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13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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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Chuyang-ri Durepungjang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추양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성복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추양리에서 두레의 공동와 마을 행사 때 행하던 풍물놀이.
[개설]
추양리 두레풍장은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추양리에 있는 전주 이씨(全州 李氏) 집성촌인 고추골에서 전승되어 오는 풍물놀이이다. 과거 두레가 활발하였던 고추골에서는 모내기나 김매기 등 농사일을 할 때나 마을에 행사가 있을 때면 늘 풍물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과거 이노익·임상남·이용익 상쇠 등이 두레풍장을 이끌었는데, 솜씨가 출중하여 1950~1970년대 두레먹이를 하는 날이면 논산·강경·부여·탄천 인근의 내로라하는 풍물꾼과 구경꾼이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경기·충청 지역에 분포하는 웃다리풍물은 대체로 전문적인 예능인 집단인 남사당패 출신의 뜬쇠들이 주도하고 있는데, 추양리 두레풍장은 지역에 뿌리 내린 토박이 농악이라는 특징이 돋보인다.
[연원]
두레풍장은 두레패가 치는 풍물놀이로서, 대체로 조선 후기인 17~18세기에 이앙법이 보급되면서 두레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성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추양리 두레풍장 역시 조선 후기의 산물로 짐작할 수 있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추양리에는 1930년에 제작한 농기와 함께 나팔, 북, 장구 등이 있다.
[놀이 방법]
추양리 두레풍장은 가는풍장[늦은마치], 잦은세마치, 자진마치로 구성된다. 가는풍장은 느린 보폭으로 평화롭게 걸어가는 가락으로, 두레풍장패가 영기를 앞세우고 논이나 작업장을 향하여 가거나 이동할 때 친다. 평화롭게 안온한 느낌을 주며,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잦은세마치는 논매기를 할 때 1인당 모 3줄씩 맡아 잡초 제거를 하는 동작에 맞추어 치는 가락이다. 점점 속도가 빨라지다가 자진마치로 연결된다. 자진마치는 논매기의 속도를 높여 최고조의 속도로 일을 마무리할 때 치는 가락으로, 추양리 두레풍장의 백미이다. 언뜻 듣기에 장구가락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아 소리가 맞지 않는 듯하지만, 상쇠의 꽹과리 소리에 맞춰 장구가락이 굿마치를 치며 변주하는 변화의 맛과 구성진 맛이 일품이다.
추양리에서는 두레풍장 외에 ‘꽃나부풍장’이 있다. 두레먹이[김매기를 마칠 무렵에 벌이는 마을 잔치]나 부잣집 잔칫날과 같이 크게 풍물판을 벌일 때, 갖가지 풍물을 갖추고 돌모[상모]를 돌리며 꽃나부[무동놀이]를 서는 판굿을 벌인다. 이를 ‘노름마치’라고도 한다. 큰 마당에서 벌이는 노름마치는 인사굿, 도둑굿, 칠채, 쩍쩍이, 연풍대, 멍석말이, 쓰레질, 좌우치기, 삼통배기, 장구놀음, 진상모놀이 등의 순서로 갖가지 기예를 선보인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1970년대 이전까지도 두레를 조직하여 김매기를 마치면 칠석이나 백중 무렵에 날을 잡아 두레를 총결산하는 두레먹이를 하였다. 품값을 결산하고 남은 비용으로 푸짐하게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흥겹게 풍물놀이를 벌이며 마을잔치를 벌였다.
[현황]
부여 지역에서 두레를 통한 공동노동은 1950년대 6·25 전쟁을 겪으면서 소멸되었지만, 해마다 두레를 결산한 뒤 마을잔치를 베푸는 칠석 두레먹이의 전통은 지속되었다. 추양리 두레풍장은 조선 후기부터 지속되었으나 두레가 소멸하면서 한때 단절 위기에 있다가 1970년대 마을 주민과 출향 인사들을 망라한 자치적인 추양리두레풍장보존회가 결성되어 현재도 맥을 이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