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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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의 모래재에 있는 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사람들이 ‘각시무덤’이라고 부르는 무덤은 소이면의 소재지인 대장리에서 서북쪽으로 1㎞ 떨어진 모래재라는 고개 중턱에 있다. 이 무덤은 조선 중기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살던 청주고씨 집안의 고이후(高以厚)와 혼인을 앞두고 죽은 고흥유씨 처녀가 묻힌 곳이라고 전한다. 1982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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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베를 짤 때 부르는 노동요. 1977년 소이면 비산리에 사는 홍종화(남, 66)가 구연한 것을 채록하였다. 부녀자들이 베를 짜면서 그 과정을 노래한 대표적인 노동요이자 부요(婦謠)이다. 영남 지방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지방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4·4조의 4음보로 구성되어 있고 내용은 베틀 기구들을 여러 가지로 의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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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전해오는 생바위에 관한 설화. 큰 바위에 얽힌 기원담으로 성불을 소재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버려야 할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대장리에서 남북으로 약 4㎞ 지점에 비선거리가 있고 그 북쪽으로 충주시 신니면 화안리와의 군경에 해발 400m의 비산이 있다. 주봉인 가섭산의 줄기가 동쪽으로 내리뻗어 오다가 이곳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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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풍광(風光)·풍속(風俗)·사적(史蹟) 등을 유람하는 일. 음성군은 충청북도의 북서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충청북도 충주시, 서쪽으로는 경기도 안성시와 충청북도 진천군, 남쪽으로는 충청북도 괴산군, 북쪽으로는 경기도 이천시와 각각 접하여 경기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룬다. 충청북도 음성군의 관광 요소는 크게 주요 관광지, 문화유적, 음성의 축제 등으로 나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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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금융 거래의 중개를 주요 업무로 하는 기관. 예금 등에 의해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기업 또는 개인에게 대부하거나 증권 투자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을 총칭해서 금융 기관이라 한다. 한국의 금융 기관은 취급하는 금융 서비스의 성격에 따라 은행, 비은행 예금 취급 기관, 증권회사, 보험회사 및 기타 금융 기관으로 대별된다. 여기서 은행은 다시 일반은행(시중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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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김덕제는 1940년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27년간 지방 행정에 몸담으며 지역 발전에 헌신한 행정가이다. 음성중학교·음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6년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근무를 시작으로 1967년 소이면 근무, 1969년 음성군청 문화공보실 근무, 내무과 통계계장에 이어 교육훈련·개발·위생·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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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조선 말기 문신 김재은(金在殷)의 선정비. 김재은은 고종 때의 관리이다. 1904년(광무 8)에 중추원의관(정3품)을 거쳐 1905년 정2품 가선대부(正二品嘉善大夫)로 충주군수 서주임관1등(敍奏任官一等)에 임명되었다. 내부대신육군부장훈1등(內部大臣陸軍副將勳一等) 이지용(李祉鎔)이 발급한 충주군수로 임명받았을 때의 교지(敎旨)가 국립중앙도서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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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인삼·약용 작물 중점 연구소. 고려인삼과 약용 작물을 국가의 성장 동력 산업으로 발전시키고 부가 가치를 증대하여 소득 향상과 농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자 2007년에 대통령령 제20079호에 의거, 설치되었다. 인삼 재배와 효능 연구를 담당했던 한국인삼연초연구원이 1996년 인삼산업법에 따라 민영화되면서 업무가 농림부로 이관되면서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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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대경사(大京寺)에 있는 고려 전기 삼층석탑. 대경사 삼층석탑은 음성향교 앞 묘정사 부근에 있었는데, 누군가가 자기 집으로 옮겨놓았다가 6·25전쟁 때 파괴되었다고 한다. 방치되었던 탑을 50여 년 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와 복원하였다. 전체적으로 원형이 매우 훼손된 상태이다. 1매의 지대석 위에 기단석을 올려놓고 그 위에 바로 1층 탑신을 얹었다.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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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가섭산에 있는 고려 전기에 창건된 대한불교조계종단의 법주사 말사(末寺). 미타사는 630년(진덕여왕 8) 원효에 의해 창건된 이후 876년(헌강왕 2)에 도선국사가 중창하였고 1370년에 무학대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창건과 관련된 유적과 유물은 보이지 않는다. 현존하는 유물로 보아 미타사는 늦어도 고려 전기에는 창건되었다고 이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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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미타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아미타불좌상. 미타사 석조여래좌상은 화강암으로 아미타상을 조각한 불상으로 미타사 삼성각에 봉안되어 있는 석불이다. 불상의 머리와 양손은 파손된 것을 시멘트로 보수한 것으로, 매우 조잡하다. 졸속하게 보수를 하였지만 양팔의 형태로 보아 불상이 결한 수인(手印)은 아미타 수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법의는 통견(通肩)으로 등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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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고분군.