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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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爲君爲親痛哭歌 |
영어의미역 | Mourning Lyrics over the King and the Parents |
이칭/별칭 | 「통곡가」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조도현 |
성격 | 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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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강복중(姜復中, 1563~1639) |
창작연도/발표연도 | 1639년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남도 논산 출신의 강복중이 나라를 걱정하는 심정을 노래한 가사.
[개설]
강복중(姜復中, 1563~1639)의 자는 재기(載起), 호는 청계(淸溪)이다. 벼슬은 참봉(參奉)에 그쳤으며, 일생을 시골에 묻혀 논산 지역에서 지냈다. 강복중은 1639년(인조 17)에 칠십이 넘은 노구의 몸으로 상경하여 서울 궁궐을 두루 구경하고 고향인 논산으로 돌아와 「위군위친통곡가」를 지었는데, 「위군위친통곡가」에서 청국(淸國) 침입으로 비롯한 국난을 탄식하며 고달프게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회포를 노래하였다. 「통곡가(痛哭歌)」라고도 불린다.
[구성]
「위군위친통곡가」는 300행 589구로 이루어져 있다. 3·4, 4·4조의 기본 율격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음수나 음보에서 많은 파격을 보이는 변형 가사이다.
[내용]
강복중이 겪은 여러 가지 일, 즉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의 피폐된 사회상을 보는 선비의 곡진한 심정이 표현되어 있다. 즉 연주(戀主)의 정과 나라를 걱정하고 세상을 개탄하는 생각이 진솔하게 나타나 있다.
[특징]
「위군위친통곡가」는 장편의 가사로서 형식면에서 파격을 보이는데 강복중의 다른 작품 「분산회복사은가(墳山恢復謝恩歌)」보다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위군위친통곡가」를 통하여 강복중의 역사 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데, 당시의 어지러운 세태는 물론 지식인으로서의 비분강개가 나타난다. 조선 후기 가사에서 잘 나타나는 주제인 우국개세(憂國慨世: 나라를 걱정하고 세상 형편을 개탄함)의 충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의의와 평가]
강복중은 산림에 묻혀 사는 선비였으나, 당시의 민감한 정치 현실에 대해서 자신의 신념을 거리낌 없이 토로하는 지성인이기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 참여에 대한 지식인의 관점을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