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광산김씨 입향조.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구(士久). 아버지는 군수(郡守) 김봉서(金鳳瑞)이다. 음보(蔭補)로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를 지냈다. 한성에 살다가 1593년(선조 26)에 임진왜란을 피하여 처가가 있는 지금의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초천리에 와서 머물렀다. 1599년(선조 32)에 한성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전쟁으로 집이 불타 없어졌다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중기 광산김씨 음성 입향조 김덕항(金德恒)의 묘비. 김덕항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군수(郡守) 김봉서(金鳳瑞)의 아들이다. 자는 사구(士久)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음보(蔭補)로 군자감(軍資監) 주부(主簿)를 지냈다.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성에서 음성읍 초평리 처가인 남씨(南氏) 집으로 와서 우거(寓居)하였다....
충청북도 음성군의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충청북도 북부 지역은 구석기를 비롯하여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선사시대의 유적지가 많다. 따라서 이들 지역과 인접한 음성에서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개연성이 높다. 실제로 삼성면 용성리에서 석영질 암석으로 만든 찍개와 긁개, 밀개 등의 연모가 출토됨으로써 음성 지역의 구석기시대와 문화의 존재를 입증하였다. 청동기문화를 대표하...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계수(季守), 호는 희암(希菴)·송국주인(松菊主人). 아버지는 현령 윤해(尹海)이다. 한성에서 출생하여 4세에 책을 읽고 글씨를 써서 세상 사람들이 신동이라 칭하였다. 1554년(명종 9) 정산(鼎山) 박형(朴泂)의 문인이 되어 장차 대유(大儒)가 될 인물이라 하였다. 1580년 이조판서 윤국형(尹國馨)의 천거로 희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음성 지역에 언제 처음 성곽이 축조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청동기시대 구릉 위에 만든 마을의 둘레에 환호(環壕)를 두른 유적이 나타나고, 이어서 그 안팎으로 나무말뚝 따위를 죽 이어서 박아 만든 울타리, 곧 울짱의 형태와 같은 목책(木柵)을 두른 시설이 나타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목책 이외에 흙으로 다져서 성벽을 만드는 단계로 발전된 것이 확인되었다. 삼국...
남민을 시조로 하고 남두명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남씨(南氏)는 경덕왕(景德王) 때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로 남민(南敏)을 시조로 삼고 있으나 시조 이하 누대(累代)가 실전(失傳)되어 세계(世系)를 잇지 못하였다. 고려조에 이르러 남민의 후손 3형제가 있어 맏이 남홍보(南洪輔)는 영양남씨(英陽南氏), 둘째 남군보(南君甫)는 의령남씨(宜寧南氏), 막내 남광보(南匡...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에 속하는 의령남씨의 동족 마을. 음성군 지역에서 의령남씨가 세거하는 동족마을은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 노래기이다. 상노리는 본래 음성군 남면에 속해 있었던 지역으로, 노악리 위쪽에 있다 하여 웃노라기·상노라기·상노동 이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노리라 하여 원남면에 편입되었다. 의령남씨 시조 남민(南敏)의 11세손 찰방 남두성(南...
충청북도 음성 지역에 고구려가 설치한 행정 구역. 음성은 잉홀(仍忽)·설성(雪城)·잉근내(仍劤內)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잉홀의 지명은 서기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 12월에 음성으로 변경되었다.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 약물제 동쪽에 터골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 구문동(龜文洞)이라고도 하는 이 마을은 고구려 때 잉홀현의 관청이 있어 ‘터골’이라고 하였고 ‘...
최순작을 시조로 하고 최우령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전주최씨(全州崔氏)의 시조는 고려 정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완주백(完州伯)에 봉해진 최순작(崔純爵)이다. 시조 최순작의 12세손 최우령(崔禹齡)이 한성에서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로 와 세거하였다. 전주최씨 음성 세거지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이다. 조촌리 덕고개에 30여...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삼생리에 속하는 전주최씨의 동족 마을. 전주최씨 시조인 최순작(崔純爵)의 12대손 최우령(崔禹齡)이 한성에서 원남면 조촌리로 들어와 세거한 마을로 음성읍 삼생리 거문거리이다. 전주최씨가 한성에서 원남면 조촌리로 들어와 세거한 마을로 지명이 장갈, 무직이 등으로 불리는데 이곳을 통털어 장갈이라 하므로 장갈최씨라고 부른다. 전주최씨의 시조인 최순작(崔純爵)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