그들이 떠나고 난 뒤에는 그 곳의 나무를 베다가 생계를 유지하곤 하였다. 국가에서는 한 10년간 관리를 잘하면 갑산리에 국유림을 주겠다고 했고, 마을에서 산림계를 조직해서 계속적으로 관리를 했다. 그리하여 국가로부터 마을 공동 재산으로 받게 되었다. 지금도 산림계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마을의 가장 큰 힘 대동계]
대동계는 마을의 가장 큰 계모임이라고 할 수 있으며, 마을 사람 전체를 위한 계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 말 경에 좋은 날을 받아서 대동제를 지내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를 하는 것이 대동계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현재 연방계장을 맡아보고 있는 정기용 할아버지(74세)께 대동계에 대해서 여쭤 보니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대동계? 뭐 할 말이 있나. 그냥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한 해를 마무리 하고 다음 해에도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거지. 뭐, 그냥 마을 계모임이여.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있지, 다 모이지. 대동계에서는 대동제를 지내는데 벌써 했지. 전 달 25일 그러니까 12월 25일쯤 좋은 날을 받아서 하고 있지.”
이미 전해의 대동계를 마친 상태이며 매년 좋은 날을 받아서 대동제를 지낸다는 말과 함께 또 다른 계모임에 대해서 다른 어르신들께 물어보라고 하였다.
[친목을 다지는 데는 최고! 동갑계, 친목계]
할머니들이 계신 곳을 찾아가 할머니들만이 하고 있는 계모임이나 특별히 재미있는 갑산리의 계모임은 없는지에 대해서 여쭤 보았다. 할머니들은 특별한 계모임 보다는 마을 사람들끼리 연령대가 맞는 또래 집단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는 계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특별한 것은 없어. 다 같지 뭐. 그냥 동네 사람들끼리 같이 있으니까 동갑계와 친목계를 하고 있지. 동갑네들끼리 모여서 1년에 한 번씩 관광도 가고 가끔 모여서 식사를 같이 하면서 친목을 다지는 거지 뭐.”
동갑계와 친목계는 현재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있으며 관광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등의 일을 하며 친목을 다지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참 모습! 연방계, 호포계]
정자안마을 의 정기용 할아버지(74세)와 함께 연방계장을 맡고 있는 민병두 할아버지(77세)를 찾아가 갑산리에 현재 남아 있다는 연방계와 호포계에 대해서 여쭤 보았다. 연방계는 마을의 혼인이나 상을 치룰 때 연방계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함께 일을 돕는 것이 주요한 일이며, 호포계는 쌀을 빌려주고 돌려받는 형식으로 현재의 현금과도 같았던 쌀로 계를 유지하던 특별한 계모임이라고 하였다.
“동네의 대소사 뭐 있잖어. 결혼이나 상례 등 일이 났을 때, 마을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쳐서 도와주는 거지 뭐. 지금도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 쌀 한 말이나 두 말을 빌려 주면서 했지.”
“아, 빌려 주면 갚아야 하나요?”
“그렇지. 빌려 준 그 쌀로 마을 모든 사람들이 밥을 해 먹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그때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가난했는지...”
당시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쌀 한두 말 가지고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밥을 해 먹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쌀 한두 말을 가지고 보리쌀과 섞어서 마을 대소사에서 함께 나누어 먹곤 하였다. 그러나 현재에는 5만원이라는 금액을 정해서 연방계의 기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연방계는 주로 혼사나 상이 나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일을 해 주는 것이었는데, 해방이 되고 나서부터 생긴 계여. 해방이 되고 나서 동네 어른들이 서로 얘기해서 만들었지, 그때부터 이어 내려오고 있어.”
민병두 할아버지는 호포계에서 대해서도 말해 주었다. 이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어려운 동네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농한기에 쌀을 빌려 주고 갚는 형식으로 만든 계라고 한다. 동네 사람 중 쌀 한 가마니를 빌려 가면 일 년 후에 추수를 해서 본래의 쌀 한가마니와 이자로 쌀 한 말을 더 얹어서 갚는 형식으로 마을 사람들이 추수 후에 일정한 양의 쌀을 걷어 호포계장이 보관하면서 운영하는 방법을 취한 것이다.
[산림을 보호하던 애림계, 문중의 내력을 이어 가는 협진회]
우리는 발길을 돌려 갑산2리로 향했다. 동역마을에 살고 계신 권오성 할아버지(77세)께 갑산2리에서 하고 있는 각종 모임에 대해서 여쭤 보았다. 할아버지는 현재 모임보다는 예전에 했었던 애림계와 권씨 문중의 모임인 협진회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어, 그래요. 뭐 지난번에 다 얘기해지만, 뭐. 다시 얘기해 줄게요. 애림계는 사랑 愛(애)자에 수풀 林(림)자를 써요. 나무를 사랑하자 뭐 이래서 만든 계여. 나라에서 준 군유림을 받아서 관리하는데 애림 표시를 하고 함부로 못하게 하고 가을이 되면 동네사람들 수만큼 표시를 해 줬어. 이장하고 다니면서. 그런 걸 보면 이 동네가 교회의 영향이라든지 김승지가 와 있어서 오지긴 하지만 일찍 개발이 된 동네가 아닌지 생각해요.”
“협진회는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권씨 문중 모임이에요. 협력할 협(협)에 나아갈 진(進)자 , 5·16이 나고서 박정희 대통령 정권일 때 갑산2리에서 길 닦던 총각 녀석이 지나가는 아가씨를 희롱했지요. 그랬더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이 누군 줄 알고 그러느냐 했지요. 그분은 일가의 아주머니뻘 되는 분이라고. 그러니까 그때 그만큼 여기에 권씨가 많이 살고 있으므로 일가인 줄도 모르는 사태가 벌어져서 이런 것을 방지하고자 해서 당시 젊은 사람들이 협진회를 조직했어요. 어찌 한 동네에서 살면서 일가도 몰라보냐.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하여 협진회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약관을 만들어서 조직했지요. 약관에 보면 미성년자들로 조직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미성년자가 다 나가고 그 때 결성되었던 협진회 사람들이 70이 넘은 지금에도 회원으로 계속 남아있어요. 그 만큼 젊은 사람들이 없다는 거죠. 협진회에도 재산이 있는데, 몇 천만 원이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성행했지만 현재는 없어진 애림계에 대한 소중한 정보와 현재는 젊은 사람들이 없어서 협진회의 회원들이 점점 노령화 되고 있다는 걱정을 듣고 권오성 할아버지의 집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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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림계 협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