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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동음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음성읍에서 서쪽으로 약 6㎞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신천리와 소여리, 서쪽으로는 맹동면, 남쪽으로는 삼생리, 북쪽으로는 감우리 보현산과 각각 접하고 있다. 바깥섬이는 섬이 바깥쪽에 있다 하여 ‘바깥’이라는 명칭과 함박산, 옥녀봉, 매봉재 세 봉우리 중앙에 있다 하여 ‘스미’라 불러 두 명칭이 합해진 것이다. 원래 음성군 근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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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석인리에 있는 평야. 음성읍의 평곡리와 석인리의 음성천 유역에 있는 평야 지역이다. 음성팔경의 하나로 평곡리 토계울 냇가의 고기잡이와 풀피리 소리(兎溪漁笛, 토계어적)를 들고 있을 정도로 경치가 좋은 곳이다. 바다뫼(해산)가 변하여 바다미라고 불리기도 한다. 평곡리 토계 앞의 바다뫼들 냇가에서 바다 미역을 채취하였다는 미역바위 전설이 있다. 현재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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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석인리에 있는 평야. 음성읍의 평곡리와 석인리의 음성천 유역에 있는 평야 지역이다. 음성팔경의 하나로 평곡리 토계울 냇가의 고기잡이와 풀피리 소리(兎溪漁笛, 토계어적)를 들고 있을 정도로 경치가 좋은 곳이다. 바다뫼(해산)가 변하여 바다미라고 불리기도 한다. 평곡리 토계 앞의 바다뫼들 냇가에서 바다 미역을 채취하였다는 미역바위 전설이 있다. 현재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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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 있는 산. 산의 형태가 마치 스님의 탁발그릇과 같이 둥글게 생겼다 하여 발산(鉢山)이라고도 한다. 바래미산[149m] 밑에는 용이 승천하였다는 용담(일명 용소)이 있는데 용담의 바위에는 ‘용담’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용담의 서쪽에는 작은 용담산이 있고 북쪽에는 용담들이 있다. 바래미산 남쪽에는 모양이 납짝하고 작은 납작산이 있다. 바래미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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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의식 개혁 운동을 주도하는 사회 단체. 바르게살기운동은 인간의 진정한 인간됨을 위한 범국민적 의식 개혁 운동으로 우리 민족에게 면면히 내려오는 훌륭한 민족 정신과 문화적 전통을 발전시켜 21세기에 맞는 사회 규범 체계와 새로운 문화의 재창조, 건전한 국민 정신을 확립하기 위한 올바른 의식과 가치관을 기르자는 정신 운동이다. 정직한 개인, 더불어 사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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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봉현리에 있는 산. 옛날에 한 석수장이가 두 개의 큰 바위가 있던 곳에서 돌을 캐다가 돌에서 피가 나면서 갑자기 죽게 되어 돌을 캐는 일을 중단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산에 두 개의 큰 바위 뿐만 아니라 많은 바위들이 있어 붙어진 이름이다. 맹동면 봉현리 향촌 북쪽에 있으며 서쪽에는 봉현리천이 흐른다. 봉현리천은 소속리산[432m] 서북쪽의 금왕읍 오선리와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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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한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박갑동의 치적을 기리는 비. 박갑동 시혜비는 1940년에 세워진 비(碑)로서, 박갑동은 농민들에게 자신의 토지를 빌려주고 소작료를 적게 받거나 면제해 주는 등의 자선 사업을 한 인물이다. 총 높이는 127㎝로, 3단으로 이루어진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112㎝, 앞면 45㎝, 측면 18㎝이고, 가첨석(加檐石)은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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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 자는 우경(虞卿). 박순(朴淳)의 현손이다. 할아버지는 박윤진(朴胤陳), 아버지는 박유겸(朴惟謙)이며 부인은 함양여씨이다. 박계는 1568년(선조 원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고, 벼슬은 감역(監役)에 이르렀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상곡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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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박대식은 1939년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밀양이다. 음성중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63년 충청북도 재정과 근무를 시작으로 1964년 음성군 재무과에서 근무하였으며, 1965년에는 진천군 재무과에서 근무하였다. 1972년 음성군 지적계장을 역임하였고 1976년 지적기사(地籍技士)로 승진하였다. 1990년 지방지적기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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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박서(朴犀) 장군의 21세손이며 아버지는 박시중(朴時中)이다. 박대현은 조선 후기의 선비로 전우(田愚)의 문인(門人)으로 학문을 좋아하고 덕이 많았으며, 학문과 덕을 실천하였다. 고종 때 장릉참봉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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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열녀이자 효부. 박도연(朴道淵)의 처(妻)이다. 교생(校生) 박도연의 처 이씨(李氏)는 시부모 공양에 극진하여 효부로서 칭찬이 자자했다. 어느 해 봄에 이웃집에 불이 났는데 박도연의 집까지 옮겨 붙었다. 때마침 농사철이라 마을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불이 난 것을 본 이씨는 사당(祠堂)에 들어가 우선 신주(神主)를 가져오고, 이어서 방에 들어가 시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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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박래동은 1915년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순천이다. 음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1년 음성명륜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32년 음성군 내무과 근무를 시작으로 1952년 영동교육구청 서무과장, 1954년 충청북도 음성교육청 서무과장, 1962년 제천군 재무과장, 1966년 음성군 재무과장을 두루 거쳤다. 19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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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강지(綱之), 호는 유서(柳墅). 박경세(朴慶世)의 아들로 박응한(朴應漢)에게 입양되었다. 박래복은 양부모를 극진히 섬겨 충주 유림에 의해 효자로 추천되었다. 그는 효가문에 이름이 올라 아버지 박응한, 조부 박준흠, 증조부 박정규, 고조부 박진구, 현조부 박호원, 아들 박지혁까지 음성 인물에 등재되었다. 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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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자복(子復). 박서(朴犀) 장군의 18세손이다. 아버지는 사정(司正) 박흥한(朴興漢)이다. 박래양은 1823년(순조 23)에 정시(庭試) 문과(文科)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벼슬이 정언(正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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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생원. 본관은 음성. 자는 득지(得之). 박서(朴犀) 장군의 18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첨지 박취도(朴就道)이고, 아버지는 박경세(朴慶世)이다. 박래태는 1786년(정조 10)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으나, 그 해 28세로 아깝게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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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字)는 창세(昌世), 호(號)는 눌재(訥齋). 아버지는 성균관진사 박지흥(朴智興)이고, 어머니는 생원 서종하(徐宗夏)의 딸이다. 박상은 성품이 강직·충정하였으며 문장이 뛰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강직하며 몸가짐이 정숙하여 언행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1496년(연산군 2)에 진사가 되었고, 1501년(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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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죽산(竹山). 귀주대첩에서 공을 세워 음성백(陰城伯)에 봉해진 후 음성박씨(陰城朴氏)의 시조가 되었다. 아버지는 호부상서(戶部尙書) 박인석(朴仁碩)이다. 박서는 무과에 급제한 후 1202년(신종 5)에 아버지가 진주도 안찰부사(按察副使)로 도적을 평정한 공에 의해 내시(內侍)로 근무하게 되었다. 봉선고판관(奉先庫判官)에 임명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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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박선구는 1906년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고령이다. 서울 배재학당을 수료하였다. 1948년 생극면장에 임명되어 1949년까지 재임하였다. 1959년에 생극면장에 재임용되어 1960년까지 재임하는 동안 지역 사회 발전과 면민 복지 행정에 공헌하였다. 1984년 11월 78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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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사장(士章), 호는 시각(柴閣). 조부는 지평 박정완(朴廷琓)이다. 아버지는 박장흠(朴長欽)이다. 박성한은 조선 정조 때에 성균관 유생으로 1801년 감제시(柑製試)에서 수석을 차지함으로써 바로 전시(殿試)를 보게 하였다. 이듬해 초시 문과(文科)의 병과(丙科)에 합격하여 벼슬이 헌납(獻納)에 이르렀다. 사랑과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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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밀양. 자는 연길(年吉), 호는 의당(毅堂). 묵재(黙齋) 박경상(朴景祥)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박기숙(朴紀淑)이다. 함경남도 고원군 남흥리에서 태어났다. 1860년(철종 11) 어머니의 병환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소생시켰다. 1870년(고종 7) 향리 사람들이 그 효성에 감동하여 포상을 진정하려 하자 부끄럽다며 진정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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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음성박씨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 박서(朴犀) 장군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증병조참판 박흔(朴昕)이고, 부인은 횡성윤씨로 윤의손의 딸이다. 박숙달은 1462년(세조 8) 추장문과에 정과로 급제하고 1465년 사관으로 경연에서 『논어(論語)』를 강하였다. 1476년(성종 7) 사헌부지평, 1478년 사헌부장령, 의정부사인을 거쳐 동년 10월 문례관이 되었고, 14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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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음성박씨 출신의 문신.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음성군 명묘조(名墓條)에 등재되어 있다. 본관은 음성(陰城). 충민공 박순(朴淳)의 손자이며, 증참판 박흔(朴昕)의 둘째아들이다. 형은 박숙진(朴叔蓁)이며, 아들은 박윤진(朴胤陳)이다. 박숙무(朴叔楙)는 1467년(세조 13) 12월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한 공로로 1469년 사헌부감찰이 되었고, 1471년(성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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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음성박씨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정지(挺之). 음성백 박서(朴犀)의 7세손이고, 함흥차사로 알려진 박순(朴淳)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박흔(朴昕)이며, 동생은 박숙무(朴叔楙)이다. 박숙진(朴叔蓁)[1424~1481]은 1447년(세종 29) 사마시에 급제하고, 1453년(단종 1)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55년 권지정자(權知正字)로 벼슬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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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 음성백 박서의 7세손이다. 조부는 충민공 박순(朴淳), 아버지는 증참판 박흔(朴昕)이다. 부인은 해주오씨로 생원 오시준(吳時俊)의 딸이다. 1465년(세조 10) 춘시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1467년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어 병장설(兵將說)을 강하였다. 이어 경상도 도사(都事)에 이르렀으나 일찍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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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이자 음성박씨의 선조. 본관은 음성(陰城). 고려 평장사(平章事) 박서(朴犀)의 후손이며 시랑(侍郞) 박문길(朴文吉)의 아들이다. 효자문이 남아 있는 박호원(朴浩遠)이 박순의 아들이며 대사헌까지 지낸 박숙채(朴菽蔡)가 손자이다. 조선 중기의 선비인 박유겸(朴惟謙)은 박순의 후손이다. 박순의 처 장흥임씨(長興任氏)는 고려시대 대사헌(大司憲) 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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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 살았던 열녀. 본관은 장흥(長興). 고려시대 대사헌(大司憲) 임헌의 딸이며, 박순(朴淳)의 처이다. 1402년(태종 2) 함흥차사로 함주(咸州)로 내려간 남편 박순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매일 목욕재개하고 하늘에 기원하였으나, 끝내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하였다. 태종은 이 소식을 듣고 임씨의 묘지를 하사(下賜)하였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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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건립된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 있는 음성박씨 선조 박순의 사당. 박순 충신문은 박순 사당이라고도 하며, 2002년 5월 18일 음성군 향토문화유적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음성박씨(陰城朴氏)의 선조인 박순은 1388년(우왕 14) 요동 정벌 때 이성계 휘하에서 종군하였다. 위화도 회군에 앞서 이성계의 명으로 회군 승인을 얻기 위해 우왕에게 갔던 박순은 조선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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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건립된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 있는 음성박씨 선조 박순의 사당. 박순 충신문은 박순 사당이라고도 하며, 2002년 5월 18일 음성군 향토문화유적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음성박씨(陰城朴氏)의 선조인 박순은 1388년(우왕 14) 요동 정벌 때 이성계 휘하에서 종군하였다. 