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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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叔蓁 |
영어음역 | Bak Sukjin |
이칭/별칭 | 정지(挺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유봉희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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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음성군 |
성별 | 남 |
생년 | 1424년 |
몰년 | 1481년 |
본관 | 음성 |
대표관직 | 사헌부대사헌 |
[정의]
조선 전기 음성박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정지(挺之). 음성백 박서(朴犀)의 7세손이고, 함흥차사로 알려진 박순(朴淳)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박흔(朴昕)이며, 동생은 박숙무(朴叔楙)이다.
[활동사항]
박숙진(朴叔蓁)[1424~1481]은 1447년(세종 29) 사마시에 급제하고, 1453년(단종 1)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55년 권지정자(權知正字)로 벼슬에 나아가 12월에 원종공신 2등에 녹훈되고, 오위사용(五衛司勇)을 거쳤다.
1464년(세조 10)에는 병조정랑으로 대책(對策)을 고과(考課)하여 3등으로 어제구현재시장(御製求賢才試張) 방(榜)으로 응시하였는데 정비(政批)에 안인(安印)을 끝마치지 않고 귀가하여 물의가 있었다. 1465년(세조 11)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으로 『경국대전(經國大典)』 편찬에 참여하였다.
1467년(세조 13) 병조정랑으로 있다가, 1470년(성종 원년) 사은사서장관(謝恩使書狀官)으로 중국에 다녀와 듣고 본 사안을 복명하였다. 1471년(성종 2) 군기시정·군기감정을 지내고, 1472년(성종 3) 선위사(宣慰使)로 영안도관찰사·절도사를 선위하였다.
1473년(성종 4) 통례원좌통례(通禮院左通禮)를 지내고, 이듬해 재상경차관(災傷敬差官)으로 충청도와 경상우도에 다녀왔다. 1475년(성종 6) 첨지중추부사가 되어, 공혜왕후[성종 비] 국장도장 낭청(郎廳)이 되고, 1477년(성종 8) 형조참의(刑曹參議)에 제수되었고, 좌부승지·우승지를 거쳤다.
1478년(성종 9) 좌승지, 9월에 도승지에 승직되어, 11월에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올랐다. 1479년(성종 10) 5월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으로 폐비 문제를 거론하여 추국당하고, 체직(遞職)되었다가 복직되었다. 8월에 개성유수(開城留守)에 임명되었는데 1481년(성종 12)에 임소에서 향년 57세로 별세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교하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