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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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8년에 간행된 남연년의 시고(詩稿)를 모은 책. 남연년(南延年)[1653~1728]은 감찰 남두명(南斗明)의 아들로, 1653년(효종 4)에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릴 때부터 의협심이 남달랐으며, 「소무전(蘇武傳)」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 벼슬길에 올라 1676년(숙종 2)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705년(숙종 31)에 황해도 병마우후(兵馬虞候)가 되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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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암1리에 인민군이 들어오던 낮부터 술렁거렸는데, 당시 이장을 보고 있던 오덕욱 할아버지의 아버지와 함께 마을 뒷산 떡갈참나무로 피신을 갔다. 그렇게 들어온 인민군들은 병암1리를 사이에 두고 한국군과 포격전을 벌였다. 그리고 오덕욱 할아버지가 18세에 되던 때에 1·4후퇴를 하였다. 그때 청주시 남일면까지 피난을 갔었다. “그러다가 한국군이 저 압록강까지 올라갔다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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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사정1리 부근인 음성읍 감우리, 소여리, 충주시 신니면 동락리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다. 사정1리 강당말, 용대동 앞산을 넘으면 감우리인데 이곳에서 전개된 감우재 전투는 6·25전쟁 때 국군이 최초로 이긴 전투이다. 감우재를 가기 전 마을인 사정1리에서 일어난 전투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드리자, 용대동에 사는 강정순 할머니, 김장일 할아버지(37년생, 7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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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에서 이 먼 곳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냐고 물어보자, “시집올 때 세상이 지금 같았으면 이런 곳으로 시집 안 왔다.”며 다시금 강조하여 말하였다. 처음 충청도에 왔을 때 너무 조용하다고 생각했다. 전라도에 살 때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칼끝에 앉은 것 마냥 불안하고, 매일같이 순경들에게 붙들려가서 문초 당하고 두들겨 맞았다. 빨갱이 한 패가 지나가고 나면 가슴이 철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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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말마을은 서울에서 내려오다 충주와 음성, 청주로 갈라지는 길목에 있었으며, 6·25전쟁에서 국군의 최초 승전인 감우재 전투가 벌어진 전장에서 가까운 마을로 인민군이 머물기도 하면서 6·25전쟁의 피해가 심했던 마을이다. 특히 생극면 소재지인 신양리와 병암리는 교통의 요지로 충부와 음성으로 통하는 길목이었으므로 전쟁지구였다. 이진말마을도 여기에 포함이 되어 있었고 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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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전적국민관광지는 1950년 7월 4일 음성군 음성읍의 감우재와 부용산, 동락리 일대에서 국군 제6사단 7연대와 제1사단 11연대가 5일 동안의 전투 끝에 북한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국민 관광 단지이다. 1986년에 조성하였는데, 18,479㎡의 면적에 감우재전승기념관과 음성 감우재전승기념비·충혼탑·감우재전승기념탑·음성타임캡슐2000·월남참전기념탑 등이 건립되어 있어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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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축 산성. 기존에는 남쪽 국도 37호선을 사이에 두고 가막산과 서로 대치하고 있는 오대산성이 가막산성 또는 할애비성이라 불려왔다. 그런데 2002년 지표 조사에 의해 오대산성과 가막산성은 별개의 산성으로서 오대산성은 할미성으로, 가막산성은 할애비성으로 불려졌음이 확인되었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의 가막산성은 음성-괴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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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1937년 1월 23일에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도 그 집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상당히 깊은 역사를 담고 있는 집이었다. 아버지는 다섯 형제의 둘째였는데, 큰아버지의 아들이 해방되고 이북으로 올라가서 김장일 할아버지가 큰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갔다. 그래서 김장일 할아버지는 큰집의 제사를 맡고 있고, 동생이 친부모의 제사를 맡고 있다. 친아버지는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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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향1리에 있는 우시장.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의 주민들은 청미천을 경계로 충청북도 음성군 쪽을 음성 장호원, 경기도 이천시 쪽을 이천 장호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음성 장호원은 조선시대 영남 지방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고자 문경새재를 넘어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 지역을 거쳐 충주, 주덕, 감곡 지역을 통하여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또한 조선 후기에 소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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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36번 국도를 타면 음성, 충주로 이어진다. 약 40㎞쯤 가면 음성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음성역을 오른쪽에 두고 괴산 방향으로 가면 갑산리로 들어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비교적 찾기 쉽게 높게 달아 놓은 갑산리 방향을 표지판은 왠지 갑산리와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우회전 방향으로 약 2㎞ 되는 거리를 가면 봉전리를 지나 갑산2리가 먼저 나오고 갑산1리를 발견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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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고갯길은 옛날에 사정현대로라고 기록하였듯이 근대 이전에는 큰길이었는데 조선 후기들어 소여리와 감우리를 통과하는 길을 많이 이용하고, 일제시대에 신작로가 나면서 길이 쇠퇴하여갔다. 사정고갯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용대동의 이방우 할아버지(27년생, 81세)는 “일정 때 일본사람이 구 길(신작로)을 만들었고, 현재 4차선도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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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되는 활동 전반과 영역. 