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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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금고리에 전해오는 지명 설화. 삼고심이는 김장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1335~1408]가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로 배극렴(裵克廉)[1325~1392]을 찾아갈 때 이곳을 지나다가 세 번 돌아보고 갔다는 전설에 의해 석 삼(三), 돌아볼 고(顧), 마음 심(心), 마을 리(里) 자를 써서 ‘삼고심리’라 이름 붙여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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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지명 유래 전설. 1996년 『음성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 조 참판의 묘가 있다. 이 묘는 조선 인조 때 참판을 지낸 양반의 묘로 풍수지리상 피리혈이라고 한다. 그런데 묘를 몇 장만 썼어야 하는데 그 후손이 밑에다 자꾸 묘를 써서 피리 소리가 나는 곳을 막아 버렸다. 그 후부터 후손이 번성하지 못했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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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전해오는 권근과 조선 태조에 관한 설화. 권근(權近)[1352~1409]은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 걸쳐서 크게 활약한 대학자이며 문학가이다. 1352년(공민왕 원년)에 검교정승 권희(權僖)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권진(權晋)이었으며 자는 가원(可遠) 또는 사숙(思叔)이요, 호는 양촌(楊村)이다. 고려 말 충주로 유배되어 와 양촌에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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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에 전해지는 어래산(御來山)에 관한 설화. 어래산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浮石面)과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下東面),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永春面)의 경계에 있으며, 높이는 1,064m이다. 설화의 주인공인 배극렴(裵克廉)[1325~1392]은 조선조의 개국공신으로,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진주, 상주의 목사를 역임하고 이후 이성계와 함께 여러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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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자린고비 조륵의 인물 이야기. 자린고비는 예부터 ‘구두쇠’, ‘지독하게 인색한 사람’, ‘지독하게 절약하는 사람’ 등의 뜻으로 통한다. 한때 조선 제일의 자린고비로 불렸던 조륵[1649~1714]은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 사람으로, 근검절약하여 큰 부자가 된 뒤 어려운 백성들을 많이 도와 가자(加資: 정3품 통정대부 이상의 품계를 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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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망나니에 관한 설화. 1996년 『음성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과 민비가 서로 지지 않으려고 세력 다툼이 한창이던 때에 나라는 극도로 혼란해지고 국가 재정이 어려워 매관매직까지 하고, 각 지방의 토호들은 여기저기서 토구질로 민심을 극도로 혼란하게 만들었다. 토구질은 양민들이 부지런히 일하여 근근이 모은 재산을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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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고씨 부인 이야기. 「청주고씨와 운명」은 음성군 원남면 일대에서 세거하는 청주고씨 집안에서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고씨 부인은 1821년(순조 21)에 원남면 마송리에서 고순석의 딸로 태어났다. 열여섯 살 때 윤씨 집으로 출가하여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는데, 고종 8년 음력 11월 20일 향년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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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서 ‘함흥차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함흥차사 박순 일화」는 조선 초기 태조에게 문안사로 갔다가 안타깝게 죽은 박순(朴淳)의 일화이다.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 오리골에 박순의 충신문과 부인 장흥임씨의 열녀문이 있다.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서 채록하여, 1982년에 출간한 『내고장 전통가꾸기-음성군-』에 수록하였다. 그후 2005년과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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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에서 전해 내려오는 흔행이고개의 지명 전설. 조선시대 형장이면서 풍장을 하던 장소가 시대가 흐르면서 지명이 되었다. 흔행이고개는 흉한 일이 행해지던 고개라는 뜻을 지닌 흉행이고개[兇行峙]가 음전되어 불리는 지명이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조선시대 헌종 때 음성현감이 죄수를 잡아 사형을 집행하던 장소라고 하며, 전염병에 걸려 죽은 시체를 더금뫼[仮葬法: 풍장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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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4년에 간행된 조선 전기의 문신인 채수의 시문집. 본관이 인천인 채수(蔡壽)[1449~1515]의 호는 나재(懶齋)이다. 이석형과 함께 조선 개국 이래 삼장에서 연이어 장원한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유명한데, 『세조실록(世祖實錄)』·『예종실록(睿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한성부좌윤·호조참판을 지냈다. 산경(山經)·지지(地誌)·시문(詩文)에 능했다. 『나재집(懶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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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 지역 출신 의원들이 편찬한 의학 서적. 『사의경험방(四醫經驗方)』은 조선 중기 음성 출신으로 민간에서 의관으로 활동하던 허임(許任)과 이석간(李碩幹)·채득기(蔡得沂)·박렴(朴濂) 등이 중국과 조선의 전래 의서들 중 일상 생활에 필요한 내용을 뽑고 자신들의 임상(臨床)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서술한 민간 의방서이다. 