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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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永肅 |
영어음역 | Gim Yeongsuk |
이칭/별칭 | 김형(金衡)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진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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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
성별 | 남 |
생년 | 1886년 |
몰년 | 1952년 |
대표경력 | 동창학교 교사(만주 봉천성 환인현 소재) |
[정의]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김영숙은 고향인 논산에서 교육사업을 하다가 1911년 단애(丹崖) 윤세복(尹世復), 윤세용(尹世茸) 등이 만주 봉천성(奉天城) 환인현(桓仁縣)에 설립한 동창학교(東昌學校)에서 학교장인 백농(白儂) 이동하(李東廈), 이극로(李克魯)와 함께 한인 이주민들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2세들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일본 공사관의 방해공작으로 동창학교는 부득이 폐지하게 되었으나 윤세복 등과 백두산 아래 무송현(撫松縣)으로 이동하여 흥업단(興業團)을 조직하고 백산학교(白山學校)를 설립하는 등 지속적인 교육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한인 교포들의 항일 의식 고취와 독립군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1934년에는 하얼빈[哈爾濱]에서 대종교(大亻宗敎) 교주 윤세복을 중심으로 김응두(金應斗), 박관해(朴觀海), 김서종(金書鍾) 등과 함께 안평가(安平街)에 대종교선교회를 조직하여 포교 활동을 전개하여 한인 동포들이 대종교에 입교하도록 하는 한편 민족독립정신을 갖도록 노력하였다.
이극로가 윤세복에게 보낸 서신에 동봉된 글을 대종교의 탄압을 구실로 삼은 일제는 1942년 11월 19일 일제의 대종교 간부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작전을 감행하여 김영숙은 윤세복, 윤정현(尹珽鉉), 최관(崔冠), 김진호(金鎭皓), 김서종, 나정련(羅正練), 이정(李楨) 등과 함께 만주에서 검거되었다.
1944년 2월에 목단강(牧丹江) 고등검찰청은 김영숙, 윤세복, 윤정현, 오근태, 이용태, 최관, 나정문, 이현익(李顯翼), 이재유 등 9명을 치안유지법 위반의 죄목으로 체포하여 수감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나정문과 오근태는 죽고 김영숙을 포함한 나머지 7명은 ‘국체(國體) 변혁을 목적으로 한 단체의 요무(要務)를 장리(掌理)’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다. 김영숙은 6월 판결에서 15년형을 선고받고(3대 교주 윤세복은 무기형, 윤정형, 이용태, 최관은 8년형, 이현익은 7년형, 이재유은 5년형을 각각 선고 받았다.) 목단강성 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1945년 8월 12일 소련군의 만주 진공 때 윤세복 이하 대종교 지도자들과 감옥에서 벗어났다.
[상훈과 추모]
동창학교 등의 교육활동과 대종교 활동을 통하여 항일의식 고취와 독립군 양성에 노력하고 일제의 대종교 탄압 사건으로 옥고를 겪는 등 만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공적을 인정받아 1963년 대한독립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