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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고덕수의 묘비. 고덕수는 자는 군명(軍明), 호는 퇴암(退庵),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중랑장 고천연(高天連)의 손자이다. 1432년(세종 14)에 식년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과 연풍현감을 지냈다. 1456년(세조 2)에 취금헌(翠琴軒) 박팽년과 재종매부(再從妹夫)라는 이유로 화를 입어 관(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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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은 마을 입구나 동제구역(洞祭區域)에 세운 마을 장승과 사찰 입구에 세운 사찰 장승, 그리고 지역 간의 경계로 삼거나 성문이나 병영(兵營)·해창(海倉)·관로(官路) 등에 세운 공공 장승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경계표나 이정표로 삼기 위해 세우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역질을 막고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 수호의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마을의 흉액을 밖으로 몰아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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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 고심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석불 입상. 고심사 미륵불은 화강암으로 조성된 불상으로 머리는 결실되었으나 광배(光背)를 갖추고 있는 석불입상이다. 좌대는 후대에 변형된 것으로 보이나, 법의는 통견(通絹)이며 옷 무늬는 U자형으로 앞가슴을 표현하였다. 수인(手印)은 미타정인의 형식을 취하고, 광배는 주형광배로 일부가 파손되어 있다. 고심사 미륵불은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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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신후재의 영정을 봉안한 사우. 신후재는 조선 숙종 때의 사람으로, 동부승지, 강원도관찰사, 좌부승지, 안변부사, 우승지, 좌승지, 진하겸사은부사, 승정원도승지, 공조참판, 동지의금부사, 한성판윤 등을 지냈다. 1694년(숙종 20) 3월 갑술옥사 때 여주에 유배되었다가 1697년(숙종 23) 4월에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 오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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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김명진의 불망비. 개석 및 방부 없이 비신만 존재한다. 비신(碑身)의 총 높이는 139㎝, 앞면 54㎝, 측면 22㎝이다. 비신 앞면에는 해서로 ‘수의김공명진영세불망비(繡衣金公明鎭永世不忘碑)’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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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주봉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김창식의 효자문. 김창식은 어린 나이에 모친이 병이 나자 명약을 구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였으며, 5년 후 모친의 병세가 악화되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먹여 소생시켰다. 10살 때 모친이 죽자 매일 닭이 우는 시간에 5리나 떨어져 있는 묘소로 가 참배하였다. 무릎과 손으로 짚었던 자리는 떼가 죽었을 정도라고 한다. 성묘길 옆의 벗나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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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오갑마을 은 마을회관 왼편으로 작은 개울이 흐르며 개울 양 옆으로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왼쪽 마을을 살펴보면 작은 복숭아밭 뒤편으로 옥산사가 닿을 듯이 보인다. 하지만 옥산사는 복숭아밭을 옆에 끼고 골목길을 따라 5분 정도 들어가야 있다. 옥산사는 입구에 홍살문이 있고 문을 지나면 작은 연못이 있다. 연못 왼쪽에는 문화재 알림판이 있고 왼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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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1리에 있는 초계정씨의 사우. 도원사는 초계정씨(草溪鄭氏)의 사우(祠宇)로, 초계정씨는 정배걸(鄭倍傑)을 시조로 하고 있다. 정배걸은 초계성산에 정착해 살았으나 그 선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정배걸은 1017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문종 때 예부상서, 중추원부사를 지냈다. 홍문광학추성찬화공신(弘文廣學推誠贊化功臣)으로 문하시중상주국광유후(門下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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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 있는 초계정씨의 중시조를 봉안한 사우. 도장사에는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 죽계(竹溪) 정창(鄭昌), 우헌(愚軒) 정덕기(鄭德麒), 정국주(鄭國柱), 정국추(鄭國樞), 정국량(鄭國樑), 정국로(鄭國櫓), 정국빈(鄭國彬) 등 여덟 사람을 봉안하고 있으며 매년 3월 중정(中丁)과 9월 중정(中丁)에 제사하고 있다. 도장사는 조선 숙종조에 창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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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산7번지에 있는 3성(공자, 주자와 안향) 및 9현을 봉안한 사우. 