일상 생활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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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 대에 간행된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 권근의 유고 문집. 『양촌집(陽村集)』은 저자 권근(權近)[1352~1409]의 아들인 권도(權蹈)가 부친의 글을 모아 편찬한 것으로, 간행자와 초간본의 정확한 간행연대는 불분명하다. 다만 권수의 「양촌선생영가권씨세계도(陽村先生永嘉權氏世系圖)」에 실려 있는 저자의 네 아들의 당시 관직명을 통해 세종대에 편찬, 간행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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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4년에 간행된 조선 전기 문신 이자(李耔)의 시문집. 6대손 이도흥(李道興)과 족종손(族從孫) 영남백(嶺南伯) 이이장(李彝章)이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유고(遺稿)를 수록하고 제가(諸家)의 문집(文集), 야승(野乘), 패설(稗說) 및 『인가고첩(人家古帖)』, 『충재일록(冲齋日錄)』 등에서 채록하여 4권 2책으로 편집하고, 새로 편집한 연보를 합하여 1754년(영조 30)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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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에 있는 골짜기. 감곡면은 음성군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면이며, 가미실은 감곡면 남쪽의 원당리·주천리·영산리·상평리·월정리 등에 걸쳐 있는 골짜기이다. 가미실의 이름을 따서 감미곡면(甘味谷面)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시대 충주군의 감미곡면은 원당, 선곡, 외주, 내주, 거동, 영촌, 공산, 덕동, 성평, 상촌, 독정, 무수, 하티, 월동 등의 11개 동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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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있는 산. 고문헌에는 음성의 진산으로 음성현 북쪽 8리에 있는 속리산[1,057m] 줄기로서 옛날 봉화대가 설치되어 있다고 하였다. 산 남쪽으로는 음성읍이 펼쳐있고, 북쪽은 충주시 신니면 선당리 등과 인접하고 있다. 음성팔경의 하나로서“가섭산의 저녁 종소리(가섭모종, 迦葉暮鐘)”를 들고 있다. 고려 초기 가섭산 중턱에 암자가 하나 있었고 그 암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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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조선 세종 때 양촌 권근(權近)[1352~1409]의 묘소를 수호하던 개가 죽어서 이곳에 묻혔다고 하여 개터라 불린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감미곡면(甘味谷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덕동, 성평리, 상촌, 공산리, 외주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상촌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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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원익·김진중·김세필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김해김씨 계와 더불어 김씨의 2대 주류를 이루는 대보공(大甫公) 알지계(閼智系) 가운데서도 그 대종을 이루는 경주김씨(慶州金氏)는 파계(派系)가 복잡하지만, 대략 4~5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파로는 은열공파(殷說公派)·태사공파(太師公派)·판도판서공파(判圖判書公派)·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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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場市)는 조선 사회의 봉건 경제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던 자급자족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자급할 수 없었던 물품이나 지역적 특산물을 교역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또한 장시는 지방의 농민이나 수공업자 등 생산자층에 의한 상품 생산과 상인들에 의한 유통 등 교역 장소로서의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조달할 수 없었던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장소이자, 교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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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란 일반적으로 고고학적 자료나 미술품, 역사적 유물, 그밖의 학술적 자료를 모아서 보관하고 진열하여 일반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시설이다. 국제박물관회의(ICOM) 헌장에서는 박물관을 “예술·역사·미술·과학·기술에 관한 수집품 및 식물원·동물원·수족관 등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자료·표본 등을 각종의 방법으로 보존하고 연구하여, 일반 대중의 교육과 오락을 위하여 공개 전시함을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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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충을 시조로 하고 반석권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반씨(潘氏)는 기성(岐城)·광주(光州)·남평(南平)의 3본이 있지만 모두 같은 분파이다. 기성은 거제도(巨濟島)의 옛 지명으로 기성반씨를 거제반씨라고도 한다. 광주반씨의 시조는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광주백(光州伯)에 봉해진 반충(潘忠)이다. 그의 현손인 이조판서 반석평(潘碩枰)은 청렴한 문신으로 이름났으며,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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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성을 시조로 하고 이철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광주이씨(廣州李氏) 시조는 신라 내물왕 때 내사령(內史令)을 지낸 이자성(李自成)이다. 광주이씨 중흥조로 고려 말의 학자인 이집(李集)을 들 수 있다. 그는 문과에 급제하고 정몽주(鄭夢周)·이색(李穡) 등과 교류하였다. 손자 이인손은 조선 세조 때 우의정을 역임하였고 이예손은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를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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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1. 전통시대 역사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음성의 최초 교육 기관은 고려시대 향교로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관학과 사학으로 분리하여 교육을 운영하였는데, 관학은 개성의 국자감·동서학당·오부학당과 지방의 향교 등이 있었고, 사학은 12공도와 서당 및 서사 등이 있었다. 