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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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급 유촌리 능골에 전해 내려오는 민발에 관한 이야기. 2005년 발행된 『음성의 구비문학』에 수록되어 있다. 금왕읍 소재지 남쪽 진천 방향으로 5㎞ 위치에 유촌리 윗가래들이 있고, 이곳에서 남북으로 뻗은 차도를 따라 아래가래들로 들어가는 곳에 유촌리 능골이 있는데, 이곳에 조선 전기의 공신 민발(閔發)의 묘가 있다. 민발이 세상을 떠난 후 백여 년이 지난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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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부터 4월까지 충청북도 음성군 일원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일제의 한국 강점과 무단통치에 대항하여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과 만세운동이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파급되었다. 충청북도 음성군 일원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1919년 3월 하순부터 4월 상순에 걸쳐 군내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에서는 초전리 서당에 다니던 김영익·정민영·최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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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전적국민관광지는 1950년 7월 4일 음성군 음성읍의 감우재와 부용산, 동락리 일대에서 국군 제6사단 7연대와 제1사단 11연대가 5일 동안의 전투 끝에 북한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국민 관광 단지이다. 1986년에 조성하였는데, 18,479㎡의 면적에 감우재전승기념관과 음성 감우재전승기념비·충혼탑·감우재전승기념탑·음성타임캡슐2000·월남참전기념탑 등이 건립되어 있어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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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이루어진 선사시대부터 고려왕조의 통일 이전까지의 역사. 역사상의 고대라는 개념은 서양의 역사시대 구분을 원용한 것으로, 고대 노예제사회 혹은 엄격한 신분제사회의 성립과 해체를 기준으로 설정되었다. 여기에서 문자기록 이전의 시기는 선사시대로, 문자기록 이후는 역사시대로 구분하는데, 고대라는 개념 속에는 선사시대를 포함하여 신분계층사회의 성립 과정과 고대적 사회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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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역사. 고대 말기 지방 호족의 성장으로 통일신라가 분열되면서 시작된 후삼국시대에서 음성 지역은 서기 900년경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에 예속되었다. 그후 폭정을 일삼던 궁예가 쫓겨나고, 서기 918년 왕건이 여러 지역 호족들을 규합하고 인심을 수렴하는 데 성공하여 새 왕조를 개창하면서 음성군이 속한 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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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場市)는 조선 사회의 봉건 경제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던 자급자족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자급할 수 없었던 물품이나 지역적 특산물을 교역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또한 장시는 지방의 농민이나 수공업자 등 생산자층에 의한 상품 생산과 상인들에 의한 유통 등 교역 장소로서의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조달할 수 없었던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장소이자, 교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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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란 일반적으로 고고학적 자료나 미술품, 역사적 유물, 그밖의 학술적 자료를 모아서 보관하고 진열하여 일반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시설이다. 국제박물관회의(ICOM) 헌장에서는 박물관을 “예술·역사·미술·과학·기술에 관한 수집품 및 식물원·동물원·수족관 등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자료·표본 등을 각종의 방법으로 보존하고 연구하여, 일반 대중의 교육과 오락을 위하여 공개 전시함을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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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사람·화물의 운반과 관련된 행위. 교통은 교통 기관에 의해 이동이 이루어지는데, 교통 기관은 교통로와 교통 수단으로 구성되며, 또 육상 교통으로 자동차·철도 교통이 있고, 수상 교통으로는 내륙 수운·해상 교통이 있으며, 공중에는 항공 교통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체계적인 도로망을 갖춘 것은 조선시대의 역원제로 30리마다 역과 원을 두었다. 충청북도 지역에는 중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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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군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김종립의 정려각. 김종립(金宗立)은 진천 사람으로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충청감사 정세규(鄭世䂓)가 군사를 일으키자 진천현의 초관으로 적과 싸우다 험천에서 전사하였다. 그때 진천현감 이충운(李翀雲)은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처음 뜻은 그대와 내가 같았으나, 손에 붓대를 잡고 허리에 활을 차는 데서는 재주가 달랐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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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통동리에 있는 사립 특수학교. 