공자, 주자, 안향을 비롯하여 국재(菊齋) 권부(權溥), 역동(易東) 우탁(禹倬), 동암(東庵) 이진(李瑱), 이재(彛齋) 백이정(白頤正), 매운당(梅雲堂) 이조년(李兆年), 덕재(德齋) 신천(辛蕆), 노당(露堂) 추적(秋適), 근재(謹齋) 안축(安軸), 경재(敬齋) 안보(安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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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을 봉안한 사묘. 문충공(文忠公) 권근(權近)[1352~1409]은 본관은 안동, 초명은 진(晉), 자는 가원(可遠)·사숙(思叔), 호는 양촌(陽村)이다. 고려 말엽의 정승 권박의 증손이며 검교정승 권희의 아들이다. 1409년(태종 9)에 58세로 별세하자 문충(文忠)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지은 책으로 『입학도설(入學圖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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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국가 및 지방 지정 문화 유산.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 239-1번지의 음성 김주태(金周泰) 가옥은 1984년 1월 10일 국가중요민속문화재 제141호로 지정된 전통 가옥이다. 300여 년 전에 이익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며 충주목사를 지낸 참판 박규희 가문이 오랜 동안 거주하였다 하여 박참판댁으로도 불리고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 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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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민동량의 유허비. 총 길이는 158㎝이고, 비신(碑身)의 높이는 116㎝, 앞면 47㎝, 측면 11㎝이며, 가첨석(加檐石)은 높이 38㎝, 앞면 61㎝, 측면 38㎝이다. 하단의 방부(方趺)는 높이 4㎝, 앞면 67㎝, 측면 40㎝이다. 비석 앞면에는 ‘효자증통훈대부호조좌랑송암민공동량유허비(孝子贈通訓大夫戶曹佐郞松巖閔公東亮遺墟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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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민동량의 정려각. 민동량은 본관은 여흥, 자는 군삼, 호는 송암이다. 1806년(순조 6)에 정려와 복호(復戶)가 내려졌다. 7, 8세 때부터 부모가 병이 나면 곁을 떠나지 않고 보살폈으며 좋은 약이라면 가리지 않고 구하여 썼다. 부모가 아프자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피를 내어 먹이려고 왼손 네 손가락을 잘랐으며, 대변을 살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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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민발(閔發)[1419~1482]의 신도비. 민발 신도비는 민발의 사후에 평생의 행적을 담은 글을 돌에 새겨 세운 비로, 1707년 (숙종 33)에 세워졌다. 민발의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민수산(閔壽山)의 아들이며, 시호는 위양(威襄)이다. 1453년(단종 1)에 사복시대호군(司僕寺大護軍)으로 있으면서 무과(武科)에 합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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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시대 민해준의 효자각. 민해준이 어머니와 함께 밭에서 김을 매다가 소낙비를 만났다. 이때 비를 피하기 위하여 바위 밑으로 들어갔다 무너지려 하자 어머니를 밖으로 밀어내곤 자신은 바위에 깔려 죽음을 당하였다. 이 같은 민해준의 효행을 기려 훗날 유림과 동리에서 효자각을 세웠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으로 ‘효자민해준지려(孝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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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민휘계와 민정현의 정려문. 민휘계·민정현 효자각은 민씨 가문의 두 효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문이다. 민휘계는 가난하였으나 글을 좋아하고 주경야독을 했다. 학행(學行)이 좋고 부모에 효심이 지극했다. 1808년(순조 8)에 감영(監營)에서 상계(上啓)하자 왕이 특명을 내려 민휘계의 행적을 간행토록 하였다. 이 책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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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건립된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 있는 음성박씨 선조 박순의 사당. 박순 충신문은 박순 사당이라고도 하며, 2002년 5월 18일 음성군 향토문화유적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음성박씨(陰城朴氏)의 선조인 박순은 1388년(우왕 14) 요동 정벌 때 이성계 휘하에서 종군하였다. 위화도 회군에 앞서 이성계의 명으로 회군 승인을 얻기 위해 우왕에게 갔던 박순은 조선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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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박정규와 박호원의 정려문. 박호원과 박정규는 충민공 박순(朴淳)의 후예이며, 박정규는 박호원의 손자이다. 박호원의 효자문은 1725년(영조 1)에 하사되었으며, 박정규의 효자문은 1743년(영조 19)에 하사되었다. 1689년(숙종 15)에는 충민공의 부조묘인 박순 사당, 박순 충신문, 박순의 처 장흥임씨의 열녀문을 이곳에 지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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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신후재가 수학하던 곳. 백련서재는 조선 숙종 때 한성부판윤을 지낸 서암 신후재(申厚載)[1636~1699]가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던 장소이다. 신후재는 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 때 유배되었다가 1697년(숙종 23)에 석방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와 살았다. 