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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0927
한자 朴淳
영어음역 Bak Sun
이칭/별칭 충민공(忠愍公)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유봉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충청북도 음성군
성별
몰년 1402년연표보기
본관 음성
대표관직 판승추부사

[정의]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이자 음성박씨의 선조.

[가계]

본관은 음성(陰城). 고려 평장사(平章事) 박서(朴犀)의 후손이며 시랑(侍郞) 박문길(朴文吉)의 아들이다. 효자문이 남아 있는 박호원(朴浩遠)박순의 아들이며 대사헌까지 지낸 박숙채(朴菽蔡)가 손자이다. 조선 중기의 선비인 박유겸(朴惟謙)박순의 후손이다. 박순의 처 장흥임씨(長興任氏)는 고려시대 대사헌(大司憲) 임헌(任獻)의 딸이다.

[활동사항]

박순은 고려 말과 조선 초에 활동했던 인물로 1388년(우왕 14) 요동 정벌 때 이성계 휘하에서 종군하였고, 위화도 회군에도 관여하여 조선 개국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성계와는 친구지간으로 조선이 개국되면서 상장군이 되었다.

1398년(태조 7) 왕자의 난으로 태조 이성계는 왕위를 정종에게 물려주고 고향인 함주(咸州)[지금의 함흥]로 갔다. 태종태조의 귀환을 요구하여 수차례 사신을 파견하였는데, 태조는 매번 이들 문안사(問安使)를 죽였으므로, 이로 인해 ‘함흥차사’라는 고사성어(故事成語)가 생겨나게 되었다. 더 이상 태조에게 가기를 응하는 신하들이 없게 되자, 문안사로 박순이 자청하여 갔는데 이 때 박순은 하인도 없이 새끼 딸린 어린 말을 타고 함흥에 들어갔다.

태조가 있는 곳을 바라보고 짐짓 새끼말을 나무에 매어놓고 어미말을 타고 가니 어미말은 머뭇거리면서 뒤돌아보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이에 태조가 이상히 여겨 물었더니 “새끼말이 길 가는데 방해가 되어 매어놓았더니 어미말과 새끼말이 서로 떨어지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비록 미물이라도 지친(至親)의 정은 있는 모양입니다”하고 말했고, 이에 태조는 숙연해져 옛 친구를 머물러 있게 하였다.

하루는 태조박순이 장기를 두고 있을 때 마침 쥐가 그 새끼를 끌어안고 지붕 모퉁이에서 떨어져 죽을 지경에 이르렀어도 서로 떨어지지 아니한 모습을 보았다. 이를 보고 박순은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더욱 간절히 아뢰니 태조가 이에 서울로 돌아갈 것을 허락하게 되었다. 박순태조의 허락을 받아내어 하직하고 되돌아갔다.

그러나 태조 곁의 신하들은 박순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에 태조박순이 이미 용흥강(龍興江)을 건넜으리라 판단하고 이미 강을 건넜으면 쫓지 말라고 하였다. 그런데 불운하게도 박순은 도중에 병이 나서 지체하였다가 강을 완전히 건너지 못한 상황에서 죽음을 당하였다.

태조는 이를 알고 크게 놀라면서 서울로 돌아가기를 결정하였다고 한다. 태종박순의 죽음을 듣고 박순의 공을 생각하여 판승추부사에 증직(贈職)하고,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追贈)했으며 박순의 자손을 등용하고 녹전(錄田)을 하사하였다. 또한 부음을 듣고 자결한 박순의 처 임씨에게도 묘지를 하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충민(忠愍)이고, 함흥(咸興) 용강사(龍岡祠)에 배향되었다.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 충신문(忠臣門)과 부인 임씨(任氏)의 열녀문(烈女門)이 있다. 또한 박순의 후손을 등용하였고 녹전을 하사하였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