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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0794
한자 朴俊欽
영어음역 Bak Junheum
이칭/별칭 덕여(德汝),입암(立庵),소오헌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윤규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충청북도 음성군
성별
생년 1719년연표보기
몰년 1796년연표보기
본관 음성
대표관직 사헌부지평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덕여(德汝), 호는 입암(立庵). 박서(朴犀) 장군의 16세손이고, 아버지는 아산현감 박정규(朴廷珪)이며, 어머니는 경주이씨 장령 이행민의 딸이다.

[활동사항]

박준흠은 어려서부터 글을 좋아하여 한번 읽은 글은 반드시 기억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또한 성장하면서 경학을 연구하였고, 의문점은 도암 이재여호 박필주에게 배웠다. 일찍이 구암 윤봉구의 문인으로 학문을 배울 때 공부하는 법도를 듣고는 이후부터 스스로 터득하는 바가 많았다. 이를 구암이 기뻐하여 “내가 우리 도의 사람을 얻었는데 이 사람을 대접하는데 어찌 사제의 예로 하겠느냐?”하며 ‘입암’이라 써서 호로 삼았다.

1742년(영조 18) 부친이 돌아가신 후로는 벼슬에 뜻을 버리고 학문을 전공, 사서를 연구하며 명리(名理)를 밝게 하고, 유교의 예를 수집하고, 예절을 정성껏 하여 사람들이 의심나는 것을 물었다. 감역(監役)에 추천하였으나 나가지 않고, 천거하는 자가 있었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만년에 안성 덕곡(德谷) 산중에서 우거하며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저술 및 작품]

박준흠은 문장이 섬세하고 아담해서 스스로 궤범을 지켰고 더욱이 편지에 능했는데, 글과 편지 등은 화재로 없어졌다. 흩어지고 파손된 유고(遺稿)를 아들 박응한(朴應漢)이 편집하여 7권이 전하는데, 5대손 박대현(朴大鉉)이 『입암집(立庵集)』 8권을 간행하였다. 저서로 『목도서설(木圖書說)』, 『성학설(聖學說)』, 『만물조화설(萬物造化說)』이 있는데, 특히 『목도서설』은 세상 사람들의 많은 찬사를 받아 모두가 칭찬하였다.

[묘소]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성석동 상감천에 있다.

[상훈과 추모]

1855년(철종 6) 관찰사 한정교가 조정에 글을 올려 박준흠의 학문과 효행을 알렸고, 1884년(고종 21) 좌의정 김병국 또한 임금에게 알려 사헌부지평에 증직(贈職)하고 옥계서원에 추배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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