믿음과 고마움의 실천을 통하여 바른 심성을 지닌 학생, 더불어 함께 하는 생활을 통하여 협동 정신을 지닌 학생, 소질 계발을 위한 노력을 통하여 탐구 정신을 지닌 학생, 현실 극복 의지 강화를 통하여 개척 정신을 지닌 학생을 길러 자신을 사랑하고 슬기롭게 자라는 인간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여 섬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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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에 속하는 행정리. 두서(斗西)의 ‘두(斗)’자와 부성(夫城)에서의 ‘성(城)’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맹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부성리·두중리·두동리·두서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두성리라 하여 맹동면에 편입되었다. 맹골에서 군자리로 넘어가는 곳에 맹골고개, 저수지로 넘어가는 곳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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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쌍정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맹동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함박산, 남쪽으로 두성리, 서쪽으로 본성리, 북쪽으로는 마산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원래 충주군 맹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정리와 하정리, 중본리, 율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맹동면에 편입되었다. 쌍정리는 상정리와 하정리 이름에 ‘정’자가 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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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에 속하는 행정리. 『여지도서』 충원현 방리의 기록에 의하면 본성리는 본리를 기초로 이루어진 마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본래 충주군 맹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중돈리·두북리·하본리·중본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본성리라 하여 맹동면에 편입되었다. 중돈에서 신돈리로 넘어가는 곳에는 장고개, 덕삼면 신통리로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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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의 관에서 소식을 전하던 통신 방법. 봉수는 말 그대로 밤에는 봉(烽: 횃불)으로, 낮에는 수(燧: 연기)로 급보를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및 제도이다. 고대부터 사용된 방법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지속적으로 운영되다가 1894년 폐지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봉수 관련 유적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것으로, 특히 조선 세종 때 봉수대 시설의 규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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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봉현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봉암은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봉현리에서 북쪽으로 약 7㎞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삼봉리, 서쪽으로는 부윤리, 남쪽으로는 본성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 큰 바위가 있어 봉암이라 불린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 맹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계리와 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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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제대 후 농사를 지었는데 남의집살이를 하며 1년에 7가마를 지으며 어렵게 시작했다. 남편은 품 팔고 자신은 방공일, 공공일에 식당에서 품 팔고, 그렇게 모아서 소도 사고 땅도 샀다. 가난했기 때문에 부모 덕 하나 안보고 자수성가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3일을 일하면 쌀 한 말을 주었지만 여자는 5일을 일해야지 주었다. 그렇게 바쁘게 일하느라 아이들 데리고 놀 시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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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때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의 7세손이며, 평리(評理) 송소(宋玿)의 아들이다. 송광도는 벼슬이 정용랑장(精勇郞將)이었으며, 부모에 극진한 효성이 명황(明皇)에게까지 알려졌다. 송광도의 처(妻) 허씨(許氏) 또한 효부(孝婦)로 이름이 났다. 83세의 시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하고 병이 나자 변(便)을 맛보며 증상을 살피면서 간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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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에 있는 고려 말 조선 초 송광도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각. 조선은 유교를 국교시하였기에 충(忠)과 효(孝)와 열(烈)을 만인의 덕목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이를 행하는 데 귀감이 되는 이를 뽑아 기리기 위해 동리마다 충신이나 효자·효부, 열녀를 기리는 비나 비각을 많이 건립하였다. 특히 충청북도 음성군 지역은 다른 문화재보다 유교기념물이 많은 것이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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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인. 본관은 진천(鎭川).