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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1651
한자 宋匡度孝子門
영어의미역 Memorial Gate for Song Gwangdo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 80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길경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려
양식 맞배집
건립시기/일시 조선시대
정면칸수 1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 80 지도보기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에 있는 고려 말 조선 초 송광도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각.

[개설]

조선은 유교를 국교시하였기에 충(忠)과 효(孝)와 열(烈)을 만인의 덕목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이를 행하는 데 귀감이 되는 이를 뽑아 기리기 위해 동리마다 충신이나 효자·효부, 열녀를 기리는 비나 비각을 많이 건립하였다. 특히 충청북도 음성군 지역은 다른 문화재보다 유교기념물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위치]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에서 덕산 쪽으로 난 국도 21호선에서 왼쪽으로 갈라지는 지방도 515번을 따라 2㎞쯤 올라가면 두성리가 나타난다. 이 마을의 초입인 지방도 515번 왼쪽으로 송광도 효자각이 보인다.

[변천]

효자 송광도는 고려 공민왕 때 인물이다. 본관은 진천이며, 상산백 송인(宋仁)의 7대손 문하평리 송소(宋玿)의 아들이다. 벼슬은 정요낭장이었으나 고려가 망하자 벼슬보다는 효에 전념하였다. 송광도의 효행이 중국에까지 알려져 중국의 황제가 동방국의 지극한 효자라고 칭하였다.

나라에서 정려를 내려 충청북도 진천군 산정리 묘 아래에 있었으나,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소실되었다. 조선 말기에 후손들에 의해 현재의 장소로 이건하였고 근년에 단청 및 조경을 하고 추모비를 세웠다. 송광도의 처 허씨도 효부로 이름났는데, 83세의 시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하고, 병이 나자 변을 맛보며 증상을 살피고 단을 쌓고 기도하여 10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형태]

송광도 효자문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목조 맞배지붕의 와가로, 양옆에 풍벽(風壁)을 달았고 사면을 홍살로 막았다. 비각 안에는 편액을 달고 비석을 세웠다. 편액에는 ‘효자 비순위 정용랑장 송광도지문(孝子備巡衛正勇郞將宋匡度之門)’이라 새겨져 있고, 바닥에 있는 비석에는 ‘효자비순위정용랑장진천송공휘광도지문(孝子備巡衛正勇郞將鎭川宋公諱匡度之門)’이라고 음각하였다. 효자각 옆에 추모비가 있다.

[현황]

맞배지붕의 전형적인 효자각으로 근래에 비각이 수리되었다. 고려 말 조선 초에 세워진 효자각의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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