위화도 회군에 앞서 이성계의 명으로 회군 승인을 얻기 위해 우왕에게 갔던 박순은 조선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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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음성. 자는 계칠(季七). 박서(朴犀) 장군의 20세손이다. 아버지는 박기혁(朴基赫)이고, 형은 박시중(朴時中)이다. 박시재는 향리에서 인과 효, 의로 추앙을 받았으며, 1882년(고종 19) 성균관시에 51세로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 청룡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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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음성(陰城). 자(字)는 희천(希天), 호는 오촌(梧村). 박서(朴犀) 장군의 20세손이고, 박기혁(朴基赫) 아들로 태어났으나 큰아버지 박지혁(朴趾赫)에게 양자로 입양되었다. 자기가 사는 오류골의 이름을 따서 호를 정하였다. 박시중은 어질고 효행이 깊었으며, 온화하고 공손하며 겸손하였다. 누구라도 착하지 않으면 사귀지 않았고, 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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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선비. 본관은 밀양. 자는 경견(敬絹), 호는 입재(立齋). 정조 대의 명신 매곡 박한규의 6세손이다. 아들로 박석원과 박두원이 있다.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하였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로 이주하였다. 15~16세 때 회당 윤응선에게 수학하여 학문에 탁월하였다. 일제의 학정에 세상의 뜻을 버리고 은거하여 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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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음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 자는 겸지(謙之). 박순(朴淳)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박윤진이고, 부인은 문화유씨 사정 유세장(柳世長)의 딸이다. 박유겸은 생원으로서 선공감역(繕工監役)을 역임하였다. 묘소가 경기도 광주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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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음성. 자는 경지(敬之). 고조부는 충민공 박순(朴淳), 아버지는 박윤진(朴胤陳)이다. 부인은 해평윤씨로 사과 윤렬(尹洌)의 딸, 그리고 전주이씨로 군수 이회(李檜)의 딸이다. 박유경은 부친에게 공부하여 문장을 잘 짓고 학우가 많았으며, 효행이 지극하여 명정(命旌)되었다. 장사랑(將仕郞)으로 있던 1519년(중종 14)에 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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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의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음성(陰城). 자(字)는 성원(聲元), 호(號)는 만오(晩悟). 효자 박정규(朴廷珪)의 손자이고, 박준흠(朴俊欽)의 아들이다. 박응한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가 염병에 걸리자 하늘에 빌며 정성을 다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면서 잉어를 얻어 봉양하여 어머니의 병을 고쳤다. 또 어머니의 비병(痹病)을 침으로 고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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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이자 순천박씨 음성 입향조.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여구(汝久). 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박원상(朴元象)이고, 아들은 단종 때 중부녹사(中部錄事)를 지낸 박추(朴樞)이다. 박팽년(朴彭年)은 그의 종손(從孫)이다. 박장생은 문과에 급제한 후 이조판서를 거쳐 대제학(大提學)에 이르렀으나 만년에는 개성윤(開城尹)에서 물러나 산수(山水)를 소요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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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음성. 자는 여구(汝久). 충민공 박순(朴淳)의 12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진사 박성구(朴聖龜), 아버지는 지평 박정완(朴廷琓)이다. 부인은 문화유씨 유철모의 딸로 정조 때 정려를 받았다. 박장흠은 1754년(영조 30) 소과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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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열녀. 문화유씨 유철모(柳喆謨)의 딸로, 충민공 박순의 12세 손인 박장흠(朴長欽)과 혼인하였다. 아들이 없어 박양흠(朴亮欽)의 둘째 아들 박성한(朴聲漢)이 입계하였다. 박성한이 문행이 있어 벼슬이 헌납에 이르렀다. 문화유씨는 열행(烈行)이 있어 1794년(정조 18) 정려가 내려졌다.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 세워졌던 정려문은 소실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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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공하(公夏), 호는 삼평와(三平窩). 현감 박경진(朴敬鎭)의 아들이다. 박재순은 1774년(영조 50) 37세에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1783년(정조 7) 46세에 식년 병과 문과로 급제하여 수찬(修撰)·응교(應敎)·좌승지(左承旨)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그 후 1790년(정조 14)에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박재순이 쓴 책으로 『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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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순 할머니는 1940년생으로 용띠이다. 경기도 이천 율면 출신으로, 율면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3개월 수업료가 쌀 서 말이었는데 너무 비싸서 부모님이 1년만 가르치고 오라버니만 학교에 보내서 졸업을 하지 못했다. 3남매 중 막내로, 오빠하고 7살, 언니하고 11살 차이가 난다. 원래 오빠가 한 명 더 있었는데 홍역 때문에 어릴 때 죽었다. “그 아래 아들이 있었는데, 홍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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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음성(陰城). 자(字)는 헌지(獻之), 호(號)는 이락(二樂). 충민공 박순(朴淳)의 11세손이고, 효자 박호원(朴浩遠)의 손자이며, 동지중추부사 박진구(朴震龜)의 아들이다. 박정규는 후제 김간(金幹)에게 배우고, 1721년(경종 1)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선릉참봉(宣陵參奉)을 지내다가 아산현감(牙山縣監)에 이르렀다. 어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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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박정시는 1916년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수태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대소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금왕면 근무를 시작으로 공직자의 길로 들어섰다. 1957년 처음으로 실시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대소면장으로 피선되어 고향 발전을 위하여 헌신하다가 1961년 퇴임하였다. 퇴임 후 독농가로 영농에 힘쓰다 고향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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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음성. 자는 기옥(其玉), 호는 인암(仁庵). 음성박씨 시조 박서의 22세손이고, 충민공(忠愍公) 박순(朴淳)의 18세손이다. 할아버지는 박시중(朴時中), 아버지는 장릉참봉 박대현(朴大鉉)이다. 부인은 전주이씨로 이인창(李寅昶)의 딸이다. 아들로 박충근(朴忠根)과 박형근(朴瀅根)이 있다. 1887년(고종 24) 출생하였다. 효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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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음성. 자는 기옥(其玉), 호는 인암(仁庵). 음성박씨 시조 박서의 22세손이고, 충민공(忠愍公) 박순(朴淳)의 18세손이다. 할아버지는 박시중(朴時中), 아버지는 장릉참봉 박대현(朴大鉉)이다. 부인은 전주이씨로 이인창(李寅昶)의 딸이다. 아들로 박충근(朴忠根)과 박형근(朴瀅根)이 있다. 1887년(고종 24) 출생하였다. 효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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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제성(朴濟成)[1902~1970]은 박서 장군의 21세 손이고 박중현(朴中鉉)의 아들로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4월 2일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서 민병철, 박영록 등과 만세 시위를 계획, 추진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0일 청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90대를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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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교육자. 박제익(朴齊翼)은 1881년(고종 18) 사립 광명학교를 음성향교 내에 설립하고 아동 교육을 하였다. 1909년 8월 31일 정식 인가를 받아 사립 광명학교를 설립하여 설립자 겸 교장이 되었으며, 보통과와 일어를 가르쳤다. 1910년의 수업 연한은 4년이었고, 교원 3명에 학생 수는 35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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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에 음성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고령. 자는 길보(吉甫), 호는 설초(雪樵). 아버지는 승지(承旨)를 지냈던 박준우(朴浚遇)이다. 35세인 1864년(고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교하현감과 횡성군수를 지냈다. 이때 여러 치적이 있어서 군민들에게 만인산(萬人傘)을 받았다. 79세 되던 해인 1908년(순종 2) 3월 12일 음성군수로 부임하였다가 8월 29일 그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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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덕삼(德三), 호는 정산(貞山). 박화철(朴和喆)의 아들이다. 박준우는 1844년(헌종 10) 39세로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수찬(修撰)·교리(校理)를 거쳐 1850년(철종 1) 50세에 좌승지가 되었다. 이어 5년 뒤에 사간원대사간이 되었다. 박준우의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소여리(所餘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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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덕여(德汝), 호는 입암(立庵). 박서(朴犀) 장군의 16세손이고, 아버지는 아산현감 박정규(朴廷珪)이며, 어머니는 경주이씨 장령 이행민의 딸이다. 박준흠은 어려서부터 글을 좋아하여 한번 읽은 글은 반드시 기억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또한 성장하면서 경학을 연구하였고, 의문점은 도암 이재와 여호 박필주에게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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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건립된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 있는 음성박씨 선조 박순의 사당. 박순 충신문은 박순 사당이라고도 하며, 2002년 5월 18일 음성군 향토문화유적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음성박씨(陰城朴氏)의 선조인 박순은 1388년(우왕 14) 요동 정벌 때 이성계 휘하에서 종군하였다. 위화도 회군에 앞서 이성계의 명으로 회군 승인을 얻기 위해 우왕에게 갔던 박순은 조선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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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여진(汝進), 호는 죽남(竹南). 아버지는 부사용 박상채(朴尙彩)이다. 도암(陶菴) 이재(李縡)에게 배웠는데, 학문을 좋아하며 대의를 위한 절개가 있었다. 1721년(경종 원년) 태학생 윤지술(尹志述)의 피화 사건을 듣고는 더 이상 서울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고기를 잡고 나무를 하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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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이자 정치가. 박해룡은 1917년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삼성공립보통학교(三成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였다.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면사무소에서 공무원을 시작하였으며, 주로 음성군 지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였다. 4년간 삼성면장을 역임한 후 퇴임하였으며, 그 후 삼성면 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면의원에 당선되었다. 삼성면 의회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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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육영사업가. 순천박씨 중시조 대제학 박숙정(朴淑貞)의 20세손이고, 부사과 박종현(朴宗鉉)의 아들이다. 이조판서를 지낸 박장생(朴長生)이 사육신 사건 때 화를 입어 설성(雪城)에 유배된 뒤 은둔하면서 후손들이 대대로 살게 되었다. 1940년에 육영사업을 위하여 쌀 500석을 내놓았고, 음성보통학교(현 수봉초등학교) 강당을 새로 지었다. 음성고등실습학교(현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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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교육 공로자 박해일의 기념비. 박해일의 본관은 순천(順川)이며, 음성 수봉초등학교 부지를 일부 희사한 교육 공로자이다. 박해일 교육공로기념비는 1943년에 세워졌다. 총 높이는 185㎝이며 3단으로 구성되었다.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145㎝, 앞면 55㎝, 측면 25㎝이고, 가첨석(加檐石)은 높이 49㎝, 앞면 102㎝, 측면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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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인이자 효자. 본관은 음성(陰城). 자(字)는 천경(天卿), 호(號)는 면헌(勉軒). 충민공(忠民公) 박순(朴淳)의 8대손이다. 박호원은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문인(門人)이다. 문예(文藝)에 뛰어나고 필법이 정교했다. 1618년(광해군 16)에 창경궁이 중건(重建)되자 문 위에 거는 편액(扁額)을 썼다. 광해군은 이 글씨를 보고 가상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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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박정규와 박호원의 정려문. 박호원과 박정규는 충민공 박순(朴淳)의 후예이며, 박정규는 박호원의 손자이다. 박호원의 효자문은 1725년(영조 1)에 하사되었으며, 박정규의 효자문은 1743년(영조 19)에 하사되었다. 1689년(숙종 15)에는 충민공의 부조묘인 박순 사당, 박순 충신문, 박순의 처 장흥임씨의 열녀문을 이곳에 지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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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 자는 도기(道器). 