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5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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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升沓址 |
영어의미역 | Seungdap Site |
이칭/별칭 | 승답지,되배미 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 137-13[용성6길 72]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문이화 |
성격 | 승답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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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조선 전기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 137-13[용성6길 72]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에 있는 조선 전기 벽골제 제방 공사에 투입된 인부들의 수를 세던 곳.
[개설]
1415년(태종 15) 벽골제(碧骨堤)를 대대적으로 보수할 당시, 하루에 1만여 명이나 동원되는 인부들의 현황을 매일같이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자, 임시방편으로 일정한 크기의 논에 사람들을 빽빽이 세워서 곡물(穀物)을 되질하듯 인원수를 헤아려 냈다고 한다. 이를 승답(升畓) 혹은 되배미라고 했는데, 이렇게 한 번씩 되질해 내는 인원수는 500명이었다고 한다.
[위치]
승답 터는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 포교마을[일명 갯다리마을]을 관통하는 부안선 도로변 동편, 원평천(院坪川)과 두월천(斗月川)이 합쳐지는 자리에 있다. 근처에 벽골제 제방 공사에 참여한 인부들이 작업이 끝난 후 버린 짚신이 쌓여서 산이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오는 신털미산이 위치하고 있다.
[현황]
승답 터 자리에는 얼마 전까지도 부량양조장이 들어서 있었으나 문을 닫았다고 하며, 현재는 민가가 자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김제 지역은 대부분 평야로 이루어진 곳으로서, 벽골제는 바로 이 너른 평야를 배경으로 하여 형성된 제방이다. 이미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후 간헐적으로 제방을 보수하였으며, 조선 태종 때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승답 터는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생겼던 일화를 전해 주는 곳으로서, 전통시대 백성들의 생활상과 국가에서 백성들을 관리하던 방식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의 한 단면을 전해 주는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