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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1981
한자 陰城 -古宅
영어의미역 Historic House in Jaenmal, Eumseong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 239-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민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통가옥
건립시기/일시 조선 후기|1901년(고종 5)연표보기
정면칸수 사랑채 6칸|안채 중앙 4칸|안채 7칸
측면칸수 사랑채 2칸|안채 중앙 1칸|안채 2칸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 239-1 지도보기
소유자 김주태
문화재 지정번호 국가민속문화재 제141호
문화재 지정일 1984년 1월 10일연표보기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전통가옥.

[개설]

음성 잿말 고택은 조선 중기 무신으로 유명한 이완 대장의 생가라는 설도 있고, 3백여 년 전 이익이 세웠다고도 전해지나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 확인할 방법은 없다. 사랑채의 상량문에 적힌 ‘대한광무오년신축이월초칠일신시상량(大韓光武五年辛丑二月初七日申時上樑)’이라는 문구로 보아 1901년(고종 5)에 신축된 건물로 볼 수 있으나, 안채에 남아 있는 가구의 기법으로 보아 안채는 건축 연대가 조금 더 올라가는 19세기 중엽의 건물로 추정된다. 충주목사를 역임한 참판 박규희 가문이 오랫동안 거주하여 박참판 댁으로도 불린다.

[위치]

장호원에서 음성 쪽으로 가는 국도 3㎞ 지점에서 좌측으로 마을길을 따라 2㎞ 정도 들어가면 낮은 언덕 밑으로 전통가옥 한 채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 가옥이 바로 음성 잿말 고택이다.

[변천]

음성 잿말 고택의 초기 모습은 19세기 중엽에 T자 형태의 안채만으로 이루어진 가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후 1901년(고종 5) 앞쪽 담장과 함께 사랑채가 지어져 지금의 모습인 ‘工’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음성 잿말 고택은 1984년 1월 10일 전통가옥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국가민속문화재 제141호로 지정된 이래 3회에 걸쳐 보수가 이루어졌다. 1989년 안채와 사랑채, 일각문 보수를 시작으로 1992년 사랑채 보수와 근래에 축조된 광채 보수, 1995년 자연석 화방벽과 자연석기단 설치 등의 보수를 걸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음성 잿말 고택은 전체가 남향으로 정지하고 있으며, 바깥마당에 2단의 자연석 석축을 쌓아 사랑채를 올리고 그 뒤로 담장을 축조하여 안채와 분리된 형태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사랑채 담장 뒤쪽으로 T자 형태의 안채가 위치하여, 사랑채와 함께 보면 工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안채의 서쪽이 앞마당이 되고 동쪽이 뒷마당이 되는데, 안채의 뒤편으로 길게 뻗은 뒤꼍이 다시 마련되어 있으며, 안채의 안마당 서쪽에는 담장에 붙여서 헛간채를 배치시키고 있다.

집안 출입은 사랑채 서쪽의 대문을 통하여 안마당 앞의 담장에 설치된 일각문으로 통행하도록 지어졌으며, 안채의 뒷마당은 부엌을 통하여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랑채 뒤편과 안채 앞담장 사이에 형성된 공간은 조그만 사이마당으로 여유가 있으며, 사랑채 동쪽 끝에서 담장으로 구획하는 대신 내문을 설치하였다.

안채의 평면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평면을 먼저 축조한 후 중앙 부분에 정면 4칸, 측면 1칸을 덧붙여서 전체적으로 T자 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정면의 7칸 중 중앙의 1칸과 전면으로 뻗은 부분은 모두 온돌방으로 꾸며 안방과 윗방으로 사용하고, 좌측면 3칸에는 2칸의 대청과 1칸의 건넌방을, 우측면 3칸에는 1칸의 대청과 2칸의 온돌방을 각각 놓아 별당채로서의 기능을 갖도록 하였다.

사랑채의 평면은 전면 6칸, 측면 1칸 반의 팔작지붕을 가진 전형적인 고건축 양식을 보이고 있다. 전면 좌측 1칸은 측면에서 출입할 수 있도록 대문을 둔 대문칸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두 번째 칸은 전체 1칸 반을 반으로 나누어서 전면 쪽으로는 조그만 방으로 사용하고, 후면 쪽으로는 하부에 아궁이를 둔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 상부는 온돌방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다락으로 사용한다. 세 번째·네 번째 칸은 온돌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다섯 번째 칸은 우물마루를 둔 대청으로 사용하며, 나머지 여섯 번째 칸은 대청보다 턱이 높은 온돌방(사랑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세 번째 칸부터 여섯 번째 칸까지는 전면에 반 칸 정도의 우물마루로 짠 툇마루를 두었다.

[현황]

현재 음성 잿말 고택에는 실거주자가 없는 상태로, 음성군과 연계하여 관리만 이루어지고 있다. 사랑채를 정면에서 보았을 경우 우측으로 국문 및 영문, 일문 표기의 음성 잿말 고택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음성 잿말 고택의 T자 형 안채는 경기 지방의 사대부 집안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형태로, 이러한 구조의 가옥이 음성 지역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할 수 있다. 또다른 특이점을 들자면, 2단으로 쌓은 높은 축대 위에 사랑채가 가리는 시설 없이 당당하게 축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지체가 높은 사대부집이긴 하지만 건축연대가 떨어지는 집에서 볼 수 있는 건축양식으로, 조선시대 전통가옥 양식의 변천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6.26 문화재 용어 변경 현행화 중요민속문화재 -> 국가민속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