고려시대 음성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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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충도리와 갑산리에 걸쳐 있는 산. 조선 후기의 고문헌에서는 음성군 동쪽 10리 떨어진 곳에 있고 청룡의 머리가 암각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 말에 배극렴이 어래산[383m]과 국사산에서 은거하였는 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세 번이나 찾아와서 정사를 논의하였다고 한데서 연유된 산의 이름이다. 일명 월고산 또는 국사봉이라고도 한다. 소이면 충도리와 갑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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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은 조선 선조 때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 김종립(金宗立)이 터를 잡아 살았으므로 군자감터라 하였고 그 뒤 변하여 군자동이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맹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통동 일부로 병합되었고 이후 군자리라 하여 맹동면에 편입되었다. 서쪽에는 함박산[339m], 서남쪽에는 알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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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군자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조선 선조 때 군자감주부 김종립이 이곳에 터를 잡은 데서 군자터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 맹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군자동이라 하여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통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군자리라 명명하고 맹동면에 편입되었다. 군자리는 군자터 한 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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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신후재의 영정을 봉안한 사우. 신후재는 조선 숙종 때의 사람으로, 동부승지, 강원도관찰사, 좌부승지, 안변부사, 우승지, 좌승지, 진하겸사은부사, 승정원도승지, 공조참판, 동지의금부사, 한성판윤 등을 지냈다. 1694년(숙종 20) 3월 갑술옥사 때 여주에 유배되었다가 1697년(숙종 23) 4월에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 오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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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금고리 삼고심이에서 음력 정월 초 산신에게 올리는 제의. ‘삼고심이’란 이름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로 배극렴(裵克廉)[1325~1392]을 찾아갔을 때, 이곳을 지나다가 세 번 돌아봤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소이면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2㎞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독바우, 서쪽으로는 우목과 접하고 있다. 제당은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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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지천서원에 배향된 고려 후기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순중(純仲), 호는 상촌(桑村). 검교태자태사 김인관(金仁琯)의 8세손이다. 조부는 삼사부사 김영백(金英伯), 아버지는 통례문부사 김오(金珸)이다. 부인은 안동권씨로 낭장 권수(權隨)의 딸이다. 아들은 평양소윤 김근(金根)이고, 사위는 중랑장 권후(權厚)이다. 김영유(金永濡)가 손자이며 십청헌 김세필(金世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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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오갑마을 은 마을회관 왼편으로 작은 개울이 흐르며 개울 양 옆으로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왼쪽 마을을 살펴보면 작은 복숭아밭 뒤편으로 옥산사가 닿을 듯이 보인다. 하지만 옥산사는 복숭아밭을 옆에 끼고 골목길을 따라 5분 정도 들어가야 있다. 옥산사는 입구에 홍살문이 있고 문을 지나면 작은 연못이 있다. 연못 왼쪽에는 문화재 알림판이 있고 왼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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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 있는 초계정씨의 중시조를 봉안한 사우. 도장사에는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 죽계(竹溪) 정창(鄭昌), 우헌(愚軒) 정덕기(鄭德麒), 정국주(鄭國柱), 정국추(鄭國樞), 정국량(鄭國樑), 정국로(鄭國櫓), 정국빈(鄭國彬) 등 여덟 사람을 봉안하고 있으며 매년 3월 중정(中丁)과 9월 중정(中丁)에 제사하고 있다. 도장사는 조선 숙종조에 창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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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 있는 도장사에서 봄과 가을에 제향하는 의례. 박팽년(朴彭年)·정창(鄭昌)·정덕기(鄭德麒)·정국주(鄭國柱)·정국추(鄭國樞)·정국량(鄭國樑)·정국로(鄭國櫓)·정국빈(鄭國彬) 등을 모셔놓고 매년 봄(음력 3월 중정일)과 가을(음력 9월 중정일)에 음성의 유림과 초계정씨 종중에서 제향하고 있다. 도장사는 초계정씨의 중시조를 봉안한 사당으로 조선 숙종조에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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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본대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뒤뜰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10㎞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신평리, 서쪽으로 삼성면 천평리, 남쪽으로 대소면 성본리, 북쪽으로 행제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1560년경 조선의 효령대군 증손의 묘지가 있다 하여 마을 이름을 본리라 했고, 매터골 서쪽에 있다 하여 뒤뜰이라고 부른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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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에 속하는 행정리. 