서재(書齋) 앞 연못에 백련 꽃이 있는데, 이는 신후재가 청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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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 있는 정규영·정인상 부자와 현풍곽씨의 효열비를 보관한 비각. 1969년 성균관 유림에서 추천하여 1970년과 1978년에 세워졌다. 비각은 전면 1칸 반, 측면 1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 기와집으로 전후좌우 네 개 면을 홍살로 막았다. 둘레에는 적색 벽돌담을 쌓고 앞면에 철제 대문이 세워져 있다. 비각의 앞 처마에는 한자로 ‘상모각(常慕閣)’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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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의 전통가옥은 대부분이 조선시대의 건축물들이고, 유교적 특징이 강조되어 있다. 옛사람들의 생활 가옥이었던 고택들, 유교 이념을 교육하였던 향교, 유교 이념을 연구·전승하였던 서원들, 선현 제향과 풍속 교화의 장소인 사우들, 자연을 즐기는 여유가 담긴 누정들은 모두 조선의 시대정신이었던 선비 정신과 그에 입각한 건축미가 담겨진 전통가옥들이다. 이처럼 음성 지역에 유독 조선의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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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천주교의 종교 의식이 행해지는 회당. 성당은 일반적으로 건물이라는 물적인 기능과 함께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의 성역이라는 정신적 기능을 구체화한 장소라는 의미도 가진다. 충청북도 음성군에는 7개의 성당과 성당보다 규모가 작고 주임 사제가 없는 공소가 12개가 있다. 그 중 감곡성당과 음성성당은 역사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성당이다. 1. 감곡성당 충청북도 음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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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평산신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신후재의 초상화. 신후재(申厚載)[1636~1699]는 1660년(현종 원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강원도관찰사 등을 지냈으나, 1694년에 일어난 갑술옥사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한 후에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정장 관복을 입고 의자에 앉은 전신상으로 의관이나 단령의 관복 등 복식은 조선 숙종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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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1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충주목사를 역임한 엄찬의 선정비. 목사 엄찬 진휼비(牧使 嚴讚 賑恤碑)는 총 높이가 168㎝이고, 비신은 높이 110㎝, 앞면 67㎝, 측면 34㎝이며, 개석(蓋石)은 높이 59㎝, 앞면 76㎝, 측면 40㎝이다. 방부(方趺)는 높이 9㎝, 앞면 75㎝, 측면 40㎝이다. 비석 앞면에는 ‘목사엄후찬진휼혜선비(牧使嚴侯讚賑恤惠善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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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에 있는 조선 말기 이기홍을 봉안한 사당. 옥산사는 주자(朱子), 송시열과 함께 직재(直齋) 이기홍(李其洪)을 모시고 봄과 가을에 제향하는 사당이다. 옥산사는 본래 괴산군 연풍면 원통리에 있던 문산서원을 1908년에 복원한 사당이다. 문산서원이 흥선대원군 때 서원 철폐령으로 폐쇄되자 40여 년 뒤인 1908년에 사액서원의 철폐를 애석하게 생각한 유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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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 운곡서원 입구에 세워진 조선시대 하마비. 하마비는 그 앞을 지날 때에 신분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내용을 새긴 석비(石碑)이다. 주로 관아(官衙), 향교(鄕校), 서원(書院), 사우(祠宇) 등의 입구나 능묘(陵墓) 앞에 세워져 경의를 표하도록 하였다. 음성군에는 운곡서원(雲谷書院) 외 음성향교(陰城鄕校), 지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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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문(旌門). 윤기손·윤기진 형제 효자문은 윤기손(尹起巽)·윤기진(尹起震)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효자문으로, 형제의 효자문과 윤득성 처 청풍김씨(淸風金氏)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청풍김씨 열녀문이 같이 있다. 칠원윤문 효열각(漆原尹門 孝烈閣) 또는 칠원윤씨 효열각(漆原尹氏 孝烈閣)이고도 한다. 윤기손·윤기진 형제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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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전통 가옥. 국가국가민속문화재 제143호로 지정된 음성 공산정 고택은 문화재 지정 당시 명칭이 ‘음성 서정우 가옥’이었으나 마을 이름인 공산정을 반영하여 2007년 1월 29일부로 현 명칭인 음성 공산정 고택로 명칭이 바뀌었다. 건축 연대는 19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나, 안채 상량문에 ‘단군기원후사이오칠갑자년칠월(檀君紀元後四二五七年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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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년 주희를 제향하기 위해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건립된 서원. 