경제산업은 경제와 산업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경제는 인간이 공동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활동 전반을 의미한다. 산업은 이러한 활동 중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전반이나 활동 영역으로서 대체로 농업, 공업, 수산업, 임업, 광업 등 유형물의 생산과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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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공무원. 경태현은 본관이 청주(淸州)이며,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에서 출생하여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매괴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제대학(國際大學) 법학과 1년을 수료하였다. 경태현은 1957년 육군중위로 예편한 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근무를 시작으로 총무·재무계장을 역임하고, 1967년 음성군 개발계장을 거처 양정(糧政)·세정(稅政)·경리(經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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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이루어진 선사시대부터 고려왕조의 통일 이전까지의 역사. 역사상의 고대라는 개념은 서양의 역사시대 구분을 원용한 것으로, 고대 노예제사회 혹은 엄격한 신분제사회의 성립과 해체를 기준으로 설정되었다. 여기에서 문자기록 이전의 시기는 선사시대로, 문자기록 이후는 역사시대로 구분하는데, 고대라는 개념 속에는 선사시대를 포함하여 신분계층사회의 성립 과정과 고대적 사회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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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청주고씨 입향조. 본관은 청주. 자는 군명(君明), 호는 퇴암(退庵). 할아버지는 중랑장 고천련(高天連), 아버지는 고유렴(高有廉)이다. 부인은 순천박씨로 박장생의 손녀이다. 동생으로 고덕칭(高德稱), 고덕부(高德符)가 있다. 1419년(세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32년(세종 14)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439년(세종 21) 강음현감(江陰縣監)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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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고덕수의 묘비. 고덕수는 자는 군명(軍明), 호는 퇴암(退庵),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중랑장 고천연(高天連)의 손자이다. 1432년(세종 14)에 식년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과 연풍현감을 지냈다. 1456년(세조 2)에 취금헌(翠琴軒) 박팽년과 재종매부(再從妹夫)라는 이유로 화를 입어 관(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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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청주. 자는 필경(弼卿). 선무공신 고응연(高應淵)의 증손이고, 아버지는 호조참의 고경후(高景厚)이다. 형제는 고상설(高相說)이 있다. 고몽설(高夢說)은 나면서부터 도(道)를 알았고, 지략이 있었으며, 배우지 않고도 능히 천문에 통하고 팔진도(八陣圖)까지 통하였다. 1671년(현종 12)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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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 자는 효백(孝伯), 호는 삼소헌(三笑軒). 선무공신 고응연(高應淵)의 9세손이고, 아버지는 고우한(高羽漢)이며, 어머니는 순천박씨이다. 고봉래(高鳳來)는 품성이 온화하였으며, 12세에 학문에 몰두하여 몇 년 만에 문리(文理)에 통달하였다. 17세가 되면서는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글을 읽었다. 후학을 가르치니 문하에서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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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청주. 자는 태경(台卿), 호는 퇴암(退庵). 선무공신 고응연(高應淵)의 증손이고, 호조참의 고경후(高景厚)의 둘째 아들이다. 형제는 고몽설(高夢說)이 있다. 고상설(高相說)은 1680년(숙종 6)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첨정(僉正)을 거쳐 첨절제사(僉節制使)에 이르렀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 법도에 맞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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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청주. 자는 응수(應壽), 호는 취병(翠屛) 또는 왕곡(枉谷). 고조부는 현감 고덕수(高德秀), 아버지는 고준(高遵)이다. 형으로 의병장 고응연(高應淵)이 있다. 1561년(명종 16) 식년시 무과에 급제하였다. 힘이 세고 기골이 장대하여 수문장(守門將)으로 있었다. 선조 초 용호영장(龍虎營將)에 이어 내금위장으로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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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청주. 자는 원약(元躍). 고조부는 현감 고덕수(高德秀), 아버지는 판결사 고준(高遵)이다. 동생으로 고응섭(高應涉)이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내금위장으로 있던 아우 고응섭과 함께 의병 수백 명을 모집하여 조령 전투에서 전공을 세워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에 녹훈되고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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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 아버지는 사과(司果) 고준(高遵)이다. 고응잠(高應潛)은 임진왜란 때 선조의 피난길을 호종하였다. 인제현감(麟蹄縣監)으로 있다가 1604년(선조 37) 나이가 들어 백성을 다스리기 어렵다고 하여 체차(遞差)되었다. 학행(學行)이 있었으며,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으로 『음성읍지(陰城邑誌)』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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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청주. 연풍현감 고덕수(高德秀)의 7세손이다. 조부는 주부 고응연(高應淵)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고영(高暎)이다. 처부는 무인 조영렬(趙英烈)과 방어사 이직(李溭)이다. 1630년(인조 8)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에 추천되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글을 잘하고 인품이 고결하여 선비들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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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고재봉은 1908년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청주이다. 음성공립보통학교, 서울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원남면장을 역임하였다. 