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4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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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利組合反對運動 |
영어공식명칭 | Anti-movement against the Irrigation Associat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영 |
전개 시기/일시 | 1928년 2월 8일 - 공주지방법원에서 임종래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 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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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 시기/일시 | 1928년 2월 10일 - 수리조합반대운동 개시 |
전개 시기/일시 | 1928년 2월 17일 - 부여군 충화면 주민들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사원 및 임천면장 폭행 |
발생|시작 장소 | 수리조합반대운동 -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
성격 | 농민 저항운동 |
관련 인물/단체 | 임종래|김목현|동양척식주식회사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수리조합 설치에 반대하여 일어난 농민 저항운동.
[개설]
수리조합반대운동(水利組合反對運動)은 일제가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과 충화면에 수리조합을 설치하려 하자 충화면의 복금리와 만지리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저항운동이다.
[역사적 배경]
토지조사사업을 통하여 식민지 수탈 체제를 갖춘 일제는 농업 수탈을 위하여 산미 증식 계획을 실시하면서 토지 개량의 일환으로 각지에 수리조합을 설치·후원하였다. 그러나 수리조합 사업은 대지주를 위주로 한 것으로 중소 지주 및 자소작농에게는 사업비와 세금 등 과중한 부담을 부과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대지주 중심의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수리조합 추진에 대항하여 중소 지주와 자소작농의 반대 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전개되었다.
[경과]
임천면과 충화면에 수리조합 설치가 결정되자 1928년 2월 10일 충화면 복금리의 임종래(林宗來), 김목현(金穆鉉) 등 780명이 면민대회를 열고 수리조합 설치 반대를 결의하였다. 임종래 등은 임천면장에게 수리조합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계약서를 요구하고 수리조합 반대 진정서를 부여군과 충남도청, 조선총독부에 제출하였다. 그러던 중 1928년 2월 17일 수리조합 공사를 대행하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사원이 인부를 데리고 수리조합 수원지의 지질을 조사하였는데, 격분한 복금리와 만지리 주민들이 조사원을 구타하고 현장에 나온 임천면장을 집단 폭행하였다.
[결과]
동양척식회사 조사원과 임천면장에 대한 폭행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김목현 등 7명을 체포하였다. 1928년 10월 8일 공주지방법원은 임종래에게 소요죄를 적용하여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였다.
[의의와 평가]
수리조합반대운동은 수리조합 사업의 강제성과 과중한 부담에 저항하여 부여군 농민들이 일으킨 투쟁이며, 투쟁 양상이 조직적이고 과격성을 띠었다. 수리조합반대운동은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1930년 4월 20일 수리조합 공사 현장 노동자들의 동맹파업으로 이어지는 등 지역 운동으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