아버지는 박근순(朴謹淳)이다. 26세 때인 1780년(정조 4)에 음보(蔭補)로 인릉참봉(仁陵參奉)이 되었고 1801년(순조 1) 화순현감으로 부임하여 초하루와 보름에 청소년을 모아 향약을 베풀고 경서를 강의하였다. 문장이 뛰어나고 글을 잘하여 명성이 높았고 효자로도 널리 알려졌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충도리 벳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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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자앙(子昻). 박서(朴犀) 장군의 12세손이고, 아버지는 사과(司果) 박충준이다. 아들로는 박문욱·박문술·박문빈·박문형·박문성의 다섯 명이 있다. 1605년(선조 38)에 이질수(李質粹) 화변에 무고로 연루되었다가 광해군 때 교부(校簿)가 되었다. 1613년(광해군 5) 폐모 후에 “비록 미물이라도 충효를 능히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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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찬교(讚敎) 또는 원춘(元春), 호는 홍암(弘菴). 시조 반충(潘忠)의 19세손이다. 조부는 설포 반진홍(潘鎭洪), 아버지는 두산 반달순(潘達淳)이다. 부인은 옥구장씨(沃溝張氏)로 장기화(張基華)의 딸과 단양장씨(丹陽張氏)로 장동관(張東觀)의 딸 그리고 순천박씨(順天朴氏)로 박두현(朴斗鉉)의 딸이다. 1903년에 법부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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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경찰 공무원. 반국운은 1908년에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청안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어린 나이에 일찍 경찰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강원도 정선경찰서장(旌善警察署長)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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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매년 4월에 개최하는 마라톤 대회. 반기문전국마라톤대회는 음성군 육상경기연맹이 주관하고, 음성군과 문화관광부, 충청북도, (주)스포츠서울21 등이 후원하는 마라톤 대회이다. 5㎞, 10㎞, 하프코스, 풀코스 등 4개 부문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2004년 10월 제84회 전국체육대회를 충청북도에서 개최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1회 전국음성품바마라톤대회를 개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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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대경(大卿), 호는 두산(斗山). 아버지는 반진홍(潘鎭洪)이고, 형은 반필순(潘弼淳)이며, 아들로는 반시동(潘始東)·반혁동(潘爀東)이 있다. 반달순은 문장과 학문에 있어 사람들이 아버지 반진홍, 형인 반필순과 함께 삼소(三蘇)라고 칭하였다. 아들 반시동과 반혁동도 문장과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묘는 충청북도 음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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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복원(服元), 호는 난파(蘭坡). 주부 반운익(潘雲翼)의 8세손이고, 반경제(潘景濟)의 아들이다. 반면주는 음성문묘 중수 때 도유사로 책임을 완수했고, 향시시관(鄕試試官)을 네 번이나 역임했다. 가풍이 있는 집안에서 자라 탁월한 품행으로 이름을 떨쳤다고 전하는데, 당시 음성현감 정현석(鄭顯奭)은 ‘겸손한 마음은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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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붕거(鵬擧). 아버지는 반인경(潘仁慶)이고, 부인은 보성오씨로 진사 오행원의 딸이다. 아들은 반윤기(潘潤沂), 반윤국(潘潤國), 반윤수(潘潤洙)이다. 반명익은 향년 91세까지 장수하여 수직(壽職)으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 해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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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1924년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서 태어났다. 음성공립농업전수학교를 졸업하였다. 소이부면장과 원남부면장을 역임하였고 1960~1961년 원남면장을 역임하였다. 1969년 원남면장으로 재임용되어 1981년까지 근무하였다. 오랜 기간 면장을 맡으면서 많은 지역 현안 사업을 처리하여 면민의 신임을 받았다. 퇴임 후에는 공화당 관리장과 민주정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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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 정착한 광주반씨 입향조.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평보(平父). 아버지는 반서린(潘瑞麟)이다. 형은 판서 반석평(潘碩坪)이다. 1507년(중종 2)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여러 차례 대과에 응시하지 못한 채 1540년(중종 35) 율봉찰방에 제수되었다. 1545년(인종 1) 사온직장, 1547년(명종 2) 내자시주부로 승진하였다. 영춘현감(永春縣監)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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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공문(公文)이며, 호는 송애(松崖). 아버지는 반서린(潘瑞麟)이다. 원래 재상가의 종이었으나 재상이 반석평의 재주와 성품을 사랑하여 글을 가르치고 아들 없는 부잣집으로 보내 공부에 힘쓰게 하였다.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김식(金湜) 등과 교유하였다. 1507년(중종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어 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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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반석평의 묘소. 반석평은 천얼 출신임에도 당상관에 오른 조선 중종 때의 인물로, 반서린(潘瑞鱗)의 둘째아들이며, 1472년(성종 3)에 태어났다.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공문(公文), 호는 송애(松崖)이다. 제8대 유엔사무총장이 된 반기문이 반석평의 16세손이다. 본래 경기도 남양주군 와부면 조안리에 있었던 묘를 음성군 원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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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희순(羲舜), 호는 죽재(竹齋). 판서 반석평(潘碩坪)의 후손이며, 반진두(潘鎭斗)의 아들이다. 반성순은 학식이 뛰어나 향리에서 신망이 두터웠고, 후학들로부터 추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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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백실(伯實), 호는 직재(直齋). 아버지는 현감 반윤기(潘潤沂)이다. 부인은 임천조씨(林川趙氏)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문장이 뛰어나 세상에 알려졌다. 관계(官階)가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 능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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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찬교(讚敎) 또는 원춘(元春), 호는 홍암(弘菴). 시조 반충(潘忠)의 19세손이다. 조부는 설포 반진홍(潘鎭洪), 아버지는 두산 반달순(潘達淳)이다. 부인은 옥구장씨(沃溝張氏)로 장기화(張基華)의 딸과 단양장씨(丹陽張氏)로 장동관(張東觀)의 딸 그리고 순천박씨(順天朴氏)로 박두현(朴斗鉉)의 딸이다. 1903년에 법부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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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백거(伯擧). 증조는 현감 반석권(潘碩權), 아버지는 반인후(潘仁後)이다. 부인은 천안전씨로 전욱(全郁)의 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반인후(潘仁後)를 따라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왜적과 싸우다가 아버지가 말에서 떨어지자 아버지를 업고 적의 포위를 뚫고 나왔다. 충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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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성칠(成七). 시조 반충(潘忠)의 18세손이고, 통덕랑 반세영(潘世榮)의 9세손이다. 아버지는 반진국(潘鎭國)이다. 어머니는 경주이씨(慶州李氏)로 이현도(李賢道)의 딸이다. 부인은 충주최씨(忠州崔氏)이다. 아들로 반필동(潘必東)·반한동(潘漢東)·반회동(潘淮東)이 있다.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가 돈독하여 향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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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도원(道源). 아버지는 반명익(潘溟翼)이다. 1617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다. 1646년(인조 24)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648년(인조 26)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춘추관기주관(春秋館記註官), 호조정랑·형조정랑을 거쳐 흥양현감과 회덕현감을 지냈다. 1674년 향년 58세로 사망하였다.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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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성지(聖之), 호는 고산(孤山). 아버지는 반정익(潘廷翼)이다. 1626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다. 송시열의 문인이다. 아버지가 아프자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세 번이나 손가락을 끊어 피를 내어 먹였다. 재주와 인품이 훌륭하고 문장이 뛰어나 향리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았다. 과거를 보지 않고 학문에 몰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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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인.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효선(孝先). 할아버지는 반석권(潘碩權)이며,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반사렴(潘士濂)이다. 1557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였고 효성이 깊었다. 1598년(선조 31) 효행으로 천거되어 국자감주부(國子監主簿)에 제수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정경세(鄭經世), 이준(李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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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응선(應先), 호는 국오(菊塢). 할아버지는 반석권(潘碩權)이며,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반사렴(潘士濂)이다. 1555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다. 1591년(선조 24)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명경과(明經科)의 『대학(大學)』에서 떨어진 뒤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글에만 전념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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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반인후의 묘. 반인후의 자는 응선(應先), 호는 국오,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음성현감 반석권의 손자이고, 선무랑(宣務郞) 반사렴(潘士濂)의 아들로 음성 지역에 거주하였다. 1591년(선조 24) 식년사마시(式年司馬試)에 생원 3등 25위로 입격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공을 세웠으며, 벼슬은 군자감첨정에 이르렀다. 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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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반종황은 1902년에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서 출생하였다. 음성공립보통학교(陰城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였으며, 1948년부터 1956년까지 8년간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면장을 역임하였다. 특히 6·25전쟁 중 지역 행정 업무를 원활히 수행하면서 민심을 잘 수습하여 주민들의 두터운 신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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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제향(濟鄕). 조부는 반윤기(潘潤沂)이고, 아버지는 반계영(潘啓榮)이다. 반주석은 1720년(숙종 46)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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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치정(致楨), 호는 현포(玄圃).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반석평(潘碩坪)의 13세손이다. 아버지는 반우택(潘禹澤)이고, 형은 반진홍(潘鎭洪)이다. 반진간은 효도와 우애로 덕망이 있어 사우간에 공경을 받았다. 고종 때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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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치우(致于), 호는 설포(雪圃). 초명은 진정(鎭楨)·진홍(鎭鴻).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반석평(潘碩坪)의 13세손이다. 아버지는 반우택(潘禹澤)이고, 동생은 반진간(潘鎭幹)이다. 반진홍은 문학이 뛰어났으며 사람됨이 단정하고 말이 적었다. 고종 때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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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반창섭은 1905년에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 성동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광복 후 1945년부터 1946년까지 충청북도 음성군 초대 원남면장으로 재직하며, 혼란한 행정 정국을 잘 이끌어 음성 지역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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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광주. 자는 계실(季實). 아버지는 현감 반윤기(潘潤沂)이다. 1690년(숙종 16) 반최영은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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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열경(說卿), 호는 사산(司山).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반석평(潘碩坪)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반진홍(潘鎭洪)이다. 반필순은 문장에 능하고 덕행이 있어 사우간에 추앙되었다. 성균관 과거에 합격하여 통덕랑(通德郞)이 되었으며, 1892년(고종 29) 음성향교 장의(掌議)로 있다가 1893년 금영 이시에 1등으로 뽑혔으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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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 있는 산. 