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B030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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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진 희 |
원심원 아래에 위치한 이병환[1940년생] 씨 집에 들어서니 문틈으로 먼저 워낭 소리가 흘러나온다.
발길을 옮겨 보니, 바로 옆 축사에는 2006년에 태어난 어미소부터 ‘11월 18일’이라고 불리는 이름의 한 달도 채 못 돼는 송아지까지 모두 7마리의 소가 있고, 그 옆으로는 불이 지펴진 아궁이 위로 여물 끓이는 큰 솥이 올려져 있다.
여물통에 쇠죽을 부어 주면 소는 고개를 내밀고 눈을 꿈벅꿈벅 대며 먹는데, 무덤덤하게 먹는 모습이 아귀다툼이라고는 도무지 할 줄 모르는 표정이다. 되레 되새김질을 하는 여유를 보이니 갑자기, “네가 세상의 빠름을 알어?” 하고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물론 소는 내 알 바 없다 하는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우보천리를 가겠지만 말이다.
[손해 보는 것 생각하면 못 키워]
농경사회 이래로 소는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동거 동락해 온 가축이자 농가의 소중한 재산이었다. 물론 동곡마을 이병환 씨가 농사일을 돕는 ‘일소’ 용도로 소를 키운 것은 아니다. 어려서 누이와 형제를 일찍 병으로 잃은 탓에 외롭게 외동아들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자식을 많이 두게 되었고, 때문에 농사보다는 소득이 될 만한 소 키우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
물론 1960년대 이후로 지금껏 소를 키워 오면서 때로는 ‘FTA’다 ‘광우병 파동’이다 뭐다 해서 손해를 볼 때도 있었고 이윤이 남을 때도 있었지만, 소라는 것은 본래 쉽게 팔았다가 샀다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어서 보통은 2년을 채워서 키우고 파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소는 제각기 태어난 날짜로 부른다. 소장수에게 소가 태어난 날을 알려주는 것은 ‘소를 파는 이’가 반드시 해야 할 역할이고, 성장 정도가 적절한지를 따져 보기 위해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요즈음 그는 ‘7월 16일’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그러고 보면 소도 천차만별인 것이, ‘7월 16일’이라 불리는 소는 자기 새끼한테도 젖을 물리려 하지 않아서 새끼한테 젖을 줄 때마다 줄로 묶어 두는 한 차례 소동을 겪어야 하는가 하면, ‘10월 13일’은 모성애가 남달라서 자기 새끼를 다른 데로 못 가게 어거지로 몰아세우듯 옆에 두고 보살피려 해서 문제란다.
일을 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이병환 씨는 풀을 베어 소들을 먹인다. 물론 소들 역시 이제는 장성하여 출가한 자식들을 대신하여 이병환 씨 곁에서 일상의 자락을 동행해 주고 있다. 동곡마을의 이병환 씨와 소를 보고 있으니, 평생을 땅을 지켜 온 무뚝뚝한 노인과 30년 이상 함께한 무덤덤한 소의 동행을 그린 영화 「워낭 소리」가 절로 떠올랐다. 고락을 함께한 인간과 동물 역시 ‘지기’가 될 수 있는 듯했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