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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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1리 강당말과 용대동은 부용산 자락에 마을을 이룬지 400여 년이 지났다. 그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마을 사람은 산자락의 척박한 땅을 일구어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으며,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유형의 문화유산을 풍성하게 남겨놓았다. 특히 음성군의 향토문화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간와당은 물론 마을 사람들이 보존하고 있는 교지, 계문서 등 각종 오래된 고문서,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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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1리는 강당말과 용대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강당말은 안동김씨(신안동김씨) 집성촌이고, 용대동은 경주이씨 집성촌이다. 4월 12일 강당말의 김두일 새마을 지도자(52년생, 56세)를 만나 안동김씨에서 신안동김씨로 나온 이유에 대해 여쭤보았다. 김두일 어른은 신안동김씨가 김선평(金宣平) 할아버지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설명을 시작했다. “선평 할아버지인가? 선평이면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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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고갯길은 옛날에 사정현대로라고 기록하였듯이 근대 이전에는 큰길이었는데 조선 후기들어 소여리와 감우리를 통과하는 길을 많이 이용하고, 일제시대에 신작로가 나면서 길이 쇠퇴하여갔다. 사정고갯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용대동의 이방우 할아버지(27년생, 81세)는 “일정 때 일본사람이 구 길(신작로)을 만들었고, 현재 4차선도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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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누구나 이름이 있듯이 사람들이 살아왔고 살아가는 마을에는 곳곳마다 땅이름이 있다. 사정1리 강당말과 용대동에도 가는 곳마다 독특한 땅이름을 지니고 있다. 땅이름에는 마을의 자연,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마을 사람들의 생활과 삶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강당말과 용대동 마을 사람들이 전해 준 마을 곳곳의 땅이름에는 두 마을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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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사정리 강당말 마을회관에 들러 마을 어르신들께 예전 마을에서 지내던 풍속에 대해 여쭤 보았다. 할머니들 사이에서 「춘향아씨 놀이」 이야기를 하던 도중 김영수 할머니(35년생, 73세)가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옛날 강당말에 비가 안 오고 가뭄이 들었을 때 부녀자들이 기우제 지내던 이야기였다. 당시에는 비가 오고 안 오고에 따라 농사짓는 게 달라졌기 때문에 기우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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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농사만 지어 가지고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 마을 사람들은 겨울에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음성읍내 또는 무기(금왕) 읍내에 지고 나가서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도 하였다. 겨울에 시골에서는 돈이 되는 사업이 없는 관계로 많은 마을 사람들이 나무를 하여 땔감이 필요한 읍내 사람들에게 팔았다. 나무뿐만 아니라 부녀자들은 솔방울까지 따다가 팔아 생계에 보탰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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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름을 사정리라 부르게 된 것에 대하여 강당말의 김두일 새마을지도자(52년생, 56세)는 “이 곳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모래톱에서 똑같은 양의 물이 솟아나는 모래우물이 있어 모래샘, 한자로 사정(沙井)이라 하고 마을 이름도 사정리라 했다고 어른들이 말들을 했어. 그리고 예전에는 이 우물물을 먹었었어.”라고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였다. 사정리 마을은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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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는 보이지 않고 마을을 지나 부용산 쪽으로 오르면 밭들이 나오는데 여기서 조금 올라오면 옛날 집터들이 나타난다. 이곳에 서서 부용산을 바라보면 부용산 봉우리 9부 능선 좌측으로 바위가 보이고 그 바위에 굴이 있는데 이 굴을 범의 굴이라 한다. 예전에 땔나무가 귀할 때에는 마을 사람들은 범의 굴까지 나무를 하러 갔다고 한다.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는 범의 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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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는 예나 지금이나 강당말과 용대동 마을 사람들의 생업이다. 벼농사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주로 기계화에 따른 변화로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 등을 이용하여 벼농사를 짓는 것이다. 예전의 벼농사와 오늘날의 벼농사에 대하여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52년생, 56세)는 벼농사 전체 과정에 대하여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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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말마을 지나 북쪽 부용산 쪽으로 오르다 보면 밭들이 나오고 여기서 조금 오르면 집터들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보면 부용산 봉우리가 마을 쪽으로 흐르는 산줄기가 있고 7부 능선 부분에 바위가 보이는데 이 바위가 북바위이다.