산의 형태가 마치 스님의 탁발그릇과 같이 둥글게 생겼다 하여 발산(鉢山)이라고도 한다. 바래미산[149m] 밑에는 용이 승천하였다는 용담(일명 용소)이 있는데 용담의 바위에는 ‘용담’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용담의 서쪽에는 작은 용담산이 있고 북쪽에는 용담들이 있다. 바래미산 남쪽에는 모양이 납짝하고 작은 납작산이 있다. 바래미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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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초천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음성읍에서 서쪽으로 약 4㎞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신천리와 접하고 있다. 밤나무재는 예전에 밤나무가 많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음성군 근서면 지역으로 냇가에 풀이 많아 풋내, 또는 초천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덕전리를 병합하여 초천리라 하고 군내면에 편입되었다가, 그 후 음성면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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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사 를 창건한 명안 스님의 뒤를 이어 현재 미타사의 주지 스님을 맡고 있는 희원 스님(57세)을 만나서 미타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희원 스님은 명안 스님을 만나게 된 이야기, 미타사 창건 이야기 등의 미타사가 건립되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보고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희원 스님이 미타사의 주지 스님이 되기까지 겪었던 고단한 삶의 자취에 대해 많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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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능산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방귀에 관한 유희요. 결혼한 여성들이 주로 부르던 노래로, 시댁 식구들의 특징과 미국, 일본, 우리나라를 방귀에 비유하여 표현하였다. 전국에 걸쳐 많이 불리는 유희요 중 하나이며 유희요의 특성상 지역적 특색이 드러나지 않는다. 2행씩 대구를 이루고 있으며 3음보이다. 방구야 진두야 나가신다/방구 하고도 나가신다 시아버님 방구는 호령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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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사정1리 강당말 마을회관을 방문했을 때, 할머니방에는 많은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할머니들게 “할머니들 옛날 얘기 좀 해 주세요.” 하자 할머니들은 그런 것 다 잊어버렸다며 선뜻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누구 옛날 얘기 잘하시는 분 없으세요.”라고 다시 물으니 “그런 거 이 이가 잘해” 하며 한 할머니를 가리켰다. 바로 이진희 할머니(29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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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방금이는 대소면 소재지에서 서북쪽으로 약 4㎞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태생리, 서쪽으로는 대풍리, 남쪽으로는 삼호리, 북쪽으로는 삼성면 청용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지형이 거문고를 놓아둔 형상이라 하여 놀 ‘방(放)’자에 거문고 ‘금(琴)’자, 그리고 마을 ‘리(里)’자를 써서 방금리라 했으며, 앞산과 뒷산에 산림이 울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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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은 ‘돌려라 돌려라’를 보여준 다음에 ‘방망이 점 놀이’를 보여주었다. 방망이점 놀이는 ‘춘향아씨 놀이’라고도 하는데 방망이를 들고 있는 사람에게 신이 내려서 점을 치기도 하고 숨긴 물건을 찾아내기도 하는 놀이이다. 놀이 방식은 여러 사람이 빙 둘러앉고 그 가운데 한 명이 방망이를 거꾸로 들고 앉아 땅에 대고 다음과 같은 주문 형태의 노래를 부른다. 천해 천해 천하장군 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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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이 독자적으로 갖는 언어 체계와 특이한 언어 현상. 방언이란 기원적으로 균질적인 한 언어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역적·사회적으로 분화되어 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화를 일으킨 형태를 말한다. 한편으로는 특정 언어 집단에서 쓰이면서 다른 언어 집단의 언어 체계와는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 한 언어의 변종(變種)이자 변이체(變異體)를 일컫기도 한다. 이 중에서 특정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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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내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금왕읍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8㎞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각회리, 서쪽으로 사창리, 남쪽으로 쌍봉리, 북쪽으로 구계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마을 앞에 방죽이 있어 방죽말이라 한다. 원래 충주군 법왕면 지역이었는데,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제내리, 수곡리, 고봉리를 병합하여 제내의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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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한벌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음성읍에서 동쪽으로 약 2㎞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소이면 비산리, 서쪽으로는 읍내리와 용산리, 남쪽으로는 수정산, 북쪽으로는 가섭산과 각각 접하고 있다. 예로부터 마을에 방죽이 있어 방죽안이라 불렀다. 원래 음성군 동도면 지역으로, 큰 벌판이라 하여 한벌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한상리와 한하리를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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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에 속하는 행정리. 방죽이 있어 방죽말·방축말 또는 방축동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야곡리 일부를 병합하고 방축리라 하여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수리산[605m] 밑에는 능안이 있고 서쪽으로 약 2㎞ 떨어진 곳에는 방축말이 있다. 방축말 동쪽에 함박골과 쇠죽골,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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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원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방축동에 야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방축리라는 명칭으로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방축말을 안말이라고도 한다. 마을 뒤 북쪽으로 낮은 산이 있으며, 마을 남쪽과 서쪽으로는 응천이 흐르고 있어 농경지가 잘 발달되어 있다. 방축말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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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동에서 북동쪽으로 부용산의 얕은 산줄기가 있는데, 이곳을 넘으면 음성읍 용산리 숯고개가 나온다. 산의 형상이 배를 닮았다 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물이 흐르는 듯한 소리가 땅속에서 크게 들리는 듯하여 배너미라 불렀다 한다. 배너미에 대한 전해 오는 이야기를 용대동 이방우 할아버지(27년생, 81세)는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옛날 천지가 개벽을 할 때 음성읍 가섭산이 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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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쌍정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맹동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함박산, 남쪽으로 두성리, 서쪽으로 본성리, 북쪽으로는 마산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원래 충주군 맹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정리와 하정리, 중본리, 율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맹동면에 편입되었다. 쌍정리는 상정리와 하정리 이름에 ‘정’자가 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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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백거(伯擧). 증조는 현감 반석권(潘碩權), 아버지는 반인후(潘仁後)이다. 부인은 천안전씨로 전욱(全郁)의 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반인후(潘仁後)를 따라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왜적과 싸우다가 아버지가 말에서 떨어지자 아버지를 업고 적의 포위를 뚫고 나왔다. 충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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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삼정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대소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4㎞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소석리, 서쪽으로는 삼호리, 남쪽으로는 미곡리, 북쪽으로는 오산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원래 충주군 대조곡면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5월 19일 도령고시 제29호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백금리, 상한리, 오산리, 정곡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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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사정1리 강당말의 마을 사람 이야기를 조사하기 위해 마을의 경로회장을 맡고 있는 김장일 할아버지(1937년생, 소띠) 댁을 방문하였다. 김장일 할아버지의 일생 이야기를 듣던 중 병원에 다리 치료를 받으러 갔다 온 할머니가 들어왔다. 박재순(68세, 용띠) 할머니는 경기도 이천군 율면 월포리 출생으로 김장일 할아버지의 당고모가 중매를 섰다고 한다. 처음에는 말이 별로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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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백도(伯道), 호는 국우재(鞠又齋). 할아버지는 권징(權徵), 아버지는 현령 권경(權憬)이다. 1616년(광해군 8)에 출생하였다. 수직(壽職)으로 수의좌위부사위(修義佐衛副司尉)를 받았다. 우암 송시열의 문하에서 김운곡(金雲谷)·정포옹(鄭抱翁)과 교유가 두터웠다. 1655년 향년 40세로 별세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본대리 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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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신후재가 수학하던 곳. 백련서재는 조선 숙종 때 한성부판윤을 지낸 서암 신후재(申厚載)[1636~1699]가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던 장소이다. 신후재는 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 때 유배되었다가 1697년(숙종 23)에 석방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와 살았다. 서재(書齋) 앞 연못에 백련 꽃이 있는데, 이는 신후재가 청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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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주봉리에 있는 동굴. 조선시대 전설에 의하면 백마굴은 백마산(白馬山)[465m] 중턱의 백마굴에서 백마가 나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어린 장수가 괴산군 사리면 매바위의 윤씨 가문에서 태어나서 3일이 되었는데 아이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닭이 울기 전에 아이가 들어왔다고 한다. 하루는 어머니가 아이 몰래 뒤를 쫓아가보니 아이가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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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 있는 고개. 옛날 어느 장수가 괴산군 사리면의 매바위 윤씨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3일이 지나자 아이가 없어졌다가 닭이 울기 전에 다시 돌아오곤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뒤를 따라 가보니 아이가 큰 동구나무를 훌훌 뛰어넘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의 겨드랑이를 보니 날개가 있어 이 아이를 그대로 두면 후환이 있을까 두려워 날개를 떼니 아이가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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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주봉리에 걸쳐 있는 산.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주봉리와 괴산군 사리면과 군계를 이루고 있는 명산이다. 고문헌에는 음성군 남쪽 20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사계절 경치가 아름다워 소금강이라 칭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마산의 산 중턱에는 백마굴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백마굴에서 백마가 나왔다고 해서 붙어진 산의 이름이다. 백마산의 높이는 379.2m이며,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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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 있는 고개. 옛날 어느 장수가 괴산군 사리면의 매바위 윤씨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3일이 지나자 아이가 없어졌다가 닭이 울기 전에 다시 돌아오곤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뒤를 따라 가보니 아이가 큰 동구나무를 훌훌 뛰어넘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의 겨드랑이를 보니 날개가 있어 이 아이를 그대로 두면 후환이 있을까 두려워 날개를 떼니 아이가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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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 있는 고개. 옛날 어느 장수가 괴산군 사리면의 매바위 윤씨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3일이 지나자 아이가 없어졌다가 닭이 울기 전에 다시 돌아오곤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뒤를 따라 가보니 아이가 큰 동구나무를 훌훌 뛰어넘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의 겨드랑이를 보니 날개가 있어 이 아이를 그대로 두면 후환이 있을까 두려워 날개를 떼니 아이가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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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일 할아버지와 박재순 할머니의 방 서랍장 위에 놓여있던 몇 장의 종이에 「백발가」라고 쓰여진 것을 보고 “할머니 이거 할머니가 쓰신 거예요?” 하고 여쭙자 “어 이거 내가 심심할 때 부르는 거예요” 하며 종이를 손에 거머쥐었다. 