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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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4년에 간행된 조선 전기 문신 이자(李耔)의 시문집. 6대손 이도흥(李道興)과 족종손(族從孫) 영남백(嶺南伯) 이이장(李彝章)이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유고(遺稿)를 수록하고 제가(諸家)의 문집(文集), 야승(野乘), 패설(稗說) 및 『인가고첩(人家古帖)』, 『충재일록(冲齋日錄)』 등에서 채록하여 4권 2책으로 편집하고, 새로 편집한 연보를 합하여 1754년(영조 30)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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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字)는 창세(昌世), 호(號)는 눌재(訥齋). 아버지는 성균관진사 박지흥(朴智興)이고, 어머니는 생원 서종하(徐宗夏)의 딸이다. 박상은 성품이 강직·충정하였으며 문장이 뛰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강직하며 몸가짐이 정숙하여 언행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1496년(연산군 2)에 진사가 되었고, 1501년(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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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에 속하는 행정리. 비석동(碑石洞)의 ‘비’자와 돈산리(敦山里)의 ‘산’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사이포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비석동·조도리·돈산리를 병합하여 음성군 소이면에 편입되었다. 돌뫼 동쪽에는 절바우가 있는 절바우산(일명 뽀족산)이 있고 마타산 서쪽에는 가섭산[710m]의 줄기인 기운들산이 있다. 새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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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산리 음애동 은 중종조에 좌참찬을 지낸 음애(陰崖) 이자(李耔)가 기묘사화로 파직되어 소이면 비산리 음애동에 우거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비산1리 이명희 할아버지(83세)는 그곳 바위 위에 재실을 짓고 수업하였다고 전해오는 이야기에 대해 말해 주었다. “알지, 알지 그럼. 방죽안 뒤쪽 골짜기에 음애동이라는데 거기 도랑 가생이에 조그마한 바위가 있어. 거기가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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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바위에 새겨넣은 글자. 음애(陰崖)는 바위에 글자를 새겨놓았다고 전해지는 조선 중기의 문신 이자(李耔)의 호이다. 음애(陰崖)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햇빛이 비치지 않는 낭떠러지’를 의미한다. 음애동 각자는 이자가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위치한 음애동(陰崖洞)에 거주하면서 새겨놓았다고 전한다. 글자는 ‘음애동(陰崖洞)’이라는 글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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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사언(思彦), 호는 습재(習齋), 졸부(拙夫)이다. 동몽교관 이희선(李喜善)의 아들이다. 부인은 밀양박씨로 첨지중추부사 박주(朴冑)의 딸이고, 음애(陰崖) 이자(李耔)의 외손이다. 이상급은 문과에 급제하여 1603년(선조 36)에 성균관진사가 되었으며, 1606년 증광문과 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권지승문원정자(權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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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으로 유배된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차야(次野), 호는 음애(陰崖)·몽옹(夢翁)·계옹(溪翁)·풍림거사(楓林居士). 이색(李穡)의 후손이며, 참판 이형증(李亨增)의 손자로, 대사간 이예견(李禮堅)의 아들이다. 부인은 인천채씨로 채수(蔡壽)의 딸이다. 1504년(연산군 10) 식년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이후 사헌부감찰에 제수되어, 천추사(千秋使)...