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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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의 모래재에 있는 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사람들이 ‘각시무덤’이라고 부르는 무덤은 소이면의 소재지인 대장리에서 서북쪽으로 1㎞ 떨어진 모래재라는 고개 중턱에 있다. 이 무덤은 조선 중기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살던 청주고씨 집안의 고이후(高以厚)와 혼인을 앞두고 죽은 고흥유씨 처녀가 묻힌 곳이라고 전한다. 1982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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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지명 유래 전설. 1996년 『음성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 조 참판의 묘가 있다. 이 묘는 조선 인조 때 참판을 지낸 양반의 묘로 풍수지리상 피리혈이라고 한다. 그런데 묘를 몇 장만 썼어야 하는데 그 후손이 밑에다 자꾸 묘를 써서 피리 소리가 나는 곳을 막아 버렸다. 그 후부터 후손이 번성하지 못했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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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주천리에 있는 자점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자점보」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김자점(金自點)[1588~1651]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이귀 등과 인조반정을 성공시켜 출세가도를 달렸으나 효종이 즉위하고 송시열 등 산림 세력의 등용으로 북벌론이 대두되자 위협을 느끼고, 청나라에 누설하였다. 이후 유배되었다가 아들 김익의 역모사건이 발생하자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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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에 있는 골짜기. 감곡면은 음성군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면이며, 가미실은 감곡면 남쪽의 원당리·주천리·영산리·상평리·월정리 등에 걸쳐 있는 골짜기이다. 가미실의 이름을 따서 감미곡면(甘味谷面)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시대 충주군의 감미곡면은 원당, 선곡, 외주, 내주, 거동, 영촌, 공산, 덕동, 성평, 상촌, 독정, 무수, 하티, 월동 등의 11개 동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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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있는 산. 고문헌에는 음성의 진산으로 음성현 북쪽 8리에 있는 속리산[1,057m] 줄기로서 옛날 봉화대가 설치되어 있다고 하였다. 산 남쪽으로는 음성읍이 펼쳐있고, 북쪽은 충주시 신니면 선당리 등과 인접하고 있다. 음성팔경의 하나로서“가섭산의 저녁 종소리(가섭모종, 迦葉暮鐘)”를 들고 있다. 고려 초기 가섭산 중턱에 암자가 하나 있었고 그 암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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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을 시조로 하고 이만진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고성이씨(固城李氏) 시조 이황(李璜)은 고려 덕종(德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냈고 1033년(덕종 2) 거란의 침입 때에 공을 세워 호부상서(戶部尙書)에 올랐으며 철령군(鐵嶺君)[지금의 고성]에 봉해졌다. 고성이씨의 인물로는 7세손으로 고려 충렬왕 때 밀직사사(密直司使)를 지낸 이존비(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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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충청북도 음성군 지천서원에 배향된 인물.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숙(文叔), 호는 학주(鶴洲). 김자수(金自粹)의 8세손이고, 아버지는 김적(金積)이다. 김홍욱(金弘郁)[1602~1654]은 1635년(인조 13)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를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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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원남면 소재지에서 서북쪽으로 약 8㎞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덕정리, 서쪽으로 도마티[倒馬峙], 남쪽으로 조촌리, 북쪽으로 사항산과 각각 접해 있다. 원래 음성군 원서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음성군 근서면 삼생동 일부와 맹동면 단월동, 하삼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삼용리라 하고, 원남면에 편입시켰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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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에 속하는 행정리. 세 가닥의 산의 내용(來龍)이 어울린 곳에 마을이 있다고 하여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음성군 원서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음성군 근서면 삼생동 일부와 맹동면의 단월동·하삼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삼용리라 하여 원남면에 편입되었다. 새터 뒤에는 마을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국수봉이 있고 물언덕 뒤에는 왕자봉이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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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자장을 시조로 하고 조덕립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순창조씨 시조 조자장(趙子張)은 고려 초에 순창에서 호장을 지냈다. 그리하여 선조들의 토착지인 순창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고려 말의 충신 농은(農隱) 조원길(趙元吉), 세종 때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한 조숭문(趙崇文), 명종 때 목사를 역임한 조유성(趙惟誠),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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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한을 시조로 하고 이의제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시조는 고려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 이문한(李文漢)이며, 그의 후손인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 이대영(李大榮)·봉승랑(奉承郞) 이중영(李仲榮)·문하시중평장사 이수춘(李守椿)을 각각 중시조로 하는 파가 있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39명을 배출했다. 대표적 인물로는 이종검(李宗儉)·이보흠(李甫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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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사업가. 오주영은 조선 인조(仁祖) 때 영의정을 지낸 추탄(楸灘) 오윤겸(吳允謙)의 11세손이며 오극선(吳克善)의 아들이다. 2세 때 충청북도 중원군 신니면 신청리로 이사하고 1920년 12세 때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花洞)으로 이사하였으며, 1921년에는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 고내리로 이사하였다. 1922년 14세 되는 해에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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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우리나라에 유교가 언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유교 경전의 교육과 사서(史書) 편찬 등이 이루어졌음을 볼 때 이때 이미 유교가 문화적 요소로서 중요하게 인식되었음은 분명하다. 불교가 성행하였던 고려시대에도 국가 이념과 체제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유교의 이념은 상당히 중요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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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사언(思彦), 호는 습재(習齋), 졸부(拙夫)이다. 동몽교관 이희선(李喜善)의 아들이다. 부인은 밀양박씨로 첨지중추부사 박주(朴冑)의 딸이고, 음애(陰崖) 이자(李耔)의 외손이다. 이상급은 문과에 급제하여 1603년(선조 36)에 성균관진사가 되었으며, 1606년 증광문과 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권지승문원정자(權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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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 자는 징지(澄之), 호는 매죽헌(梅竹軒). 계림부원군 이수일(李守一)의 아들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 정자촌에서 출생하였다. 19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하고 1627년 영유현령, 1629년 상원군수, 1630년 숙천부사, 1631년 평안도병마절도사에 올랐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김자점 휘하의 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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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초계. 자는 향숙(饗叔). 아버지는 호조참의를 역임한 효자 정국노(鄭國櫓)이다. 조선 선조 때에 태릉참봉을 지내고, 봉사(奉事), 찰방(察訪), 부호군(副護軍)을 거쳐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만년에 고향으로 내려와 김정현, 조옥 등과 함께 향산의 고사(중국 당나라의 향산거사 백낙천의 향산구로회)를 본받아 칠십회(七十會)를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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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군헌(君獻), 호는 취병(翠屛). 승지(承旨) 조희보(趙希輔)의 아들이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지낸 조상우(趙相愚)는 그의 아들이다. 조형은 어려서 장난이 심하였으나 일찍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9세에 경서(經書)를 해득하여 세상 사람들이 경탄하였다. 1630년(인조 8)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