예전에 시어머니가 「백발가」를 배우고 싶어서 서울에 사는 동생 집에서 가지고 온 것을 당시 중학생이던 셋째 딸한테 따로 옮겨 적으라고 했다. 시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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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백선(伯善), 호는 남강(南岡). 서예가 유한지(兪漢芝)의 손자이며, 사복시판관 유능환(兪能煥)의 형이다. 1849년(헌종 15) 진사가 되고 1863년(철종 14) 문과에 급제하였다. 학문이 깊고 문장에 능하며 선대 3대의 필법(筆法)을 이어받아 글씨가 정묘(精妙)하였다. 벼슬에 나아가 정언, 교리, 사성, 승지, 대사간을 거쳐 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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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1리에 있는 조선시대 이유일의 묘비. 이유일은 이란의 아들이며, 자는 백순(佰淳)이다. 죽은 뒤에 품계가 높아져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追贈)된 인물이다. 이유일에 대한 상세한 기록한 남아 있지 않다. 비신과 방부 2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높이가 172㎝이다.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140㎝, 앞면 폭 52㎝, 측면 폭 37㎝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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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백실(伯實), 호는 직재(直齋). 아버지는 현감 반윤기(潘潤沂)이다. 부인은 임천조씨(林川趙氏)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문장이 뛰어나 세상에 알려졌다. 관계(官階)가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 능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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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속리산 밑이 되므로 배태·배터 또는 백야가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촌(上村)·중촌(中村)·하촌(下村)·속리(俗離)를 병합하고 백야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금왕읍으로 승격되었다. 남쪽에 소속리산[43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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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백야리에 있는 산림욕장. 백야리 산림욕장 근처의 속리뿌리(하촌)는 용계저수지의 축조로 수몰되었지만 옛날부터 풍수지리설에서 중히 여기던 곳 중에 하나이다. 백야리 산림욕장의 오른쪽에는 해발 432m의 소속리산(小俗離山)이 솟아 있고 왼쪽에는 242m 고지와 346m 고지 등이 있으며 뒤쪽에는 331m 고지가 있다. 소속리산은 고문헌에서 가섭산의 줄기라 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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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백야리 윗배태에서 매년 음력 1월 3일에 지내는 산신제. 윗배태는 금왕읍에서 남쪽으로 3㎞ 지점에 위치하며 소속리산 아래 자리하고 있다. 백야리 윗배태 산신제는 마을 형성 때부터 지내온 것으로 추정되며, 제당은 마을에서 약 1㎞ 정도 떨어진 피난골에 있다. 제당의 형태는 큰 소나무가 있는 바위로 이곳에서 산제를 지낸다. 매년 정월 초사흘 자정에 지냈다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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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백오(伯五). 정숙공(貞肅公) 김인경(金仁慶)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사예(司藝) 김예원(金禮源)이다. 김숭종은 일찍이 초시에 급제하여 생원으로 학문에 전념하면서 조광조·김정과 함께 경학을 토론하였다. 1519년(중종 14) 4월에 별시문과에 합격하였고 조광조가 신진사류를 기용할 때 기용되었다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쫓기다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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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의 백운사 옛 절터에 있는 고려 전기의 부도. 백운사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절터에 있는 ‘백운사사적비’가 1692년(숙종 18)에 건립된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때 화재로 폐사된 이후 17세기에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흙 속에 매몰된 부도는 어느 때, 누가 만든 것인지 전혀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부도의 양식으로 보아 임진왜란 전인 조선 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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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운사(白雲寺)의 내력을 적은 비. 백운사는 사적비에 의하면 임진왜란 이전 작은 암자였으나 병화(兵火)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 후 백운사가 중건되면서 사적비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절터는 잡목이 우거지고 서축 일부만 남아 있다. 1692년(숙종 18) 8월에 전 승지(承旨) 한구(韓搆)가 비문을 짓고, 면천군수(沔川郡守) 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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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상곡리·양덕리에 걸쳐 있는 산. 삼성면 용성리·상곡리·양덕리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당목리에 걸쳐 있으며 높이는 345m이다. 고문헌에 의하면 음성군 서쪽 50리에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한 도승이 안성군 이죽면 칠장사(七長寺) 법당에서 영롱한 빛을 따라 서운산(瑞雲山) 남쪽 중턱에 찾아와서 그곳에 서운암을 세워 절이 융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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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선정리에 있는 (주)백조씽크의 생산품 제조공장. 기업 발전과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자 건립되었다. 1964년 4월 삼화금속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으며, 1976년 (주)동유물산으로 법인을 전환하였고, 1984년 팔도씽크 상표 등록을 하였다. 1993년 3월 동유공업주식회사 음성공장을 준공하였고, 1993년 11월 KS마크를 한국표준협회로부터 인증받았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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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백헌(佰憲), 호는 해관(海觀). 아버지는 동래부사를 지낸 정인학(鄭寅學)이다.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으며, 1885년(고종 22) 22살에 증광문과 병과에 급제하였으며, 4년 뒤인 1889년(고종 26)에는 부교리, 사간을 지내고 이듬해에 응교(應敎), 장령(掌令)을 지냈다. 1891년(고종 28) 28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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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우봉. 자는 백화(伯華). 청렴결백한 관리로 이름났던 이형(李涥)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이영(李榮)이고, 아들은 이경(李坰), 손자는 이경선(李慶善)이다. 부모가 병석에 눕자 부모의 변을 맛보아 가며 증세를 살폈고, 매일같이 하늘에 빌며 부모의 병이 낫기를 빌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생선을 먹고 싶다고 하였으나 갑자기 구할 도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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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 아버지는 김흥우(金興宇)이다. 김육(金堉)은 9세 때 아버지 김흥우의 임지인 강동(江東)으로 따라가서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의 문하에서 배웠다. 그러나 잇달아 상(喪)을 당하여 상제로 7~8년간을 지내며 곤궁하게 떠돌아다니다가 25세 때 장가들고, 1605년(선조 38)에 진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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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초천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음성읍에서 서쪽으로 약 4㎞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신천리, 서쪽으로는 동음리, 남쪽으로는 원남면 덕정리, 북쪽으로는 소여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원래 음성군 근서면 지역으로 냇가에 풀이 많아 풋내 또는 초천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덕전리를 병합하여 초천리라는 명칭으로 군내면에 편입되었고, 그 후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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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대사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삼성면 소재지에서 서북쪽으로 약 4㎞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양덕리, 남쪽으로는 상곡리, 서쪽으로 안성시 이죽면 용설리, 북쪽으로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범말이라고도 하며, 마을 앞에 벌판이 있어 벌말이라 한다. 원래 충주군 지내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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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생극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4㎞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차곡리, 서쪽으로는 송곡리, 남쪽으로는 신양리, 북쪽으로는 방축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수레들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진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벌말이라고도 한다. 원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한 지역으로 수레의산 밑에 있는 들이라 수레들, 또는 차평이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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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음성읍에서 북쪽으로 약 6㎞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용산리, 서쪽으로는 금왕읍 백야리, 남쪽으로는 감우리, 북쪽으로는 육령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강당말 서쪽에 있고 벌판에 마을이 있어 벌터라 한다. 원래 음성군 근서면 지역으로, 모래우물이 있어 모래물, 또는 사정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강당리, 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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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대사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삼성면 소재지에서 서북쪽으로 약 4㎞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양덕리, 남쪽으로는 상곡리, 서쪽으로 안성시 이죽면 용설리, 북쪽으로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범말이라고도 하며, 마을 앞에 벌판이 있어 벌말이라 한다. 원래 충주군 지내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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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는 보이지 않고 마을을 지나 부용산 쪽으로 오르면 밭들이 나오는데 여기서 조금 올라오면 옛날 집터들이 나타난다. 이곳에 서서 부용산을 바라보면 부용산 봉우리 9부 능선 좌측으로 바위가 보이고 그 바위에 굴이 있는데 이 굴을 범의 굴이라 한다. 예전에 땔나무가 귀할 때에는 마을 사람들은 범의 굴까지 나무를 하러 갔다고 한다.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는 범의 굴에 대해 다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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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사 에는 현재의 법당을 짓기 전 자리에 매우 커다란 돌배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희원 스님(57세)의 말에 따르면 배나무는 고목이 되기 어려운데, 미타사의 법당 자리에 있던 돌배나무는 그 굵기도 매우 굵어서 참 신기해했었다고 한다. 법당을 짓기 위해서는 돌배나무를 벨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돌배나무를 베게 되었는데, 그 때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었다. 미타사를 창건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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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는 예나 지금이나 강당말과 용대동 마을 사람들의 생업이다. 벼농사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주로 기계화에 따른 변화로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 등을 이용하여 벼농사를 짓는 것이다. 예전의 벼농사와 오늘날의 벼농사에 대하여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52년생, 56세)는 벼농사 전체 과정에 대하여 “우선 벼농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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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이진말에는 물레방앗간이 있었는데, 마을 앞 지역의 4차선으로 확포장한 37번 국도와 37번 국도 구도로 사이에 위치하였다. 오늘날 이진말에는 응천이라는 하천이 있고 문화마을 옆으로 개울이 흐르지만 옛날에는 물이 흔하였다고 한다. 물레방앗간과 물이 흔했던 것에 대하여 이진말마을의 오덕욱 할아버지(35년생, 73세)는 “옆 마을 중말에다가 옛날에 보를 막아가지고선 지금 저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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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변중기의 기념비. 변중기 기념비는 1930년대 읍내리 1구장을 역임한 변중기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기념비이다. 변중기는 읍내리 1구장 역임 이외의 행적은 미상이다. 비는 1936년에 세워졌다. 비신(碑身)의 총 높이는 119㎝이며, 앞면의 폭 41㎝, 측면의 두께 15㎝이다. 비석 앞면에는 ‘읍일구장변중기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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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오선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오선리의 서부 지역에 위치하며, 마을 동쪽으로 용계리, 서쪽으로 유포리 동학골, 남쪽으로 유촌리 머그럭지, 북쪽으로 개오지와 각각 접하고 있다. 개오지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예로부터 별선동이라 부르다가 별산댕이가 되었다. 원래 충주군 금목면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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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강당말에서 김숙자 할머니(36년생, 72세)의 생애 이야기를 듣던 중 나온 이야기이다. 애를 낳았을 때 집 앞에다 금줄뿐만 아니라 황토를 세 군데 놓았는데, 이 황토는 사람이 아플 때도 놓았다고 한다. 사람이 아프면 굿을 했는데, 집 앞에 황토를 세 주먹씩 놓았다. 