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의 9세손이며, 아버지는 송저(宋儲)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서 살았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 1440년(세종 22) 경원판관에 제수된 이후 경원(慶源)과 자성(慈城) 수령을 거쳐 1450년(문종 즉위년) 벽동군사(碧潼郡事)에 제수되었다. 1455년(세조 즉위년) 의정부사인에 올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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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의 8세손이며, 송광도(宋匡度)의 아들이다. 송저는 단종 대 충신인 송석동(宋石仝)의 아버지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서 살았다. 문과에 급제하고 1417년(태종 17) 홍천현감(洪川縣監)이 되었다가 1422년(세종 4)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1441년 평양소윤(平壤少尹)으로 있으면서 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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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 생골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송저의 묘. 송저는 조선 전기의 명신으로 본관은 진천이다. 상산백 송인(宋仁)의 8세손이며, 낭장 송광도의 아들로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 사인동(지금의 생골)에 살았다. 문과에 급제한 뒤 1422년(세종 4)에 사헌부 지평이 되었다. 1433년(세종 15)에 지보성군사(知寶城郡事)로 있을 때 백학자[새매]를 바친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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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충청북도 북부 지역은 구석기를 비롯하여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선사시대의 유적지가 많다. 따라서 이들 지역과 인접한 음성에서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개연성이 높다. 실제로 삼성면 용성리에서 석영질 암석으로 만든 찍개와 긁개, 밀개 등의 연모가 출토됨으로써 음성 지역의 구석기시대와 문화의 존재를 입증하였다. 청동기문화를 대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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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맹동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2㎞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은 군자리, 서쪽은 본성리, 남쪽은 진천군 덕산면 두촌리, 북쪽으로는 쌍정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옛날에 마을 사람들이 유교를 숭상해서 맹골(孟골)이라고 했다. 본래 충주군 맹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5월 19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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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었던 조선시대 도로 이름. 충청북도 음성현 서쪽 35리 지점에 있었던 길로 청안과 경계를 이루었다. 유곡 소로는 보천(甫川)에서 조촌(助村)을 지나 맹동, 진천으로 연결되어 있던 대로였으나 지금은 겨우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 폭이 좁다.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충청도 음성현 도로조(道路條)에 ‘유곡삼십오리소로(流谷三十五里小路)’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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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재배되는 대표적 특산 작물. 음성 지역의 인삼 재배는 1959년을 전후해 음성읍 신천리 지역에서 시범포 형식으로 시작되었으며, 1961년 지역 공동 사업으로 약 4,000㎡을 재배하여 성공한 것이 동기가 되어 인근 지역으로 빠르게 파급되었다. 기록을 보면 1966년 음성 지역의 인삼 재배 농가는 총 40가구로 9만 2,466㎡을 재배했으며, 1975년에는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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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지역에 언제 처음 성곽이 축조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청동기시대 구릉 위에 만든 마을의 둘레에 환호(環壕)를 두른 유적이 나타나고, 이어서 그 안팎으로 나무말뚝 따위를 죽 이어서 박아 만든 울타리, 곧 울짱의 형태와 같은 목책(木柵)을 두른 시설이 나타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목책 이외에 흙으로 다져서 성벽을 만드는 단계로 발전된 것이 확인되었다. 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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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2리에 있는 재래 시장. 문화동마을은 음성장이 서는 곳으로 일명 장터라고 부르고 있고 음성교 부근의 장터는 채소전이라고 불린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은 음성 지역의 행정과 교통의 중심 지역으로 음성장은 음성군 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유통 거점으로서의 기능을 예로부터 수행하여왔다. 특히 조선시대 감원역이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었기 때문에 음성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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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그린 고지도. 충청북도 음성군(옛 음성현)의 고지도로는 『광여도(廣輿圖)』, 『해동지도(海東地圖)』, 『1872년 지방지도(地方地圖)』, 『여지도(輿地圖)』, 『비변사인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 『조선지도(朝鮮地圖)』, 『팔도군현지도(八道郡縣地圖)』 등이 있다. 19세기 초 필사본 회화식으로 만들어진 전국 군현지도집인 『광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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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정치가. 