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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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行敎 |
영어음역 | Yun Haenggyo |
이칭/별칭 | 장문(長文)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연숙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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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
성별 | 남 |
생년 | 1661년 |
몰년 | 1725년(영조 1) |
본관 | 파평 |
대표관직 | 이조참의 |
[정의]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장문(長文). 증조할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윤선거(尹宣擧)이다. 아버지는 소론의 영수인 우의정 윤증(尹拯)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한성부우윤 권시(權諰)의 딸이다. 부인은 병조좌랑 박태소(朴泰素)의 딸이다.
[활동사항]
1694년(숙종 20)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홍문록에 선발되었다. 1696년 세자시강원설서·홍문관부수찬·홍문관수찬·홍문관부교리·사간원정언·사간원헌납 등을 지냈다. 1699년 홍문관부수찬 때 백골징포(白骨徵布)와 황구첨정(黃口添丁)의 폐단을 논하고 각종 조세와 군역 등에 대해 개혁안을 건의하였다. 왕이 해당 부서에 명해 시행토록 했으나 실제로 시행된 것은 없었다.
1710년(숙종 36) 흉년의 재해를 보고하고 여러 가지 구제책을 건의하였고, 1711년 당상관인 승정원승지로 발탁되어 왜국에 보낼 서계와 예단을 전례대로 하고 더하지 말도록 주청하였다. 이 해 충청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노부모 때문에 사퇴하였다가 다시 임용되었다. 이때 유계(兪棨)와 윤선거(尹宣擧)가 함께 지은 『가례원류(家禮源流)』를 유계의 후손들이 단독으로 간행하자 상소하여 논란이 되었다.
1714년(숙종 40) 아버지 윤증이 죽자 상소하여 유언을 올리고 조정의 은전을 일체 사양하기를 청하였고, 장례 때에도 조정에서 대신의 예로써 치르고자 하였으나 사절하고 선비의 예로 치렀다. 1722년(경종 2) 이후 승정원승지·홍문관부제학·이조참의 등을 지냈다.
1725년(영조 1) 사헌부대사헌·비변사당상·홍문관부제학을 역임하였으나, 노론이 득세하여 신임사화(辛壬士禍)를 무옥(誣獄)으로 번복하자 다른 소론 관원들과 함께 파직되었다. 1728년(영조 4) 소론의 중신인 최석정(崔錫鼎)·윤지완(尹趾完)·강세구(姜世龜) 등의 억울함을 논변하고, 송시열(宋時烈)·김수항(金壽恒) 등의 화는 자초한 것이라는 뜻으로 상소했다가 노론 김창집(金昌集) 등의 공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