그러면 그 집에는 아무도 못 들어가는 집이라는 표시가 되었다. 또한 쇠를 손 있는 데다 박아 놓고 복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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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3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석병무는 생극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4㎞ 지점에 있는 병암3리 서쪽에 위치한 자연 마을이다. 남동쪽으로 병암2리의 자연 마을인 만담이 있고, 서쪽으로는 관성리, 북동쪽으로는 병암4리의 자연 마을인 안곤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마을 뒷산에 있는 바위가 병풍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병산리라고도 불린다. 본래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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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에 속하는 행정리. 병산(屛山)의 ‘병(屛)’자와 곤암(昆岩)의 ‘암(岩)’자를 따서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생탕리·도관리와 충주군 생동면 곤지리·병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병암리라 하여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안곤재는 안곤재와 바깥곤재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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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 이진말에서 매년 음력 1월에 지내는 산신제. 이진말은 생극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2㎞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이진봉 아래 자리하고 있다. ‘이진말’이란 명칭은 임진왜란 때 이곳에 진을 친 곳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산제당은 이진말 남쪽 2㎞ 지점인 이진봉 9부 능선 산제당골에 있다. 마을회관에서 약 1.5㎞ 거리에 있다. 당집은 시멘트 벽돌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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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늘상 병원 신세를 지며 살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단양 구인사에 가면 병을 나을 수 있다는 말에 어머니의 권유로 하는 수 없이 단양 구인사를 찾아 갔다고 한다. 교통이 발달되어 있지 않던 시절에 단양 구인사를 아픈 몸으로 찾아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웬일인지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고 한다. “거기를 가는데 그때만 해도 단양에서, 내 집이 충주거든, 충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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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운영되는 기관. 1995년 말 음성군 관내에는 종합병원 1개 소에 병상 수 270개, 병원 2개 소에 병상 수 624개, 의원 14개 소에 병상 수 166개, 치과의원 7개 소에 병상 수 6개, 한의원 2개소가 있었다. 2000년 말에는 종합병원의 경우 변화가 없고, 병원은 3개 소, 병상 수 1,373개, 의원은 31개 소에 병상 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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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 사업을 위해 설치된 공공 기관. 우리나라의 보건 사업은 시대에 따라 주력하는 내용을 달리 해 왔다. 1950년대에는 급성 감염병 관리와 의료 구호에 치중하였고 1960년대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는 급성 감염병 예방과 인구 억제에,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는 진료 기능 강화 및 무의촌 해소에 주력해 왔다. 1990년대 이후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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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이루어지는 국가, 지방자치단체, 보건 의료기관이 국민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증진을 위해 행하는 제반 활동. 보건의료는 크게 공적 영역과 민간 영역으로 나뉜다. 공적 영역은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되며 보건소를 중심으로 한 공중 보건과 보건 사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민간 영역은 사설 의료기관이 주가 되며 대학 병원과 의원을 비롯한 의료기관들이 여기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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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룡리·하당리·덕정리에 걸쳐 있는 산. 음성군 원남면 동부의 평야 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서쪽을 바라보면 크게 보이는 산이므로 일명 큰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보덕산의 높이는 509m이다. 보룡리 새터 뒤에 보덕산이 있는데 모양이 말처럼 생긴 말바위가 있고 새터의 남동쪽에는 안산이 있으며 큰말 북쪽에는 모래봉이 있다. 보덕산의 남사면에서는 덕정천이 서류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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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단양. 자는 보도(普道), 호는 노포(老圃). 문헌공(文獻公) 장정필(張貞弼)의 후손이며 장석문(張錫文)의 아들이다. 장덕우는 부모에 대한 효성이 극진하였으며 형제와 이웃 간에 우애가 돈독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실천함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빌며 눈물을 흘리니 그 눈물이 마르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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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음성군 원서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보천리 일부와 용동을 병합하고 보룡리라 하여 원남면에 편입되었다. 큰말의 북쪽에는 큰산[일명 모래봉, 509m]이 있고 덕정리로 넘어가는 곳에는 팔대 정승이 날 명당이 있다고 하는 팔테고개(팔티고개)가 있다. 새터 뒤에는 보덕산[509m]이 있는데, 보덕산 위에는 모양이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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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룡리 보룡사지에 있는 고려 후기의 석조 불상. 보룡리 석조여래좌상은 머리에는 원형관을 쓰고 있는데, 머리는 나발(螺髮)이며 이마에는 백호(白毫)가 나타나 있고, 귀는 길게 어깨에 닿았으며 얼굴은 풍만하다. 목에는 삼도가 있고 눈과 코, 입은 파손이 심하여 알아볼 수가 없다. 양손은 무릎 위에 놓았고 양발은 결가부좌하여 당당한 자세로 안정감을 준다. 법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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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입춘날 보리뿌리로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 지역에 따라 맥근점(麥根占)이라고도 하는 보리뿌리점치기는 보리농사를 짓는 중부와 남부 지방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풍속이다. 지역에 따라 정월 초하룻날이나 대보름, 동짓날 등 날짜가 다른 지역도 있으나 입춘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음성 지역에서는 생극면과 금왕읍, 원남면 등지에서 입춘에 보리뿌리점을 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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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정월 대보름날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행하던 모의(模擬) 타작놀이. 보리타작놀이라고도 하는 타작놀이는 가농작(假農作), 또는 내농작(內農作)의 일종인 모의 타작놀이이다. 가농작은 풍농을 기원하던 의례적 놀이로, 종류도 다양하고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조선시대에는 농사의 중요성을 알리고 풍농을 기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궁중에서 행한 기록들이 있는데, 민간의 것보다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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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구계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금왕읍 소재지에서 서북쪽으로 약 10㎞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우등산, 서쪽으로 대정리, 남쪽으로 쌍봉리, 북쪽으로 호산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주계비에 딸린 마을로 옛날에 이 마을에서 보습을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 충주군 법왕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궁제리, 구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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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대풍리 강당말에서 발원하여 내산리를 거쳐 호산리로 흐르는 하천. 동부는 대풍리와 삼호리로 이어지는 구릉지가 있고 서부는 진천군 만승면 월성리와 대소면 내산리, 이월면 사당리 등으로 이어지는 구릉지가 있다. 칠장천의 길이는 10.00㎞이며, 유역 면적은 16.16㎢이다. 칠장천으로 유입되는 소하천으로는 방울미천·큰죽골천·증방골천·강당천 등이 있다. 하폭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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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에 속하는 행정리. 보내가에 있었으므로 보내 또는 보천이라 하여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주막촌인 보천점이 번성하여 가촌을 이루어 4일과 9일에 장시가 열렸고 1920년부터 충북선 개통으로 번성하였으나 1970년대에 들어와 음성읍내장으로 흡수되었다. 본래 음성군 원서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조촌리 일부를 병합하고 보천리라 하여 원남면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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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 개미산에서 매년 음력 1월에 지내는 산신제. 개미산은 원남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2㎞ 지점에 위치하며 개미산(예전에는 개의 머리와 비슷하다 하여 견두산이라 함)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본래는 당집이 있었는데 1969년 산림 내 독립가옥 철거 과정에서 철거되었고 현재는 산중턱에 제단만 남아 있다. 매년 정월 초에 날을 잡아 밤 12시에 제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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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있는 음성역에서 관리하는 간이역. 일제강점기 문헌에 보천리는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남쪽으로 20리(약 7,855m)에 위치하고 있고 고읍터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서는 조치원~충주 간 충북선 개통으로 보천역의 서쪽에는 도안역, 동쪽에는 음성역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84년 3월 1일 음성역의 관리역으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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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룡리에 있는 우편·체신·금융을 담당하는 기관. 우체국은 국장의 지위에 따라서 4급(서기관국), 5급(사무관국), 6급(주사국), 7급(주사보국)으로 분류되거나 기능에 따라서 체신청, 우편집중국, 집배국, 무집배국으로도 분류된다. 또한 설립 주체에 따라 일반우체국, 별정우체국, 우편취급소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4급우체국과 5급우체국은 총괄국으로서 기초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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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서 개시되다가 1982년 폐시된 재래 시장. 보천장의 1938년 거래액은 350,868원이었고, 1976년에 들어서는 1일 거래액이 69만 원, 일반 이용자 90명, 고정 상인 8명, 이동 상인 15명 등으로 나타날 정도로 쇠퇴하게 되었다. 보천장은 1980년 시장 면적이 4,455㎡이었으나 점포수는 9개에 불과하였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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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이루어지는 동일한 유형의 우연한 사고 발생 위험에 대비하여 공동의 재산을 비축하고 사고 발생 시 그 공동 재산에서 일정액의 손해를 보상하는 제도. 인간은 끊임없는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러한 위험에는 태풍·홍수·지진과 같은 자연적 위험, 화재·도난과 같은 인위적 위험, 실업·공황과 같은 사회적 위험 등이 있다. 인간이 이들 위험에 대비하는 방법으로는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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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감우리·동음리의 경계에 있는 산. 성주사(聖住寺)라는 절이 있었으므로 일명 성주산이라고도 한다. 보현산 북쪽에는 부용산[644m]이 있으며, 보현산과 부용산 사이에는 사정이고개와 기름고개가 있다. 사정이고개는 음성읍 용산리와 사정리를 연결하는 고개이고 기름고개는 신천리에서 감우리를 지나 사정리로 통하는 고개이다. 『비기』에 의하면 보현산에는 “명당 만인가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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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보현암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조 불상. 보현암 석조약사여래좌상은 한 덩어리의 화강암을 다듬어 주형거신광(周形去身光) 형태로 만들어졌고, 좌불상과 광배를 정교하게 부조하였으며, 뒷면은 둥글게 처리하였으나 정교하지는 않다. 불상의 현존 상태는 오른쪽 하단의 광배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머리에는 낮은 육계가 남아 있고 두건을 쓴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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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보현암에 있는 고려 후기의 석조 불상. 두광과 신광은 5~7㎝ 두께의 양각 선으로 돌렸을 뿐 다른 문양의 조식은 보이지 않으며, 신광(身光)의 하단이 불상의 무릎 위에 닿고 있어 불상에 비해 광배(光背)가 작은 편이다. 머리에는 삼산형(三山形)의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 특이한 양식을 보이며, 보관 밑으로 나온 머리 형태는 소발이다. 상호는 직사각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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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보현암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조 불상. 보현암 석조약사여래좌상은 한 덩어리의 화강암을 다듬어 주형거신광(周形去身光) 형태로 만들어졌고, 좌불상과 광배를 정교하게 부조하였으며, 뒷면은 둥글게 처리하였으나 정교하지는 않다. 불상의 현존 상태는 오른쪽 하단의 광배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머리에는 낮은 육계가 남아 있고 두건을 쓴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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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부재. 탑골의 보현암 주변은 절터로서 많은 기와편과 함께 석불 또는 각종 대석과 석탑 부재들이 산재하여 있다. 