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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306
한자 尹光紹
영어음역 Yun Gwangso
이칭/별칭 치승(稚繩),소곡(素谷)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연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학자
출신지 서울특별시 마포구 도화동
성별
생년 1708년연표보기
몰년 1786년(정조 10)연표보기
본관 파평
대표관직 지돈령부사

[정의]

조선 후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치승(稚繩), 호는 소곡(素谷). 노종파의 설봉공파로 5대조는 동토(童土) 윤순거(尹舜擧)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수찬공 윤절(尹晢)이다. 아버지는 윤동로(尹東輅)이고, 어머니는 양성이씨(陽城李氏)로 목사 양익주(陽翊周)의 딸이다. 이조판서 윤동규(尹東奎)에게 입후하였다. 부인은 청주한씨(淸州韓氏)한사만(韓師萬)의 딸이다.

[활동사항]

1723년(경종 3) 생원시에 급제하고, 곧 노성으로 돌아와 윤동원, 윤동수에게 배웠다. 1739년(영조 15) 증광별시 문과에 병과로 합격하여 승문원에 분관되었다. 1740년 한림소시에 낙방하고 곧바로 노성으로 돌아와 은거하면서 1742년 윤증(尹拯)의 『의례문답』을 편찬하였다. 1743년 관직에 천거되어 세자시강원설서, 세자시강원사서, 홍문관수찬, 호서염찰어사, 홍문관수찬, 세자시강원필선, 홍문관부교리, 사헌부집의 등의 관직을 거쳤다.

윤광소는 소론의 대표적인 학자로서 선조인 윤선거(尹宣擧)윤증의 신원과 복관을 위하여 노력하여 1782년(정조 6) 윤선거윤증 부자가 복관되기도 하였다. 1786년 3월 지돈령부사가 되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뒤 사직 상소를 올리면서 윤선거윤증에게 ‘선정(先正)’의 칭호를 쓰도록 주장하였다. 같은 해 4월 15일 향년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사상]

윤광소윤선거, 윤증, 윤동원, 윤동수를 이은 소론의 학자로서 형 윤광찬과 함께 영조 대에 소론 준론계와 가깝게 교유하고 주장을 펴는 데 앞장섰다. 젊은 나이에 윤증『명재유고』를 간행할 때 교정을 담당하면서 학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와 저술에 힘썼다.

영조의 명을 받들어 『편오례의』 등을 편수하였고, 평생 윤증윤동원 등의 연보와 『의례문답』, 『가례원류』를 수윤(修潤)하였다. 또한 『갑을록(甲乙錄)』, 『임하총설(林下叢說)』을 편차하여 회니시비(懷尼是非)와 관련된 사문사(斯文事)의 본말을 정리하였다. 또 가문의 세보(世譜), 세승(世乘), 세고(世稿)를 『노종세편(魯宗世編)』으로 편차하여 소론 가문으로서의 맥을 정리하였다.

[저술 및 작품]

『소곡유고(素谷遺稿)』 22권 11책을 남겼다. 『소곡유고』는 1915년 5세손 윤교병(尹喬炳)이 간행하였다.

[묘소]

1786년 노성 접지산에 장사지내었고, 1826년 여산(礪山, 현 전라북도 익산시) 돈다리(敦多里)로 이장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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