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7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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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良鑑 |
영어음역 | Gim Yanggam |
이칭/별칭 | 문안공(文安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박상일 |
[정의]
고려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아들은 학문에 힘써 인종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른 김약온(金若溫)이다.
[활동사항]
1070년(문종 24) 상서우승(尙書右丞)·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에 이어 서북로병마부사(西北路兵馬副使)가 되었다. 1074년에 태복시경(太僕寺卿)으로 사은사가 되어 송나라에 가서 고려 사신들이 이용하는 등주(登州)를 요(遼)의 이목을 피하기 위하여 명주(明州)로 바꿀 것을 청하여 합의하였다.
이듬해에 산기상시(散騎常侍)가 되고 이어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예부시랑(禮部侍郞)·참지정사(參知政事)·판상서병부사(判尙書兵部事)를 역임하였다. 1082년(문종 36)에 좌복야(左僕射)에 올랐다. 선종 초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가 되고 1086년(선종 3)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가 되었다.
이듬해에 판상서호부사(判尙書戶部事)를 거쳐 1090년(선종 7)에 문하시랑으로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우간의 손관(孫冠)과 함께 진사 이경필(李景泌) 등을 뽑았는데, 그 답안이 격식에 맞지 않아 주사(主司)에 밝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뒤에 시중(侍中)이 되었다.
[저술 및 작품]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가락국기(駕洛國記)」의 저자라고 전하기도 한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안(文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