국립경찰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치안국 통신과장, 경무대 경찰서장, 부산시 경찰서장, 동대문경찰서장 등 경찰 요직을 역임하고 치안 행정에 공헌하다가 1960년 무소속으로 음성에서 제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67년 제7대 전국구 국회의원, 1973년 음성·진천에서 민주공화당으로 제8대 국회의원 당선, 1973년 제10대 전국구 유정회 국회의원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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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 이진봉 정상부에 있는 고려시대 토성. 이진봉 산성은 고문헌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생극면 신양리·병암리 고진봉, 생극면사무소의 동남 약 5정에 있음. 토축으로서 둘레 200간, 높이 3척, 두께 4척 반폐함”이라 하여 처음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전국유적목록』에는 “토축, 둘레 약 200간, 높이 3척, 두께 4척,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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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봉산성 은 병암리 이진말마을 앞 동남쪽의 해발 231.2m의 이진봉에 있는 산성이다. 청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연구하여 발행한 「음성군문화유적분포지도」는 ‘이진봉의 정상부에 축성된 테뫼식 토축산성’이라 하고 있는데, 이 마을의 김지만 할아버지(27년생, 81세)와 오덕욱 할아버지(35년생, 73세)는 이진봉산성이 산 정상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 뒷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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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1910년 국권 강탈 이후 1945년 광복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통치 시기. 음성군은 1895년(고종 32)에 지방 관제를 23부로 개정할 때 충주부 20개 관할군의 하나인 음성군이 되었다가 이듬해 8도 체재로 정비될 때 충청북도 음성군이 되었다. 그후 1906년 지방제도가 정비될 때 충주군에 소속되었던 13개 면을 이임받아 동도면·남면·원서면·근서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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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 고구려가 설치한 행정 구역. 음성은 잉홀(仍忽)·설성(雪城)·잉근내(仍劤內)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잉홀의 지명은 서기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 12월에 음성으로 변경되었다.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 약물제 동쪽에 터골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 구문동(龜文洞)이라고도 하는 이 마을은 고구려 때 잉홀현의 관청이 있어 ‘터골’이라고 하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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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쌍정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맹동면의 소재지이며, 동쪽은 함박산, 서쪽은 본성리, 남쪽은 두성리, 북쪽은 마신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배미 동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뒷산에 장기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충주군 맹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정리와 하정리·중본리·율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맹동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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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여 공급·판매하는 산업. 전력산업은 발전(發電)을 통하여 전기를 생산·송전·판매하는 사업이다. 전기는 추상적인 상품이라는 특성 때문에 관리·경영면에서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며, 저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요·공급의 조절에 어려움이 있다. 종래에는 주로 수력·화력 발전에 의존했으나 현재는 우라늄 등을 이용하는 원자력 에너지의 비중이 점차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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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 자는 명여(命汝), 호는 일옥(一玉). 홍문공 정배걸(鄭倍傑)의 29세손이며 교리 정창(鄭昌)의 15세손이다. 아버지는 감역(監役) 정효선(鄭孝善), 어머니는 안동김씨이며, 부인은 양천허씨이다. 아들은 효자로 이름난 정인상(鄭寅尙)이다. 정규영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일찍이 서울에서 지내던 중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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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음성군의 역사. 조선 초기 음성 지방은 고려의 지방제도와 같이 충주목에 속한 4속현(영춘·제천·음성·연풍)의 하나였다. 음성현은 1413년(태종 13)의 지방제도 개편 때 현감을 두었으나 규모가 매우 작아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충주 제천에 이르기까지 7리, 서쪽으로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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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본성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중돈은 본성리의 중앙부에 있는 자연 마을로 동남쪽으로는 중맹골이 있고, 서쪽으로는 신돈리의 하돈, 동북쪽으로는 아랫맹골과 각각 접하고 있다. 