운곡서원(雲谷書院)은 1602년 충주목사 정구(鄭逑)[1543~1620]가 주자학을 집대성한 주희(朱憙)[1130~1200]를 제향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1990년 12월 14일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삼성면 용성리의 서원말 북쪽 산의 능선이 끝나는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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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온 유교는 인(仁)으로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 이후 고려를 거치면서 조선왕조로 들어와 국가 지배 이념으로 기능하기도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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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통일신라 또는 고려 전기의 모전석탑. 음성 오층모전석탑은 원래 읍성읍 읍내리 교동 음성향교 앞 도로 건너편에 있었던 폐사지에 있었다. 그러다가 1946년에 수봉초등학교 교정으로 옮겨졌다. 그 후 1995년 현재의 위치인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향토자료전시관 서쪽 광장에 자리 잡게 되었다. 단층으로 되어 있는 기단은 2매석으로, 사각형의 지대를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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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전통가옥. 음성 잿말 고택은 조선 중기 무신으로 유명한 이완 대장의 생가라는 설도 있고, 3백여 년 전 이익이 세웠다고도 전해지나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 확인할 방법은 없다. 사랑채의 상량문에 적힌 ‘대한광무오년신축이월초칠일신시상량(大韓光武五年辛丑二月初七日申時上樑)’이라는 문구로 보아 1901년(고종 5)에 신축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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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4년 주응동이 주희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하여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에 건립한 사당. 태교사의 설립자인 주응동(朱應東)의 본관은 신안(新安)이고 자는 광여(光汝)이다. 음성 출신으로, 주희(朱憙)[1130~1200]의 26대손으로 알려져 있다. 태교사는 1744년(영조 20)에 주응동이 조선 초기의 문신 김여지(金汝知)[1370~1425]가 명에서 가져온 주희의 영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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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 있는 1930년대 전통가옥. 생극면 팔성리는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누어져 있는데, 음성 팔성리 고가는 아랫마을인 말마리에 있는 전통가옥이다. 말마리로 들어서서 골목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음성 팔성리 고가를 볼 수 있다. 음성 팔성리 고가가 지어질 당시인 1930년경에는 넓은 대지(약 2,706㎡) 위에 안채와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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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지방 국립 교육 기관. 조선시대 음성 지역의 지방교육을 담당했던 음성향교는 1560년(명종 14) 지금의 음성읍 석인리에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1647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대성전 정위에는 공자(孔子)를 모시고, 양편에는 4성(四聖), 곧 안자(顔子)·증자(曾子)·자사(子思)·맹자(孟子)를 배향하고, 동벽과 서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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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조선시대 하마비(下馬碑). 음성향교 하마비는 그 앞을 지날 때에 신분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말을 새긴 석비(石碑)이다. 주로 관아(官衙), 향교(鄕校), 서원(書院), 사우(祠宇) 등의 입구나 능묘(陵墓) 앞에 세워져 경의(敬意)를 표할 수 있게 한 비석이다. 음성군에는 음성향교(陰城鄕校),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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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바위에 새겨넣은 글자. 음애(陰崖)는 바위에 글자를 새겨놓았다고 전해지는 조선 중기의 문신 이자(李耔)의 호이다. 음애(陰崖)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햇빛이 비치지 않는 낭떠러지’를 의미한다. 음애동 각자는 이자가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위치한 음애동(陰崖洞)에 거주하면서 새겨놓았다고 전한다. 글자는 ‘음애동(陰崖洞)’이라는 글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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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대풍리의 한독의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 의학서적. 『의방유취(醫方類聚)』는 1445년(세종 27) 왕명에 의해 편찬된 한방의학 백과사전이다. 한독의약박물관 소장본은 1477년(성종 8) 금속활자로 다시 찍어낸 총 266권 264책 가운데 201권 1책으로 1996년 보물 제1234호로 지정되었다. 1442년 세종(世宗)[1397~1450]은 의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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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광하의 효자각. 