마운동과 매산리의 이름을 합쳐 각 한자씩 따서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맹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마운동·신평리·매산리와 하본리·봉암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구밤까실에서 봉현리로 넘어가는 곳에는 세곡고개(세곡), 신평에서 쌍정리로 넘어가는 곳에는 마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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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유천리에 걸쳐 있는 산. 모래봉은 산에 모래가 많다고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금왕읍 백야리와 맹동면 인곡리에 걸쳐 있는 소속리산[432m]의 서사면에서 발원하는 삼선천과 동산천이 서류하여 유촌리와 삼봉리 간의 계곡을 지나 한천으로 유입되고 있다. 모래봉 앞의 유촌리 웃가래들의 남쪽에는 상촌저수지가 있고 동쪽에는 여우박골, 남쪽에는 척축박골, 동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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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음력 12월 31일에 집안 어른들에게 절하는 풍속. 음력 섣달 그믐날에 한 해를 무사히 보냈다는 의미로 집안 어른들에게 절을 올리는데 이를 묵은세배 또는 구세배(舊歲拜)라 한다. 섣달 그믐날에는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 성묘도 하고 집 안팎으로 대청소를 하여 지난해의 잡귀와 액을 물리치고 새롭게 새해를 맞이하는 준비를 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섣달 그믐날을 ‘작은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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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원남면 소재지에서 서북쪽으로 약 8㎞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덕정리, 서쪽으로 도마티[倒馬峙], 남쪽으로 조촌리, 북쪽으로 사항산과 각각 접해 있다. 원래 음성군 원서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음성군 근서면 삼생동 일부와 맹동면 단월동, 하삼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삼용리라 하고, 원남면에 편입시켰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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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예술. 1. 조선시대 미술인으로는 조선 중기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에서 출생한 정수강(丁壽崗)[1454~1527]이 있다. 1482년(성종 13)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글씨와 문장이 유창하여 한문 소설 「포절군절(抱節君節)」을 저술하였다.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천묘(遷墓)한 유언수(兪彦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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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석인리에 있는 평야. 음성읍의 평곡리와 석인리의 음성천 유역에 있는 평야 지역이다. 음성팔경의 하나로 평곡리 토계울 냇가의 고기잡이와 풀피리 소리(兎溪漁笛, 토계어적)를 들고 있을 정도로 경치가 좋은 곳이다. 바다뫼(해산)가 변하여 바다미라고 불리기도 한다. 평곡리 토계 앞의 바다뫼들 냇가에서 바다 미역을 채취하였다는 미역바위 전설이 있다. 현재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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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죽산(竹山). 귀주대첩에서 공을 세워 음성백(陰城伯)에 봉해진 후 음성박씨(陰城朴氏)의 시조가 되었다. 아버지는 호부상서(戶部尙書) 박인석(朴仁碩)이다. 박서는 무과에 급제한 후 1202년(신종 5)에 아버지가 진주도 안찰부사(按察副使)로 도적을 평정한 공에 의해 내시(內侍)로 근무하게 되었다. 봉선고판관(奉先庫判官)에 임명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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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사장(士章), 호는 시각(柴閣). 조부는 지평 박정완(朴廷琓)이다. 아버지는 박장흠(朴長欽)이다. 박성한은 조선 정조 때에 성균관 유생으로 1801년 감제시(柑製試)에서 수석을 차지함으로써 바로 전시(殿試)를 보게 하였다. 이듬해 초시 문과(文科)의 병과(丙科)에 합격하여 벼슬이 헌납(獻納)에 이르렀다. 사랑과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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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이자 음성박씨의 선조. 본관은 음성(陰城). 고려 평장사(平章事) 박서(朴犀)의 후손이며 시랑(侍郞) 박문길(朴文吉)의 아들이다. 효자문이 남아 있는 박호원(朴浩遠)이 박순의 아들이며 대사헌까지 지낸 박숙채(朴菽蔡)가 손자이다. 조선 중기의 선비인 박유겸(朴惟謙)은 박순의 후손이다. 박순의 처 장흥임씨(長興任氏)는 고려시대 대사헌(大司憲) 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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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건립된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 있는 음성박씨 선조 박순의 사당. 박순 충신문은 박순 사당이라고도 하며, 2002년 5월 18일 음성군 향토문화유적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음성박씨(陰城朴氏)의 선조인 박순은 1388년(우왕 14) 요동 정벌 때 이성계 휘하에서 종군하였다. 위화도 회군에 앞서 이성계의 명으로 회군 승인을 얻기 위해 우왕에게 갔던 박순은 조선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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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반석평의 묘소. 반석평은 천얼 출신임에도 당상관에 오른 조선 중종 때의 인물로, 반서린(潘瑞鱗)의 둘째아들이며, 1472년(성종 3)에 태어났다.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공문(公文), 호는 송애(松崖)이다. 제8대 유엔사무총장이 된 반기문이 반석평의 16세손이다. 본래 경기도 남양주군 와부면 조안리에 있었던 묘를 음성군 원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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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신후재가 수학하던 곳. 백련서재는 조선 숙종 때 한성부판윤을 지낸 서암 신후재(申厚載)[1636~1699]가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던 장소이다. 신후재는 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 때 유배되었다가 1697년(숙종 23)에 석방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와 살았다. 