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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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厚載 |
영어음역 | Sin Hujae |
이칭/별칭 | 덕부(德夫),규정(葵亭),서암(恕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용만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으로 은거한 문신.
본관은 평산. 자는 덕부(德夫), 호는 규정(葵亭)·서암(恕庵). 아버지는 현감 신항구(申恒耈)이다.
신후재는 1660년(현종 1) 사마시를 거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다가 지평·부교리 등을 역임했다. 1679년(숙종 5) 강원도관찰사가 되었고 이듬해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남인(南人)이 제거될 때 삭직되었으며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도승지 등을 지냈다.
그 후 사은겸진주주청부사(謝恩兼陳奏奏請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강화부유수·개성부유수·한성부판윤을 지냈다. 1694년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서인(西人)에 의해 여주(驪州)에 유배되었다가 1697년 석방되었다. 이후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에 은거하며 백련재(白蓮齋)를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저서로 『규정집(葵亭集)』이 있다. 「신후재 영정」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4호로 지정되었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