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C03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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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염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내수 |
현재는 중앙리 67번지에서 쌀 상회를 운영하면서 중앙2리 이장을 맡고 있는 서완길(徐完吉) 이장은 강경에서 태어나서 성장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토박이이다. 서완길 이장은 강경포구가 번성하였던 1970년대 초반까지 포구에서 객주 생활을 하였다.
서완길 이장은 달성서씨로 원래는 현재의 논산시 가야곡면이 고향이다. 그의 집안은 논산시 가야곡에서 13대 조상부터 살아왔다. 그러다가 서완길 이장의 7대조 때에 강경으로 이주하여 남교리에 정착하여 현재까지 약 200년 정도 세거해 왔다. 지금도 남교리에 달성서씨 집안 친척들이 여러 집 살고 있다. 서완길 이장은 남교리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성장을 하였고,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나서 현재의 중앙리로 분가를 하였다.
서완길 이장은 젊은 시절인 25세 때인 1963년부터 강경어업조합에서 조합 일을 배우면서 포구의 돌아가는 상황을 몸으로 배우고 익히게 되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30세경인 1968년부터 1972년까지 4년간 포구에서 객주 생활을 하였다.
당시 서완길 이장과 같은 시기에 객주 일을 보았던 사람들 가운데 생존하고 있는 사람으로는 현재 신진상회 신희섭 사장을 제외하고 대부분 객주활동을 하였던 사람들은 사망하였다. 1970년대 당시 활동하던 객주는 박모, 윤모, 양모, 최모, 김모, 이모, 유모 등(사망한 사람의 이름을 거명하기 곤란하여 성씨만 열거함) 10~15명 정도의 객주가 활동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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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천리 젓갈상점(신진상회)
그 당시 강경노동조합의 지부장(노동조합장)으로 김유득이 활동하였고, 노동조합은 12개조까지 구성되어 있었으며 1조에 15명까지 편성되어 운영되었다.
강경포구 가 성업하였던 1970년대 중반까지도 강경 일원 가운데 염천리는 포구로 사람들이 들끓었고, 시장으로는 지금의 중앙리가 ‘아랫장터’로 가장 번창했던 지역이었다. 강경장이 서는 날이면 중앙리 아랫장터는 강경으로 장을 보러 오는 외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행인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로 붐볐다.
현재 아랫장터에 해당하는 중앙리 일원은 일제강점기부터 강경의 중심부 기능을 담당하였던 지역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6·25전쟁 때 아랫장터의 건물들은 대부분 폭격을 맞아 근대 건축물과 시장 건물이 모두 불타버렸다. 현재 중앙리의 건물들은 거의 다 6·25전쟁이 끝나고 난 뒤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다. 강경읍에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건물은 바로 서창리의 한일은행, 중앙리의 연수당 약방, 북옥리의 감리교회 건물 등이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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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한일은행 건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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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옥리 감리교회
한편 중앙리 83번지에 100년이 넘은 개인 주택이 있다. 이 주택은 김영환(남, 1920년생, 중앙리 노인회장) 중앙리 노인회장의 집이다. 김영환 노인회장은 지금부터 50년 전에 부여군 초촌면 진호리에서 강경으로 이사해 와서 현재까지 이곳에서 살고 있다. 원래 이 집은 김영한 노인회장의 처가로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노인회장의 처가 사람이 오랫동안 살았다. 해방 후 이승만 정권시기에 김영환 노인회장의 처남인 신태권 씨가 이곳에서 출마하여 자유당 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하였는데, 그 이후 김영환 노인회장이 이 집을 인수하여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지붕을 새로 올리고 건물의 일부를 증축하여 본래의 모습과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내부 구조는 오래전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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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가옥
또한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건립된 지 50여년 지나 현재는 운영되지 않고 있는 양조장 건물과 40년 정도 지났다고 알려진 정미소 건물이 중앙리 마을 한가운데 폐허로 방치된 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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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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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소
[정보 제공자]
서완길(남, 1939년생, 중앙2리 이장)
김영환(남, 1920년생, 중앙리 노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