서재(書齋) 앞 연못에 백련 꽃이 있는데, 이는 신후재가 청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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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감우리·동음리의 경계에 있는 산. 성주사(聖住寺)라는 절이 있었으므로 일명 성주산이라고도 한다. 보현산 북쪽에는 부용산[644m]이 있으며, 보현산과 부용산 사이에는 사정이고개와 기름고개가 있다. 사정이고개는 음성읍 용산리와 사정리를 연결하는 고개이고 기름고개는 신천리에서 감우리를 지나 사정리로 통하는 고개이다. 『비기』에 의하면 보현산에는 “명당 만인가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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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의 관에서 소식을 전하던 통신 방법. 봉수는 말 그대로 밤에는 봉(烽: 횃불)으로, 낮에는 수(燧: 연기)로 급보를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및 제도이다. 고대부터 사용된 방법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지속적으로 운영되다가 1894년 폐지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봉수 관련 유적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것으로, 특히 조선 세종 때 봉수대 시설의 규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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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에 속하는 행정리. 비석동(碑石洞)의 ‘비’자와 돈산리(敦山里)의 ‘산’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사이포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비석동·조도리·돈산리를 병합하여 음성군 소이면에 편입되었다. 돌뫼 동쪽에는 절바우가 있는 절바우산(일명 뽀족산)이 있고 마타산 서쪽에는 가섭산[710m]의 줄기인 기운들산이 있다. 새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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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에 속하는 행정리. 세 가닥의 산의 내용(來龍)이 어울린 곳에 마을이 있다고 하여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음성군 원서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음성군 근서면 삼생동 일부와 맹동면의 단월동·하삼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삼용리라 하여 원남면에 편입되었다. 새터 뒤에는 마을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국수봉이 있고 물언덕 뒤에는 왕자봉이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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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2리 만태동에서 음력 10월 산신에게 올리는 제의. 만태동은 마을 지형이 망태기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수레의산 밑에 자리하고 있다. 생극면 소재지로부터 4㎞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본래 수레의산에서 제의를 지내다가, 1998년 수레의산 자락인 마을 뒷산에 시멘트 블록으로 제당을 건립한 후 그곳에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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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의 전통가옥은 대부분이 조선시대의 건축물들이고, 유교적 특징이 강조되어 있다. 옛사람들의 생활 가옥이었던 고택들, 유교 이념을 교육하였던 향교, 유교 이념을 연구·전승하였던 서원들, 선현 제향과 풍속 교화의 장소인 사우들, 자연을 즐기는 여유가 담긴 누정들은 모두 조선의 시대정신이었던 선비 정신과 그에 입각한 건축미가 담겨진 전통가옥들이다. 이처럼 음성 지역에 유독 조선의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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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선(松仙)의 ‘선(仙)’자와 금정(金井)의 ‘정(井)’자를 따서 선정리라 불린다. 본래 충주군 천기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선리, 신대리, 금정리, 율산리 일부를 통합하여 선정리라 하고 삼성면에 편입되었다. 선정3리 홍태동에서 북류하여 덕정리의 모리내로 흐르는 모리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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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에 있는 고려 말 조선 초 송광도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각. 조선은 유교를 국교시하였기에 충(忠)과 효(孝)와 열(烈)을 만인의 덕목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이를 행하는 데 귀감이 되는 이를 뽑아 기리기 위해 동리마다 충신이나 효자·효부, 열녀를 기리는 비나 비각을 많이 건립하였다. 특히 충청북도 음성군 지역은 다른 문화재보다 유교기념물이 많은 것이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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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대장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신유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각. 조선은 유교를 국교시하였기에 효(孝)와 충(忠)과 열(烈)을 중히 여겨 정려를 특히 많이 세웠다. 신유의 효자각도 근방의 사람들을 교화하는 차원에서 신유가 살던 마을에 세운 것이다. 신유의 효자각은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대장리의 남쪽 끝부분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충북선 소이역의 앞쪽이며 한라중공업의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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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우리에 건립된 조선 중기 문신 신후재의 신도비. 신후재(申厚載)는 조선 숙종 때의 문신으로, 호는 규정(葵亭) 또는 서암(恕庵)이고, 자는 덕부이다. 1660년(현종 1) 사마시를 거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었다가 부교리를 지냈고, 경신대출척으로 남인이 제거될 때 삭직되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다시 남인이 집권하자 도승지 등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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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평산신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신후재의 초상화. 