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서 미타사 방향으로 약 500m 올라간 지점에 저수지가 있다. 이 저수지 옆에 밭과 과수원으로 개간되어 경작되고 있는 지역과 구릉 지역, 인삼포로 경작되고 있는 지역은 고려장터로 불리는 돌널 무덤이 조성된 곳이다. 비산리 고분군도 이와 같이 돌널 무덤이 떼를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고분군이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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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기와가마 터. 비산리에서 미타사 쪽으로 약 500m쯤 가면 저수지가 있고, 그 옆에 단층 슬라브집이 있는데, 이곳이 기와를 굽던 기와가마 터라고 한다. 또 저수지 아래쪽에는 사과나무 밭이 있는데 이곳 또한 기와를 굽던 곳이라 전한다. 비산리 기와가마 터는 지표 조사만 이루어졌지만 비교적 규모가 큰 기와가마 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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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새마을금고법에 의거하여 설립·운영되는 금융 기관. 새마을금고는 신용협동조합법이 제정되기 이전인 1963년 재건 국민 운동의 향토 개발 사업으로 시작되었다. 우리 민족 고유의 품앗이, 두레, 계, 향약 등에서 나타나는 상부상조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상호 유대를 가진 사람들이 협동 조직체를 만들고 자금을 조성하여 시작한 단체로 경상남도 의령군에 설립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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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4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소이면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3㎞ 지점인 비산리 중부 지역에 위치하는 마을이다. 동쪽으로 오랫말, 서쪽으로 비선거리, 동남쪽으로 대장리 장막산과 각각 접하고 있다. 비선거리 동남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충주군 사이포면 조돈촌리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비산리에 속하게 되면서 소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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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비 안중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비. 조선시대는 유교 국가로 충과 효를 강조하며 귀감이 되는 사례를 발굴하고 이를 기리기 위한 흔적을 많이 남겼는데, 이것이 충신각, 열녀각, 효자비 등으로 남아 있다. 안중성은 조선 영조 때의 선비이며 효자로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시향(時鄕), 호는 화산처사(花山處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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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중현(仲賢), 호는 혜인(兮人). 서예가 유한지(兪漢芝)의 손자이며, 이조참의 유초환(兪初煥)의 아우이다. 1855년(철종 6) 사마시에 급제하여 창릉참봉, 제용봉사, 오위사과 등을 거쳐, 1871년(고종 8) 통례원인의, 한성부주부, 판관을 역임하고, 태조태종추상존호도감낭청을 담당하였다. 1872년 의령현감, 1874년 평강현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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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백선(伯善), 호는 남강(南岡). 서예가 유한지(兪漢芝)의 손자이며, 사복시판관 유능환(兪能煥)의 형이다. 1849년(헌종 15) 진사가 되고 1863년(철종 14) 문과에 급제하였다. 학문이 깊고 문장에 능하며 선대 3대의 필법(筆法)을 이어받아 글씨가 정묘(精妙)하였다. 벼슬에 나아가 정언, 교리, 사성, 승지, 대사간을 거쳐 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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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덕휘(德輝), 호는 기원(綺園). 산청현감 유언수(兪彦繡)의 아들이다. 사마시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아가 감역, 영춘현감을 역임하고,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에 이르렀다. 아버지의 필법을 이어받아 필재(筆才)로 명성을 얻어 “동방 전예(篆隸)의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해동호보(海東號譜)』에 “유기원은 전예를 잘해서 그 명성이 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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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미타사에 있는 고려 후기의 마애불. 불상의 머리 부분과 어깨 부분만 양각으로 처리하였고, 양손과 허리, 하반신 부분은 음각선으로 처리해 불상의 윤곽만을 나타냈다. 머리에는 두건형의 관모를 썼으며 상호는 원만자비상으로 비만한 편이다. 양 눈썹에서 코까지 연결되는 선은 뚜렷하나 두 눈과 입은 선명하지 않고, 양쪽 귀는 크고 뭉툭하다. 목은 매우 짧고 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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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바위에 새겨넣은 글자. 음애(陰崖)는 바위에 글자를 새겨놓았다고 전해지는 조선 중기의 문신 이자(李耔)의 호이다. 음애(陰崖)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햇빛이 비치지 않는 낭떠러지’를 의미한다. 음애동 각자는 이자가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위치한 음애동(陰崖洞)에 거주하면서 새겨놓았다고 전한다. 글자는 ‘음애동(陰崖洞)’이라는 글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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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산. 절하는 모양 같은 바위[拜岩: 배암]가 산에 있으므로 절바우산 또는 모양이 뾰족하다고 하여 뾰족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계곡에는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남쪽 하류에는 한벌천이 동쪽으로 흘러 음성천에 합류한다. 절바우산에는 절하는 모양의 바위인 절바우가 있다. 1930년대 돌뫼 동남쪽 절바우산에는 금광이었던 돌뫼광산 터가 있다. 절바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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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이자 자선사업가. 피학용은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살았으며, 천석(千石)의 부자였다. 1805년(순조 5) 38세 때 충주 지방에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돈 백 냥과 수십 석의 쌀로 구휼하였다. 충주목사가 이 사실을 당시 충청도관찰사였던 박윤수(朴崙壽)에게 알렸으며, 이 사실로 표창을 받았다. 1819년(순조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