본관이 우봉(牛峰)인 이광하(李光夏)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느 해, 한겨울에 아버지가 잉어를 먹고 싶다고 하자 얼음을 깨고 잉어를 구하여고 애를 쓰는데,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이 와서 한 자가 넘는 잉어를 주고 갔다. 또 어느 해인가는, 어머니가 꿩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여 꿩을 잡으려고 깊은 산중으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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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이구령의 충신문. 본관이 성주(星州)인 이구령(李龜齡)은 임진왜란 때 홍천현감으로 조헌(趙憲) 휘하에 들어가 활약하다 금산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금산 전투에서 순절한 사실이 나중에 조정에 알려져 1905년에 명정되었는데, 충신각은 1980년에 세워졌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정려 안쪽의 편액에는 ‘충신효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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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삼생리에 있는 조선 말기 장석영의 효자문. 본관이 단양(丹陽)인 장석영(張錫永)은 충신 장충범의 후손으로,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기로 근동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어느 해 아버지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면서 간호를 하고, 어머니가 병이 났을 때는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 안으로 흘려 넣어 낫게 하였다. 이윽고 부모가 죽어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는데, 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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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활동한 장충범의 신도비. 장충범은 자는 효칙(孝則), 본관은 단양(丹陽)으로, 생원 장언구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군자감주부로서 충주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부상당하여 향리인 삼생리로 피신하여 치료를 받았다. 1597년(선조 30)에 동지를 규합, 창의하여 삼생리 구진터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1605년(선조 38)에 교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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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삼생리에 있는 조선 중기 장충범의 충신문. 본관이 단양(丹陽)인 장충범(張忠範)[?~1597]은 임진왜란 때 군자감주부로 충주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부상당하여 향리인 삼생리에 와서 피신하며 치료하였다. 1597년(선조 30) 동지를 규합, 창의하여 삼생리의 구진터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1605년(선조 38)에 선무원종공신녹권을 하사받고, 1857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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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2리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정국량의 묘비. 정국량은 본관이 초계(草溪)이며, 자는 공거(公擧)이다. 부친상을 당하여 시묘(侍墓)하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 마을 사람들이 모두 피난을 갔으나 정국량은 초막(草幕)을 떠나지 않았다. 이를 본 왜적이 정국량의 효성에 감동하여 물침기(勿侵旗)를 주었다. 이로 인하여 임진왜란 때에도 효(孝)를 다할 수 있었다.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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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국량의 효자각. 본관이 초계(草溪)인 정국량에게는 정국주, 정국추, 정국노, 정국빈 등의 형제가 있었다. 모두 효성이 뛰어나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오효자라고 불렸으나 그중 정국량의 효성이 단연 돋보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 정국량의 부친이 오랜 질병 끝에 돌아가셨는데, 마침 장례도 치르지 못한 상황에서 왜병이 마을로 쳐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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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규영의 효자비. 정규영의 호는 일옥(一玉)으로, 죽계(竹溪) 정창(鄭昌)의 후손이며 감역(監役) 정효선(鄭孝善)의 아들이다. 자는 명여(命汝)이며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일찍이 서울로 올라왔다가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이 일어난 뒤에 고향으로 내려와 부모를 봉양하였다. 모친의 사후 3년 동안 상복을 벗지 않았고, 부친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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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에 있는 조선 말기 정운영의 효자각. 본관이 초계인 정운영은 일찍부터 공부를 많이 하여 학문이 깊었으나 과거를 보아 출사를 하게 되면 부모님을 봉양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오직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하여 과거를 보지 않았다. 어느 해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정성껏 간호하였으나 낫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잉어가 특효약이라는 말을 들었으나 겨울이라 잉어를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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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인상의 효자비. 