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는 북바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북바위는 왜 북바위라고 불렀을까요?” “거기가면 둥둥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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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말마을 윗부분에 강당이 위치해 있으며 강당을 지나 마을이 끝나면 산자락 밑으로 밭들이 시작되는데 그 곳에 서서 동쪽으로 산비탈이 보이는데 이곳이 사장태이다. 사장태 지명에 대하여 마을 사람들은 조금씩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다. 강당말 김장일 할아버지(37년생, 71세)는 “사장태라고 하는 것은 옛날 산사태가 많이 나서 그렇게 불렀다고 해”라고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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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조사팀이 사정1리를 방문했을 때 마을회관에는 보건소에서 교육을 나와 있어서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 뵐 수 없었다. 대신 마을의 새마을 지도자를 맡고 있는 김두일(52년생, 56세) 어른과 함께 용대동 산제사를 올린다는 산제당으로 올라갔다. 용대동에서 안쪽으로 좀 더 이동하다 보면 오른쪽으로 큰 산이 보이는데, 그 아래로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곳이 산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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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말마을 뒤편으로 마을을 지나 오르면 밭들이 나오고 옛집터들이 골짜기가 있는데 옛날에 마을터였다고 하여 텃골이라 부른다, 이곳에서 부용산 쪽으로 텃골 골짜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조금 오른 지점에 샘 하나가 있는데 이 샘을 샘둥치라 한다.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는 샘둥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예전에 마을 뒤 부용산에서 나무를 하고 한 짐 잔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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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말에는 마을 생활 모습에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생활유산이 많이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소 외양간, 마을 공동우물, 담배건조실 등이 남아 있다. ○ 소외양간 강당말 김장일 할아버지 댁에 외양간이 남아 있으며, 현재도 이 외양간에서 소를 먹이고 있다. 외양간의 구조는 헛간채 한가운데 위치하는데 흙벽돌집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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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말에서 용대동 쪽으로 5분쯤 오르다 보면 고목과 비슷한 큰 아카시아나무 3그루가 서 있고 이곳에서 길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데 이곳이 서낭댕이다. 그리고 서낭당이 있는 이곳의 들판 이름도 서낭댕이뜰이라 한다. 이 서낭댕이에 대해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전에는 서낭당에 흙벽돌 집으로 당집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 그리고 어릴 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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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마을에서 집집마다 큰일이 있거나 하면 술을 담그는데, 당시에는 술 담드는 게 금지되어 있어서, 술 담그지 못하게 감시 조사를 다녔다. 술 조사가 나오면 마을이 온통 술렁였다. 강당말에 술 조사 나왔던 이야기를 김두일 새마을지도자로부터 들어 보았다. “없는 사람은 뭐 담글 형편도 못 됐고, 있는 사람은 일을 하자면 술 사다 먹기가 힘드니깐, 큰돈이 들어가니깐. 집에다 군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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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말마을 앞산 서남쪽으로 보면 앞산에 쑥 들어가 말 안장 같이 생긴 안부가 보이는데 그곳이 안감우재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인 문재이다. 문재 옆 서쪽으로 있는 골짜기를 용수박골이라 한다. 문재와 용수박골에 대해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문재는 강당말에서 안감우재로 통하는 문 구실을 해서 문재라 하였다고 하는데, 예전에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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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말은 행정구역으로는 사정1리에 속한 마을이다. 강당말은 안동김씨(신안동김씨) 집성촌으로 마을의 시작도 안동김씨로부터 시작되었다. 강당말은 안동김씨 18대인 김혜 공이 임진왜란을 피해 이곳에 들어온 이후 마을을 이루었으니 약 400여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강당말이란 마을을 있게 한 강당은 언제 처음 건립되었을까. 안동김씨가 사정리로 들어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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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리 강당말과 용대동 마을에 들어서면 밭과 논, 산비탈에 잘 다듬어 놓은 정원을 옮겨놓은 듯한 인상을 들게 하는 주목밭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아름다운 주목나무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강당말과 용대동 마을에서 예전에는 벼농사, 고추농사와 담배농사, 인삼농사, 과수농사를 주로 하였으나, 오늘날은 원예농사인 주목나무 재배와 과수농사가 주산업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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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들 은 피난골이라고 하는데, 복기암 폭포 밑에 큰 바위가 있고 바위 밑에 굴처럼 파여 있는 곳이다. “피난골은 용대동 폭포수 밑에 가 보면 산신제 지내는데 밑에 가보면 향토지 책에도 나와 있어. 이렇게 우묵하게 자연적으로 파여 있어. 조그마하게 요만큼. 그래서 피난 골이라고 그러더라고. 6·25 때 글로 피난 갔다고 그래서” 김두일 새마을 지도자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