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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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3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정운영의 효행에 관한 설화. 정운영(鄭運永)[1746~1820]의 자는 도숙(度叔),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교리 정창(鄭昌)의 13세손이며 동몽교관(童蒙敎官) 정석휴(鄭錫休)의 아들이다. 1746년(영조 22) 덕다리 외서촌(현재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에서 출생하였으며, 효행이 지극한 인물로 1843년(헌종 9) 정려(旌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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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 있는 초계정씨의 중시조를 봉안한 사우. 도장사에는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 죽계(竹溪) 정창(鄭昌), 우헌(愚軒) 정덕기(鄭德麒), 정국주(鄭國柱), 정국추(鄭國樞), 정국량(鄭國樑), 정국로(鄭國櫓), 정국빈(鄭國彬) 등 여덟 사람을 봉안하고 있으며 매년 3월 중정(中丁)과 9월 중정(中丁)에 제사하고 있다. 도장사는 조선 숙종조에 창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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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 있는 도장사에서 봄과 가을에 제향하는 의례. 박팽년(朴彭年)·정창(鄭昌)·정덕기(鄭德麒)·정국주(鄭國柱)·정국추(鄭國樞)·정국량(鄭國樑)·정국로(鄭國櫓)·정국빈(鄭國彬) 등을 모셔놓고 매년 봄(음력 3월 중정일)과 가을(음력 9월 중정일)에 음성의 유림과 초계정씨 종중에서 제향하고 있다. 도장사는 초계정씨의 중시조를 봉안한 사당으로 조선 숙종조에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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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우리나라에 유교가 언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유교 경전의 교육과 사서(史書) 편찬 등이 이루어졌음을 볼 때 이때 이미 유교가 문화적 요소로서 중요하게 인식되었음은 분명하다. 불교가 성행하였던 고려시대에도 국가 이념과 체제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유교의 이념은 상당히 중요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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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공거(公擧). 정창(鄭昌)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호조참판 정윤공(鄭輪公)이다. 그의 셋째 아들로, 형으로는 정국주(鄭國柱)와 정국추(鄭國樞)가 있으며, 동생으로는 정국노(鄭國櫓)와 정국빈(鄭國彬)이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시묘하던 중, 임진왜란을 당하여 마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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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 자는 공간(公幹). 정창(鄭昌)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호조참판 정윤공(鄭輪公)이다. 그의 막내아들로, 형으로는 정국주(鄭國柱), 정국추(鄭國樞), 정국량(鄭國樑), 정국노(鄭國櫓)가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천성이 효성스럽고 인품이 맑고 높았다. 활쏘기와 말타기 등 무예가 출중하여 무과에 합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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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충신이자 효자. 예로부터 효자 가문에서 충신이 난다고 하였으니, 정국주는 나라가 위급하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충성을 바쳤으므로 그 효와 충이 아울러 장하다고 칭송을 받았다. 본관은 초계. 정창(鄭昌)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호조참판 정윤공(鄭輪公)이다. 그의 맏아들로, 동생으로는 정국추(鄭國樞), 정국량(鄭國樑), 정국노(鄭國櫓), 정국빈(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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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공두(公斗). 정창(鄭昌)의 5대손이며, 아버지는 호조참판 정윤공(鄭輪公)이다. 5형제 중 둘째로 형이 정국주(鄭國柱)이며, 동생으로는 정국량(鄭國樑), 정국노(鄭國櫓), 정국빈(鄭國彬)이 있다. 정국추는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고 형과 아우들에게 우애와 정이 두터워 화목하였고, 충성과 의리 또한 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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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 자는 명여(命汝), 호는 일옥(一玉). 홍문공 정배걸(鄭倍傑)의 29세손이며 교리 정창(鄭昌)의 15세손이다. 아버지는 감역(監役) 정효선(鄭孝善), 어머니는 안동김씨이며, 부인은 양천허씨이다. 아들은 효자로 이름난 정인상(鄭寅尙)이다. 정규영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일찍이 서울에서 지내던 중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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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규영의 효자비. 정규영의 호는 일옥(一玉)으로, 죽계(竹溪) 정창(鄭昌)의 후손이며 감역(監役) 정효선(鄭孝善)의 아들이다. 자는 명여(命汝)이며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일찍이 서울로 올라왔다가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이 일어난 뒤에 고향으로 내려와 부모를 봉양하였다. 모친의 사후 3년 동안 상복을 벗지 않았고, 부친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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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초계. 자는 응수(應壽), 호는 소죽(小竹). 정창(鄭昌)의 후손이며, 판관 정시혁(鄭時赫)의 9세손이다. 조부는 정홍유(鄭洪猷), 아버지는 정학일(鄭學一)이다. 어머니는 하동정씨로 통덕랑 정해승(鄭海昇)의 딸이다. 부인은 경주이씨로 이다연(李多延)의 딸이다. 아들은 정보영(鄭輔永)·정민영(鄭玟永)·정택영(鄭澤永)이다. 천거로 문묘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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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도숙(度叔). 교리 정창(鄭昌)의 13세손이고, 아버지는 동몽교관(童蒙敎官) 정석휴(鄭錫休)이다. 1746년(영조 22)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에서 출생하였다. 오효자로 이름난 정국주(鄭國柱)의 후예답게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학문에도 뛰어나 경학에 덕망이 높았으나 과거를 보아 출세하면 부모를 봉양하기 어려움을 깨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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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행해지고 있는 신앙 활동 및 그 신념 체계. 한국사에서 외래 종교로서 처음 수용되었던 것은 불교였다. 고구려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들어온 해는 372년(소수림왕 2)이고 백제는 384년(침류왕 1)이며 신라는 눌지왕 때이다. 불교는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 깊게 신앙되며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 유교는 언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는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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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배걸을 시조로 하고 정중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초계정씨(草溪鄭氏) 시조는 정배걸(鄭倍傑)로 초계산성에 살았다. 1017년(현종 8) 문과에 장원하였으며 문종 때 예부상서(禮部尙書) 중추사(中樞使)에 이르렀다. 아들 정문은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형부상서 정당문학 겸 태자빈객(刑部尙書政堂文學兼太子賓客)이 되었으며, 죽은 뒤 좌복야 참지정사(特進左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