1947년 원남면장으로 부임하면서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하였다. 6·25전쟁 이전에 사회적 혼란기를 맞아 보도연맹에 가입하려는 주민들을 적극 계도하였으며 농촌 경제 활성화를 위한 담배 경작 기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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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청주. 자는 순칠(舜七), 호는 설남(雪南). 선무공신 고응연(高應淵)의 11세손이고, 아버지는 충훈부도사 고익현(高益顯)이다. 고재선(高在璿)은 문학으로 이름이 났으며, 효도와 우애가 독실하여 일대의 추앙을 받았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비바람을 피하지 않고 3년간 시묘하였다. 한시 「가섭사(迦葉寺)」와 1890년(고종 27)에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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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란 일반적으로 고고학적 자료나 미술품, 역사적 유물, 그밖의 학술적 자료를 모아서 보관하고 진열하여 일반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시설이다. 국제박물관회의(ICOM) 헌장에서는 박물관을 “예술·역사·미술·과학·기술에 관한 수집품 및 식물원·동물원·수족관 등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자료·표본 등을 각종의 방법으로 보존하고 연구하여, 일반 대중의 교육과 오락을 위하여 공개 전시함을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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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충을 시조로 하고 반석권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반씨(潘氏)는 기성(岐城)·광주(光州)·남평(南平)의 3본이 있지만 모두 같은 분파이다. 기성은 거제도(巨濟島)의 옛 지명으로 기성반씨를 거제반씨라고도 한다. 광주반씨의 시조는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광주백(光州伯)에 봉해진 반충(潘忠)이다. 그의 현손인 이조판서 반석평(潘碩枰)은 청렴한 문신으로 이름났으며,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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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3리 개미산에 있는 광주반씨(光州潘氏)가 모여 사는 동족 마을. 광주백파(光州伯派) 반충(潘忠)의 현손인 이조판서 반석평(潘碩坪)이 청주 율봉찰방으로 있을 때, 충주 연원도(連原道)를 왕래하면서 도선국사의 『도선비결』에 나오는 ‘봄이 깊은 마피곡 꽃이 만발한 견두산(春深馬皮谷 花發犬頭山)’이라는 구절을 유의하고 살피다가, 현재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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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21살에 입대해서 1961년, 24살에 제대했다. 딱히 이유 없이 그냥 해군으로 가고 싶어서 지원 시험을 봤다. 사정고개를 걸어서 넘고 첫 기차를 타고 청주로 가서, 청주공고에서 신체검사하고 시험을 보고 한 번에 붙었다. “시험을 다 보고 나왔는데 다 보고 나왔는데 일곱 번을 봤네, 몇 번을 봤네 그러면서 내가 쓴 거는 죄 틀리고 즈들이 죄 맞다고 떠들어. 아 나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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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출신의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구안동(舊安東). 자는 용여(用汝). 오은(梧隱)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으로, 김사렴은 정몽주, 이색과 더불어 직간(直諫)으로 이름이 있어 당대의 세력가 신돈을 위험인물이라 하였다고 한다. 고려가 망하자 청주 도산(陶山)에 은거·두문불출하였다. 아버지는 김의택(金義宅)이다. 김환유(金煥維)는 고종 때 수직으로 돈령도정(敦寧都正)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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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한벌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예전에 한 스님이 마을로 시주를 하러 왔을 때 마을 사람들이 스님에게 일은 안하고 시주만 다닌다고 탓하면서 바랑에 인분을 한 바가지 퍼 넣었다. 이에 스님이 동네는 참 좋은데 앞산에 날이 서 있어 좋지 않으니 날을 끊으라고 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그 말에 따라 앞산의 날을 끊었다고 한다. 그 후 동네가 쇠하여 갔으며, 마을 이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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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열녀. 본관은 청주(淸州). 고형진(高亨鎭)의 딸이고, 남석기(南錫驥)의 처이다. 고씨는 나이 17세에 시집을 갔으나 수개월 만에 남편이 병이 나고 시어머니도 병이 들었다. 손가락을 끊어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차례로 피를 먹여 소생하게 하였다. 얼마 후 남편이 사망하자 장도를 품고 평생을 수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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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남연년의 정려각. 1728년 무신난(戊申亂, 이인좌의 난) 때 청주영장(淸州營將)으로 순절한 조선 후기의 무신인 남연년(南延年)[1653~1728]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각이다. 남연년의 본관은 의령, 자는 수백(壽伯)이다.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 선전관을 거쳐 1727년(영조 3)에 청주영장이 되어 토포사를 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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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의령남씨 양정공파 대종회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무신 남연년의 유고 시집의 목각 판각본. 남연년의 자는 수백(壽伯)이고, 본관은 의령이며, 이인좌 반란 때 청주영을 지키다가 청주성의 함락으로 순직하였다. 남연년은 사후에 좌찬성에 추증되었고 1729년(영조 5)에는 숭선군에 추존되어 청주 표충사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장으로, 충신 정려가 내려졌다. 남충장공의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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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문암리에 있는 산. 『대동지지(大同地志)』산수조에는 음성현 서남쪽 40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청안현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문암리 남쪽의 눌문리(일명 누구리) 마을에 있는 산이라서 붙어진 이름이다. 원남면 문암리 송곡(일명 송개올) 북쪽에 있는 산으로 음성군 원남면과 괴산군 도안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북쪽에는 원남면 보천리 서쪽의 종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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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문암리에 있는 산. 원남면 문암리, 조촌리와 서쪽으로 도안면 석촌리와의 경계지점에 있으며 문암리 서쪽에 있다. 한글학회의 『한국지명총람』에서는 대마산과 종지봉을 동일한 산으로 보고 있으나 이들 산들은 분명하게 구별된다. 문암리의 복호는 마을 앞산이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 전하고 있다. 