보현암 터에서 확인되는 부재는 석탑 부재와 연화대석 등인데, 현재 법당의 남쪽 구석에 쌓여 있다. 석탑 부재는 옥개석 2점과 연화대석은 3점이다. 그 중 1점은 흙에 묻혀 있어 층급받침을 확인할 수 없으나 낙수면이 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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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동 마을 북동쪽으로 700m 지점에 용대동 산신제를 올리는 산제당이 있는 복지골에 폭포가 있는데 이 폭포를 복기암 폭포라 한다. 이 폭포 이름에 대하여 이 마을 이상혁 반장(56년생, 52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폭포는 물이 흘러 떨어지는 바위가 그 모양이 바둑판 같이 넓어. 그러고 보면 알겠지만 그 바위 위에 울퉁불퉁한 돌들이 붙어 있어. 그 모양새가 꼭 바둑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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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군 감곡면 문촌리는 복숭아가 유명한 마을로 농사를 짓는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복숭아나무 재배를 하고 있다. 마을 어디에서든지 붉은 빛의 복숭아나무를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문촌리가 복숭아 마을이라는 것을 뒷받침해 준다. 감곡은 본래 감미곡면(甘味谷面)과 거곡면(居谷面)을 합처 감곡(甘谷)이라 했다. 지명에서 보여주듯 감곡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산물 특히 과실류는 당도가 매우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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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복원(服元), 호는 난파(蘭坡). 주부 반운익(潘雲翼)의 8세손이고, 반경제(潘景濟)의 아들이다. 반면주는 음성문묘 중수 때 도유사로 책임을 완수했고, 향시시관(鄕試試官)을 네 번이나 역임했다. 가풍이 있는 집안에서 자라 탁월한 품행으로 이름을 떨쳤다고 전하는데, 당시 음성현감 정현석(鄭顯奭)은 ‘겸손한 마음은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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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단평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감곡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6㎞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오갑산, 서쪽으로는 노탑리와 청미천, 남쪽으로는 왕장리, 북쪽으로는 여주시 점동면 원부리, 관한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예로부터 한해가 심해 천수(天水)만 기다리는 경우가 많아 복을 많이 받으라는 뜻에서 복자동이라 했다. 원래 충주군 거곡면(居谷面)에 속한 지역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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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음력 1월 초에 한 해의 복을 받기 위해 조리를 집 안에 걸어두는 풍속. 복조리달기는 전국적으로 행해지는 풍속으로, 지역에 따라 섣달 그믐날 밤이나 설날 새벽, 또는 정초에 사서 걸어두는데 음성 지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복조리 달기는 한 해의 복을 쌀알과 같이 조리로 일어 담는다는 유감주술적인 믿음에서 생겨난 풍속이다. 오늘날은 조리를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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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 본리와 응대리에서 ‘본’ 자와 ‘대’ 자, 각 한 자씩을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법왕면(法旺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본리(本里)·응대리(應垈里)·후평리(後坪里)와 금목면(金目面) 장현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본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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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본대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금왕읍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10㎞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신평리, 서쪽으로는 삼성면 천평리, 남쪽으로는 대소면 성본리, 북쪽으로는 행제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본대리에서 으뜸가는 마을로 1560년경 효령대군 증손의 묘가 이 마을에 있어 본리가 되었다고 한다. 본대리는 충주군 법왕면에 속하는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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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생극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4㎞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차곡리, 서쪽으로는 송곡리, 남쪽으로는 신양리, 북쪽으로는 방축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수레들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진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벌말이라고도 한다. 원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한 지역으로 수레의산 밑에 있는 들이라 수레들, 또는 차평이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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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에 속하는 행정리. 『여지도서』 충원현 방리의 기록에 의하면 본성리는 본리를 기초로 이루어진 마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본래 충주군 맹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중돈리·두북리·하본리·중본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본성리라 하여 맹동면에 편입되었다. 중돈에서 신돈리로 넘어가는 곳에는 장고개, 덕삼면 신통리로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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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본성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미륵 석불. 화강암으로 조성한 불상으로, 하부가 땅속에 매몰되어 상반신 상처럼 보인다. 머리에는 원형의 관을 갖추었으며 귀는 가늘고 길게 표현하였고 눈과 코, 입은 심하게 파손되어 형태가 뚜렷하지 않다. 이 불상은 높이가 210㎝, 두고 70㎝, 보개 높이 11㎝, 어깨 폭 100㎝이며, 얼굴은 원만하고 머리에 관을 갖추고 있어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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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본성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미륵 석불. 화강암으로 조성한 불상으로, 하부가 땅속에 매몰되어 상반신 상처럼 보인다. 머리에는 원형의 관을 갖추었으며 귀는 가늘고 길게 표현하였고 눈과 코, 입은 심하게 파손되어 형태가 뚜렷하지 않다. 이 불상은 높이가 210㎝, 두고 70㎝, 보개 높이 11㎝, 어깨 폭 100㎝이며, 얼굴은 원만하고 머리에 관을 갖추고 있어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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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행해지는 서낭신에 대한 제사. 우리나라의 마을은 배산임수를 중심으로 하며, 산을 등지고 남쪽으로 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서낭신을 모시는 서낭당이 있으며 그 옆에 장승이나 솟대가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서낭신은 토지 수호신이며, 마을의 경계 또는 입구를 지켜 주는 신이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마을의 방액(防厄),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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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태생리에 있는 (주)볼빅의 생산공장. (주)볼빅은 골프공 전문 제조업체로 1997년까지 전량 수출만 해 왔으며, 국내 영업은 1998년부터 시작하였다. 골프공의 3대 요소인 비거리, 정확성, 부드러운 타구감을 최대한 충족시키는 골프공 개발에 성공하여 내수 및 수출에서 빠른 성장을 거두고 있다. 2008년 현재 자본금은 20억여 원이며, 매출액은 7억 6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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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 외봉리와 영곡리에서 ‘봉’ 자와 ‘곡’ 자, 각 한 글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리(坪里)·외봉리(外蓬里)·내봉리(內蓬里)·영곡리(靈谷里) 일부와 구개천리 일부를 병합하고 봉곡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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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봉전리에 있는 산. 일명 부용산이라고도 한다. 1757년(영조 33)에 편찬된 『여지도서』충원현(현 충주)조에는 충원현 남쪽 소파면에 봉산리가 있는데, 충원현에서 남쪽으로 40리 떨어진 지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비탈에 닥나무가 많아서 마을 이름을 딱나무비탈·딱비탈·딱비알·딱벌 등으로 부르다가 지금은 댁벌(일명 저전리)로 부르게 되었다. 남쪽으로 국사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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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의 관에서 소식을 전하던 통신 방법. 봉수는 말 그대로 밤에는 봉(烽: 횃불)으로, 낮에는 수(燧: 연기)로 급보를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및 제도이다. 고대부터 사용된 방법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지속적으로 운영되다가 1894년 폐지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봉수 관련 유적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것으로, 특히 조선 세종 때 봉수대 시설의 규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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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봉현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봉암은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봉현리에서 북쪽으로 약 7㎞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삼봉리, 서쪽으로는 부윤리, 남쪽으로는 본성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 큰 바위가 있어 봉암이라 불린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 맹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계리와 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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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봉현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봉암 서쪽에 새로 생긴 마을로 봉암새터라고도 한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맹동면(孟洞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계리와 개현리, 봉암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봉암리의 ‘봉’자와 개현리의 ‘현’자를 따서 봉현리라 명명하고 맹동면에 편입되었다. 봉현리에는 자연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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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에 속하는 행정리. 봉산4리와 저전리를 병합하여 봉산(鳳山)의 ‘봉’자와 저전(楮田)의 ‘전’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댁별 북쪽의 담안에는 전에 10여 호가 살았으나 경지 정리로 마을의 터가 농경지로 변하였고 댁별의 남쪽 안산들에는 조그마한 안산이 있었으나 역시 경지 정리로 없어졌다. 바람골천이 봉전1리에서 발원하여 갑산천으로 유입되고 있고 댁별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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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 잣나무골 뒷산에 있는 산림욕장. 충청북도 음성군 지역에 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관광지나 유원지가 없어 군민의 정서 함양 및 여가 선용을 위하여 가섭산(迦葉山)[710m]의 수려한 산세와 맑은 계곡을 배경으로 1998년 130㏊ 규모의 봉학골 산림공원을 조성하였다. 봉학골 산림공원 앞에는 봉학산 봉학골에서 흘러내린 물이 유입되어 이루어진 용산리 저수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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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있는 산. 산의 형태가 백학이 짝을 지어 날려는 형국(白鶴雙飛形: 풍수지리설의 백학쌍비형)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음성팔경의 하나로서 ‘봉학골 나무꾼 어랑타령[鳳壑樵夫]’를 들고 있다. 산골짜기로 봉학골, 중산골과 삼태미 형상의 삼태미골 등이 있다. 잣나무골(백동: 용산6리)의 봉학골 골짜기에서 충주시 신니면 선당리로 가는 곳에는 소질마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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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에 속하는 행정리. 봉암리(鳳岩里)의 ‘봉(鳳)’자와 개현리(介峴里)의 ‘현(峴)’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맹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계리와 개현리·봉암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봉현리라 하여 맹동면에 편입되었다. 개고개 뒤에는 바위배기산이 있는데 산에는 두 개의 큰 바위가 있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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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봉현리에서 남류하는 소하천으로 부윤천에 유입되어 미호천으로 흐르는 하천. 봉현리천은 맹동면 봉현리에 흐르는 하천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맹동면 동북단의 금왕읍과의 경계에 소속리산[432m]이 있고 소속리산에서 남쪽으로는 함박산[339m]·알봉[180m]·알랑산[209m] 등으로 이어지는 산지이다. 서부도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다. 금왕읍의 오선리와 봉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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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대리에 있는 산. 옛날 이 산에서 봉화불을 붙였다 하여 봉화산 또는 봉화뚝이라 하였다고 한다. 안터 남서쪽에는 다홍산이 있고, 남동쪽에는 마봉산[186m] 등이 솟아 있다. 북쪽에 높이가 낮은 봉화산이 있다. 봉화산은 해발 100m 이하의 낮은 산이지만 북쪽으로 경기도 이천시 율면의 산양리·북두리·신추리·행죽리 등으로 이어지는 낮은 저평한 계곡이 전개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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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대리에 있는 산. 옛날 이 산에서 봉화불을 붙였다 하여 봉화산 또는 봉화뚝이라 하였다고 한다. 안터 남서쪽에는 다홍산이 있고, 남동쪽에는 마봉산[186m] 등이 솟아 있다. 북쪽에 높이가 낮은 봉화산이 있다. 