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5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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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克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홍갑 |
[정의]
조선 전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백수(伯修). 할아버지는 문과를 합격하여 사간(司諫)을 지낸 윤시영(尹時英)이고,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윤징(尹澄), 어머니는 초계변씨로 변종범의 딸이다.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낸 남견손(南堅孫)의 딸 고성남씨(固城南氏)와 결혼하였고, 아들 효정공(孝貞公) 윤돈(尹暾)은 판서를 역임하였다. 윤일신의 형이고 윤자신의 육촌 아우이다.
[활동사항]
1676년(선조 9) 별시(別試)에서 병과(丙科) 2등으로 합격하여 춘추관(春秋館)을 거쳐 이조좌랑(吏曹佐郞)으로 옮겼고, 뒤에 임천군수(林川郡守)를 자청하여서는 학교를 일으키고 홀아비와 과부로 지내는 백성들을 구휼하는 등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임천군수로 있던 1587년(선조 20)에 병세가 깊어 군수를 그만두었고, 그 해 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로 있다가 죽었다.
[묘소]
윤극신 묘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산44번지[달래내로221번길 16] 남원윤씨 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큰아들인 윤엽(尹曄)이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교리를 역임했고, 둘째아들 윤돈(尹暾)이 1품에 오르게 됨에 따라 좌찬성(左贊成)으로 추증되었다. 그의 가문에서 연거푸 삼세(三世) 동안 한림(翰林)과 옥당(玉堂) 벼슬을 배출하여 이름을 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