호랑이 형국인 앞산과 마주보고 있는 산의 이름을 커다란 말이라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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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에 큰 우물이 있다 해서 독정이 또는 독정리라 하였다. 본래 음성군 원서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용당리 일부를 병합하고 덕(德)이 있으라는 뜻에서 덕정리라 하여 원남면에 편입되었다. 동북쪽에는 문수산[385m]이 있고 서북쪽에는 사향산[340m]이 있다. 주요 고개로는 자작이고개·우리실고개·팔테고개 등이 있다.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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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덕정1리에 있는 재래 시장. 덕정장이 열리는 지역의 명칭에 따라 삼성장 또는 모래내장이라고도 한다. 모래내는 장터 북쪽에 있던 마을로 지금은 장터와 수청바다 등의 마을이 모두 합쳐져 행정구역상으로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덕정1리에 속한다. 덕정장에 관한 기록이 조선 후기의 각종 문헌과 지도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1930년대 초에 장시가 열렸던 것으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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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군 소이면 비산리는 서울에서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있다. 비산리에 가기 위해서는 중부고속도로를 타야 한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중부고속도로 동서울IC를 출발하여 청주 방면으로 향하면 호법 분기점을 지나 일죽을 거쳐 음성IC에 이르게 된다. 음성IC를 나와서 좌회전을 하면 82번 지방도를 탈 수 있는데, 15분쯤 직진을 하면 금왕대교를 지나 37번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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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마송리·보룡리에 걸쳐 있는 산. 마곡산은 행치의 북쪽에 있다. 『대동지지(大同地志)』 산수조에서는 음성현 남쪽 20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북서쪽에는 큰산[509m, 일명 모래봉]이 있고 남서쪽에는 종지봉[389m]이 있으며 동쪽에는 오대산[400m]이, 남쪽에는 백마산[465m]이 있다. 마곡산은 상당리 웃행테[일명 웃행치]에서 남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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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에 속하는 행정리. 마피동리와 송오리에서 각 한자씩 따서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음성군 남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송오리와 마피동리 일부를 병합하고 마송리라 하여 원남면에 편입되었다. 남동쪽에는 백마산이 있으며, 백마산에는 백마굴·작은 박쥐굴·큰 박쥐굴·감투바위·평풍바위·삼선암 등이 있다. 송오리에서 괴산군 사리면 노송리로 넘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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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 충청북도 음성군은 중부고속국도와 국도 3호선·국도 21호선·국도 36호선·국도 37호선·국도 38호선, 중부고속국도 음성IC를 연결하는 국가지원 지방도 82번이 지역 내의 간선 도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지방도 513번·지방도 516번·지방도 518번·지방도 520번·지방도 583번이 지역 내의 집산 도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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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사정1리 강당말 마을회관을 방문했을 때, 할머니방에는 많은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할머니들게 “할머니들 옛날 얘기 좀 해 주세요.” 하자 할머니들은 그런 것 다 잊어버렸다며 선뜻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누구 옛날 얘기 잘하시는 분 없으세요.”라고 다시 물으니 “그런 거 이 이가 잘해” 하며 한 할머니를 가리켰다. 바로 이진희 할머니(29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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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이 독자적으로 갖는 언어 체계와 특이한 언어 현상. 방언이란 기원적으로 균질적인 한 언어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역적·사회적으로 분화되어 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화를 일으킨 형태를 말한다. 한편으로는 특정 언어 집단에서 쓰이면서 다른 언어 집단의 언어 체계와는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 한 언어의 변종(變種)이자 변이체(變異體)를 일컫기도 한다. 이 중에서 특정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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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한벌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음성읍에서 동쪽으로 약 2㎞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소이면 비산리, 서쪽으로는 읍내리와 용산리, 남쪽으로는 수정산, 북쪽으로는 가섭산과 각각 접하고 있다. 예로부터 마을에 방죽이 있어 방죽안이라 불렀다. 원래 음성군 동도면 지역으로, 큰 벌판이라 하여 한벌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한상리와 한하리를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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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주봉리에 걸쳐 있는 산.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주봉리와 괴산군 사리면과 군계를 이루고 있는 명산이다. 고문헌에는 음성군 남쪽 20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사계절 경치가 아름다워 소금강이라 칭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마산의 산 중턱에는 백마굴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백마굴에서 백마가 나왔다고 해서 붙어진 산의 이름이다. 백마산의 높이는 379.2m이며,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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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 있는 고개. 옛날 어느 장수가 괴산군 사리면의 매바위 윤씨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3일이 지나자 아이가 없어졌다가 닭이 울기 전에 다시 돌아오곤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뒤를 따라 가보니 아이가 큰 동구나무를 훌훌 뛰어넘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의 겨드랑이를 보니 날개가 있어 이 아이를 그대로 두면 후환이 있을까 두려워 날개를 떼니 아이가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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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에 속하는 행정리. 