신돈리의 상돈과 하돈 사이 중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충주군 맹동면 중돈리였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그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중돈리와 두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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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 있던 삼한시대의 소국. 한강 이남의 지역은 기원전 4~3세경 이후에 철기 문화가 전파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이 지역의 원시 사회는 부족 사회로 바뀌고 새로운 정치 세력이 형성되는데, 『사기』「조선전(朝鮮傳)」에 나타나는 진국(辰國)이 그것이다. 이 무렵 한족의 침입으로 고조선이 멸망하고 한의 군현이 설치되자 유민들이 진국으로 유입되면서 한강 이남의 지역에서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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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순공을 시조로 하고 송저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진천송씨(鎭川宋氏)는 당나라 호부상서(戶部尙書) 송주은(宋柱殷)의 7세손 송순공(松荀恭)의 후손으로 전하나 계대(繼代)가 불명하여 고려 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낸 송인(宋仁)을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있다. 1125년(인조 3)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두촌리에서 출생한 송인은 여러 관직을 두루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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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를 시조로 하고 임광하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진천임씨(鎭川林氏)의 시조 임희(林曦)는 고려 혜종의 비(妃)인 의화왕후(義和王后)의 아버지로, 벼슬이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오르고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상산백(象山伯)에 봉해졌다. 가문의 인물로 임간은 우문관대제학(右文官大提學)과 대사성(大司成)을 역임하였으며, 임희정이 금자광록대부(金紫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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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유를 시조로 하고 김구성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시조 김대유(金大猷)는 경순왕의 손자 김정구(金正矩)의 16세손으로, 고려 말에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고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에 추봉(追封)되었다. 이름난 후손으로는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왕도 정치를 펴려다 해를 입은 성리학자 김식(金湜), 효종 때 영의정(領議政) 김육(金堉)과 유명한 청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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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성당은 1896년 프랑스 임가밀로 신부에 의해 충청북도에서는 첫번째, 국내에서는 18번째로 세워진 성당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문맹 퇴치를 위해 매괴학교를 설립하여 우리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준 성당이기도 하다. 또한 감곡성당은 100여 년간의 한국 천주교와 감곡성당의 발자취가 담겨있는 각종 유물들이 전시하고 있어 한국 천주교사 뿐만 아니라 우리 근대사에 많은 영향을 준 역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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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 팔성산에 있는 고대 산성. 팔성산성은 충청북도와 경기도의 도계에 걸쳐 있는 중요한 산성이나 고문헌에는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생극면 팔성리, 금왕면 관성리의 북방 약 400간 팔성산정에 있음. 토축으로서 현존하는 부분 약 500간, 반폐함”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같은 책 경기도편에 “율면 산성리 팔성, 본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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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8살 때 사정국민학교에 입학했는데, 일정 때여서 2학년까지밖에 못 다니고 6·25가 벌어졌다. 집이 워낙 가난해서 더 이상 진학도 못하고 진천 외가댁에 가 있다가 고등국민학교가 생기면서 3학년으로 들어갔다. “고등국민학교 입학을 하는데 제 날짜에도 못가고. 국민학교 나온 학생들하고, 나는 4년을 놀았으니깐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죽자사자, 지게 작대기 받쳐놓고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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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에 있는 한국농촌공사 충북본부 산하 기관. 음성·진천·여주 등 4,221㏊ 지역의 농·어촌 정비 사업, 농업 기반 시설 관리 및 농·어촌 지역 개발 사업 등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838년 5월 10일 조선토지개량협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70년 2월 7일 농업진흥공사가 설립되었고 1990년 7월 2일 농업진흥공사를 흡수·확대하여 농어촌진흥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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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이루어진 1945년 8·15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음성군은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로 충청북도 음성군이 된 이후 1906년 충주군의 금왕면·생극면·대소면·맹동면·삼성면·감곡면 등 6개 면이 편입되었다. 그후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충주군 소이면의 일부가 편입되었고, 1956년 7월 8일 법률 제393호로 음성면이 음성읍으로 승격되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