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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후퇴 - 청원군 남일면으로 피난하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D020202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1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영숙, 정연민

병암1리에 인민군이 들어오던 낮부터 술렁거렸는데, 당시 이장을 보고 있던 오덕욱 할아버지의 아버지와 함께 마을 뒷산 떡갈참나무로 피신을 갔다. 그렇게 들어온 인민군들은 병암1리를 사이에 두고 한국군과 포격전을 벌였다.

그리고 오덕욱 할아버지가 18세에 되던 때에 1·4후퇴를 하였다. 그때 청주시 남일면까지 피난을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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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후퇴1

“그러다가 한국군이 저 압록강까지 올라갔다가 또 내려오면서 1·4후퇴가 또 생기게 된 것이지. 그래서 우리도 여기서 저 청주까지 갔다 왔어. 저기 남일면. 지금 저기 저 공군사관학교 있는데 근데 그때는 청주시 남일면이 아니라 청원군 남일면이야. 거기가 남일면 지붕리라는 곳까지 가서 거기서 한 2주 있었을 거야. 피난을 그쪽까지 갔다 왔어. 온 식구가 다. 방 하나 얻어가지고선 한 2주 산 거야. 그런데 그때만 해도 마차에다가 쌀 싣고 뭐 이불 뭐 먹을 것 전부 싣고선 한 보따리 싣고서 떠난 거야 그냥. 그래 올 적엔 그 놈 가져 올 수가 있어? 그러니까 인제 마차 거기서 처분하고 소도 전부 처분하고 빈 몸으로 집에 들어오는 거지. 청주까지 거까지 1·4 후퇴 때 피난 갈 적에 아마 한 일주일 걸렸는가봐 걸어가는데 남일면까지 가는데 남일면 가기 전에는 저 내덕동 지금 저 아마 청주대학교 있는 데 고 근방어디 지금 생각이 안 나. 거기 또 어디서 방 하나 얻어서 며칠 살다가 남일면까지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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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후퇴2

당시에는 오덕욱 할아버지의 일곱 형제가 다 있었을 때인데, 맏형은 제2국민병으로 입대를 했었다.

“그때 우리 형님은 국민병 가고, 제2국민병이라고 했어. 제2국민병 거기 가서 입대 해 가지고 한국군으로 입대도 할 수 있고 끝나면 또 올라오고 올라왔다가 또 영장 받아서 군인가지. 그땐 다 제2국민병이라고 그랬다고. 근데 나이 먹은 사람들 비단 청년뿐 아니야 40대 이상들도 전부 국민병으로 데려 간 거야. 정식 군인은 아니고 국민병 식으로다가 정부에서 소집을 해가지고 데리고 내려가는 거야. 거기 가서 입대해서 군인 가는 사람들은 군인가고, 안하고 그냥 돌아오는 사람들은 그냥 돌아오고. 우리 형님은 그냥 돌아왔다가 결혼하고 다시 영장 받아서 군인 간 거지. 그리고 거기서 병사 하신 거고”

피난을 갔다가 돌아와 보니 미군들이 집을 다 태웠었다. 초등학교 연병장 꽉 찰 정도로 미군이 많이 있었는데, 영국군하고 미국군이 집을 태웠음에도 보상도 안 해주었다. 마을 전체가 세 집 빼고 다 타고 있었고 다녀오니깐 그때까지 연기가 나고 있었다. 그 세 집은 노인들 각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4후퇴를 다녀오고 나서는 가족이 광 한 칸에 방을 꾸며서 살았다. 집이 없어서 결혼식을 하고 김금자 할머니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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