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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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8년에 간행된 남연년의 시고(詩稿)를 모은 책. 남연년(南延年)[1653~1728]은 감찰 남두명(南斗明)의 아들로, 1653년(효종 4)에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릴 때부터 의협심이 남달랐으며, 「소무전(蘇武傳)」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 벼슬길에 올라 1676년(숙종 2)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705년(숙종 31)에 황해도 병마우후(兵馬虞候)가 되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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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산7번지에 있는 3성(공자, 주자와 안향) 및 9현을 봉안한 사우. 공자, 주자, 안향을 비롯하여 국재(菊齋) 권부(權溥), 역동(易東) 우탁(禹倬), 동암(東庵) 이진(李瑱), 이재(彛齋) 백이정(白頤正), 매운당(梅雲堂) 이조년(李兆年), 덕재(德齋) 신천(辛蕆), 노당(露堂) 추적(秋適), 근재(謹齋) 안축(安軸), 경재(敬齋) 안보(安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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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도통사에서 제향하는 의례. 공자(孔子)·주자(朱子)·안향(安珦)·권부·우탁·이진·백이정·이조년·신천·추적·안축·안보 등을 모셔놓고 매년 봄(음력 2월 말정일)과 가을(음력 8월 말정일)에 음성의 유림들이 제향하고 있다. 도통사는 본래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화안리에 건립되었던 사당이었는데 1980년대 군사시설 관계로 철거되었다가 1995년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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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덕여(德汝), 호는 입암(立庵). 박서(朴犀) 장군의 16세손이고, 아버지는 아산현감 박정규(朴廷珪)이며, 어머니는 경주이씨 장령 이행민의 딸이다. 박준흠은 어려서부터 글을 좋아하여 한번 읽은 글은 반드시 기억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또한 성장하면서 경학을 연구하였고, 의문점은 도암 이재와 여호 박필주에게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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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여진(汝進), 호는 죽남(竹南). 아버지는 부사용 박상채(朴尙彩)이다. 도암(陶菴) 이재(李縡)에게 배웠는데, 학문을 좋아하며 대의를 위한 절개가 있었다. 1721년(경종 원년) 태학생 윤지술(尹志述)의 피화 사건을 듣고는 더 이상 서울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고기를 잡고 나무를 하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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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우리나라에 유교가 언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유교 경전의 교육과 사서(史書) 편찬 등이 이루어졌음을 볼 때 이때 이미 유교가 문화적 요소로서 중요하게 인식되었음은 분명하다. 불교가 성행하였던 고려시대에도 국가 이념과 체제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유교의 이념은 상당히 중요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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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유학자.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중호(仲浩), 호는 행남(杏南). 아버지는 이함(李涵)이다. 도암(陶庵) 이재(李縡)의 문인이 되어 학문으로 감역(監役)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서울에서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로 내려와 살았다. 세상 사람들이 처사(處士)라 불렀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 있다. 문암(文菴) 이의철(李宜哲)이 묘갈을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