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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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효성스런 두 형제 이야기.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 일대에서 채록하여, 1982년에 출간한 『내고장 전통가꾸기-음성군-』에 수록하였다. 조선 후기 정조대에 감곡면 문촌리에 살던 윤기손과 윤기진 형제는 효자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어느 날, 홀어머니 원씨가 병환으로 자리에 드러눕자 형제는 밤낮없이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병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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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음성현감을 지낸 이세근이 1733년에 열성조(列聖朝) 19대의 업적을 서술한 책. 이세근(李世瑾)[1664~1735]은 음성군 맹동면 쌍정리의 배미에서 태어났다. 1699년(숙종 23) 문과 갑과로 급제한 뒤 사헌부지평(地平)이 되고, 1699년(숙종 25)에 음성현감을 지냈다. 『갱장록(羹墻錄)』은 『성조갱장록』·『열조갱장록』·『어정갱장록』이라고도 하는데, 그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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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학광(學光). 아버지는 이조참판 김세필(金世弼)이다. 김저(金儲)[1512~1547]는 1539년(중종 34)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을 거쳐 지평(持平)에 이르렀다. 1545년(인종 1) 을사사화로 심한 고문을 받고 삼수(三水)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사사(賜死)되었다. 선조 초에 관작(官爵)이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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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문을 시조로 하고 정한철과 정동협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시조는 고려 안일호장(安逸戶長) 정회문(鄭繪文)이다. 그 후손이 고려 초기 보윤호장을 지낸 정지원(鄭之遠)이다. 조선시대에 17명의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을 비롯한 많은 명신을 배출하여 전주이씨·안동김씨와 더불어 3대(大) 상신(相臣) 가문으로 유명하다. 동래정씨는 정지원의 5세손 대에서 교서랑공파(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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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 할아버지는 민동량(閔東亮)이고 아버지는 민경연(閔景淵)이다. 조상의 덕업을 받들어 모셔 어버이에게 효도하여 집안의 명성을 높였다. 정조조에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아들 민백원(閔百元)과 손자 민국현(閔國顯)은 경서에 능하였고 증손 민치경(閔致慶)은 문예에 숙달하여 사람들이 산동(山東) 문장이라 칭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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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사장(士章), 호는 시각(柴閣). 조부는 지평 박정완(朴廷琓)이다. 아버지는 박장흠(朴長欽)이다. 박성한은 조선 정조 때에 성균관 유생으로 1801년 감제시(柑製試)에서 수석을 차지함으로써 바로 전시(殿試)를 보게 하였다. 이듬해 초시 문과(文科)의 병과(丙科)에 합격하여 벼슬이 헌납(獻納)에 이르렀다. 사랑과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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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선비. 본관은 밀양. 자는 경견(敬絹), 호는 입재(立齋). 정조 대의 명신 매곡 박한규의 6세손이다. 아들로 박석원과 박두원이 있다.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하였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로 이주하였다. 15~16세 때 회당 윤응선에게 수학하여 학문에 탁월하였다. 일제의 학정에 세상의 뜻을 버리고 은거하여 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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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음성. 자는 여구(汝久). 충민공 박순(朴淳)의 12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진사 박성구(朴聖龜), 아버지는 지평 박정완(朴廷琓)이다. 부인은 문화유씨 유철모의 딸로 정조 때 정려를 받았다. 박장흠은 1754년(영조 30) 소과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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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창직을 시조로 하고 백사구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경명왕 때의 충낭장 백창직(白昌稷)을 시조로 하여 계대(繼代)를 이어오고 있다. 고려시대의 대표적 인물로는 성리학자 백이정, 공민왕 때 학자인 백문보(白文寶)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유학자인 백인걸(白仁傑), 그의 아들 백유함(白惟咸), 선조 때의 시인 백광훈(白光勳) 등이 있다. 2000년도 국세 조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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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 전통시대에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해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열녀란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한 부녀자로 일반적으로 열녀와 열부(烈婦)를 통칭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충효열 관념이 삼강오륜(三綱五倫)이라는 형태로 정치적·사회적 규범으로 체계화되면서 열녀는 사회적인 중요성을 강화해갔다.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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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우리나라에 유교가 언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유교 경전의 교육과 사서(史書) 편찬 등이 이루어졌음을 볼 때 이때 이미 유교가 문화적 요소로서 중요하게 인식되었음은 분명하다. 불교가 성행하였던 고려시대에도 국가 이념과 체제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유교의 이념은 상당히 중요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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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 살았던 열녀. 김언희(金彦熙)의 딸로, 19세에 남편 윤득성(尹得聖)이 병을 얻자 정성껏 간호하였다. 위급한 지경에 이르러 천지신명께 남편 대신 죽기를 빌었으나 끝내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상을 마친 후 독약을 먹고 자결하려 하였으나 집안사람에게 발견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유복자로 딸을 낳은 후 음식에 입을 대지 않다가 이틀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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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득여(得輿), 호는 관송(觀松)·쌍리(雙里). 좌찬성 이극돈(李克墩)의 후손이며, 이우선(李友善)의 아들이다. 이이첨은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에서 출생하였다. 천성이 효우하고 제행(制行)이 고결하여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김이 지극하였다. 1593년(선조 26) 광릉참봉에 제수되고 159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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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효열각은 윤기손, 윤기진 형제의 효성과 윤득성의 처 청풍김씨의 정절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윤기선, 윤기진 형제는 부모에 효성이 극진하였다. 어머니가 병으로 드러 누워 있으면서 고생을 하였는데 한여름에 기러기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그래서 신령님께 열심히 백일기도를 드린 결과 기러기 고기를 구하여 드리고 어머니가 운명하기 직전에 자기 손가락을 잘라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