봉화산은 해발 100m 이하의 낮은 산이지만 북쪽으로 경기도 이천시 율면의 산양리·북두리·신추리·행죽리 등으로 이어지는 낮은 저평한 계곡이 전개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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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승려. 아버지는 선전관을 역임한 윤홍식(尹洪植)이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워 1914년 18세에 상경하여 승지 민병승(閔丙承) 사택에서 운수업에 종사하였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상선에 선원으로 종사하며 전전하다가 뜻한 바 있어 1932년 36세에 경상북도 동래에 와서 금정사(金井寺)를 창건하고 주지가 되었다. 이때에 당대의 선지식이었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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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행해지는 서낭신에 대한 제사. 우리나라의 마을은 배산임수를 중심으로 하며, 산을 등지고 남쪽으로 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서낭신을 모시는 서낭당이 있으며 그 옆에 장승이나 솟대가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서낭신은 토지 수호신이며, 마을의 경계 또는 입구를 지켜 주는 신이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마을의 방액(防厄),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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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욱 할아버지의 부인인 김금자 할머니(36년생, 72세)가 부녀회장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1998~99년쯤에 다른 분에게 부녀회장직을 넘겨주었다. 그러다 부녀회비로 80~90만원 정도를 모았었는데 부녀회 회원들에게 나눠주고 잠시 부재로 있다가 4년 전쯤에 현재 부녀회장인 한복실 부녀회장이 맡아서 다시 부녀회를 이끌어 가고 있다. 당시에 매월 3천원씩 회비를 걷고 있었는데 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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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봉전리에 있는 산. 일명 부용산이라고도 한다. 1757년(영조 33)에 편찬된 『여지도서』충원현(현 충주)조에는 충원현 남쪽 소파면에 봉산리가 있는데, 충원현에서 남쪽으로 40리 떨어진 지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비탈에 닥나무가 많아서 마을 이름을 딱나무비탈·딱비탈·딱비알·딱벌 등으로 부르다가 지금은 댁벌(일명 저전리)로 부르게 되었다. 남쪽으로 국사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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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생극면 생리·금왕읍 육령리에 걸쳐 있는 산. 해발 500m 이상의 정상부는 준엄한 경사를 이루는 산지이나 대체로 저지대는 완만하다. 부용산의 정상 서쪽에 발달한 주능선 사면의 표고 25m 이상의 저지대와 계곡 일대에는 신갈나무 군락이 발달해 있고, 남동쪽으로 발달된 주능선 표고 400~500m의 양쪽 사면에는 굴참나무 군락이 있다. 동사면의 물은 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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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동은 음성읍 사정1리에 속한 마을로 서쪽은 강당말, 동쪽은 음성읍 용산리와 사정고개, 북동쪽으로는 부용산 자락이 솟아오른 사장산과 접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마을의 진산으로 부용산이 자리하고 있다. 용대동은 옛 사정고갯길을 따라 사정고개 방향으로 올라오다 보면 강당말을 지나 5분쯤 걸으면 길가에 큰 아카시아나무가 서 있는 서낭당이 나타나고, 서낭당에서 세 갈래 길이 되는데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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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의 이름은 앞산이 제비처럼 생겼다 하여 연골 또는 연골이라 하였으며, 부자가 되라는 뜻으로 부윤이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소탄면(所呑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사동(馬寺洞)을 병합하고 부윤리라 하여 대소면에 편입되었다. 지형은 대체로 낮은 편이며, 서쪽에는 남쪽으로 흐르는 부윤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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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서 발원하여 수태리로 흐르는 하천. 부윤리에 흐르고 있는 하천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소면의 성본리와 부윤리의 중앙 계곡에는 소탄천이 남류하여 부윤천이 되고 수태리 부근에서 소석천과 합류하여 한천으로 유입된다. 부윤리의 연골에서 오산리로 넘어가는 곳에 구렁목고개가 있고 연골에서 맹동면 봉현리로 넘어가는 곳에는 앞고개가 있다. 연골 북쪽에는 다채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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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부윤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의 바르고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어린이, 민주 시민 의식을 갖고 진로를 개척하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고 사고하며 창조하는 어린이, 즐겁게 활동하며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소질을 계발하고 자기 꿈을 가꾸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56년 10월 1일 대소초등학교 부윤분교장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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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원 스님(57세)은 미타사의 부처를 한 무당이 옮기려다 실패하고 몇 년째 하혈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미타사 근방에 한 무당이 살고 있었다. 그 무당은 부처가 그렇게 영험하다면 주인도 없고 하니 자신이 부처를 모시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그 무당은 장정 몇 명을 사서 부처를 산에서 끌고 내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돌부처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나머지 끌고 한나절을 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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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말마을 지나 북쪽 부용산 쪽으로 오르다 보면 밭들이 나오고 여기서 조금 오르면 집터들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보면 부용산 봉우리가 마을 쪽으로 흐르는 산줄기가 있고 7부 능선 부분에 바위가 보이는데 이 바위가 북바위이다.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는 북바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북바위는 왜 북바위라고 불렀을까요?” “거기가면 둥둥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북바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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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제를 지낸 다음날 아침인 2월 20일, 산신제 때 사용한 금줄이 태워지고 8시 30분 쯤 되자 마을회관에 어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마을회관 마당에서 김현동 어른과 김영섭 제관이 돼지 분육을 시작하였다. 돼지머리를 자르고, 몸통은 4등분한 뒤 1㎏씩, 총 60명분으로 골고루 나누어 비닐봉투에 담았다. 단 산신제를 지내느라고 애쓴 제관 3명과, 도와준 동네 청년 및 어른들은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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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분충(奮忠). 증좌찬성(贈左贊成) 민수산(閔壽山)의 아들이고, 증문하시중(贈門下侍中) 여원군(驪源君) 민백훤(閔佰萱)의 손자이다. 친형은 민서(閔叙)이다. 민발은 어려서부터 기골이 크고 힘이 세어 13세 때 무술 연마를 위해 마을 앞 큰 바위를 움직여 등에 지고 사장(射場) 터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음보(蔭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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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불건(不騫). 소격서령(昭格署令)을 지낸 정자급(丁子伋)의 아들이며, 호조참판 정수강(丁壽崗)의 형이다. 정수곤의 아들은 현감을 지낸 정담(丁聃)이고, 처는 상주김씨(尙州金氏)다. 정수곤은 1472년(성종 3)에 식년(式年)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교리(校理)를 지내고, 그 후 공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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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석가모니가 설한 교법을 종지로 하는 종교. 음성 지역은 예부터 군사적 거점으로서뿐만 아니라 교역과 문화의 교류를 위한 요충지로서 이해되었다. 더욱이 북으로는 한강에, 남으로는 금강에 연결되는 수로의 발달로 삼국시대에는 군사적 요충지로 이해되어 이 지역을 빼앗기 위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는 각 시대의 왕도인 경주와 개성, 한양 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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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불붕(不崩), 호는 월헌(月軒). 소격서령(昭格署令) 정자급(丁子伋)의 아들이며, 교리(校理) 정수곤(丁壽崑)의 아우이다. 정수강은 1474년(성종 5) 20세에 진사가 되고 1477년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지냈다. 1482년에는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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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덕 할머니의 「약손 노래」 이후 계속해서 아기 어르는 노래가 나오자 한 쪽에서 노래하는 것을 듣고 있던 이성순 할머니가 “불아불아 같은 것도 했지 왜”하고 말을 꺼냈다. “불아불아요? 그것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하고 묻자 이성순 할머니가 노래를 불러 주었다. 「불아불아」는 어린아이를 세워 놓고 아이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좌우로 흔들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주로 아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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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붕거(鵬擧). 아버지는 반인경(潘仁慶)이고, 부인은 보성오씨로 진사 오행원의 딸이다. 아들은 반윤기(潘潤沂), 반윤국(潘潤國), 반윤수(潘潤洙)이다. 반명익은 향년 91세까지 장수하여 수직(壽職)으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 해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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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에 속하는 행정리. 비석동(碑石洞)의 ‘비’자와 돈산리(敦山里)의 ‘산’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사이포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비석동·조도리·돈산리를 병합하여 음성군 소이면에 편입되었다. 돌뫼 동쪽에는 절바우가 있는 절바우산(일명 뽀족산)이 있고 마타산 서쪽에는 가섭산[710m]의 줄기인 기운들산이 있다. 새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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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고분군.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서 미타사 방향으로 약 500m 올라간 지점에 저수지가 있다. 이 저수지 옆에 밭과 과수원으로 개간되어 경작되고 있는 지역과 구릉 지역, 인삼포로 경작되고 있는 지역은 고려장터로 불리는 돌널 무덤이 조성된 곳이다. 비산리 고분군도 이와 같이 돌널 무덤이 떼를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고분군이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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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기와가마 터. 비산리에서 미타사 쪽으로 약 500m쯤 가면 저수지가 있고, 그 옆에 단층 슬라브집이 있는데, 이곳이 기와를 굽던 기와가마 터라고 한다. 또 저수지 아래쪽에는 사과나무 밭이 있는데 이곳 또한 기와를 굽던 곳이라 전한다. 비산리 기와가마 터는 지표 조사만 이루어졌지만 비교적 규모가 큰 기와가마 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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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오랫말에서 발원하여 돌미를 거쳐 충주시 주덕읍으로 흐르는 하천. 비산천은 소이면 비산리에서 발원하여 흐르기 때문에 붙여진 하천 이름이다. 비산리 돌뫼에서 동북류하여 요도천에 유입되어 다시 충주시 주덕읍으로 흘러 달천으로 흘러든다. 하천 유역에는 농경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비산천으로 유입되는 소하천으로는 오돌천·돌미천 등이 있다. 국도 36호선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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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산리는 총 4개의 리로 나누어져 있으며, 특히 비선거리 또는 비석거리라고 불리는 비산1리는 예로부터 비석을 중심으로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번성하던 마을이다. 현재도 마을 입구에 비석이 자리하고 있어 그 역사를 증명해 준다. 비산1리 비석거리를 찾아가 마을의 유래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할아버지를 찾는다고 하니, 마을 어르신들은 입을 모아 이명희 할아버지(83세)를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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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단위의 부락이 모여 있는 곳에는 아직도 한 해의 농사가 잘 되기를 빌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동제가 행해진다. 갑산리 또한 동역에서 동제가 열린다. 동제는 예전에 계속 해 왔다가 중간에 소멸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25~30년 전에 다시 부활되어 지금까지 전해내려 오고 있다.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으나 다시 시작한 것으로 따지면 약 25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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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있는 아이스크림 및 식용 빙과류 제조공장. 비알코리아(주)는 고급 재료, 다양한 선택권, 서비스 등이 가미된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의 제조·생산을 통해 기업의 이윤 추구와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1985년 6월 10일에 회사를 설립하여, 배스킨라빈스 인터내셔널사와 합작 투자 계약을 체결하였고, 1988년에는 아이스크림 전문 가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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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산. 절하는 모양 같은 바위[拜岩: 배암]가 산에 있으므로 절바우산 또는 모양이 뾰족하다고 하여 뾰족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계곡에는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남쪽 하류에는 한벌천이 동쪽으로 흘러 음성천에 합류한다. 절바우산에는 절하는 모양의 바위인 절바우가 있다. 1930년대 돌뫼 동남쪽 절바우산에는 금광이었던 돌뫼광산 터가 있다. 절바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