신후재(申厚載)[1636~1699]는 1660년(현종 원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강원도관찰사 등을 지냈으나, 1694년에 일어난 갑술옥사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한 후에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정장 관복을 입고 의자에 앉은 전신상으로 의관이나 단령의 관복 등 복식은 조선 숙종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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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비 안중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비. 조선시대는 유교 국가로 충과 효를 강조하며 귀감이 되는 사례를 발굴하고 이를 기리기 위한 흔적을 많이 남겼는데, 이것이 충신각, 열녀각, 효자비 등으로 남아 있다. 안중성은 조선 영조 때의 선비이며 효자로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시향(時鄕), 호는 화산처사(花山處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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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후미리에 있는 산. 고려 말기에 조선의 개국공신 배극렴이 이곳에 와서 은거하였는 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세 번이나 찾아와 공사를 논의하고 출사를 간청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부근의 음성군 불정면 삼방리와 충주시 주덕읍 삼방리 등은 이성계가 세 번이나 배극렴을 찾아 왔다는데서 유래한 마을 이름이다. 북쪽의 충주시 주덕면 신양리와 이류면 금곡리의 경계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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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지역에서 창작되거나 전승되고 있는 미적 표현물이나 표현 행위. 충청북도 음성 지역은 지형적으로 궁벽하지만 농경 문화를 기반으로 해 왔으며 산업화 속에서도 농촌의 고유성이 짙은 구비·민요·농요가 전승되어 왔다. 음성 민요의 경우 음성 지역이 경기도·강원도와 접하고 있어 두 지방의 민요가 혼합되어 있으며 노동요가 많다. 노동요로 「모찌기 노래」·「모심기 노래」·「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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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사업가. 오주영은 조선 인조(仁祖) 때 영의정을 지낸 추탄(楸灘) 오윤겸(吳允謙)의 11세손이며 오극선(吳克善)의 아들이다. 2세 때 충청북도 중원군 신니면 신청리로 이사하고 1920년 12세 때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花洞)으로 이사하였으며, 1921년에는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 고내리로 이사하였다. 1922년 14세 되는 해에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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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응용(應龍)·응기(應祈). 옹몽진은 순창옹씨 시조이다. 원래 옹몽진의 선조는 고려 때 교목세신(喬木世臣)의 거족이었으나 조선 개국에 반대하여 이성계의 미움을 받아 서인이 되었다. 옹몽진은 음성향교지기를 지내다가 1553년(명종 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56년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67년 판관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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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우리나라에 유교가 언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유교 경전의 교육과 사서(史書) 편찬 등이 이루어졌음을 볼 때 이때 이미 유교가 문화적 요소로서 중요하게 인식되었음은 분명하다. 불교가 성행하였던 고려시대에도 국가 이념과 체제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유교의 이념은 상당히 중요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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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음력 6월에 새로 난 농산물을 조상에게 올리는 풍속. 음력 6월에는 밀을 첫 수확하여 이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가정에서 천신(薦新)을 한다. 천신이란 계절 따라 새로 나는 각종 음식물을 먼저 신위에게 올리는 제사를 말한다. 유두천신을 할 때에는 밀을 빻아 밀국수를 만들어 먼저 대청마루나 안방에 한 그릇을 올려 천신한 다음 집안 식구 및 이웃과 같이 나누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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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에 있는 조선 태종의 제1서자 경녕군의 부인 청풍김씨의 묘. 경녕군(敬寧君)은 조선 태종과 효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태종의 장남이다. 경녕군 부인 청풍김씨는 1416년(태종 16)에 경녕군과 성혼하였으며, 1417년(태종 17)에 경신택주 안산군부인(敬愼宅主 安山君夫人)에 봉해졌다. 1450년(세종 32) 4월에 서거하여 현 위치에 안장되었다. 경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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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일원에 있는 고대 국방 시설. 수정산성의 축조 시기와 연혁을 알려주는 고문헌 기록은 없으나 조선시대 문헌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여지도서(輿地圖書)』·『호서읍지(湖西邑誌)』·『대동지지(大東地志)』·『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등에 의하면 수정산이 ‘음성 읍내의 동쪽 3리 또는 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들을 살펴보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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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어재연·어재순 형제의 묘. 어재연(魚在淵)[1823~1871]은 조선 후기의 무장으로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성우(性于)이며 어용인(魚用仁)의 아들이다. 1866년(고종 3)에 충청도 병마절도사, 회령부사를 지냈고, 그 해에 병인양요가 나자 우선봉장으로 강화도 광성진을 수비하여 적을 격퇴시켰다. 1871년(고종 8) 2월 도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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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온 유교는 인(仁)으로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 이후 고려를 거치면서 조선왕조로 들어와 국가 지배 이념으로 기능하기도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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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의 중북부에 위치한 군. 