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8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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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鸞壽 |
영어음역 | Choe Nansu |
이칭/별칭 | 언상(彦祥)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유봉희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의병.
[개설]
최난수는 임진왜란때에 충청북도 음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우고서도 조정의 포상을 사양한 뒤 전사한 의인이다.
[가계]
최난수(崔鸞壽)은 고려 좌참찬 최유경(崔有慶)의 5세손이고, 선략부호군 최우령(崔禹齡)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최난수는 참봉을 제수하였으나 나가지 않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반인후(潘仁後)와 더불어 의병을 모집하여 전과를 올렸다. 도(道)에서는 조정에 알려 포상하려 하였으나 “전에도 제수된 직에 나가지 않았는데 이제 창의(倡義)의 공이 있다고 하여 내 어찌 공명을 바라겠느냐”하고 거절한 후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 병환이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말 채찍질하며 오다가 설성 보천과 조촌 사이 마라우(馬羅于) 협곡에서 적병 1진을 만나 기습당하자 필마 단기로 힘을 다해 수백 급을 베며 싸우다가 장렬히 순절하였다. 그 후 그곳을 마라우(馬羅于)라 불렀다.
[묘소]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에 묘가 있다.
[상훈과 추모]
최난수에 대하여 그 후 임란의 공을 논공할 때 선무원종공신 3등 사약(司鑰) 최난수라고 논공되어 참으로 다행한 일인데, 일설에 나라에서 포상하였으나 받지 아니하였다고 함이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