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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햇사레 복숭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B020702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경수, 고유리

감곡 복숭아 재배의 시작은 1940년경 오행2리 거일의 한동억(작고. 한효섭의 부) 씨와 노필우 씨 장호원 진암리의 일본인 고야 씨가 최초로 개원했다. 당시 복숭아 카탈로그를 보고 일본으로 신청서와 함께 묘목대를 보냈는데 수밀도 100주와 그 동안 가격이 내렸다며 남는 돈을 함께 보내왔다 한다. 이 묘목을 오행리 418번지(현재 한효섭의 과수원)에 심고, 성목이 되자 수확을 했는데 포장할 때가 없어 쌀 가마니에 담아 트럭에 싣고 서울에 가서 판매했는데 가격이 좋았다한다. 1944년경에 거일의 이제근 씨 주선으로 지종욱, 서상봉, 한봉섭 씨도 복숭아를 심었는데, 지종욱 씨는 묘목을 자체 생산했고 서상봉, 한봉섭 씨는 대구에서 묘목을 구입했다 한다. 품종은 이핵수밀도, 극조생, 만백, 금도(맛이 시면서 달고 색이 노랗다)가 주종을 이루었다 한다. 수확 후 판매는 당시에 복숭아가 귀해서 지역의 상인과 과일장수 아주머니들이 과수원에 와서 직접 사 갖다 한다.

6·25 이후 1959년부터는 복숭아 재배 농가와 생산량도 늘어나, 지역 판매에서 벗어나 서울로 출하를 했는데 이때부터 18.75㎏ 목상자를 사용했다. 복숭아의 재배는 특별한 기술 지도는 받지 못하고 일본 책자를 구입해서 기술을 습득했고 고야 씨의 과수원 견학과 이제근 씨의 지도를 받았다 한다.

미백은 오행1리 최병찬 씨와 고호종 씨 외 몇 농가에서 1958년에 장호원 오남리에 거주하는 문재호 씨에게 묘목을 구입해서 재배를 한 것이 품종도 좋고 가격이 좋아 농가에서 많이 재배하게 되어 지금은 감곡의 주 재배 품종이 되었다. 복숭아가 소득이 높자 관내 농가에서 많이 재배하여 물량이 많아지면서 판매에 어려움을 겪던 중 1972년 뜻 있는 사람(고호종, 지종욱, 심영섭, 박하용, 한재준, 김의태, 유영렬, 윤희, 이한용, 김용선, 신현장 씨는 나중에 합류)들이 모여 감곡 과수단지 위원회를 창설하여 판매 및 복숭아 재배 지도, 자재의 구입 등을 맡게 되었다.(오향2리 지종욱 씨 증언)

복숭아의 생산량이 계속 증가하다가 1980년 냉해로 인하여 저지대의 나무가 동사하자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였다. 이에 농협에서 복숭아 식재 농가에 저리 자금을 지원하여 면적을 확대하였고 1983년부터는 작목반을 구성하여, 본격적으로 농가를 지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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