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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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서 김세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김세필의 일화」는 음성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자 김세필(金世弼)[1473~1533]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김세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왔다. 그후 기묘사화 때 조광조가 사사되자 중종의 과오를 규탄하다 유춘역에 장배되었다가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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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서 말마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말마리 전설」은 음성군 생극면 팔성1리의 자연 마을인 말마리의 지명유래담이다. 1525년(중종 20)을 기점으로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과 눌재(訥齋) 박상(朴祥)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가 근간이 되어 ‘말마리’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으며, 지금도 마을 주민들의 기억 속에 연연히 이어져 오고 있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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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년 조선 전기 음성 출신의 문인 채수(蔡壽)가 지은 고소설. 『중종실록』에서는 「설공찬전(薛公瓚傳)」,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에서는 「설공찬환혼전(薛公瓚還魂傳)」, 국문본에서는 「설공찬이」로 표기하고 있다. 한문 원본은 1511년 9월 그 내용이 불교의 윤회화복설(輪廻禍福說)을 담고 있어 백성을 미혹한다 하여 왕명으로 모조리 불태워진 이래 전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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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4년에 간행된 조선 전기의 문신인 채수의 시문집. 본관이 인천인 채수(蔡壽)[1449~1515]의 호는 나재(懶齋)이다. 이석형과 함께 조선 개국 이래 삼장에서 연이어 장원한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유명한데, 『세조실록(世祖實錄)』·『예종실록(睿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한성부좌윤·호조참판을 지냈다. 산경(山經)·지지(地誌)·시문(詩文)에 능했다. 『나재집(懶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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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1리에 있는 초계정씨의 사우. 도원사는 초계정씨(草溪鄭氏)의 사우(祠宇)로, 초계정씨는 정배걸(鄭倍傑)을 시조로 하고 있다. 정배걸은 초계성산에 정착해 살았으나 그 선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정배걸은 1017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문종 때 예부상서, 중추원부사를 지냈다. 홍문광학추성찬화공신(弘文廣學推誠贊化功臣)으로 문하시중상주국광유후(門下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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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문을 시조로 하고 정한철과 정동협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시조는 고려 안일호장(安逸戶長) 정회문(鄭繪文)이다. 그 후손이 고려 초기 보윤호장을 지낸 정지원(鄭之遠)이다. 조선시대에 17명의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을 비롯한 많은 명신을 배출하여 전주이씨·안동김씨와 더불어 3대(大) 상신(相臣) 가문으로 유명하다. 동래정씨는 정지원의 5세손 대에서 교서랑공파(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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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字)는 창세(昌世), 호(號)는 눌재(訥齋). 아버지는 성균관진사 박지흥(朴智興)이고, 어머니는 생원 서종하(徐宗夏)의 딸이다. 박상은 성품이 강직·충정하였으며 문장이 뛰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강직하며 몸가짐이 정숙하여 언행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1496년(연산군 2)에 진사가 되었고, 1501년(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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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반석평의 묘소. 반석평은 천얼 출신임에도 당상관에 오른 조선 중종 때의 인물로, 반서린(潘瑞鱗)의 둘째아들이며, 1472년(성종 3)에 태어났다.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공문(公文), 호는 송애(松崖)이다. 제8대 유엔사무총장이 된 반기문이 반석평의 16세손이다. 본래 경기도 남양주군 와부면 조안리에 있었던 묘를 음성군 원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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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에 속하는 행정리. 비석동(碑石洞)의 ‘비’자와 돈산리(敦山里)의 ‘산’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사이포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비석동·조도리·돈산리를 병합하여 음성군 소이면에 편입되었다. 돌뫼 동쪽에는 절바우가 있는 절바우산(일명 뽀족산)이 있고 마타산 서쪽에는 가섭산[710m]의 줄기인 기운들산이 있다. 