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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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壤趙氏 |
영어의미역 | Pyeongyang J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삼산리 |
집필자 | 이해준 |
세거지 | 충청남도 논산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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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삼산리 |
성씨시조 | 조춘(趙椿) |
입향시조 | 조인(趙軔) |
[정의]
조춘을 시조로 하고 조인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연원]
평양조씨(平壤趙氏)의 시조는 조춘(趙椿)으로 고려 때 남송(南宋)에 가서 금(金)나라를 정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송나라 상장군(上將軍)이 되었다고 한다. 조춘은 상원(祥原, 현 평안남도 중화)에 정착하여 4세손까지 내려오다가 5세손인 조인규(趙仁規)의 딸이 충숙왕의 비가 되자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에 봉해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후손들은 상원에서 평양(平壤)으로 본관을 바꾸고 조춘을 시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평양조씨 가문이 기반을 다지기 시작한 때는 조인규가 몽고어 통역관으로 최고위 관직에 오르면서부터이다. 이후 조인규의 증손 조준이 개국공신에 참여하며 명문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다지기 시작하였다. 많은 후손들의 분파하여 전국 각지로 흩어졌으며, 현재에도 경기도 수원시,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전라북도 완주군, 경상북도 고령 등의 지역에서 번영해 오고 있다.
[입향경위]
평양조씨들은 시조 조춘 이후 많은 지역으로 분파, 세거하여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그중 논산에는 평양조씨 10세손인 조인(趙軔, 1300~1400년대)의 후손들인 별좌공파 후손들이 이거하여 삶을 일구었다. 조인은 조철산(趙鐵山)의 큰아들로 봉정대부전연사별좌(奉正大夫 典涓司 別坐)의 관직이 내려졌으나 할아버지인 송산공의 유훈으로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현황]
1920년대 일본에 의해 편찬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 의하면, 조인의 후손들은 192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성동면 삼산리 일대에 동족마을을 형성하였는데 그 가구 수가 43가구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