보내가에 있었으므로 보내 또는 보천이라 하여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주막촌인 보천점이 번성하여 가촌을 이루어 4일과 9일에 장시가 열렸고 1920년부터 충북선 개통으로 번성하였으나 1970년대에 들어와 음성읍내장으로 흡수되었다. 본래 음성군 원서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조촌리 일부를 병합하고 보천리라 하여 원남면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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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있는 음성역에서 관리하는 간이역. 일제강점기 문헌에 보천리는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남쪽으로 20리(약 7,855m)에 위치하고 있고 고읍터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서는 조치원~충주 간 충북선 개통으로 보천역의 서쪽에는 도안역, 동쪽에는 음성역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84년 3월 1일 음성역의 관리역으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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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의 관에서 소식을 전하던 통신 방법. 봉수는 말 그대로 밤에는 봉(烽: 횃불)으로, 낮에는 수(燧: 연기)로 급보를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및 제도이다. 고대부터 사용된 방법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지속적으로 운영되다가 1894년 폐지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봉수 관련 유적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것으로, 특히 조선 세종 때 봉수대 시설의 규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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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에 속하는 행정리. 비석동(碑石洞)의 ‘비’자와 돈산리(敦山里)의 ‘산’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사이포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비석동·조도리·돈산리를 병합하여 음성군 소이면에 편입되었다. 돌뫼 동쪽에는 절바우가 있는 절바우산(일명 뽀족산)이 있고 마타산 서쪽에는 가섭산[710m]의 줄기인 기운들산이 있다. 새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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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군민들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적 단위. 사회는 일정하게 설정된 영역 내에서 종교·가치관·규범·언어·문화 등을 상호 공유하고 특정한 제도와 조직을 형성하고 질서를 유지하면서 존속하는 인간 집단을 의미한다. 즉 사회는 문화와 제도 면에서 독창성을 지닌 공통의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개인의 집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회는 주로 민족, 국가, 문화와 지역 등에 의해 구분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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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당골 위쪽에 위치하고 있어 웃당골 또는 상당동이라 불린다. 본래 음성군 남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당리라 하여 음성군 원남면에 편입되었다. 상당2리에는 모래봉[509m]이 있으며 상당1리에서 마송리로 넘어가는 행치고개(일명 한금령)를 비롯하여 상당리에는 구렁고개, 목날고개, 삼실고개, 재너머고개 등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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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우리와 왕장리 일대에 조성하고 있는 지방 산업 단지. 지방산업단지법에 의하여 산업 단지 내 사업장에게는 지방세 감면 혜택 또는 일정 기간의 법인세 유예 등의 기업 지원 서비스가 제공될 예정이다. 충청북도 음성군이 계획하고 있는 산업 단지는 산업의 생산성 제고 및 국토 환경 보호와 수도권 공장의 지방 이전, 지방 중소기업의 저렴한 공장용지 확보, 국가 정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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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4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소이면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3㎞ 지점인 비산리 중부 지역에 위치하는 마을이다. 동쪽으로 오랫말, 서쪽으로 비선거리, 동남쪽으로 대장리 장막산과 각각 접하고 있다. 비선거리 동남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충주군 사이포면 조돈촌리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비산리에 속하게 되면서 소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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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조선시대 성인하 처 안동권씨가 정절을 지킨 것을 기리는 비. 성인하 처 안동권씨 정렬비는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청주로 가는 국도 36호선 변 원남면 하당리에서 왼쪽 하당저수지 쪽으로 올라가면 하당초등학교가 나오고 이 학교의 교정 끝부분에 있다. 비석은 방형(方形) 대석 위에 비신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으로 대석을 보호하기 위하여 시멘트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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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속하는 행정면. 충청북도 음성군이 관할하고 있는 2읍 7개 면 중의 하나이다. 소이면은 대장리·후미리·중동리·문등리·갑산리·봉전리·금고리·충도리·비산리 등 9개의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으며 행정리 26개, 91반, 49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소파면(蘇坡面)의 ‘소(蘇)’자와 사이포면(沙伊浦面)의 ‘이(伊)’자를 따서 소이면이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사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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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대장리에 있는 충북선 복선철도의 통과역. 1922년 3월 5일 중앙철도주식회사에 편입되어 영업을 개시하였으며, 청주~충주 간 국도 36호선에서 남동쪽으로 약 2㎞ 떨어져 있다. 1928년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에서 충청북도 충주 간 충북선이 개통됨에 따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28년 12월 25일 충북선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한 소이역은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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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화(子華). 청성군(淸城君) 손필영(孫弼榮)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손희언(孫希彦)이며, 아버지는 손계선(孫繼先)이다. 