새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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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산리 음애동 은 중종조에 좌참찬을 지낸 음애(陰崖) 이자(李耔)가 기묘사화로 파직되어 소이면 비산리 음애동에 우거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비산1리 이명희 할아버지(83세)는 그곳 바위 위에 재실을 짓고 수업하였다고 전해오는 이야기에 대해 말해 주었다. “알지, 알지 그럼. 방죽안 뒤쪽 골짜기에 음애동이라는데 거기 도랑 가생이에 조그마한 바위가 있어. 거기가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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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문화. 아버지는 유백종(柳伯宗)이다. 재종조(再從祖)인 장령 유정수가 경기도 고양군 수색에 살던 중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이를 간하다가 연산군의 노여움을 받아 초산으로 유배되었고 유배에서 풀린 뒤에도 복직되지 못하였다. 어려서 이러한 상황을 본 유광총은 자신의 가문에서 과거길이 막힌 것을 근심하다가 십승지지(十勝之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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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우리나라에 유교가 언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유교 경전의 교육과 사서(史書) 편찬 등이 이루어졌음을 볼 때 이때 이미 유교가 문화적 요소로서 중요하게 인식되었음은 분명하다. 불교가 성행하였던 고려시대에도 국가 이념과 체제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유교의 이념은 상당히 중요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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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온 유교는 인(仁)으로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 이후 고려를 거치면서 조선왕조로 들어와 국가 지배 이념으로 기능하기도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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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지천서원(知川書院)의 시초는 조선 중종 때 이조참판을 지낸 김세필(金世弼)[1473~1533]이 벼슬에서 물러난 뒤 팔성산 아래에 지은 초옥으로, 김세필은 이곳에서 산수를 벗삼아 여생을 보내며 후학을 교육하였다고 한다. 초옥은 당시 충주목사 박상(朴祥)의 재정적 도움으로 건립되었는데, 박상은 자주 김세필을 찾아와 격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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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 지천서원에서 제향하는 의례. 김자수(金自粹), 김세필(金世弼), 김저(金儲), 김의(金嶷), 김정현(金鼎鉉), 김홍욱(金弘郁), 김종현(金宗鉉), 박상(朴詳) 등을 매년 봄(음력 3월 초정일)과 가을(음력 9월 초정일)에 음성 지역 유림과 경주김씨 문중에서 제향하고 있다. 조선 중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십청헌 김세필이 벼슬에서 물러나 음성군 생극면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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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동일 본관의 가구가 다수를 이루는 마을. 집성촌은 동족 마을이라고도 부르며 동성 동족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집성촌은 동일 조상에 대한 제향, 마을의 대동계, 문중의 크고 작은 일 등을 공동으로 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공동체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 마을이다. 음성 지역의 집성촌은 한 종족이 어느 한 마을에서 계속해 여러 대에 걸쳐서 살아온 경우와, 여러 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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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자휴(子休), 호는 만계(灣溪). 아버지는 사예(司藝) 채륜(蔡倫)이고, 아들은 나재(懶齋) 채수(蔡壽)이다. 채신보는 1438년(세종 20) 18세에 진사(進士)가 되고 함창현감(咸昌縣監)을 거쳐 1458년(세조 4)부터 1465년(세조 11년)까지 7년간을 음성현감으로 재직했다. 그 후 경산현감(慶山縣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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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채신보의 신도비. 채신보는 자가 자휴(子休), 호는 만계(灣溪)이며, 본관은 인천으로, 사예(司藝) 채륜(蔡倫)의 아들이다. 1438년(세종 20)에 진사가 되었고, 1458년(세조 4)에 음성현감 및 경산현감, 평해군수, 남양도호부사를 지냈다. 1484년(성종 15)에 원남면 삼용리 물언덕에 소산정사(梳山精舍)를 짓고 여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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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배걸을 시조로 하고 정중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초계정씨(草溪鄭氏) 시조는 정배걸(鄭倍傑)로 초계산성에 살았다. 1017년(현종 8) 문과에 장원하였으며 문종 때 예부상서(禮部尙書) 중추사(中樞使)에 이르렀다. 아들 정문은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형부상서 정당문학 겸 태자빈객(刑部尙書政堂文學兼太子賓客)이 되었으며, 죽은 뒤 좌복야 참지정사(特進左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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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 속하는 초계정씨의 동족 마을. 조선 중기 청양현감을 지낸 정중원이 도청리에 입향하면서 초계정씨의 세거지가 됨. 금왕읍 도청리 되자니는 본래 도장(道場) 이었다. 도장은 정규영(鄭圭永)의 아들인 정인상이 후진 양성을 위하여 아버지의 호를 따서 일옥도장(一玉道場)을 세우고 후세를 교육 시켰는데, 이에 따라 도장이 있다하여 도장리라 하였고 사람들은 되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