정인상의 본관은 초계(草溪)이며, 호는 위은(渭隱)이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극진하였다. 정인상은 새로운 음식이 생기면 먼저 어른에게 드렸고 아침, 저녁에는 반드시 문안을 올리는 등의 효행을 하였다. 8대에 걸친 조상의 묘소를 치산하고 비석을 세우기도 하였다. 또한 후진 양성을 위하여 일옥도장을 세우고 후세를 교육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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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유학자 정조헌(鄭祖憲)을 기리는 비. 음성향교 전교(典校)였던 정조헌(鄭祖憲)의 본관은 초계이며, 자는 성륜(聖倫)이고, 호는 구봉(九峯)이다. 시조 광유후(光儒候)의 31세손이고 효자 위은 정인상(鄭寅尙)의 아들로, 어머니는 효부 현풍곽씨이다. 정조헌은 평생 윤리와 도덕을 몸소 실천하고 유도(儒道) 진흥에 심신을 바쳤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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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정현석의 선정비. 정현석은 철종 대의 음성현감이었으며, 자세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비문으로 보아 음성현감 재직 때 선정을 베풀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정비는 1860년(철종 11)에 세워졌고, 현재 음성향교 앞에 다른 비석군들과 함께 있다. 총 높이는 129㎝이며 비신과 개석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신(碑身)은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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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충도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조용하와 열녀 평택임씨의 효열각. 본관이 순창인 조용하와 처 평택임씨는 아버지가 병환으로 의식이 불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의식을 돌아오게 하였다. 그후 언젠가는 조용하가 병이 들어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자 부인 임씨가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병을 낫게 하였다. 이와 같은 효행과 효열이 세상에 알려지자 고종 때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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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에 있는 조선 중기 조유안의 효자문. 조유안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극진하게 모셔 근동에서는 하늘이 내린 효자라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어느 해 아버지가 병이 나자 향을 피우고 하늘에 아버지 대신 죽기를 빌면서, 아버지의 변을 손에 받아 맛을 보면서 병을 간호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이 차도를 보이지 않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먹여서 소생시켰다. 그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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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조형의 신도비. 조형은 자가 군헌(君獻)이고 호는 취병(翠屛)이다. 1603년(선조 36)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고, 1643년(인조 21)에 부교리를 역임했다. 1650년(효종 1) 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으로 『인조실록(仁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했고,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통신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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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의 동남향 골짜기에는 음성군에서 가장 큰 사찰이자 가장 많이 알려진 사찰, 미타사가 자리 잡고 있다. 충주와 청주를 잇는 국도 36호선으로 가다 보면 동양 최대 크기의 지장보살입상이 금방 눈에 띈다.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미타사로 옮겨지는데, 마치 지장보살의 중생 구제에 의 강렬한 염원이 사람들을 미타사로 이끄는 것 같다. 미타사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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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지천서원(知川書院)의 시초는 조선 중종 때 이조참판을 지낸 김세필(金世弼)[1473~1533]이 벼슬에서 물러난 뒤 팔성산 아래에 지은 초옥으로, 김세필은 이곳에서 산수를 벗삼아 여생을 보내며 후학을 교육하였다고 한다. 초옥은 당시 충주목사 박상(朴祥)의 재정적 도움으로 건립되었는데, 박상은 자주 김세필을 찾아와 격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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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 지천서원 입구에 세워진 하마비(下馬碑). 하마비는 그 앞에서는 신분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석비(石碑)이다. 주로 관아(官衙), 향교(鄕校), 서원(書院), 사우(祠宇) 등의 입구나 능묘(陵墓) 앞에 세워 경의(敬意)를 표하게 하였다. 음성군에는 지천서원(知川書院), 음성향교(陰城鄕校), 운곡서원(雲谷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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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 충청북도 음성 지역은 충청북도 천주교의 메카였다. 충청북도 전역에 천주교가 확산되는 교두보가 되었으며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곳이다. 