소과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손필영 이후 후손들이 주로 음성군에 세거하여 청주손씨이지만 음성군에서 대대로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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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청주(淸州). 청성군(淸城君) 손필영(孫弼榮)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손지(孫漬)이다. 섬계(剡溪) 이잠(李潛)의 문인으로, 선조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벼슬이 중추부동지사에 이르렀다. 손희성(孫希聖), 손희철(孫希哲), 손희준(孫希濬) 형제 모두가 사마시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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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평곡리의 경계에 있는 산. 수정산은 성재산·수리봉 등으로도 불리고 있는데, 수정산에는 할미산성이 있어 할미성산으로도 부르고 있다. 산의 모양이 마치 독립된 섬의 형상을 이루고 있으며, 서쪽에는 옥수정 우물이 있고 산 중턱에는 토끼 모양의 장수바위가 있다. 장수바위에 올라서면 음성읍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산의 정상 부근에 있는 수정산성은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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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충청북도 북부 지역은 구석기를 비롯하여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선사시대의 유적지가 많다. 따라서 이들 지역과 인접한 음성에서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개연성이 높다. 실제로 삼성면 용성리에서 석영질 암석으로 만든 찍개와 긁개, 밀개 등의 연모가 출토됨으로써 음성 지역의 구석기시대와 문화의 존재를 입증하였다. 청동기문화를 대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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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배우가 무대 위에서 동작과 대사를 통하여 표현하는 예술 형태인 연극과 스크린 상에 움직이는 영상을 이르는 영화를 아울러 이르는 말. 연극은 삶의 근원적이고 총체적인 경험에 기원을 두고 있어 다른 어떤 문화적 산물 못지않게 역사적·지역적·민족적 소산인데 반해 영화는 제작 과정에 창조적 요소와 기계적·기술적 요소 그리고 경제적 요소가 합쳐져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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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 전통시대에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해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열녀란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한 부녀자로 일반적으로 열녀와 열부(烈婦)를 통칭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충효열 관념이 삼강오륜(三綱五倫)이라는 형태로 정치적·사회적 규범으로 체계화되면서 열녀는 사회적인 중요성을 강화해갔다.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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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36번 국도를 타고 증평을 지나 한 40분 정도 가면 음성군이 나온다. 음성군 음성읍을 지나 음성중학교와 음성역 방향으로 우회전을 하면 소이면으로 갈 수 있다. 음성역에서 괴산 방향으로 10분 정도 가면 소이초등학교를 지나 갑산리로 들어가는 길목이 나온다. 그 길로 우회전해서 들어가면 봉전리를 지나 갑산2리와 갑산1리가 왕복2차로를 경계로 좌측과 우측으로 나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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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지역에서 창작되거나 전승되고 있는 미적 표현물이나 표현 행위. 충청북도 음성 지역은 지형적으로 궁벽하지만 농경 문화를 기반으로 해 왔으며 산업화 속에서도 농촌의 고유성이 짙은 구비·민요·농요가 전승되어 왔다. 음성 민요의 경우 음성 지역이 경기도·강원도와 접하고 있어 두 지방의 민요가 혼합되어 있으며 노동요가 많다. 노동요로 「모찌기 노래」·「모심기 노래」·「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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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의 오대산 정상부에 있는 고대 국방 시설. 오대산성은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와 괴산군 소수면 옥현리 사이의 해발 약 399.7m 오대산 정상부에 있는 테뫼식 토축 산성으로 오성산성 또는 할미성이라고 불려진다. 산성에 대한 고문헌 기록은 전혀 없으며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원남면 상노리, 오대산성, 상노리 동남 약 300간, 음성·괴산 경계에 있음,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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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속하는 행정면. 충청북도 음성군이 관할하고 있는 2읍 7개 면 중의 하나이다. 원남면은 보룡리, 보천리, 문암리, 조촌리, 덕정리, 삼용리, 하노리, 상노리, 상당리, 하당리, 구안리, 마송리, 주봉리 등 13개의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으며 30개의 행정리, 89개의 반, 60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원서면(遠西面)의 ‘원(遠)’자와 남면(南面)의 ‘남(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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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석인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음성읍에서 동쪽으로 약 2㎞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은 소이면 충도리, 서쪽은 평곡리, 남쪽은 충도리, 북쪽으로는 소이면 비산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옛날 청주에서 충주로 통하는 길가에 주막이 있어 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리고 옛 석인점(石人店)이 있었다고 한다. 본래 음성군 동도면 지역으로 사람의 모양을 한 자연석이 있어 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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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후미리에 있는 산. 달과 같이 둥근 모양의 산세와 물이 흐르는 개천에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어래산 아래의 월포산 남단에는 항고개가 있으며, 북단의 무너미고개를 지나면 소이면 문등리 북쪽의 316고지가 있다. 항고개는 월포산 남단의 소이면 후미리 장구실에서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 내삼방으로 가는 고개이고 무너미고개는 후미리 동양말(동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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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1리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 음성군 음성읍 지역 주민의 대중 교통 수단의 편리성을 위하여 오래 전부터 운영되던 공동정류소가 1983년 7월 15일에 버스터미널로 면허를 받아 영업하고 있다. 