동쪽으로는 충청북도 충주시, 서쪽으로는 경기도 안성시와 충청북도 진천군, 남쪽으로는 충청북도 괴산군과 충청북도 증평군, 북쪽으로는 경기도 이천시와 각각 접하고 있어 경기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룬다. 음성군의 동쪽 끝은 소이면 문등리로 동경 127° 48′ 42′′, 서쪽 끝은 대소면 내산리로 동경 127° 48′ 50′′, 남쪽 끝은 원남면 문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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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박씨 문중의 충효열각. 음성박문 충효열각은 조선 전기의 충신으로 유명한 박순(朴淳)[?~1402]의 충절과 박순의 처 장흥임씨(長興任氏)[?~1402]의 열행, 박호원(朴浩遠)[1559~1627]과 박정규(朴廷珪)[1677~1724]의 효행 등 조선시대 음성박씨(陰城朴氏) 4인의 충효열을 한자리에서 기리기 위하여 조선 후기에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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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지역에 언제 처음 성곽이 축조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청동기시대 구릉 위에 만든 마을의 둘레에 환호(環壕)를 두른 유적이 나타나고, 이어서 그 안팎으로 나무말뚝 따위를 죽 이어서 박아 만든 울타리, 곧 울짱의 형태와 같은 목책(木柵)을 두른 시설이 나타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목책 이외에 흙으로 다져서 성벽을 만드는 단계로 발전된 것이 확인되었다. 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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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1일 김을경(金乙卿)과 함께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한내 장터에서 3·1운동 독립 만세 시위의 거사를 계획하고, 4백여 명의 군중을 지휘하여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소이면사무소에 이르러 김을경과 함께 면장 민동식에게 “너도 조선 사람이니 함께 독립 만세를 부르자”하고 시위 군중과 독립 만세를 외치게 하는 등 활약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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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음성현감 이철응의 선정비. 이철응은 조선 고종 때 음성현감을 지냈다. 그 외의 자세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선정비는 1885년(고종 22)에 세워졌고, 현재 음성향교 앞에 다른 비석군들과 함께 있다. 1단 비석으로 비신(碑身)의 총 높이는 114㎝이며, 앞면의 폭은 42㎝, 측면의 두께는 16㎝이다. 비신 앞면에는 ‘현감이후철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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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일대를 지칭하는 지명. 산의 내용(來龍) 세 마리가 어우러져 구슬을 쟁탈하고 있는 풍수 형국으로서 옛날부터 큰 인물이 난다고 하였는데 실제 조선시대에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조선시대 음성현 원서면의 덕현·동악·설매·부모동·치동·곡내·하리·기리·양촌·삼티 등의 10개 동·리를 일괄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현재 ‘자은갈’은 잔갈’로도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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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활동한 장충범의 묘. 장충범의 본관은 단양(丹陽)이며, 자는 효칙(孝則)이다. 조선 선조 때의 충신 생원 장언구(張彦玖)의 아들이다. 음보로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를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부상당하자 향리인 삼생리로 피신하여 치료를 받았다. 1597년(선조 30)에 동지를 규합, 창의하여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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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석오의 묘. 정석오는 조선 영조 때 소론의 대표적인 인물로,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유호(攸好)이다. 1746년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하였고, 1748년 동지겸사은사(冬至兼謝恩使)로 청나라로 가던 중 병사하였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묘역은 약 600㎡로, 묘비, 문인석, 망주석, 상석 등을 갖추었다. 비제(碑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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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초계. 자는 향숙(饗叔). 아버지는 호조참의를 역임한 효자 정국노(鄭國櫓)이다. 조선 선조 때에 태릉참봉을 지내고, 봉사(奉事), 찰방(察訪), 부호군(副護軍)을 거쳐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만년에 고향으로 내려와 김정현, 조옥 등과 함께 향산의 고사(중국 당나라의 향산거사 백낙천의 향산구로회)를 본받아 칠십회(七十會)를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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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군계(君啓). 판도판서(判圖判書) 조돈(趙暾)의 아들이다. 조인옥은 1373년(공민왕 22)에 음보(蔭補)로 생원이 되고 1387년(우왕 13)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를 거쳐 이듬해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 이성계의 휘하에 종군하여 최영(崔塋) 등 구세력 숙청에 가담하였다. 위화도에서 회군할 때 남은(南誾) 등과 더불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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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충주군 원서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자은갈(自隱葛)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야동, 동막곡, 곡내, 덕현, 설매, 하리, 기리, 양촌, 삼기동 등을 병합하여 조촌리라 하고 원남면에 편입되었다. 조촌리에는 두루봉[349m], 국사봉[410m], 삼봉산[200m], 문수봉, 연산, 바다골산 등이 있으며 삼용리로 넘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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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행해지고 있는 신앙 활동 및 그 신념 체계. 