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은 조선 선조 때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 김종립(金宗立)이 터를 잡아 살았으므로 군자감터라 하였고 그 뒤 변하여 군자동이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맹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통동 일부로 병합되었고 이후 군자리라 하여 맹동면에 편입되었다. 서쪽에는 함박산[339m], 서남쪽에는 알봉[1...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군자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조선 선조 때 군자감주부 김종립이 이곳에 터를 잡은 데서 군자터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 맹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군자동이라 하여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통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군자리라 명명하고 맹동면에 편입되었다. 군자리는 군자터 한 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군...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의성(義城). 손자는 김문상(金文商)이다. 김종립(金宗立)[?~1636]은 16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하여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에서 주부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진천현 초관(哨官)으로서 충청감사 정세규를 따라 광주(廣州) 험천(險川)에서 적과 싸우다가 대패하였다.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정세규를...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군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김종립의 정려각. 김종립(金宗立)은 진천 사람으로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충청감사 정세규(鄭世䂓)가 군사를 일으키자 진천현의 초관으로 적과 싸우다 험천에서 전사하였다. 그때 진천현감 이충운(李翀雲)은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처음 뜻은 그대와 내가 같았으나, 손에 붓대를 잡고 허리에 활을 차는 데서는 재주가 달랐도다....
충청북도 음성 지역에 거주하거나 연고가 있는 동일 혈연 집단. 성씨에서 성(性)은 혈연관계를 나타내며 씨(氏)는 지역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성에는 관(貫)이 있는데 적·본관·관·관향이라고도 한다. 음성 지역에는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새로운 성씨를 가진 씨족이 지속적으로 이주하여 와서 살았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토성(土姓)으로 박(朴)·채(蔡)의 두 성이...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우리나라에 유교가 언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유교 경전의 교육과 사서(史書) 편찬 등이 이루어졌음을 볼 때 이때 이미 유교가 문화적 요소로서 중요하게 인식되었음은 분명하다. 불교가 성행하였던 고려시대에도 국가 이념과 체제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유교의 이념은 상당히 중요한 기...
김석을 시조로 하고 김준기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의성김씨(義城金氏) 시조 김석(金錫)은 경순왕(敬順王)의 다섯째아들이자 왕건의 외손이다.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졌으며 이에 후손들이 본관을 의성으로 하였다. 의성김씨 가문의 조선시대 인물로 김안국(金安國)[1478~1543]은 연산군 때 별시(別試) 문과에 급제하여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와 전라도관찰사(全羅...
충청북도 음성군에 살았던 충신·효자·열녀를 표창하기 위해 나라에서 내린 상징물. 정문은 일명 홍문(紅門) 또는 작계(綽契)라고도 한다. 액(額)에다 충(忠)·효(孝)·열(烈) 등의 글자를 새겨 표창의 종류를 표시하고 그 이름과 직함을 새겼다. 정려의 사례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효녀 지은(知恩)에 대한 포상 기록이 처음이다. 고려시대에 와서 역대 왕들이 효자와 열녀 등이 사는...
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 전통시대에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을 실천한 신하. 충신은 나라에 도움이 되는 성신(聖臣), 양신(良臣), 충신(忠臣), 지신(智臣), 정신(貞臣), 직신(直臣)의 육정(六正) 가운데 하나이다. 음성 지역에도 충과 관련된 인물과 유적이 상당수 남아 있어 정치적·사회적 규범으로 자리잡았던 충 사상의 영향을 알 수 있다. 음성 지역의 충신에 관한 기록으로는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