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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567
한자 仙岩里鳳頭山烽燧臺
영어의미역 Beacon of Bongdusan Mountain in Seonam-r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 산29-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문이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봉수대
건립시기/연도 조선시대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 산29-1 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 봉두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개설]

봉수는 변방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 또는 타 지역의 변경에 알리는 통신 수단이다. 또한 외부로부터 적이 침입하였을 때에는 외적과의 전투를 치르던 격전지이기도 하였다. 『금구읍지(金溝邑誌)』에 남아 있는 “남산에 불을 피웠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남산봉수’와 선암리 봉두산 봉수대와의 관계를 해명할 필요가 있다. 일설에 의하면, 금구현이었을 때 금구면의 중심은 당월마을이었는데, 당월마을 남쪽에 봉두산이 있으므로, 현재의 봉두산은 문헌에 나오는 남산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형태]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 봉두산에는 외곽으로 금구산성(金溝山城)이 둘러쳐져 있다. 금구산성은 테뫼식으로 현재 자연석으로 쌓은 산성이 약 100m 정도 남아 있다. 봉수대가 있던 봉두산 정상부에는 인위적으로 조성한 듯한 직경 10m 정도의 평지가 있다.

[현황]

선암리 봉두산 봉수대를 만들기 위해 소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석재들과 조선시대 기와편과 회청색 경질 토기편들이 봉수대 주변에 흩어져 있다. 산의 서북쪽은 급경사로, 석재 채취를 위해 사면의 일부가 갈라져 있다.

[의의와 평가]

봉수는 과거 우리 조상들이 위기의 상황을 맞이하여 대처하였던 과학적인 대처법의 하나이다. 이곳 선암리 봉두산 봉수대는 다른 봉수대 터와 달리, 인위적으로 평지를 쌓은 흔적과 곳곳에 산재한 석재들, 그리고 기와편들이 조선시대 봉수대의 현황을 잘 전해 주고 있다. 나아가 김제 지역의 관방 시설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그 의미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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