음성버스터미널의 건축 면적은 121㎡이고, 1일 운행 대수는 130대이다. 도착지별 운행 빈도는 음성군 보천·도안과 충청북도 증평·청주 가 34회로 가장 많고, 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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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지역에 언제 처음 성곽이 축조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청동기시대 구릉 위에 만든 마을의 둘레에 환호(環壕)를 두른 유적이 나타나고, 이어서 그 안팎으로 나무말뚝 따위를 죽 이어서 박아 만든 울타리, 곧 울짱의 형태와 같은 목책(木柵)을 두른 시설이 나타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목책 이외에 흙으로 다져서 성벽을 만드는 단계로 발전된 것이 확인되었다. 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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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그린 고지도. 충청북도 음성군(옛 음성현)의 고지도로는 『광여도(廣輿圖)』, 『해동지도(海東地圖)』, 『1872년 지방지도(地方地圖)』, 『여지도(輿地圖)』, 『비변사인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 『조선지도(朝鮮地圖)』, 『팔도군현지도(八道郡縣地圖)』 등이 있다. 19세기 초 필사본 회화식으로 만들어진 전국 군현지도집인 『광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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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 이진말은 지리적으로 충청북도 북서부 지역에 있는 음성군의 중북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생극면 생리, 북서쪽으로는 응천, 남쪽으로는 생극면 도신리, 북쪽으로는 생극면 신양리와 접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중부고속도로를 따라오다 일죽 나들목으로 나오면 동쪽으로 10㎞ 지점의 생극면 소재지에 이르게 되며, 면소재지에서 금왕 방면으로 1㎞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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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지표상에 존재하는 인문적 사상(事象)들을 지리적 관점에서 분석한 분야. 인문지리학의 아버지는 리터(Carl Ritter)[1779~1859]로, 리터는 지리학을 경험과학으로 규정하면서 공간적 관점에서 지역을 총체적으로 연구하며, 현상들 간의 상호 관련성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는 것으로 정의를 내렸다. 특히 리터는 지역 현상을 파악하는 데 있어 자연·인간·역사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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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1910년 국권 강탈 이후 1945년 광복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통치 시기. 음성군은 1895년(고종 32)에 지방 관제를 23부로 개정할 때 충주부 20개 관할군의 하나인 음성군이 되었다가 이듬해 8도 체재로 정비될 때 충청북도 음성군이 되었다. 그후 1906년 지방제도가 정비될 때 충주군에 소속되었던 13개 면을 이임받아 동도면·남면·원서면·근서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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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 고구려가 설치한 행정 구역. 음성은 잉홀(仍忽)·설성(雪城)·잉근내(仍劤內)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잉홀의 지명은 서기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 12월에 음성으로 변경되었다.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 약물제 동쪽에 터골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 구문동(龜文洞)이라고도 하는 이 마을은 고구려 때 잉홀현의 관청이 있어 ‘터골’이라고 하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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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는 4남 1녀로, 5남매를 두었다. 다섯 남매의 태몽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아나? 옛날에 여기(용대동 비 있는 곳) 샘 있었지? 옛날에 거기서 물동이를 이고 거기를 가는데, 빨간 감이 담 위에 하나가 올라가 있어. 딱 하나가 올라 앉았길래 감을 누가 볼까봐 얼른 감춰서, 여기다 감싸가지고 왔지. 그랬더니 벌써, 한쪽은 새파랗고 대가리는 새빨간 것이, 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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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지역의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닌 인간 생활의 자연적 기반. 음성군 북동부의 중립화강암은 동서 및 남북 등의 두 방향이 우세하고 북동 내지 북북동 방향의 계명산층은 구조적 요소로서 중요하다. 초평층군에서는 습곡이 잘 발달되어 있는데, 역시 북동 내지 북북동 방향이고 복향사와 복배사의 습곡 지형도 발견된다. 금왕읍 무극리 동쪽에서는 중생대 백야리층과 편마암 사이에 수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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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열녀. 본관은 청주. 아버지는 이정주(李鼎周)이고, 남편은 장석영(張錫永)의 손자인 장동엽(張東曄)이다. 청주에 거주하는 시부모에게 효성이 극진하였다. 26세 때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세수하지 않고 의복도 갈아입지 않았으며, 머리도 빗지 않고 음식은 죽만 먹었다. 삼년상이 끝난 후 세수하고 의복을 재개하고 머리를 빗고,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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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 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정응상(鄭應祥)이며, 아버지는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의 외증손으로 부사맹(副司猛) 정사중(鄭思中)이다.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1555년(명종 10) 13세에 덕계(德溪) 오건(吳健)을 스승으로 모셨고, 겸하여 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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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음성군의 역사. 조선 초기 음성 지방은 고려의 지방제도와 같이 충주목에 속한 4속현(영춘·제천·음성·연풍)의 하나였다. 음성현은 1413년(태종 13)의 지방제도 개편 때 현감을 두었으나 규모가 매우 작아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충주 제천에 이르기까지 7리, 서쪽으로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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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주봉사의 이름을 따서 주봉리라 불린다. 본래 음성군 남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바랑골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동, 마피곡 일부를 병합하여 주봉리라 하고 원남면에 편입되었다. 주봉1리 내동의 백마산[465m]에는 범바위, 병풍바위 등이 있고 백마산의 동쪽에는 공수골이 있다. 