천주교의 한국 전래는 청나라 당시 북경에 온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가 계기가 되어 이루어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인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돌아와 이벽, 정약전 등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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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대풍리 한독의약박물관에 있는 고려 왕실의 약 그릇. 고려시대에 왕실의 약 조제를 담당하던 상약국(尙藥局)에서 사용하던 약 그릇으로 현재 한독의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청자상감상약국명합은 뚜껑 달린 원통형의 그릇으로, 높이 9.6㎝, 아가리 지름 7.5㎝, 밑지름 6.0㎝의 합이다. 키가 크고 원통형이며, 전체적으로 단순한 모양이다. 그릇 아래쪽과 뚜껑 위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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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개최되는 문화 예술과 향토 민속 전승 및 특산물 홍보 잔치. 설성문화제는 2007년에 제26회를 맞았으며, 음성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축제이다. 향토 문화를 발전시키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선현들의 얼을 담아 민속 행사를 시연하여 군민의 총화를 기하는 데 목적을 두고 1982년부터 매년 음성문화원이 개최하고 있다. 음성군민이 각 읍·면별로 참여하는 종합적 예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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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있는 조선 말기 순국 열사 박세화를 기리는 사당. 본관이 밀양인 박세화(朴世和)[1834~1910]는 1895년(고종 32) 일본 낭인에 의해 명성황후가 살해되자 분개하여 도사 윤응선(尹膺善)과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체포되었다. 그후 석방되어 음성읍 동음리 등지에서 학문에 전념하며 찾아오는 문도(門徒)들을 가르치다 1910년 한일합방이 이루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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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조인옥(趙仁沃)의 사우. 조인옥은 본관이 한양이며, 자가 군계(君啓)로, 판도판서(版圖判書) 조돈의 아들이다. 1373년(공민왕 22)에 음보(蔭補)로 산원(散員)이 되었고, 1387년(우왕 13)에는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를 거쳐 이듬해 이성계의 휘하에서 종군하였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구세력 숙청에 가담하였다. 정도전 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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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성당은 1896년 프랑스 임가밀로 신부에 의해 충청북도에서는 첫번째, 국내에서는 18번째로 세워진 성당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문맹 퇴치를 위해 매괴학교를 설립하여 우리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준 성당이기도 하다. 또한 감곡성당은 100여 년간의 한국 천주교와 감곡성당의 발자취가 담겨있는 각종 유물들이 전시하고 있어 한국 천주교사 뿐만 아니라 우리 근대사에 많은 영향을 준 역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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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양식의 정자. 음성군 소재지에서 청주 쪽으로 가는 국도 36호선 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가면 우측편에 위치한다. 마을에서 보면 오른쪽 앞쪽의 들판 한가운데에 있는 조그만 언덕 위에 동서향으로 서 있다. 충효정(忠孝亭)의 원래 이름은 피금정(披襟亭)으로, 약 3백 년 전에 세워진 정자이다. 피금정이란 더운 여름날 온몸에 땀이 흘러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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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 있는 현풍곽씨의 효열 행적을 기리는 비. 1969년 성균관 유림에서 추천하여 정인상의 아들인 정조헌이 1978년 건립한 비각인 상모각(常慕閣) 안에 시아버지인 효자 정일옥의 효자비, 정규영 효자비, 남편인 정인상 효자비와 함께 놓여 있다. 비 앞면에는 ‘효부유인현풍곽씨기적비(孝婦孺人玄風郭氏紀蹟碑)’라고 쓰여 있다. 현풍곽씨의 효열 사실은 『한국효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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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효열각은 윤기손, 윤기진 형제의 효성과 윤득성의 처 청풍김씨의 정절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윤기선, 윤기진 형제는 부모에 효성이 극진하였다. 어머니가 병으로 드러 누워 있으면서 고생을 하였는데 한여름에 기러기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그래서 신령님께 열심히 백일기도를 드린 결과 기러기 고기를 구하여 드리고 어머니가 운명하기 직전에 자기 손가락을 잘라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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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의 안가마골에 있는 무송윤씨의 재실. 원남면 하노리에 무송윤씨(茂松尹氏)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3백여 년 전이다. 당시 무송윤씨의 시조인 윤양비(尹良庇)의 14대손 윤청(尹暒)이 현종(顯宗) 때 경상북도 상주에서 살다가 원남면 하노리 능촌에 세거한 것이 처음이다. 희암재(希庵齋)는 1965년에 세운 것으로, 희암(希庵)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