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0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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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土- |
영어음역 | Togwang |
영어의미역 | Warehouse |
이칭/별칭 | 둑집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
집필자 | 류제협 |
[정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벼를 일시적으로 보관하던 저장 창고.
[개설]
토광이란 본래 널 따위를 깔지 않은 흙바닥 그대로의 저장 공간을 말한다. 마루, 사랑방 등에 일정한 공간을 구획하여 만들거나 아니면 공터에 처음부터 토광용으로 작은 건물 형태로 만들기도 한다. 문기둥에는 홈을 파고 같은 높이의 판자를 차례대로 끼우면서 벼를 채우고, 이를 꺼내서 사용할 때는 역시 판자를 위에서부터 하나씩 빼내면서 사용하도록 했다. 판자에는 1·2·3 등 일련 숫자를 표기하여 순서대로 끼우고 빼낼 수 있게 만든 토광은 자기 집의 농사 규모에 따라 적당한 크기로 만들었다.
[연원 및 변천]
부경(桴京)·둑집·퉁가리 등이 토광과 유사하다. 부경은 고구려 때에 집집마다 있던 작은 창고를 지칭하는데, 여기에 곡식·찬거리·소금 따위를 저장하였다. 둑집은 진흙을 쌓아 만든 집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 거푸집을 대고 그 안에 진흙을 넣어 다져서 벽을 만든다.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퉁가리는 마당에 매년 볏짚으로 만드는 임시 벼 보관 시설이다.
토광은 바로 이 퉁가리의 발전된 형태로 고정 건물에 고정된 공간을 장기적으로 활용하는 창고이다. 요즘은 벼를 수확하는 현장에서 커다란 포대에 담아 대단위 미곡처리장(RPC)으로 바로 가져가 건조·보관하고, 적은 규모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건조 후 전부 정미소로 보내기 때문에 근래에는 토광에 벼를 보관하는 집은 없다.
[형태]
토광은 흙·판자·시멘트 블록 등을 이용하여 일정한 공간을 만들고 문을 낸다. 문은 낱장으로 떨어지는 판자로 설주의 홈을 파고 횡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끼워 넣어서, 나락을 꺼낼 때나 넣을 때 편리하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끼워 맞추는 판자로 하는 이유는 처음 벼를 퍼다 부을 때는 가장 아래쪽 문 하나만 끼우고 작업을 해도 되며, 또한 벼가 계속 차 올라오는 대로 판자를 하나씩 추가하니 작업이 쉬울 뿐더러 벼를 퍼 낼 때도 역시 역순으로 하면 작업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토광의 바닥은 대개 고래가 있는 사랑방·윗방 등 방바닥인 경우가 많다. 이는 벼에 습기가 스며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벽도 원래 통기성과 습도 조절에 탁월한 황토벽으로 하지만 쥐의 피해를 방지하고자 바깥은 시멘트 모르타르로 바르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쥐의 피해를 방지하고자 탈착식 판자문 위에 함석으로 된 여닫이문을 덧달기도 한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가을에 추수하여 토광에 벼를 가득 채워 보관하면서 필요에 따라 방아를 찧어 식량으로 사용한다. 또 현금이 필요할 경우에는 방앗간에서 쌀을 팔아 돈을 마련하여 자녀들의 학자금도 내고 이런 저런 가용에 쓰기도 한다. 이런 일로 인해 농촌의 방앗간은 은행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즉 돈이 필요하면 방앗간에서 돈을 가져다 쓰고 방아를 쪄서 쌀로 갚기도 한다. 또 벼를 미리 방앗간에 맡겨놓고 필요할 때마다 쌀값을 쳐서 돈을 가져다 쓰기도 한다.
과거보다는 상당히 줄었지만 아직도 농촌에서는 이런 관습이 존속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곡식의 거래에서는 내가 돈을 주고 쌀을 받는 것을 ‘쌀 판다’라고 하며, 돈을 받고 쌀을 주는 것을 ‘쌀 산다’고 반대로 말해 어린이들을 혼란스럽게 했었다. 이런 관행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현재도 농촌의 노인층에서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도시 지역과 젊은이 사이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그리고 쌀은 농촌에서 모든 거래의 기준이 되었다. 즉 논을 사고 팔 때도 ‘한 마지기 당 쌀 30가마’ 하는 식으로 거래를 했으며, 품값의 계산도 ‘나흘 품 팔아야 쌀 한 말’ 하는 식이었다. 아직도 농촌에서는 논을 거래할 때 값을 쌀로 계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농촌의 계모임, 예컨대 위친계·친목계·종중계 등의 모든 수입과 지출도 거의가 쌀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관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