한국사에서 외래 종교로서 처음 수용되었던 것은 불교였다. 고구려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들어온 해는 372년(소수림왕 2)이고 백제는 384년(침류왕 1)이며 신라는 눌지왕 때이다. 불교는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 깊게 신앙되며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 유교는 언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는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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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지천서원(知川書院)의 시초는 조선 중종 때 이조참판을 지낸 김세필(金世弼)[1473~1533]이 벼슬에서 물러난 뒤 팔성산 아래에 지은 초옥으로, 김세필은 이곳에서 산수를 벗삼아 여생을 보내며 후학을 교육하였다고 한다. 초옥은 당시 충주목사 박상(朴祥)의 재정적 도움으로 건립되었는데, 박상은 자주 김세필을 찾아와 격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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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 지천서원에서 제향하는 의례. 김자수(金自粹), 김세필(金世弼), 김저(金儲), 김의(金嶷), 김정현(金鼎鉉), 김홍욱(金弘郁), 김종현(金宗鉉), 박상(朴詳) 등을 매년 봄(음력 3월 초정일)과 가을(음력 9월 초정일)에 음성 지역 유림과 경주김씨 문중에서 제향하고 있다. 조선 중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십청헌 김세필이 벼슬에서 물러나 음성군 생극면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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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 충청북도 음성 지역은 충청북도 천주교의 메카였다. 충청북도 전역에 천주교가 확산되는 교두보가 되었으며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곳이다. 천주교의 한국 전래는 청나라 당시 북경에 온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가 계기가 되어 이루어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인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돌아와 이벽, 정약전 등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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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 전통시대에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을 실천한 신하. 충신은 나라에 도움이 되는 성신(聖臣), 양신(良臣), 충신(忠臣), 지신(智臣), 정신(貞臣), 직신(直臣)의 육정(六正) 가운데 하나이다. 음성 지역에도 충과 관련된 인물과 유적이 상당수 남아 있어 정치적·사회적 규범으로 자리잡았던 충 사상의 영향을 알 수 있다. 음성 지역의 충신에 관한 기록으로는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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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조인옥(趙仁沃)의 사우. 조인옥은 본관이 한양이며, 자가 군계(君啓)로, 판도판서(版圖判書) 조돈의 아들이다. 1373년(공민왕 22)에 음보(蔭補)로 산원(散員)이 되었고, 1387년(우왕 13)에는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를 거쳐 이듬해 이성계의 휘하에서 종군하였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구세력 숙청에 가담하였다. 정도전 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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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성당은 1896년 프랑스 임가밀로 신부에 의해 충청북도에서는 첫번째, 국내에서는 18번째로 세워진 성당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문맹 퇴치를 위해 매괴학교를 설립하여 우리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준 성당이기도 하다. 또한 감곡성당은 100여 년간의 한국 천주교와 감곡성당의 발자취가 담겨있는 각종 유물들이 전시하고 있어 한국 천주교사 뿐만 아니라 우리 근대사에 많은 영향을 준 역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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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을 시조로 하고 이사온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이광(李匡)은 고려 명종 때 태사(太師)를 역임하고 광록대부(光祿大夫)로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에 올라 백오군(白烏君)[백오는 평창의 옛 이름]에 봉해졌다. 이광의 8세손 이천기(李天驥)가 고려 말에 산기상시(散騎常侍)를 역임한 후 고려가 망하자 아들 이륙·이갈·이과 삼형제를 데리고 장단으로 내려가 절의를 지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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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당골의 아래쪽에 있다하여 아래당골 또는 하당동이라 불리어왔다. 당골은 조선시대 양혜원이 있었던 곳으로 영남 지방에서 한양으로, 충주목에서 청주목 등으로 가는 길목으로서 숙박업과 마방 등이 번창하였고 주막이 있어 주막거리라고 불리는 곳이기도 하였다. 본래 음성군 남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음월촌, 양촌,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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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경과 조도흥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한양조씨(漢陽趙氏)의 시조는 고려 때 첨의중서사인(僉議中書舍人)을 지낸 조지수(趙之壽)이다. 한양조씨 가문에서는 조선 개국공신이 2명이 배출되었는데, 태조 때 이조판서를 지낸 조인옥(趙仁沃)과 태종 때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조온(趙溫)이다. 조인옥의 후손인 조경(趙經)이 임진왜란 후 음성군 금왕읍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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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 전통시대에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섬긴 자녀. 효 사상은 삼국시대에 이미 전개되었다. 고구려에서는 태학(太學)에서 오경(五經)과 중국의 사서들을 교육하였고, 신라도 국학(國學)에서 『논어(論語)』와 『효경(孝經)』 등을 교육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국자감(國子監)을 설치하여 유교 경전을 학습하고, 『논어』와 『효경』을 필수 과목으로 하여 유교적 충효 사상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