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A02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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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시묘리 |
시대 | 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홍제연 |
❚ 땅속에서 전하는 옛날이야기
옛날 시묘골과 황골 등지에서는 ‘고려장’ 또는 ‘고린장’이라 부르는 옛 사람들의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산속에 나무가 우거져 찾아 볼 수도 없고, 어떤 모양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도 없지만, 마을 어른들이 아이들을 앉혀놓고 고려장 지낸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지어내 들려주곤 하였다. 언뜻 돌로 만든 무덤 같았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시대 이전의 무덤이었던 듯하다.
시묘골 안쪽 고랑에는 ‘사기점굴’이란 곳이 있다. 그릇 굽던 장소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고 묘를 쓰려고 땅을 팠더니 사기그릇 조각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그릇편이 옹기는 아니었고 고려청자도 아니었던 것 같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로 미루어 보아 조선후기에 민간에서 쓰는 낮은 품질의 그릇을 만들던 곳으로 추측된다.
❚ 두레 나가고 술멕이하던 시절
1960년대 이전까지 모내기나 김매기를 할 땐 온 동네 남자들이 모여 두레 노동을 했다. 대규모 인력동원이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이 부족하다보니 농토가 거칠어서 시묘리 사람들의 농사일은 고되었다.
그 무렵에는 음력 7월 백중 무렵에 김매기를 끝내면 날을 받아 하루를 즐겨 놀곤 했는데 이것을 ‘술멕이’라 하였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날을 ‘머슴날’이라 하며 ‘호미씻이’를 한다고 했다. 풀매는 일이 끝나 더 이상 호미를 쓸 일이 없어 호미를 씻어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 만큼 이 때가 되면 농촌의 힘든 일이 우선 마무리되기 때문에 논 주인들은 술과 음식을 내고 풍물을 치며 큰 잔치를 열었다.
충남과 전라도 지역에서만 ‘술멕이’라 부른다. 술멕이는 푸지게 먹는다는 의미가 있을 만큼 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에는 1년 중 가장 크게 놀 수 있는 날이었다.
시묘리의 ‘술멕이’는 전통이 끊긴 지 오래이다. 1960년대에 기계모가 들어오고 농약을 쓰면서 더 이상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일을 할 필요 없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여전히 칠석이나 백중날이 되면 부녀회에서 약간의 음식을 장만하고 다함께 모여서 잠시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딸기농사가 번창한 후에는 일 년 열두 달 내내 딸기를 돌봐야하는 농민이 많아 이마저도 예전 같지 못하지만 혹시라도 건너뛰면 너무도 섭섭한 일이다.
❚ 효부 김씨부인
시묘1리 시묘골 입구에는 효부 경주김씨의 행적을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효자마을에서 효부가 나는 것은 당연한 듯 보이기도 하다. 김씨부인은 시묘리에 사는 박노봉에게 시집을 왔다. 시부모에 대한 효성이 남달라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가 눈이 어두워지더니 앞을 못 볼 지경에 이르렀고, 김씨는 그런 시어머니를 위해 매일 음식을 떠 드리고, 목욕을 시켜드리는 등 정성을 다하였다고 한다.
또한, 시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예를 다해 장례를 행하니 마을에서는 그런 김씨의 효행을 알리고자 1956년에 이 기적비를 세우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야곡면과 경계가 되는 지점에 세웠었으나 1989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비석 주변은 철 담을 조성해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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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부김씨 유적비
[정보 제공자]
양운규, (1943년생, 시묘3리 주민)
임승근, (1934년생, 시묘3리 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