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30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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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鑄物鍮器匠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경희 |
[정의]
충청북도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전통 주물 기법으로 기물을 만드는 장인과 그 활동.
[개설]
우리나라 주물 유기의 역사는 청동기 시대까지 그 시원을 찾을 수 있다. 문헌기록에 의하면 8세기경 신라 시대 때 유기 제작을 전담하는 관서인 철유전(鐵鍮典)이 설치되었고, 고려 시대에는 각종 생활 용기 외에 불교 공예품 등이 높은 수준의 기술로 제작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경국대전』을 비롯한 법전에 유장(鍮匠)이 공조나 상의원에 소속되어 관청이나 궁궐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공예품을 제작하는 데 동원되었다. 조선왕실에서는 제기를 유기로 제작하였을 뿐 아니라 겨울철 식기로 보온력이 뛰어난 유기를 사용하면서 유기를 제작하는 유기장의 수요가 많았다.
유기로 그릇을 비롯한 기물을 제작하는 기술은 단조(鍛造)와 주조(鑄造)로 구분된다. 전자는 놋쇠를 두드려 식기나 악기 등을 제작하는 방짜유기 제조법이며, 후자는 주조틀[향남틀]을 만들고 그곳에 끓는 쇳물을 부어 기물을 제작하는 주물유기 제조법이다. 현재 유기를 제작하는 전통 기술은 국가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1983년 6월 1일 지정]에 방짜유기[보유자 이형근]와 주물유기[보유자 김수영]가 지정되어 있다. 그밖에 시도 무형문화재로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0호 방짜유기장 김문익[1943년생],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4호 방짜수저장[2000년 4월 25일 지정],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2호 봉화유기장 김선익[1936년생]과 고태주[1954년생]가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있다. 2011년 8월 19일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24호 주물유기장 기능보유자로 박갑술이 인정받았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가계 및 전승]
주물유기장 박갑술은 부친의 유기 공장에서 1951년부터 전통 유기 제작 과정을 전수받았다. 그 후에는 여러 공장에서 유기 제작 기술을 배웠다. 1961년 영남유기 공장을 설립하여 현재까지 식기, 주방용품 및 불교용품 등을 제작해 오고 있다. 식기에는 합주발, 연엽주발, 옥주발 등과 촛대, 향로, 잔, 잔대 등의 제기용품 그리고 요령이나 학교종 등을 생산한다. 더불어 제자들과 아들들에게 유기 제작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기술 내용]
주물 유기장은 구리 1근[16냥 약 70%~72%]에 주석 4냥 닷 돈[약 28%~30%]을 합금하여 끓는 쇳물[鍮器]에 녹인 다음 틀에 부어 주조(鑄造)하는 전통 주물(鑄物) 기법으로 주방용품이나 식기 및 불교용품을 제작하는 전통 공예 기법이다.
박갑술은 주물 유기를 제작하는 전통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주물 유기를 제작하는 방식은 크게 부질간공정과 가질간공정으로 나뉜다. 부질은 쇠를 녹여 거푸집에 부어 거친 상태의 놋쇠 제품을 만들기까지의 공정이다. 쇳물을 녹이는 용해, 거푸집 만들기, 그을음질 하기, 쇳물 붓기, 기물 꺼내기, 담금질의 순서로 진행한다. 가질은 거친 표면을 깎고 연마하여 광택이 나는 상태로 만드는 공정인데, 그는 특히 가질 작업에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데 장점이 있다. 전동식 회전기계[돌림틀]과 함께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발구름식 돌림틀을 돌려 깎아내는 전통 가질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