봉3리 서당골 동쪽에는 오봉산이 있고 오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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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의 동남향 골짜기에는 음성군에서 가장 큰 사찰이자 가장 많이 알려진 사찰, 미타사가 자리 잡고 있다. 충주와 청주를 잇는 국도 36호선으로 가다 보면 동양 최대 크기의 지장보살입상이 금방 눈에 띈다.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미타사로 옮겨지는데, 마치 지장보살의 중생 구제에 의 강렬한 염원이 사람들을 미타사로 이끄는 것 같다. 미타사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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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지표면의 기복 및 모양이나 형태. 음성군 지역에는 음성군 중부의 노령산맥을 중심으로 북서부의 차령산맥과 남동부의 소백산맥, 중앙부의 소속리산 산맥과 종지봉 산맥 등 여러 산맥들이 지나고 있으며, 그 중 음성군 지역은 차령산맥에 치우쳐 있다. 음성군의 지체 구조는 화강암이 분포하는 서부 지역, 퇴적암 및 편마암류가 북북동 방향으로 분포하는 중부 지역, 화강암류와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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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동일 본관의 가구가 다수를 이루는 마을. 집성촌은 동족 마을이라고도 부르며 동성 동족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집성촌은 동일 조상에 대한 제향, 마을의 대동계, 문중의 크고 작은 일 등을 공동으로 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공동체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 마을이다. 음성 지역의 집성촌은 한 종족이 어느 한 마을에서 계속해 여러 대에 걸쳐서 살아온 경우와, 여러 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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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말로를 시조로 하고 고덕수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시조는 938년(태조 21) 탐라국의 태자 고말로(高末老)로 고려에 입조하여 성주왕자(星州王子)로 봉해졌으며 고씨의 중시조(中始祖)로서 청주고씨(淸州高氏)의 1세이다. 고려조에서 9상서(尙書) 12한림(翰林)을 배출하면서 명문가로 성장하였다. 『고씨대동보상당군파편』에 의하면, 2세인 고강은 문종 때 병부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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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이루어지는 신체를 단련하고 운동 능력을 기르는 일 또는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 근대 이전 우리 민족의 주요 체육 활동은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줄다리기, 활쏘기, 그네뛰기, 씨름, 썰매타기, 가마타기, 팽이놀이, 팔씨름 등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적 의미의 체육 활동은 1910년대부터 설립되기 시작한 보통학교의 정규 교과 과정으로 체육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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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성당은 1896년 프랑스 임가밀로 신부에 의해 충청북도에서는 첫번째, 국내에서는 18번째로 세워진 성당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문맹 퇴치를 위해 매괴학교를 설립하여 우리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준 성당이기도 하다. 또한 감곡성당은 100여 년간의 한국 천주교와 감곡성당의 발자취가 담겨있는 각종 유물들이 전시하고 있어 한국 천주교사 뿐만 아니라 우리 근대사에 많은 영향을 준 역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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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양식의 정자. 음성군 소재지에서 청주 쪽으로 가는 국도 36호선 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가면 우측편에 위치한다. 마을에서 보면 오른쪽 앞쪽의 들판 한가운데에 있는 조그만 언덕 위에 동서향으로 서 있다. 충효정(忠孝亭)의 원래 이름은 피금정(披襟亭)으로, 약 3백 년 전에 세워진 정자이다. 피금정이란 더운 여름날 온몸에 땀이 흘러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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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노래기 아래쪽이라 하여 아래노래기 또는 하노리로 불린다. 본래 음성군 남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가곡, 외가곡, 하촌, 능촌 등을 병합하여 하노리라 하고 원남면에 편입되었다. 하노1리 동남쪽에는 오성산[484m]의 줄기인 얼기서리산이, 동쪽에는 왕재(왕현)가, 서쪽에는 낙낙기산(낭나기산)이, 서남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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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당골의 아래쪽에 있다하여 아래당골 또는 하당동이라 불리어왔다. 당골은 조선시대 양혜원이 있었던 곳으로 영남 지방에서 한양으로, 충주목에서 청주목 등으로 가는 길목으로서 숙박업과 마방 등이 번창하였고 주막이 있어 주막거리라고 불리는 곳이기도 하였다. 본래 음성군 남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음월촌, 양촌,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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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8살 때 사정국민학교에 입학했는데, 일정 때여서 2학년까지밖에 못 다니고 6·25가 벌어졌다. 집이 워낙 가난해서 더 이상 진학도 못하고 진천 외가댁에 가 있다가 고등국민학교가 생기면서 3학년으로 들어갔다. “고등국민학교 입학을 하는데 제 날짜에도 못가고. 국민학교 나온 학생들하고, 나는 4년을 놀았으니깐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죽자사자, 지게 작대기 받쳐놓고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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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잘하던 소리도 시집와서 안 해서 다 잊어버렸다. 시어머니 시집살이 때문에 문밖으로 나가지를 못해서 할 기회도 없었다. 시댁 형님들이 담벼락 너머로 놀러 나오라고 해도 시어머니 때문에 나가지 못했다. 하다못해 자녀들이 이리저리 상 받으러 다니고, 선수로 뽑혔을 때도 가지 못했다. 남의 속도 모르는 동네사람들이 “자식이 상 받고 그러는데 왜 안 따라 가냐”고 이야기 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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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거리 에서 나고 자랐다는 황경모 할아버지(82세)는 현재 둘째 아들인 이장 황경구(42세) 씨와 함께 살고 있다. 늘거리에 들어서자마자 왼편으로 보이는 2층으로 된 커다란 집이 황경모 할아버지 댁인데, 이장님도 뵐 겸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는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로 가득했고 명절 끝이라 가족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 손자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